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벌 테스트 (1)
토벌 테스트 (1)
그리핀 기사학교의 교관들은 저마다 마법 기사로서 전장을 누볐던 이들이었다. 로건 교관은 철마룡 루켈의 토벌자이며, 적국의 소드 엑스퍼트 무리와 겨루어 승리한 전적을 보유했다. 레이첼 교관은 염동술의 대가로 불리며, 현역 시절 심해에서 올라온 수해왕 해탈로스 토벌전에서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 외의 다른 교관들 또한 마법 기사 시절의 전적과 실력은 모두 굵직한 편이었다.즉, 그들의 눈은 자질을 갖춘 인재를 귀신같이 분별해낼 터였다. 토벌 테스트가 진행되는 곳, 인근의 감독실. 많은 화면이 허공에 송출되고 있었다. 산을 나다니는 토벌 표적, 골렘들의 시야에 맺힌 상을 비추는 마법이었다. 골렘들을 다스리는 마법 기사 교관, 붉은색 머리칼의 여성 레이첼은 교관들과 함께 그 화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고깔모자 아래로는 시큰둥한 표정이 자리했다. “레이첼 교관, 어떤 생도가 가장 기대되나?” 검은 머리와 까끌까끌한 턱수염, 생기 가득한 눈동자를 지닌 교관, 로건이 의자에 앉고 등받이에 팔을 걸며 물었다.“관심 없어. 그냥 빨리 끝나기나 했음 좋겠네.” 생도들이 골렘을 쓰러뜨릴 때마다, 염동력으로 떠다니는 깃펜이 서류철에 각 생도의 점수를 새겨 나갔다. 쓰러진 골렘의 시야 화면은 사라졌고, 일정한 수량의 골렘이 토벌되면 텅 비어버린 자리만큼 남은 화면들의 면적이 커졌다. “그래도 은근~히 눈에 띄는 생도들이 있지 않나?”“뭐, 그렇긴 하지. 어쩔 수 없잖아. 굵직한 녀석들이 입학했는데.” 열차 사건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레이첼 교관의 눈길을 사로잡는 생도들은 정해져 있었다.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산맥. 회갈색 머리의 바바리안, 투락이 골렘들을 맹렬히 산산조각 냈다. ‘바바리안답게 힘 하나는 끝내주네. 너무 앞뒤 안 가리고 무식하게 전투한다는 게 문제지만.’ 지능은 기준 미달이었으나, 힘은 현직 기사들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진보라색 머리칼의 여자 생도 바이올렛은. 콰아아앙!! 위협적인 몸집을 가진 호랑이 마수의 해골 사체를 사령으로 부리고 있었다. 그 사령이 앞발을 휘두르자 골렘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쟨 괴물 같네…. 웬만한 기사들은 뼈도 못 추리겠어. …그 능력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건 앞으로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겠지. 그러지 못한다면 마법 기사가 되긴 어려울 테고.’ 그 외에도 여러 뛰어난 생도들, 준수한 실력의 생도들이 레이첼 교관의 시야를 지나쳤다. ‘이 중에서도 역시 독보적인 건….’ “개화(開花), 흩날려라.” 사라라락!! 언령을 따라 마력의 장미 꽃잎이 바람과 함께 흩날렸다. 꽃잎 하나하나가 쇠로 종잇장 가르듯 날카롭게 골렘을, 주변의 나무들을 난도질했다. 살인적인 꽃잎 바람을 몰고 다니며 검을 휘두르는 자홍색 머리칼의 생도. 그녀는 단연 독보적인 입학시험 1등, 엘리제 로렌디아였다. ‘안정적이고, 강해. 기술도, 기교도, 기동도, 마력도, 마법도. 그에 반해….’ 그런 엘리제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생도가 한 명 있었다. 그야말로 대척점. 1등의 반대, 꼴찌. 그 연갈색 머리의 남자가 레이첼 교관의 눈에 들어왔다. ‘론 헤이즐리.’ 레이첼 교관은 생도들의 정보를 모조리 외우고 있었기에 알았다. 최약의 신체 능력. 최약의 마력량. 별명조차 최약체인 그 생도, 론 헤이즐리. 저번 퇴학이 걸린 테스트 땐 바바리안과 흑마법사를 회유해서 살아남았다던가. 옆에 있는 동료 교관, 로건에게서 전해 들었던 이야기였다. 꼴찌 성적으로 기사학교에 들어온 생도가 그렇게라도 애써서 살아남았다고 하니, 듣고 얼마나 웃었던가. “뭐…, 쟨 떨어지겠네.” 이번 테스트에선 저번의 요행을 바랄 수 없을 테니. 안타깝게도 론의 발악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을 것이었다. * * * 콰가가강!!파스슷!! 여기저기서 파열음과 굉음 따위가 들려왔다. 벌써 생도들이 전투에 임하기 시작한 듯했다. ‘괜히 휩쓸리면 안 되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져서야 안 되잖은가. 이럴 땐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구우웅…!”“엇.” 이윽고, 내 쪽으로도 바위로 이루어진 2m 크기의 물체가 나타났다. 골렘. 이 테스트의 표적이었다. 게임에서와는 달리 실제로 보니…. ‘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 보이는데…?’ 식은땀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건 상정 외인데…. “펀치!” 골렘은 열정적으로 소리치며 날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왜 쓸데없이 언어 기능을 넣어둔 거야? 의문을 품은 건 찰나뿐. 마력이 휘감긴 널찍한 주먹이 내게로 들이닥쳤다. 부웅! 상체를 옆으로 과하게 숙여 가까스로 피했다. ‘와, 씨…!’ 살벌한 바람이 코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저만한 위력의 주먹에 정통으로 얻어맞으면…. ‘못해도 기절이겠지.’ 오케이, 파악 완료. 못 이겨. “후웁!” 그대로 난 숨을 한껏 들이키고. 타다다! 줄행랑…, 아니, 전략적 후퇴를 했다. * * * “구우웅!?” 골렘은 도망치는 론을 보며 당황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교관들 또한 마찬가지로 당황했다.연갈색 머리칼의 생도, 론 헤이즐리가 골렘의 코앞에서 도망치고, 그새 나무들 사이로 자취를 감추었으니. ‘뭐야, 저 겁쟁이는…?’레이첼 교관은 나직하게 헛웃음을 터뜨렸다.실력이 어떠하든 대체로 용기와 기개만큼은 출중한 생도들 사이에서 저리하니, 오히려 몹시도 특이 케이스처럼 보이고 만다. “참나, 아무리 자신 없어도 그렇지….” 너무 우스꽝스러운 행태였던지라, 레이첼 교관을 포함한 일부 교관들은 무심코 코웃음 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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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저런 꼴이라면 이번 테스트에서 퇴학 처리될 것은 시간문제일 터. “구웅….” 골렘은 새싹이 돋아 있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 우둔하게 주춤거리다 등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쿠웅! “구웅!?” 나무 위쪽에서 한 남자가 연갈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떨어졌다. 그의 발이 골렘의 어깨 위에 안착했다. 골렘은 곧바로 주먹에 마력을 싣고 반격하려 했으나. 푸욱! 이미 은색 마력이 실린 칼날이 바위 갑주 틈새를 바람처럼 파고들어. 콰작! 골렘의 어깻죽지 쪽에 감춰져 있던 마력 동력원, 핵을 꿰뚫은 뒤였다. 그 검의 주인, 론 헤이즐리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쪽에 핵이 있었네.” 게임 지식을 토대로, 골렘의 핵이 숨겨진 위치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론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핵을 감싼 부위에는 마력의 영향으로 미세한 결이 드러났다. 자세히 보면 파악할 수 있었다. 골렘을 못 이긴다고 판단했던 건 어디까지나 정면 승부일 때뿐. 핵은 빛을 잃었고, 골렘은 정지했다. 론은 골렘에게서 칼을 뽑고 뛰어내렸다. 쿵! 골렘이 무력하게 쓰러졌다. 그 상황을 지켜본 레이첼 교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핵을 정확히 찔렀어…? 어떻게?’ 골렘마다 그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인 핵은 각각 다른 위치에 숨겨져 있었다. 싸우면서, 골렘의 여러 부위를 파괴해가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적의 약점을 노리라고 그리 설계해둔 것이었다. 생도들끼리 협력하든, 뛰어난 관찰력으로 그리하든, 어찌하든 좋았다. 기사란 어떠한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적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었으니. 이 또한 평가에 있어 가산점 요소였다. 이를, 론이 1학년 생도들 중에서 가장 먼저 해냈다. 레이첼 교관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그녀는 ‘흐응’하고 웃으며 턱을 매만졌다. ‘제법이잖아, 론 헤이즐리? 생각보다 통찰력은 있나 봐?’ 약하기에 힘보다는 다른 능력에 집중하여 최선의 살길을 찾아내는 유형일까. 유쾌하네. “생겼어.”“뭐?”레이첼 교관은 미소를 지은 채 옆 교관, 로건에게 말했다. “이번에 가장 기대되는 생도.”“론 녀석 말이군?” 로건 교관 또한 론이 단번에 골렘을 해치운 것을 보고 놀랐기에, 레이첼 교관이 누굴 말했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응. 재밌네, 쟤.” 오히려 약하기에 관심이 간다. 저 론이란 생도는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어찌 보면 유희이기도 했다. 뻔하리만치 잘난 녀석들의 잘난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약해 빠진 이의 개성 있고 처절한 생존을 보는 편이 훨씬 즐거울 테니까. 스릉!!콰작!!테스트가 이루어지고 있는 산맥. 론은 매번 신중하게 골렘들을 기습했고, 정확히 핵을 찔러 파괴했다. 골렘은 둔하고, 공격과 방어 모두 정직하고 투박했다. 하여 그들을 기습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방식이 방식이니만큼 다른 생도들보다 토벌 속도는 느렸지만, 성과는 확실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노을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테스트의 제한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9마리째.’ 한 마리만 더 잡으면 된다. 그러면 퇴학을 면할 수 있다. 골렘의 수가 많이 줄어든 까닭일까. 시간이 갈수록 남은 골렘을 찾아내기 힘들어졌다. 이윽고. 쿵. 유난히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골렘의 발소리였다. 론은 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아.”그러자 반사적으로 탄식에 가까운 탄성이 튀어나왔다. 가검을 든, 회갈색 바위로 이루어진 골렘이 론의 시야에 담기고 있었기에. 골렘은 녹색 안광을 발했다. 굳이 원작 지식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앞의 골렘은 지금까지 잡아 온 골렘들과는 확연히 격이 다르다는 걸. 둔중한 골렘이 검을 쥐었다는 점부터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 로건 교관이 이야기했던 강한 골렘이었다. “아…, 끝났네.”“거 참. 그렇게 살아남으려 발악하더니만, 쯧. 아쉽게 됐네.”흥미진진하게 론을 지켜보던 교관들의 입안에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저 골렘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생도들이 탈락할 것을 우려해 테스트 후반부에 투입되는 녀석이었다. 하필 우등생들을 위해 마련된 골렘을, 꼴찌 생도 론이 골렘 토벌 수 10마리를 채우기도 전에 먼저 조우해 버린 것이었다. 교관들이 지켜본 론의 실력으론 그 골렘 앞에서 기습은 고사하고 쉽게 도망칠 수도 없을 터였다. 그렇다고 용감하게 정면승부를 벌이는 건 만용일 뿐. 론이 일방적으로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 즉, 여기서 끝이라고 볼 수밖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겠지.’ 레이첼 교관은 아쉬움을 삼켰다. 재밌었지만, 저 생도는 그리핀 기사학교에서 요구하는 기준선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다면 떨어질 뿐. 안녕히, 론 헤이즐리. 파아아!! 골렘이 검을 휘둘러온다. 무거운 일격이다. 론의 힘으로 막아내 봤자 소용없을 터. 그러나, 그 순간. 론의 시야엔 제게로 짓쳐들던 마족 마슬로의 모습이 내비쳤다. 그때 제 손은 어떻게 움직였던가. 스윽. 소드마스터 상태일 때 묘리를 엿보고 내질렀던 검술. 그때의 감각이 론의 손을 타고 전류처럼 흘렀다. 이성보단 본능이 앞섰다. 극의를 직접 경험했던 손이 두려움과 잡념을 몰아내고 움직였다. 파스슷! 칼날에 은색의 하위 마력이 피어났다. 마족 마슬로를 토벌했던 날 이후로 수없이 되짚었던 움직임.마력 운용, 힘의 분배, 검의 각도. 적의 공격에 맞추어 정교하게 펼쳐지는 반격기. 론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며 골렘의 검격에 맞추어 검을 올려쳤다. 카아앙! 골렘의 검이 찰나 동안 론의 검날을 타고 미끄러지더니, 날카로운 울음을 토하며 튕겨 나갔다. 제국 에스크라드의 기사 검술 중 하나. 광익검, 개익. ‘오, 됐…! 으윽!’ 희열을 느끼기도 전, 검을 쥔 손이 지잉 울리며 통증을 일으켰다. 론은 한쪽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소드마스터 상태였을 때에 비해 힘과 기교가 지나치게 부족해, 골렘의 검격을 완벽하게 흘려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의 범주에 들어갈 만했다. 쿵! 중심을 잃은 골렘은 제 무게를 못 이기고 넘어졌다. “……!!” 그 광경을 지켜본 로건 교관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상체를 바짝 내밀어 론을 비추는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론, 저 녀석…! 방금 개익을…!?” 개익. 광익검의 묘리를 눈에 담은 끝에 사용할 수 있는 난도 높은 검술. 1학년의 내로라하는 천재 생도들조차 아직 해내기 어려운 그 검술을…. 완벽하진 않으나, 저 꼴찌 생도가 방금 성공해냈다. “레이첼 교관, 봤나?”“응.”어느새 레이첼 교관의 입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싹이 좀 보이는 녀석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