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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마법사 (3)

침대 위의 대마법사 — novelpia.com · All chapters

숲 속의 마법사 (3)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굳이 위험 수위를 따지자면, 세계가 멸망하느냐 마느냐 급의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다름 아닌 내가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여도 영 진정이 안 됐다.“우어으어...”베개에 머리를 처박은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결국 이불을 팡팡 걷어찼다.하지만 아무리 이불킥을 하고, 머리를 쥐어뜯어도 이미 벌어지고 만 일을 수습할 순 없었다.“내가 미쳤지, 미쳤어.”과했다.과해도 너무 과했다.적당히 중급 수준의 마법만 썼어도 상급 언저리의 위력이 나왔을 텐데.리아가 다친 걸 보고 조금 열이 받은 나머지 상급 마법을 풀파워로 펼치고 말았다.정말 화려하게 날뛰었다.그걸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봐버렸다.식료품 상점 아줌마에 나무꾼 아저씨에 마을에 배치된 지 얼마 안 된 신참 경비대원까지 봤으니 말 다했다.심지어 마을을 찾아온 영주님과 기사들도 내 마법을 봐버렸단다.올 거면 일찍 와서 내가 마법 쓸 일 없게 하든가, 아니면 차라리 오질 말든가 할 것이지.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건 이미 확정이다.당장 영주님이 감사 인사를 전할 겸 직접 날 보러오겠다고 했으니까.반응이 예상됐다.이야~ 그 나이에 상급 마법사라고요? 정말 대단하십니다.그래서 말인데, 가볍게 저기 뒷산 좀 날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그렇게 나를 인간 지팡이, 혹은 인간 공성병기 비슷한 그 무언가로 써먹으려 하겠지.역시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는 제 1,2,3 원칙을 지켰어야 했다.한 번 나가기 시작하니까 계속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린 거 아냐.그렇게 에휴, 어휴 한숨을 내쉬며 우울함에 젖어 있을 때였다.옆에서 얄미운 웃음소리가 들렸다.“너무 그러지 마~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무사했잖아?”목발에 기댄 리아가 입꼬리를 올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그리고 나도... 루나 언니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고.”붕대에 칭칭 감긴 리아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와이번이 습격했을 때, 무너진 기둥에 짓눌려 크게 다친 다리.약초를 으깬 즙을 바르고 부목을 대는 등,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다 했지만 언제 나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불편한 내 마음을 느꼈는지, 리아가 괜히 다시 한 번 웃으며 말했다.“나 정말 괜찮다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언니.”말없이 손을 쭉 뻗어, 리아의 붉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그래. 리아가 무사하니까. 그걸로 됐다.만약 구하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 꿈자리가 뒤숭숭했을 거다.“그나저나 너 다리 그렇게 다쳐서 아카데미는 어떡하게?”리아가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아주 잠깐, 입술을 깨문 채 바닥을 바라보다가 이내 억지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내년에 입학시험 볼 때쯤이면 어느 정도 낫지 않았을까? 사실 시험은 자신 있는데, 아무래도 돈이...”말끝을 흐리는 리아의 표정이 어둡다.“아카데미 등록금이 그렇게 많이 들어?”“응. 그래서 장학생 선발을 노린 건데...”다리를 다친 채로는 어려울 거라며.설령 낫는다 하더라도 재활기간이며, 연습 부족이 발목을 잡을 거라며.아쉬움 가득한 푸념을 삼킨 채, 리아가 애써 미소 지었다.“그래도 마을에 남아서 언니나 다른 사람들하고 지내는 것도 난 좋으니까.”“...그냥 아카데미 안 가고 마을에 남는 건 어때?”무심한 척 툭 던진 말에 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생각해보면 그렇잖아. 마을에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갈 이유가 있나 싶어서.”말끝을 흐리며 리아의 표정을 살폈다.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리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래도 한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어. 어릴 때부터 내내 꿈꾸던 곳이고.”리아의 단호한 눈빛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그래, 이 고집쟁이를 내가 어떻게 말려.생각해 보면 아카데미에 들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것도 아닐 텐데.내가 숲 속에 틀어박힌 동안 원작의 사건이 전부 끝났을 수도 있고.내가 너무 걱정이 과한 걸지도 모르겠다.그때 창밖에서 달그락거리는 마차 소리가 들려왔다.“어? 영주님이다.”드디어 올 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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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마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사례하러 오신 걸 거야.”“그것만으로 끝나면 다행일 텐데 말이지...”*“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근방 영지를 관리하는 에이브릴 남작가의 가주, 카를로스 에이브릴입니다.”“루나리스 에버문이라고 해요.”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영주님의 정중한 인사를 받았다.마을을 구하기 위해 무리해서 마법을 펼치다가 탈진하고서 요양 중(이라는 컨셉)이다.눕지 않고 앉은 채로 얘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나름의 성의를 보인 거다.한 늙은 기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영주님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언젠가 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실 분이다. 당장의 신분은 중요치 않다.”과하게 공손한 영주님의 태도에 속이 더부룩해졌다.이게 다 나를 과로사에 시달리는 직장인으로 내몰기 위한 빌드업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나?“그래서, 용건이 뭔가요?”내가 똑바로 눈을 마주보며 말하자, 영주님이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그때 부엌에서부터 향긋한 냄새가 번져왔다.리아가 기어이 차를 끓이고 쿠키를 구운 모양이다.안 해도 된다니까, 참. 그리고 기왕 구울 거면 쿠키보단 에그타르트가 더 좋은데.“제가 가져오겠습니다.”한 눈치 빠른 기사가 말했다. 리아가 다친 걸 보고서 알아서 나서려는 듯했다.하지만 그가 발을 떼기도 전에 내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딸깍 마법, 놔뒀다 뭐해.차가 담긴 주전자와 찻잔, 그리고 쿠키가 담긴 접시가 허공 위에 둥둥 뜬 채 날아와, 나와 영주님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에 바지런히 놓였다.다시 손가락을 움직여, 자연스럽게 쿠키를 집어들고 옴뇸뇸 입에 넣기가 무섭게 탄성이 터져나왔다.‘...아.’리아의 쿠키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만 무의식적으로 염동 마법을 쓰고 말았다.하필이면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아니나 다를까, 영주님과 기사들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나이도 얼마 안 되어 보이는데 벌써 대마법사의 경지에...”“루나 언니, 이제 겨우 16살밖에 안 됐어요.”어느새 방 안에 들어온 리아가 생글 웃으며 공손히 덧붙였다.그러고선 뿌듯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한테 눈을 찡긋했다.나 잘했지?입모양으로 말하는 리아를 찌릿, 노려봐주었다.방금 네가 한 짓은 자살골에 팀킬이란다, 리아리아야... 그냥 가만히 좀 있어.“대마법사랄 것까지는... 최상급 마법은 아직 못 써요.”“그래도 대마법사 문턱에는 계시지 않습니까. 염동 마법을 자유롭게 쓰려면 못해도 상급 마법사는 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닙니까?”나는 대답 대신 애매한 미소만 지었다.영주님은 내 쪽으로 몸을 바짝 당겨 앉았다.보물이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이 굉장히 부담스럽다.“감히 장담컨대 제국 전체를 살펴봐도 루나리스 님 같은 마법사는 흔치 않을 겁니다.”“그럴 리가...”“그 재능을 이런 변방의 작은 마을이 아닌, 황도 같은 큰 무대에서 펼쳐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나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켰다.결국 나오고야 말았다.내가 그토록 외면하고, 피하고 싶던 바로 그 제안이.“저, 그 정도 아니에요.”“그런 말씀 마십시오. 루나리스 님이라면 제국 역사상 최연소 대마법사를 넘어, 최고의 마법사로 이름을 떨치실 겁니다.”“아직 배울 게 한참 많은 어린애일 뿐인걸요.”괜히 목이 탄 나머지 차를 들이키자니, 영주님의 뒤에 선 기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저런 실력을 가지고서도 스스로를 낮추다니...”“역시 진짜배기는 다르군.”“차를 마시는 모습조차도 우아하지 않나?”“말이 짧은 것에도 뭔가 철학이 담겨있을 것 같아.”“분명 머릿속으로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마법을 생각하고 있겠지.”그, 그만... 스탑... 오해 멈춰...내가 기사들의 인정사정없는 올려치기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영주님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를 영입하려 들기 시작했다.“황도에서는 보다 많은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탑이라든지, 아카데미라든지. 루나리스 님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황실 마법사단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가 안 될 겁니다.”죄송하지만 그게 싫어서 숲 속에 틀어박혀 있는 건데 말이죠.마탑이라든지 황실 마법사단이라든지.과로가 기다리는 직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건 사양이다.“분명 황실 차원에서도 지원해 주실 겁니다. 금전적인 부분은 물론, 명예도...”“에이브릴 남작님.”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영주님의 말을 끊었다.“제가 마법을 배운 이유, 뭔지 아세요?”영주님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힌 듯했다.“저는... 잘...”“저와 제 주변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저한텐 이 숲이, 이 마을이 소중하거든요.”영주님의 표정에 난처함이 고스란히 떠올랐다.나는 쐐기를 박듯 말을 이었다.“제게 있어 마법이란,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던 절 품어준 이곳을 지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요.”“으, 으음...!”영주님은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내가 내놓은 진심 어린 대답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영주님은 쉽게 단념하지 못했다.찻잔의 차가 절반쯤 식어 갈 때까지 그는 나를 계속해서 설득하려 했다.그 모습이 가망 없는 게임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로 떼를 쓰는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아 안쓰러웠다.당신 졌어! 졌다구! 그만 항복해!영주님은 내 생각 이상으로 끈질겼다.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마녀니까. 한숨 한 번 폭, 내쉬어주고선 철저히 찍어 눌렀다.결국 영주님은 미련이 뚝뚝 흘러넘치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알겠습니다. 다만... 가끔 인사차 찾아오겠습니다.”“굳이 먼 걸음하실 필요 없는데요.”“그리고 이건 마을을 구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사례금입니다.”“아이, 참. 뭘 이런 걸 다.”“사례라기보다는 제 작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흠흠.안 받을 수 없겠네.영주님은 금화가 가득 든 묵직한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놓아둔 채 기사들을 데리고 떠났다.창밖으로 영주님이 탄 마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좋아. 일단 한 고비 넘겼고.앞으로 찾아올 녀석들도 오늘 같은 느낌으로 죄다 돌려보내면 되겠네.나는 허공에 대고 승리의 어퍼컷을 몇 번 날려준 뒤, 영주님이 두고 간 주머니를 열어보았다.안에 금화가 하나, 둘......뭐야, 이 아저씨, 은근히 통이 크잖아?이거면 당분간 생활비는 걱정 없겠다.덤으로 리아 다리를 빨리 낫게 할 치료제 연구도 할 수 있겠다.“으음, 이 정도면 귀찮아도 3년에 한 번쯤은 나가서 고생할 만한데...”문득 옆에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목발을 짚은 채 서있던 리아가 헤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왜? 할 말 있어?”“아니, 그냥~ 최근 들어 루나 언니의 색다른 모습을 많이 봐서 신기하달까?”“...? 그게 무슨 소리야?”“아니~ 얼음 마법도 그렇고, 영주님한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그렇고, 이 언니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어서 말이지이~”“난 원래 이런 사람이거든?”내가 말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제국 어딜 가도 귀한 인재 취급을 받을 상급 마법사를 이렇게 편하게 대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라고.뭐, 그래서 이 마을이 마음에 든 거긴 하지만.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리아가 대뜸 풉, 웃음을 터뜨렸다.“왜 웃어?”“원래 그렇다고 하기엔 언니가 평소에 침대에서 배꼽 드러내고 누워있던 모습만 생각나서~”“...리아 너, 일로 좀 와봐.”“왜, 왜...? 나 다리 아픈데...”“직접 올래? 끌려올래?”리아는 떨떠름한 얼굴로 목발을 짚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더 가까이.”나는 손가락에 마나를 살짝 실은 뒤.그대로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악! 마나 싣는 건 너무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