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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였음 청년(1)

0세대 헌터가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헌터였음 청년(1)

이안은 스스로를 헌터라고 생각했다.   낮과 밤의 경계선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마물을 사냥하는 자들.   으레 헌터들의 사냥은 어둑한 그늘 아래에서 이루어지고는 했다.   깊은 산중에는 대호(大虎)가 있다. 육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집어삼키는 산군은 자신이 잡아먹은 생명의 혼백을 자유자재로 부렸다.   묘지의 음지에는 구울이 있다. 썩은 시체를 파먹으며 힘을 불리고 살아있는 것들의 심장을 노리는 식인귀는 고인의 목소리로 희생양을 유혹했다.   성당의 종루 아래에서는 듀라한이 죽음을 예고하며, 거친 숲 사이에는 두 발로 걷는 늑대들이 제 정체를 숨긴 채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흡혈귀가 있다.   고성(古城)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마천루 아래에. 영원한 젊음과 사람을 현혹하는 존재감을 무기 삼아 인간 사회에 스며든 흡혈귀가 있다.   헌터들은 그러한 밤의 족속들과 싸우는 자들이었다.   낮의 세상에 노출되는 일 없이, 남몰래.   하여 이안이 기억하는 헌터라는 명칭은 일종의 은어(隱語)였다.   누구도 그들을 밝은 태양 아래로 끄집어내어 이름지어주지 않았으므로. 스스로를 부를 만한 명칭이 달리 없었기에 자신들의 행위를 곧 이름으로 삼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네, 429번 헌터님. 7번 창구로 와 주세요!”   지금처럼 벌건 대낮에, 세련된 청사(廳舍)에서 공무원이 헌터라는 이름을 부르는 건, 이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   ‘이게 진짜 무슨 일이지.’   이안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스테이터스’니, ‘상태창’이니. 자신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단어들을 온갖 사람들이 외치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사냥터에 대한 정보를 큰 소리로 공유하고 있었다. 이번에 열린 게이트는 불 속성 몬스터가 많이 나온다느니, 얼음 속성 장비는 체온 유지 용으로나 쓸만하다느니 같은 이야기들.   낯선 대화였다.   저런 이야기를 공공연히 한다는 점에서부터.   이안은 자신이 다른 동료와 사냥을 준비할 때를 떠올렸다.   밤의 족속들이 뿌려둔 사역마나 끄나풀 따위가 언제 어디에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을지 몰라, 저런 대화는 정말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는데.   더해 ‘게이트’라는, 현실과는 박리된 장소를 부르는 단어 또한 낯설었다.   이안에게 있어 헌터의 사냥터란 절해고도처럼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장소거나 마법으로 숨겨져 있기는 해도, 결국 현실의 연장선상이었다.   ‘게이트’와 같은 개념은 그야말로 소설 속에서나 나오던 이야기였다.   그 소설이란 것도, 이 세상의 소설이 아니었지만.   “432번 헌터님! 9번 창구로 와 주세요!”그의 번호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현재에 낯설어하며 9번 창구로 향했다.   9번 창구에 앉은 접수원은 아인종이었다. 뾰족한 귀와 은근히 풍기는 풀 향은 그가 헌터로서 종종 마주했던 요정을 떠올리게 했다.   …요정이라는 단어야 좋지. 사람 목숨이 걸린 살벌한 장난을 시시때때로 걸어오던가 자연을 망가뜨린 너희를 증오한다며 달려드는 게 이안이 아는 요정의 평균이었다.   만일 이 접수원을 헌터로서 활동하던 당시에 마주했다면 당장 무기부터 겨누었으리라.   “헌터지원청 방문 사유가…. 어머. 게이트 내부 실종자셨다구요?”   이안의 사연은 ‘게이트 내부 실종자’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뭉뚱그리기에는 너무 복잡했지만, 그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하자니 지금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모자랄 터였다.   그래서 이안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탐사 도중 실종되신 헌터분들은 기억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요. 혹시 스스로의 이름은 기억하시나요?”잠깐의 고민이 스쳐지나갔다. 이안은 계산을 마치고 이름을 밝혔다.  “이안입니다.”   요정 접수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헌터지원청 실종자 목록에는 이안 헌터님과 같은 성함과 인상착의의 헌터분은 없으세요. 혹시 마지막으로 게이트에 진입하기 전의 시간대를 기억하시나요?”   그는 지구에서 쫓겨나기 전, 마지막 기억을 되짚었다.   세기말. 뭇 별들이 교차할 때. 흡혈귀들이 종족의 왕을 되살리고자 날뛰던 운명의 날을.   “1999년입니다.”   요정 접수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1999년? 어, 서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진짜 예전 분이시네요!”   옛날 사람. 이안은 낯선 호칭에 당혹했다. 그는 헌터들 사이에서도 젊은 편이었다. 이전 생의 기억을 더한다면 이야기가 다소 달라지겠지만….   “서력을 쓰던 시기에는 지금처럼 헌터지원청이 설립되기도 전이라 정보 누락이 많거든요.”   접수원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설명해 주었다.   성좌들이 지구에 제대로 영향을 끼치기도 전의 시기고, 마도공학이 확립되기도 전인데다가, 무엇보다도 ‘대격변’을 겪으면서 서력 시기 헌터 정보의 대부분은 사라졌다고.   다시 말해.   이 세상에 ‘헌터 이안’이라는 사람을 증명해 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됩니까?”   이안은 잔뜩 긴장했다. 원래 그가 활동하던 시기, 정부는 헌터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말이 헌터지, 정부의 입장에서 그들은 무장한 테러리스트에 가깝다. 이안이 알던 헌터 중 몇은 진짜 테러를 저지르기도 했고.   다국적 기업의 CEO가 늑대인간이어서 은탄을 준비하고 암살에 나섰다거나, 흡혈귀를 수장시키기겠답시고 댐을 터뜨리거나 했던 미치광이들.   헌터들에게도 나름의 뒷배가 있어 정부의 압력을 무마하긴 했지만, 헌터와 공권력은 근본적으로 상성이 안 맞았다.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무력이란 그런 것이니.   이안은 습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장 도망칠 퇴로를 찾아내기 위해서.   하지만 예의 요정 접수원은 그저 방긋 웃으며 답했다.   “네! 지금부터 새로 헌터 등록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여기 등급 측정 수정구에 손을 대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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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생각했다.   ‘…와.’   진짜 성좌물에서나 보던 물건이 튀어나왔다.   ***   “이런, F급이시네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얼핏 들은 바, 또 성좌물 소설에서 읽어온 바, 등급 측정 수정구는 대상자의 마력에 기반하여 등급을 분류한다.   이안의 시대, 지구에서 마력을 축적할 방법은 한정되어 있었다. 운 좋게 마력을 얻는다 하더라도 밤의 일족의 고위 개체를 만나면 모조리 소모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지금의 지구는 마력이 말도 안 되게 풍부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살갗이 아릴 지경이었다. 흡혈귀 귀족의 성에서나 느껴지던 강렬한 마력의 존재감이 도처에서 느껴지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안은 헌터 등록 절차라는 걸 끝내는 즉시 도서관에 가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힘내세요! 0세대 헌터 분들은 여러 성좌들이 관심을 가지시거든요. 성좌와 계약해서 상태창을 수여받으면 금방 승급하실 수 있을 거에요!”   독특한 단어가 이안의 귓가에 들려왔다.   “0세대요?”   “아, 공식적인 단어는 아닌데요. 저희 헌터지원청에서는 헌터 지원정책이 개정될 때마다 1차, 2차 하는 식으로 구분하거든요.”   그리고 이 시대의 헌터들은 자신들이 헌터로 인증받은 시기의 지원정책에 따라 서로의 세대를 구분했다. 1차 헌터 지원정책 시기에 헌터로 등록되었다면 1세대 헌터라 부르는 식으로.   곧 0세대는 헌터지원청 설립 이전에 활동하던 헌터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이안은 고개를 까딱였다. 사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은 그 ‘0세대’보다도 조금 더 예전에 활동했었으니까.   “F급 헌터, 이안.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요정 접수원은 이안에게 헌터 일련번호와 등급이 적힌 카드를 하나 발급해주었다.   헌터 등록증. 신분증과 결제용 카드를 겸하는 물건이었다.   “이거,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방금 등급 측정 수정구에서 스캔한 헌터님의 고유 마력정보가 담겨있어서요. 다른 사람이 주워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답니다.”   이안은 언제가 함께 사냥에 나섰던 드루이드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은 영혼의 형태에 따라 쌓는 마력의 형태 역시 달라진다던가.   ‘아무튼, 나름의 보안장치가 되어있다는 정도만 이해하면 되겠지.’   헌터 등록증을 받아든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접수원은 황급히 이안을 붙잡았다.   “헌터님, 잠시만요. 지금 저희 헌터지원청에서는 새로 헌터 활동을 시작한 분들을 위한 공공일자리 알선사업을 진행중이거든요!”   헌터지원청 별관의 지원청 공공사업부에 가면, 수익률은 낮아도 안전한 의뢰를 수주받을 수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지부터 막막하던 차였다. 이런 정보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리고 게이트 귀환자를 위한 주거복지정책도 있으니까요. 안내 책자가 있으니 한 번 읽어보셔요!”   책자를 받아든 이안은 헛웃음을 지었다.   헌터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이라니.   ‘이걸 세상이 좋아졌다고 표현해야 하나.’   이안은 마지막으로 접수원에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접수원은 경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이안 헌터님. 별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는 다종다양한 헌터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강화복으로 전신을 빈틈없이 감싼 쇠뇌잡이. 백금과 은으로 장식된 스태프를 들고 로브를 뒤집어 쓴 채 온 몸으로 ‘나 마법사요’하고 주장하는 청년.   그리고 헌터지원청 안에서부터 보이던 ‘상태창!’을 외치던 무리들까지.분명 하늘은 맑고 태양은 밝은데, 도시의 풍경은 밤의 일족이 활보하던 자정보다도 어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