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rawler

선제 토벌 (2)

최약 기사는 던전 한정 소드마스터가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선제 토벌 (2)

아랑검 칼자크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불길한 보라색 마기를 연기처럼 피워냈다. [왜, 인간이, 왜, 여기에 나타나서, 왜, 내 애완동물을, 왜…!!] 절규하는 마족 마슬로. 난 말 없이 검을 사선으로 내리고 언제든 휘두르기 위한 준비 자세를 취했다. [왜!!!] 파아아!! 마족 마슬로가 수 개의 입으로 포효하자 일순, 마기를 품은 강풍이 몰아쳤다. 기분 나쁜 질척임이 그를 타고 전해져 왔다. [죽이, 겠다! 그 피를, 이 늪에, 바치겠다! 그 피로, 내 애완동물을, 기리겠다! 그 가증스러운 피를, 피를!!]“그럼 와보든가.” 조소를 흘리며 답했다. 마족 마슬로의 눈이 번뜩이고, 그 얼굴에 핏줄이 훅 돋아났다.콰아앙!!늪이 터졌다. 비산하는 흙탕물 사이로 마족 마슬로가 쏘아졌다. 직선적인 도약. 엄밀하게 말하자면 빠른 편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눈 깜빡할 사이에 당했을 터. 하지만, 지금의 내겐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굳이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낮잠 자고 와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족 마슬로는 내 허리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횡 방향의 검로가 새겨진다. 마치 맹수의 움직임 같다. 속으로 탄식이 흘렀다. ‘무게 중심이 과하게 쏠려 있어.’ 감정이 그토록 많이 실렸단 거겠지. 어떻게든 적을 일격에 죽이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조잡한 검격이었다. 문득 교관의 검술 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 ‘이것은 ‘개익(開翼)’! 광익검의 모든 검술을 연결 지을 수 있는 다리이자, 광익검 최고의 반격기다! 네 녀석들한텐 아직 난도 높은 기술이지! 하나, 광익검의 묘리를 파헤치다 보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교관이 내게 보였던 시범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어 머릿속에서 재현했다. 교관이 그러했듯 칼날에 은색 마력을 일으켰다. 그대로 검을 올려쳤다. ‘개익(開翼).’ 키이익! [!] 두 검신이 맞물리며 서로를 긁어내고, 마족 마슬로의 검로가 찰나 동안 불꽃을 일으키며 비틀렸다. 카앙!! 그 한 합의 끝에, 마족 마슬로의 검이 비명을 토해내며 튕겨 나갔다. 반동이 검신을 울렸다. 서로의 검이 양옆으로 훅 뻗쳤다. 마기와 진흙까지 우수수 튀겼다. 그리핀의 거대한 다섯 쌍의 날개가 수호하는 제국, 에스크라드의 기사 검법 중 하나. 광익검(光翼劍). 참격을 효과적으로 흘려내거나 튕겨 내어 상대의 동작을 부풀리고, 그리 형성된 빈틈을 연계기로 파고드는 검법. 그 일련의 흐름은 마치 날개를 활짝 펼친 그리핀이 강철의 발톱을 세우며 날아드는 것과 같다. 평소의 론 헤이즐리였다면 어설픈 흉내조차 못 낼 그 검술을,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금의 나는 능히 해낼 수 있었다. 양옆으로 뻗친 검 사이, 마족 마슬로의 옆구리가 훤히 드러났다. 그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 내 검이 은색 마력을 폭풍처럼 방출하며 놈을 양단했다. 차아악!!파아아아!! 은빛 참격이 마족 마슬로를 베는 것으로 모자라, 폭풍처럼 뻗어 나가며 늪을 절단했다. 참격에 갈려나간 흙탕물이 높은 파고를 이루며 퍼져나가 일대를 뒤덮었다. 촤아아아! 짧은 시간 동안 갈색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아…, 피가…. 아아…. 내 늪이….] 마족 마슬로는 진흙의 소나기를 맞으며 스르르, 잿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잘 가시고. 난 더럽혀져 있던 방랑 기사 실비아의 검, 아랑검 칼자크를 주웠다. 들러붙어 있던 마기는 마족 마슬로가 죽으며 흩어진 뒤였다. ‘이 검은 이제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이걸 이렇게 얻네.’ <엘리제를 위하여>에서 마족 마슬로는 토벌되기 직전, 아랑검을 삼키며 2페이즈에 돌입한다. 하여 플레이어는 아랑검을 멀쩡한 상태로 얻어낼 방도가 없었다. 뜻밖의 보상인 셈이었다. ‘캬, 요놈 때깔 보소.’ 튼튼하고 묵직한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아주 쌔끈하게 잘 빠진 녀석이었다. 내 첫 자가용 검인 셈인가? 띠링! 난데없이 알림창이 나타났다. “응?”[「방랑의 별 실비아」의 염원이 이루어졌습니다.][염원 : 「아랑검 칼자크」를 마족의 손에서 구해낼 것.] [별이 안배해둔 보상이 지급됩니다.][당신에게만 「아랑검 칼자크」의 능력 개화 루트가 해금됩니다.][「아랑검 칼자크」가 당신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합니다.][특성 「철랑」을 습득했습니다.][「아랑검 칼자크」를 사용 시 「철랑의 마력」을 다룰 수 있습니다.][조건]- 「4위계」-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 ‘이런 게 있었어?’ 뭐야, 원래 능력이 잠겨 있던 검이었어? 당연히 몰랐다. 그나저나 방랑의 별이라니. 실비아 이 사람, 뭔가 대단한 게 돼 있었나 보다. 의도치 않게 검 NTR이 될 뻔했던 건가. 그리되지 않아 다행이라 봐야겠다.아랑검 칼자크의 주인이 되자 본능에 새로운 감각이 새겨졌다. 그 감각을 건드려 봤다.스으으.그러자 아랑검은 은회색 마력으로 변하며 내 안으로 스며들더니 자취를 감추었다.‘이걸로 보관된 건가? 뭔가 아무렇지도 않네.’<엘위>에서, 주인을 정할 수 있는 특수한 명검은 마력의 형태로 변환해 주인의 몸속 깊은 곳에 수납할 수 있었다.그 마력은 비활성화된 채로 은밀히 잠들었다.그 상태에서는 검의 마력을 별도로 끌어다 쓸 수도 없었고, 외부에서 주인의 마력으로 탐지되지도 않았다. 스토리에 나온 설정이었다.기사학교에서 날 검사하든 어쩌든 아랑검의 존재를 알아낼 수 없을 것이란 뜻이었다.신기하네. 가슴을 몇 번 두드려 보다 말았다.‘이제 돌아갈까.’ 입장했던 게이트 주변, 동굴 바깥의 어느 위치를 생각하며 허공에 출구 게이트 열쇠를 돌렸다. 휘이이! 그러자 돌아간 열쇠를 기점으로 녹색 게이트가 형성되었다. 녹색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자, 내가 생각했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우, 끝났…드어어….” 몸이 급격히 무거워지며 탈력감이 들이닥쳤다. 온몸이 여름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듯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소드마스터 상태가 풀리는 걸 적응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그 상태로 잠시 쉬던 중. “…….” 문득 마족 마슬로의 검격을 튕겨냈을 때의 감각이 떠올랐다. 여전히 내 손엔 광익검의 묘리가 여운처럼 남아 있었다. ‘아마, 분명….’ 눈을 감고, 검을 꼬나쥐고, 자세를 잡고. 마족 마슬로가 내게로 쏘아졌던 광경을 머릿속에서 이미지화했다. ‘개익.’ 스릉. 상상 속 놈의 검로에 맞추어 검을 올려쳤다. 하나, 내 몸은 그 검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력하게 날아갔다. 물론 이 또한 상상 속에서. 소드마스터였을 때의 저절로 맞아떨어졌던 검의 각도도, 충분한 양의 마력도, 힘의 배분도, 지금의 내 몸으로는 재현할 수 없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고 해야 할까. ‘다른 약한 놈이라면 모를까…, 마슬로 수준의 상대한텐 안 되겠네.’ 눈을 다시 뜨고, 쩝 입맛을 다셨다. 검을 납도하고 기사학교로 돌아갔다.  ……  샤워어어어어어. 기숙사에 도착하고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씻었다. ‘알찬 하루였다.’ 어느덧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 1장 1막 열차 사건 때, 소드마스터 상태에서 사고와 감정이 빠르게 정리됐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해야 하나.

d3kza0VLSVdxajZ6L09aWC8xUnR2SlNCbHczdXAyRzFKQWpqd1ErMTAvcURYRlJ0U2xPdHNqQ0FYWEYzQWpuZg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도 혼란에 잠긴 채 우왕좌왕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주인공이랑 협력까지 하면 상황이 더 수월해질 것 같긴 한데….’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아직 좀 그런가.’ 난 주인공을 잘 안다. 그녀는 의심병 환자에다 단호한 성정을 지녔고, 월등한 천재인 만큼 강하며, 심히 능동적인 녀석이었다. 햇살처럼 밝은 미소 뒤로 그녀가 숨겨둔 건 제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향한 냉철한 집착이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내가 이용당할 가능성이 크겠지.’ 뿐만 아니라 미래 지식도, 고유능력도. 뜬금없이 엘리제에게 밝혔다간 의심만 사고 최우선 감시 대상이 될 것도 뻔했다.그런 사람을 무작정 믿고 내 비밀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령 일이 잘 풀리더라도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 당장은 부담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컸다.그러니 괜한 모험은 아직 지양하기로 했다. 적어도 정체를 들켜도 그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만큼 힘을 키우기 전까지는.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업데이트됐겠네.’ 배드 엔딩으로 직결되는 사건이 해결될 때마다 업데이트되는, 주인공의 특이한 기록장이 하나 있었다. 그 덕분에 주인공은 위험한 마족이 처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었다.  * * *  수 시간 전. 띠링! ‘어?’ 그리핀 기사학교 교정. 자홍색 반묶음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그녀,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 엘리제 로렌디아는 눈앞에 뜬 반투명한 알림창을 보더니 멈칫거렸다. “왜 그래, 엘리제?”“헷, 아무것도 아냐.” 햇빛이 연상될 만큼 엘리제는 화사한 미소를 친구에게 건네고서 다시 발을 옮겼다. 잇달아 사사로운 잡담을 이어가던 중, 엘리제는 시야 한 편에 새겨진 알림창을 확인했다. [「시나리오 노트」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열람하시겠습니까?] ‘응.’ [오, 엘리제. 당신과 당신의 주변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아넣었어야 할 마족의 목이 날아가 버렸네요! 한 페이지의 배드 엔딩이 사라졌군요. 축하드려요, 엘리제!] “…….” 엘리제의 눈이 가늘게 좁아졌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탓일까. 작은 체구의 친구, 라라는 소매가 늘어진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반개한 채 엘리제를 미심쩍게 쏘아보고 있었다. “얌마, 엘리제.”“어, 응?”“너 무슨 일 있지? 요즘 수상해.” 엘리제는 음흉하게 눈을 가느다랗게 좁히더니 생긋 미소를 지었다. “있으면~?”“뭣…? 저, 혹시, 혹시나 해서 말인데, 좋아하는 녀석이라도 생긴 거… 아니지?”“으응, 글쎄~?”“진짜아!? 진짜 아니지!?” 엘리제는 능청스럽게 답하며 라라의 관심을 돌렸다. 그리고, 현재. 엘리제는 밤 중에도 검을 휘두르며 단련에 임하고 있었다. 실내 훈련장의 문이 닫혔을 시간이라, 홀로 야외 훈련장에서 램프 불빛에 의존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숨을 고르며 얼굴을 가득 채운 땀방울을 닦았다. 물통에 담긴 시원한 물을 마시고서 습관적으로 시나리오 노트를 켰다. 여전히 최신 내용엔 마족의 목이 날아갔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누구지…?” 엘리제의 잔잔한 목소리가 밤공기 중에 스몄다. 시나리오 노트.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런 반투명한 창 같은 게 뜨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노트는 가까운 미래에 자신이나 제 주변 사람들에게 들이닥칠 비극을 예고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비극의 운명이 사라졌다는 내용이 업데이트되었다. 마치 화자가 동화 속 이야기를 전하듯이. 덕분에 이제까지 엘리제는 여러 사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숙부를 노리던 암살자를 미리 붙잡았다. 아버지를 노리던 땅밑 마수를 미리 처단했다. 친구가 한쪽 팔을 잃게 될 사고를 미리 막아냈다. 자신을 독살하려던 하녀의 계획을 미리 저지했다. 이러한 결과를, 시나리오 노트는 ‘배드 엔딩을 막았다’라고 표현했다. 그리 여태 엘리제가 사건을 해결하고 그 내용이 기재되는 식이었는데… ‘저번 열차 사건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열차 사건 때, 열차가 던전에 빠지자마자 예고됐던 마족의 출현은 자신이 손을 쓰기도 전에 해결됐고. 이번엔 아예 예고가 뜨지 않았는데도 대뜸 비극이 해결됐다고 떴다. 시나리오 노트에 언급된 비극의 규모로 미루어 볼 때, 두 마족 모두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을 터. 그런 마족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연달아 토벌당한 것이었다. ‘이게 우연일 리가.’ 두 마족을 해치운 자는 같은 사람일까? 시나리오 노트가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렸으면 좋았을 텐데. 핵심적인 결과 말고는 죄다 얼렁뚱땅 뭉개져 있으니….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뒤에서 은밀히 자신의 비극을 막아준 그 작자가 누구인지, 엘리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손을 한 차례 휘저어 알림창을 껐다. ‘…신기하네.’ 엘리제는 밤하늘에 걸린 초승달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도와준 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여러 의문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으나…. 항상 누군가를 구해왔던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구해졌다는 건, 썩 신선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