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차이(1)
세대차이(1)
헌터지원청의 설립에는 여섯 시조가 관여했다. 지원청 별관 역사박물관만 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대격변을 끝낸 여섯 시조들은 앞으로도 인류의 싸움이 이어지리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어린이용 학습 만화 풍으로 적힌 전시물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앞으로 이어질 혼란상에, 또 끊임없이 솟아날 게이트에 대비할 필요를 느꼈다. 시조들은 각자의 방법론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그들 모두가 동의한 취지가 하나 있었다. 헌터들의 실력을 검증하고 분류할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 사냥은 사냥꾼과 사냥감 양자의 역량을 파악하면서부터 시작되기에. 자신과 표적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한다면 사냥의 성공률도, 사냥꾼의 생존률도 올라간다. 이로부터 F급에서부터 S급으로 이어지는 현행 등급체계가 만들어졌다. 등급 분류체계를 널리 알리기 위한 조직에 이런저런 지원이 더해져 완성된 것이 현재의 헌터지원청이었고. 예컨대, 1세대 지원정책은 –사실 이 시기에는 ‘지원’이라고 할 만한 것도 따로 없었다- 가진 바 마력량이나 실적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는 정도가 끝이었다. 사실 이때는 헌터들의 등급 분류 이상으로 게이트와 몬스터의 등급 분류에 집중했다. 적의 역량을 정확히 주지시킴으로써 헌터들의 보다 확실한 생존을 보장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2세대. 헌터들이 ‘파티’라고 칭한 사냥 목적의 일회성 집단을 넘어 보다 거대한 규모의 조직을 꾸리는 일이 많아졌다. 클랜이니 길드니 하는 조직을 지원청에 정식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3세대, 초보 헌터를 위한 전투 강좌가 개설된다. 새로이 헌터 업계에 진입한 신참의 전투력을 보강하고, 부상 등으로 은퇴한 원로의 암묵지(暗默知) 전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점차 살이 붙으며 현재는 7차 지원정책까지 나온 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변화의 중간중간에 0세대 헌터가 암초처럼 튀어나왔다. 사실, 2세대 지원정책. 넓게 본다면 3세대 지원정책까지는 0세대 역시 별다른 일 없이 융화되었다. 등급 분류를 주축으로 한 1세대 지원정책은 대격변 시기 이후에 헌터가 된 1세대 헌터들 뿐만 아니라, 대격변 시기에 헌터가 된 0세대까지 직접적인 수혜를 받게 되었으니까. 2세대 지원정책 반포 시기에는 이미 1세대 지원정책에 익숙해진 0세대가 아니라 대격변 당시 게이트 속에 표류해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시대와 괴리된’ 0세대 헌터들의 문제가 차츰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세대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세대차이가 부각된 것은 3세대부터였다. 은퇴한 0세대 헌터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진행한 강좌의 후기에 이런 이야기가 적히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그런 거 안 써요!’‘현장과는 괴리된 이야기.’ ‘늙고 병들었음 헌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0세대 헌터의 정체성이 문제였다. 대격변 시기는 정말, 극소수의 헌터를 제외하면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이루어진 재난이었다. 그런 재난 시기에 스스로를 지키고자, 혹은 다른 이유로 무기를 들어 몬스터와 맞서 싸우고 게이트를 탐사한 자들 전부가 0세대 헌터에 포함되었다. 헌데…. 공권력의 수뇌부조차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살아남아 싸우는 이들은 대저 어떤 인간군상일 것인가? 대격변 이전부터 싸움을 이어온 헌터. 혹은 사회붕괴급 재난상황에 대비한 극도의 생존주의자. 그리고 세계멸망 음모론을 믿고 있던, 렙틸리언이 우리 사회에 침투해 있으니 깨어나라 외치던 음모론자들.이 세 집단을 명확히 구별하기는 힘들었다. 셋 모두를 겸하는 교집합이 상당히 거대했으니까. 하여, 0세대 헌터의 스테레오타입은. 은박지 모자를 뒤집어쓰고 정부는 믿을 수 없다면서 흉기를 꼬나쥐고 사적제재에 나서던 인간들이었다…! 명가를 세운 시조들을 제외한 대격변기의 헌터 대부분이 이렇다 할 반향 없이 사라진 것도 이런 점 때문이었다. 고집불통, 시대착오적인 꼰대들. 게이트에서 발굴되는 0세대 헌터들 중에는 종종 지금 헌터지원청의 풍경조차 환각이 아니냐면서 날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게이트는 사실 외계인이 지구 표본 수집을 위해 생명체를 빨아들이는 캐틀 뮤틸레이션용 도구고, 자신은 최면장치에 당해 가상세계에 빠진 게 틀림없다면서.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변하냐고 외치는 구시대 헌터들에게 지원청의 직원들은 게이트에서 종종 발생하는 시공간의 왜곡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설명만으로 자신의 상황을 납득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이런 이들을 제도권에 포용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다. 가족이나 동료가 있다면 그들과 함께 헌터 길드에 들어가거나, 헌터-재활을 위한 프로그램을 설립하는 식으로. 그러한 방법들 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성좌와의 계약이었다. 성좌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직접 영혼에 불어넣어주는 권능과 지식은 사람의 고정관념마저 한 번에 뒤바꿀 충격을 선사할 수 있었다. 성좌들 역시 계약자로 0세대 헌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때문에 성좌교단은 세계 각지의 헌터지원청 건물마다 스카우터를 보내두었다. 으레 지원청에서 난동을 부리는 이들은 0세대 헌터였으므로, 그런 이들에게 접근한 후 계약을 주선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난동을 부리지 않는 0세대 헌터는 보통의 헌터와 구별하기 어려웠다. 이안에게 별다른 관심이 쏠리지 않은 이유 또한 그러했다. 0세대 치고는 너무 조곤조곤 조용히 상황을 받아들였으니까. 당시 이안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낸 사람이래봐야 요정 접수원 정도였다. ‘와, 0세대 치고는 굉장히 사교적이고 부드러운 분이구나!’하고. 0세대를 탐내는 교단의 시선에서 빗나간 채, 조용하고 성실하게 공공일자리 업무를 수행하던 이안은…. ***“승급하기에 충분한 실적을 채우셨는데, E급 승급 심사에 지원해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평소처럼 헌터지원청 별관에서 F급 게이트 식생 조사 의뢰를 수주받으려다가, 평소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승급 심사라.’ 이안은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안 그래도 언제고 보다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F급이라고 해서 느껴지는 멸시 같은 건 딱히 없었지만, 등급이 올라갈수록 더 강력한 게이트에 출입할 수 있었으니까. 더 높은 등급의 게이트는 곧 더 높은 많은 수입으로 이어진다. 비취 목걸이를 충전하기 위한 여러 촉매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안은 보다 많은 금전이 필요했다. 이안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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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어떻게 그냥 말발굽이 켈피의 꼬리깃보다 비싼 건지.’ 사실, 지금 헌터 사회에서 이안이 원하는 ‘그냥 말’은 희소종이었다. 대격변 이후 마력에 노출된 생물들은 환상종으로의 변이를 겪었다. 이안이 찾는 말 종류는 특히 변화가 다양한 편이었다. 말 머리를 한 물의 정령인 켈피로 거듭나거나, 머리에 뿔이 나거나, 등에 날개가 돋거나 하는 식으로. 가끔은 말도 하고 뿔도 돋고 날개가 달리는 슈퍼-변이종이 나타나기도 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한 덕에 오히려 ‘평범한 말’의 존재가 드물어진 것이다. 헌데 이안이 아는 전통적인 마력 충전법이란 대부분 평범한 생물종의 부위를 이용하여 이루어졌으므로…. ‘F급 게이트 공공일자리로는 최소한 몇 달에서 어쩌면 일년까지도 걸릴 금액이었지.’ 이안은 헌터지원청이 운영하는 다목적 사이트, 헌터넷에서 필요한 소재의 가격을 검색해 보았을 때의 충격을 떠올렸다. 경매 사이트에 올라간 소재 대부분이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으니까. 왜 마력이 깃들지도 않은 소재가 그리 가격이 높아졌느냐 하면, 오히려 마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탑 같은 곳에서 진행하는 정밀 실험은 소재가 가진 마력에 의해 결과가 왜곡될 수 있는데, 이러한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무마력 소재를 높은 가격에 매입한다고. 대기업들의 수요가 공급가액을 무지막지하게 올려놓은 셈이었다. 이안은 두건 너머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습니다.” “와! 그러면 돌아오는 화요일에 9시에 헌터지원청 본관 1층 등급측정실로 가 주세요!” “어….” 이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승급심사라는데 바로 다음 주에 시작이라니. 이건 너무 빠르지 않나? “승급 심사 전에 대비해야 할 건 뭐 없습니까?” “에이, E급 승급심사는 실적 확인 후 안전교육 이수로 끝인걸요.” “네?” 이안은 순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안전교육 이수가 끝이라니? 이건 말도 안 되지 않나. 그가 아는 헌터 집단 중에서 가장 느슨한 승급절차를 가지고 있던 건 (자칭) 마법사들 모임인 은열쇠의 여명 십자회였다. 그들의 ‘느슨한’ 승급절차라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기본적으로 달 단위의 추적관찰을 이어간 다음에, 옷을 포함한 소지품 일체를 압수하고 신화생물이 도사리는 원시의 숲 속에서 살아서 탈출하는 것. 이것이 ‘신참자’가 ‘입문자’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신참 취급을 벗어나 헌터로서 한 걸음을 디뎠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려면 이 정도의 시련은 겪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 혹시 다른 분들께 예전 시험에 대해 들으셨나요? 사실 필기시험이 있었는데 그게 7차 개정정책 들어오면서 D급 승급심사로 옮겨갔거든요. D급 실기시험에서 부상자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실기는 C급 승급부터 심사하자는 분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서….”이안은 기절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