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시험의 마법사 (3)
입학시험의 마법사 (3)
마법학부의 학부장, 레이먼드 클라우드가 면접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이미 안쪽에는 면접관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모두가 레이먼드 학부장처럼 한 학부를 대표하는 이들이었다.“늦었군, 레이먼드 학부장.”정치학부의 학부장, 루시안 애쉬포드가 특유의 느긋한 미소를 띤 채 인사를 건넸다.레이먼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빈 의자에 앉았다.“다들 안 바빠요? 왜 굳이 시간 낭비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시간 낭비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면접 또한 학부장으로서의 업무인데.”“어머. 루시안 학부장은 아무래도 장소를 착각한 것 같네요. 이 자리에 올 지원자는 마법학부에 내정된 아이인데.”“글쎄?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쓸데없는 욕심을...”레이먼드 학부장의 표독한 목소리에 루시안 학부장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별 생각 없었는데, 하워드 수석교수가 어찌나 극찬을 하던지.”“...”“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학부로 데려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이다.”레이먼드 학부장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하워드 그 망할 녀석,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대체 말을 어떻게 전한 거야?문제는 정치학부만 경쟁자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저 역시 욕심이 나더군요.”경제학부의 학부장, 펠릭스 그린우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듣자하니 그 학생, 따로 속한 가문도 없는 고아 출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 경제학부도 오랜만에 아카데미의 얼굴 한 번 내세워 봐야죠.”“하! 괜한 욕심을...”레이먼드 학부장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시선이 면접실 구석에서 쭈글쭈글, 눈치만 살피는 여교수를 향했다.“그나저나, 릴리아나 학부장.”“히익—!”마공학부의 학부장, 릴리아나 기어하트는 레이먼드의 싸늘한 눈초리에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당신은 대체 왜 나왔나요? 마공학부가 정말로 그 찬란한 재능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마공학부라면 마공학부답게.마법학부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보결 떨거지들이나 받는 게 맞지 않겠느냐며.레이먼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그, 그게... 그 애가 적은 마법 수식이 너무 아름다워서요...”릴리아나 학부장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치며 허둥지둥 변명을 늘어놓았다.“그냥 어떤 애인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다고나 할까... 헤헤.”“...그래도 자기 분수는 알고 있네요.”민망한 듯 어색하게 웃는 그녀를 보며, 레이먼드 학부장은 쯧, 혀를 찼다.“하긴, 그만한 인재라면 저희 학부장 넷이 전부 나와 맞이해주는 게 맞죠.”엘테리온 아카데미의 면접은, 필기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학생을 입학시키고자 하는 학부의 교수가 면접관으로 들어오는 방식이었다.이번처럼 모든 학부의 학부장이 면접장에 나선 경우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타국의 왕족이, 심지어 황족이 아카데미에 입학한다고 해도 이사장이 대신 나가지, 학부장들만큼은 쉽게 나서지 않는다.그 정도로 발이 무거운 이들이 단 한 사람 때문에 전부 모인 것이다.그렇게 학부장들 사이에 한창 신경전이 오가던 중.면접실의 문손잡이가 조용히 돌아갔다.문을 열고 들어온 건 조금, 아니 꽤나 많이 특별한 지원자다.허리까지 내려오는 잿빛 머리카락이 정리가 안 되어 부스스하다.반쯤 감긴 눈 사이로 얼핏 보이는 푸른빛이 나른하다.느릿느릿 걸어온 소녀는 가볍게 목례를 한 뒤, 학부장들의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으으윽... 끄아악... 기야악..!!”팔다리를 쭉쭉 펴가며 기지개를 펴는 모습은 그야말로 마이페이스다.소녀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나른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안녕하세요. 루나리스 에버문입니다아.”학부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루나리스를 향했다.어딘지 모르게 몽롱해 보이는 표정이다.하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만큼은 심상치 않았다.잠깐의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루시안 학부장이다.그는 서류를 뒤적이며 루나리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옆에서 펠릭스 학부장도 중간중간 거들어, 경제학부에 어울리는 자질을 지녔는지 확인하고자 했다.나른한 분위기처럼, 나른한 목소리로.루나리스는 자연스럽게 질문에 답했다.그녀의 대답이 이어질 때면, 학부장들은 숨을 죽이고서 경청했다.루나리스의 설명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했다.그러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냈다.“괜히 하워드 수석교수가 극찬을 한 게 아니었군...”몇 차례 고개를 끄덕이던 루시안 학부장이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루나리스가 조곤조곤 내놓는 대답에 오히려 자신들이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어느새 대화의 주도권마저 그녀에게 빼앗겼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하지만 루나리스의 진짜 재능이 드러나는 것은 그다음이었다.“저, 저기... 루나리스 양?”면접실에 들어온 이후로 몇 마디 제대로 하지도 못했던 릴리아나 학부장이 간신히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여, 여기 하급 마법의 유지 시간을 늘리는 문제의 답안을 보면요... 풀이를 괴, 굉장히 독특하게 적으셨던데... 욥!”릴리아나 학부장의 말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보니까 마공학의 마력 출력 수식을 응용한 것 같은데... 마, 맞나요?!”그 질문에 루나리스는 전생의 과학 지식을 녹여낸 마법 이론을 늘어놓았다.별거 아니라는 듯, 성의 없이. 대충대충.하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정확히 핵심을 짚고 있다.“...와.”설명이 끝나고, 면접관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하나 같이 놀란 표정이다.이쯤 되면 학부생 레벨은 진작 뛰어넘었다.“말도 안 돼!!”특히나 릴리아나 학부장은 제대로 감동을 받은 나머지, 당장에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이다.“설마... 설마 그 이론을 그런 식으로 응용하다니...!”그녀는 더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는 듯 대뜸 자리에서 일어났다.“맞아요! 그렇게 하면 같은 양의 마력으로도 마법을 오래 유지시킬 수 있어요! 기계와 마찬가지로!”릴리아나 학부장의 몸이 흥분으로 부르르 떨렸다.그녀의 손이 허공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이 수식을 조금만 수정하면... 아니, 이것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이론이에요...! 어떻게 이런 발상을... 정말 대단해요! 천재네요, 천재! 우히힛! 우헤헤...!”한참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실컷 떠들어대던 릴리아나 학부장은 주위가 조용해진 것을 깨닫자 흡, 입을 다물었다.그리고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허둥지둥 자리에 앉았다.“찌꺼기 주제에 나대서 죄송합니다아아...”다시 쭈구리 상태가 된 릴리아나 학부장을 보며, 레이먼드 학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아카데미의 체면이며 교수진의 평판이며, 저 너드 기계박이 공순이가 다 깎아먹고 있다.“흠.”한숨을 내쉰 것과는 달리, 그녀의 입가에는 미묘한 웃음기가 감돌고 있었다.덕분에 루나리스의 재능이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라는 건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루나리스 양, 나는 질문 길게 안 할게요. 지금 이 자리에서,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마법 하나 보여줘요.”그거면 충분하다며, 레이먼드 학부장은 팔짱을 풀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뭐든 상관없나요?”“그럼요. 대규모 공격마법도 상관없답니다. 내가 다 막아줄 테니.”절묘한 제안이었다.루나리스의 마법을 테스트하는 한편.자신이 그 마법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것 또한 함께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상관없지 않을 텐데...”“음?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얌전한 걸로 할게요.”루나리스는 왼손을 가볍게 휘저었다.깃펜이.종이가.의자가.책상이.하나둘,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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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거리는 소음 하나 없이.마치, 이 공간의 중력이 사라지기라도 한 듯.사물이 부유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이었다.“...하!”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건 마법학부의 학부장, 레이먼드였다.‘잘 해봐야 상급 마법 하나 겨우 쓰는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녀는 루나리스가 펼친 마법의 대단함을 한눈에 알아봤다.‘대마법사 경지를 코앞에 둔 진짜배기였잖아?!’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존재.천재라는 단어조차 루나리스에겐 부족했다.이건, 인간을 초월한 별종이다.필기시험에서 얼핏 보였던 재능의 편린이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루나리스가 염동 마법으로 띄운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가 무섭게 레이먼드 학부장은 입을 열었다.“더 볼 것도 없네요. 루나리스 양, 당장 마법학부로 오세요.”마치 누가 채가기라도 할까봐, 냅다 권유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다급해보였다.*분명 난 면접을 보러왔는데.“마법학부로 오면 올해 안에 대마법사 칭호를 받을 수 있도록 아카데미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어요!”“정치학부로 오게. 이제껏 대마법사는 많았지만,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재상은 단 한 명도 없었지. 그런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어주겠네.”“경제학부는 어때요? 당신의 재능에 내 가르침이라면 분명 상상도 못할 정도의 돈을 어려서부터 쥘 수 있을 텐데.”...어느샌가 각 학부의 학부장이라는 사람들이 죄다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솔직히 다 관심 없는 것들이다.대마법사?마법 공부나 하루 종일 하겠지. 귀찮게.재상?그거, 제국에서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잖아.상상도 못할 정도의 돈?그만한 돈을 벌기 위해 내가 할 고생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어떻게 제안하는 게 하나 같이 다 마음에 안 드는지 모르겠다.역시 원작의 내용대로 마법학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가...“저, 저기... 마, 마공학부도 한 번 생각해주면 안 될까요?”그나저나 포스 넘치는 학부장님들 사이에 웬 곰팡이 핀 능이버섯이 하나 끼어있다.“루, 루나리스 양의 아이디어라면 분명 엄청난 마도구를 만들 수 있을 텐데...”“주제 파악 좀 하세요, 릴리아나 학부장.”“히익! 죄, 죄송합니다...!”사람이 쭈굴거리는 것과 별개로 엄청난 마도구라는 게 뭔지는 좀 궁금하다.“마도구라면 뭘 만드는데요?”“아, 최근에 개발한 게 있는데요! 잠시만요!”그녀는 대뜸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진 구체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이게 뭔가요?”“환상 투영 장치라고 해요! 군사 훈련 용도로 제국에서 지원금을 받아 만든 따분한 마도구이긴 한데...”방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움츠러든 채였던 마공학부의 학부장님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이걸 사용하면 머릿속으로 상상한 장면을 공간에 띄워서 볼 수 있어요!”눈앞에 떠오른 화면에서는 학부장님과 내가 함께 나란히 서서 마법 실험을 하고 있었다.“아직 시제품이라 성능에 한계가 있지만, 완성되면 정말 많은 곳에서 쓸 수 있을 거예요!”눈앞의 화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 있다.이거, 완전 ‘빔 프로젝터’잖아.“...와.”침대에 누워 평생 책이나 읽게 될 줄 알았던 이 노잼 중세판타지 세계에.한 줄기 희망이 찾아왔다.‘뭐? 영화에 드라마에 애니에 야동에 숏츠까지 조질 수 있다고?’아카데미에 들어온 거, 아주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침대에 뒹굴면서 영상 보기.이거, 어떻게 참는데.*입학실기시험 겸 신입생 환영회 날.“루, 루나리스 양?!”“안녕하세요, 학부장님.”복도에서 마주친 마공학부장님이 어째선지 귀신이라도 본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 마, 마법학부 실기 시험장은 옆에 있는 본관인데요...?”“알아요.”“여, 여긴 마공학부 실기 시험장, 인데...”“알고 왔어요. 하아암...”나는 늘어져라 하품을 한 뒤, 말을 이었다.“저, 마공학부에 들어올 생각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