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1)
난이도 (1)
회복 물약은 다행히도 어느 정도 점성(粘性)이 있는 액체였다. 상처 부위에 바르자 녹아들듯 스며들었다. “후우우….”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다.죽은 [도망치는 시민]이 입고 있던 가죽옷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찝찝함은 분명 있었지만, 반쯤 넝마가 된 옷만 걸치고 있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껴입는 게 나아 보였다. 다시 휴대폰. 갤러리 단말기를 손에 들었다.초월자 갤러리 어플을 누르려는 순간.그 어플 밑에 있는 어플이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현대에 있을 적 카메라 어플과 같은 렌즈 모양의 아이콘.그걸 클릭했다. 진짜 카메라 기능이었다. “앞에 달린 렌즈는 없는데.” 작동 방식이 스마트폰이랑 같지는 않은 모양.당장 찍을 피사체는 있었다. 뒤질 뻔했다는 건 알려줘야지.나는 머리통이 세 개 달린 거대한 개미를 찍었다. 다행히 찰칵, 소리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기본이 무음인 모양이네.여차할 때, 무언가 나타났을 때 멀리서 사진 찍은 다음 초월갤 사람들한테 물어볼 수도 있겠다.초월자 갤러리로 들어갔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갤러리의 글들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제목 : 설마 ‘*’ 이 새끼 죽음?작성자 : ㅇㅇ-갑자기 글도 안 쓰고 댓글도 안 쓰는데 벌써 10분이 지났잖냐. 설마…. └ 설마, 그냥 배가 고파서 의식을 잃은 정도겠지.└ 탑에선 그러면 뒤지는 거잖음ㅋㅋㅋㅋㅋㅋㅋㅋ└ 바아로 몬스터 한 끼 식사 되는 거지. └ 빛의검) 갑자기 글도 댓글도 안 쓰는 걸 보니 무슨 사달이 난 거 같긴 한데. └ 天魔) …보통 이렇게 기연처럼 온 놈이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지 않느냐…? 그러면 도리에 맞지 않느니라. 설마 정말 죽은 것은 아니겠지…. └ 魔자 달고 진심으로 벌벌 떨고 있네 ㅋㅋㅋㅋㅋㅋㅋ 걱정되냐?└ 아아, 겨우 찾아온 유희가 곧바로 사라질까 봐 두려운 것이야. └ 얼음여왕) 꽁꽁! 살아계실 거에요! └ 밀실론자) 우리가 그냥 잠깐 단체로 최면에 걸린 것 아닐까. 상식적으로 등반자가 초월갤을 들어올 수 있을 리 없잖아. └ 엘프다) 미궁 관리하는 마족이 최면을 논하니 꽤 신빙성이 있네. 근데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 └ 시궁창검성) 등반자, 확인하자마자 글을 써라.└ 응~ 죽으면 글 못 쓰죠? └ 무녀) 하와와, 등반자의 명줄이 그렇게 짧아 보이지는 않았사와요.└ 개척자 ) 님 전에 등반자 갤에서 명줄 길 거라고 지목했던 하드 40층 등반자 41층에서 바로 죽었자늠.└ 무녀) .,!; └ 개척자) 많이 당황했네.└ 무녀) 아무튼…등반자, 너 없으면 초월갤 망하는 것이와요…. └ ㄹㅇ 팩트임. 이례적으로 튀어나온 고닉들 다시 다 기어들어 감 ㅋㅋㅋㅋㅋ 모든 글의 관심이 내게 향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대마법사) 쯧, 오랜만에 갖고 놀만 한 흥밋거리 하나 들어왔다 했는데…죽었나? …음, 흥밋거리.하긴, 대부분 대마법사와 같은 생각이겠지. 아직 살아있다. 새끼야.게시물을 끄고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방금 찍은 사진을 첨부했다. 그리고 글을 올렸다. 제목 : 뒤질 뻔함작성자 : ㅇㅇ*-이 새끼한테 죽을 뻔했다.첨부파일 : 348593408.jpg[머리 부위에 머리통 세 개 달린 거대 개미가 옆으로 쓰러져있는 사진] └ 오ㅋㅋㅋㅋ 저 개미 새끼 오랜만에 보네. └ 시궁창검성) 저 괴물 이름이 앤스란스로프였나.└ 맞음. 근데 용케도 안 죽고 잡았네. 21세기 지구인이. 보통 저게 1층에서 튀어나왔나? └ ㄴㄴ 이지 난이도에서는 이놈 1층에서 절대 안 나옴. 쥐새끼들이나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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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새끼 일단 이지 모드는 확실히 아닌 듯 ㅋㅋㅋ 노멀 가능성 크게 본다. 운 더럽게 없으면 하드.└ ㄹㅇ 이지는 사람 많아서 1층에도 같은 기수 놈들 꼭 있음. NPC 제외하고도 혼자일 수가 없음.└ 아무리 이지라도 죽을 놈은 죽더라, 정신 못 차리다가. 내가 소환된 탑이 이지 난이도는 절대 아닌 건가. 쩝. └ 나 노멀 출신인데 1층에 저놈 나오긴 했는데 모르겠다. 크기가 좀 작았던 거 같은데 내가 죽인 놈은.└ ㅇㅇ 나도 노멀인데 너랑 같은 생각함.└ 무녀) 딱 저 크기로 1층에서 나타나서 주술로 짓눌러 죽였사와요. 흉(凶)을 박멸하는 엄지! …에헤이.노멀 형님들 무슨 그런 소름 돋는 말을 하는 겁니까.내 운이 더럽게 안 좋아도 노멀 모드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재수 없는 말을. 왜 다들 내가 하드 모드일 가능성을 높이는 말을 하는 거야. 짜증 나게. └ 빛의검) 인간 형상 머리가 세 개인 걸 보니 NPC인지 등반자인지 몰라도 세 명은 잡아먹은 놈이구나. 잘 죽였다.└ 대마법사) 휴, 안 죽었네. 죽지 마라. └ 天魔) 살아있었구나. 단계 성취나 기술을 획득했느냐?└ 번역: 레벨업이나 스킬 획득은 했냐. 아 맞다. └ ㅇㅇ*) 레벨은 아직 안 올랐고. 스킬은 세 개 생김. 통각 억제, 평정심, 엄폐. └ 대마법사) 평범하네.└ 평?범. 난 한 전투에 스킬 두 개 이상 오른 적이 손에 꼽히는데? └ 역시 범부의 이지 모드햄~~└ 노멀 출신이다. 버러지야. └ 무녀) 하와와, 하드 난이도에선 자주 있는 일이긴 한 데 그게 1층에 벌어질 일은 잘 없는데. 신기한 것이와요. 자꾸 하드 난이도 가능성 스택 쌓네. └ 시궁창검성) 상태창 한 번 확인하고. 그다음 일단 2층 입구까지는 도달해야 한다. └ 빛의검) 2층 올라가면 층계 대기실에서 창술이라도 알려줄게.└ 天魔) ??? 고닉에 검을 달고 창술을 입에 올리느냐. └ 빛의검) 앤스란스로프 머리통 뚫린 상흔 형태 보면 창이다. 등반자가 소지하고 있는 무기에 대한 기술을 가르쳐줘야지. 검을 얻을 수 있을지 말지도 불확실한 때다. └ 빛의검) 일단 1층 클리어하고 난이도 확인이 제일 우선이야. └ ㄷㄷㄷㄷ 검무새를 자꾸 정상으로 만드는 등반자의 위엄.└ 갤질이 개노잼이라 검검 거렸던 거임 ㅋㅋㅋㅋㅋㅋ └ 빛의검) 물론 등반자가 검을 얻으면 바로 검술 확정이다. └ 天魔) 크흠…본좌도 주먹질이라도 알려주마. 네가 알아먹을 만하게.└ 대마법사) 마나를 조금이라도 쌓아야 그때부터 뭘 알려주든가 할 수가 있지. 흠. 날 가르쳐주겠다고 나선 게 둘. 가르쳐 주는 건 고마운데.내가 이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 ㅇㅇ*) ㄱㅅ ㄱㅅ 일단 아주 소극적으로 답을 했다. 나는 앤스란스로프가 튀어나오기 전에 궁금했던 걸 썼다. └ ㅇㅇ*) 근데 왜 고닉 쓰는 사람들은 다 하드 모드 출신이란 거임?└ 우리 같은 이지, 노멀따리한테는 초월갤 시스템 자체가 고닉을 못 달게 함 ㅇㅇ 그럼 판데모니엄은 왜 없는 걸까. 하드 난이도보다 더 높은 난이도인데. └ ㅇㅇ*) 근데 판데모니엄 난이도도 있잖음. 하드보다 더 높은데? └ 주딱) 판데모니엄은 종결자가 아직 없어. └ 다 등반하다 뒤짐. 그러니까 출신 고닉이 있을 수가 없음. └ 대마법사) 거긴 클리어 확률이 0%임. 아. 그렇구나. 다 뒤진 거구나.아주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더 떠올랐다. └ ㅇㅇ*) 근데 이지, 노멀, 하드, 판데모니엄 이렇게 나누어지는 기준이 뭐임? └ 주딱) 탑 시스템이 직접 밝힌 바는 없어. 그냥 추측을 하는 거지. └ 대마법사) 해당 난이도를 클리어할 가능성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는 존재가 탑에 소환이 되는 것. 그렇게 추측을 하고 있다. 근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하나가 그 추측에 어긋났다. └ 대마법사) 그런데 판데모니엄은 그 추론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뭐, 그건 확언할 수 없는 거지만…나는 결국 다 죽어버렸다고 해도 그곳에 소환된 사람들이 판데모니엄을 종결할 가능성 자체는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쪽이야. 가능성 있는 자들이 소환되었어도 생환율인 0%의 탑이라.생각만 해도 거부감이 들었다. 일단 주딱과 빛의검 말대로 1층 클리어하고 난이도 확인부터 해야겠다. 일단 최대한 알아둘 수 있는 정보들을 모조리 빼먹은 다음에 출발을 해야지.내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제목 : 탑 층계는 그냥 모든 층계가 다 그냥 몬스터랑 싸우는 거임?작성자 : ㅇㅇ*-일단 1층은 그런 거 같은데. └ 주딱) 1층은 몸풀기, 튜토리얼의 관점이라서 그럼. 2층부터는 번갈아 가면서 진행이 돼. 1층은 정확히 명시는 되어있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던전형이지. └ 주딱) 이야기…서사(敍事)가 존재하는 퀘스트형도 있고. 타임어택 걸려있는 디펜스형도 있고. 종류는 다양함. 대부분 싸우는 건 기본 전제로 깔리지만 말이야. └ 무녀) 하와와, 퀘스트형의 NPC들 이야기에 너무 몰입하면 안 되는 것이와요. 오히려 그들의 감정에 너무 휩쓸리면 판단력을 잃고 죽는 꼴을 몇 번 봤사와요. └ 엘프다) 내 친구 한 명도 그래서 죽었었지…. └ ㅇㅇ 특히 귀쟁이 NPC가 하는 말은 절대로 믿으면 안 돼, 걔들 종족 특이 배신임. └ 엘프다) 자연의 이름으로 너를 진심으로 저주한다.└ 응~귀쟁이 안 무서워~~ 귀쟁이는 엘프를 칭하는 멸칭으로 보였다.뭐지.아무도 엘프 편에서 말을 안 하는 거 보니까 진짜 엘프들한테 뭔가 있나. 그나저나, 퀘스트형이라.직접 겪어봐야 저 말들이 무슨 소린지 감이 잡힐 것 같다.살아남아서 2층으로 올라가면 어차피 경험하게 되겠지. 제목 : 앤스란스로프가 1층에 나왔던 사람들 있음?작성자 : ㅇㅇ*-아직 내가 어느 난이도 탑인지 예상이 안 되니까 그냥 다들 각자 1층에서 나온 몬스터 쫙 나열해보셈.특징도.아 그리고 몬스터 말고 다른 정보들도 주셈. 온갖 정보들이 쏟아졌다. 정보들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서사 없이 몬스터만 등장하는 층계에는 필연적으로 보스 몬스터가 있다.즉, 그놈에게 도달해서 죽이면 지금 진행하고 있는 1층 층계가 클리어될 확률이 높다. 이지 모드를 제외한 난이도의 탑 등반자들은 다수가 1층에서 ‘함정’을 경험한 적이 있다. 바닥에 설치된 입력판 누르면 수직으로 내리 찍히는 쇠사슬 조심.벽면에서 튀어나오는 쇠 화살 조심. 쇠 화살이 쏟아지는 방향은 갑자기 미세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근데 그걸 내가 알아차릴 수 있으려나. 출현 확률이 존재하는 몬스터는 둘 정도. 고블린과 마광견(魔狂犬) 조심.이미 앤스란스로프가 두 마리 나온 이상, 그와 관련된 계열의 보스 몬스터가 나올 확률도 높다고 했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건 ‘빛의검’의 댓글들이었다. └ 빛의검) 긴장 상태는 계속 유지해야겠지만,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네가 앤스란스로프 두 마리를 죽인 건 사실이니 1층에서 살아남을 감각은 지녔다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잡은 놈은 너무 운에 가까웠지만.확실히 긍정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었다. └ 빛의검) 포션은 얼마 남았지?└ ㅇㅇ*) 절반?└ 빛의검) 쇠 화살이 쇄도하면 엄폐물로 몸 숨겨서 피할 건 피하고. 쳐낼 수 있는 건 쳐내고. 여기까진 아주 타당하게 들리는 말이었다.뒤에 붙은 말이 문제였지. └ 빛의검) 맞을 수밖에 없는 건 참고 맞아라. 통각 억제 스킬의 레벨도 오를 수 있을 거고. 고통에 적응해야 대비가 된다.└ 맞아본 놈이 잘 버티긴 하지. └ 빛의검) 레벨이 올라도 신체의 부상 부위가 재생이 되고. 클리어해도 원상복구가 된다. 그러니 몸을 사릴 필요도 없다. └ 개척자) 너무 긍정적으로 말하네. 회복이고 뭐고 클리어 못 하고 뒤지면 결국 그대로 진짜 죽는 건데 ㅋㅋㅋㅋㅋㅋ └ 무녀) 하와와, 긍정 회로 돌리다가 까딱하면 죽는 것이와요. 잠시 할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개척자의 짤막한 글에 훅 들어갔다.그렇지. 저게 현실이야. 까딱하면 죽는다.하지만 빛의검이 쓴 댓글들이 죄다 양질의 조언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머릿속에 제대로 집어넣었다. “상태창.” <플레이어 스테이터스>이름 : 한유성종족 : 인간Lv.1 힘 : 12민첩 : 13체력 : 11 스킬 : 통각 억제 Lv.1 평정심 Lv.1 엄폐 Lv.1 검지로 스킬 위를 누르니 설명이 떠올랐다. 통각 억제는 육체 피해에 따른 ‘고통’을 얻었을 때 그 고통을 억제하는 스킬. 평정심은 말 그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스킬. 엄폐는 엄폐물에 숨었을 때 기척을 일부분 숨겨주는 스킬이었다. 갤러리를 다시 열고 자판에 손을 올렸다. 제목 : 1층 클리어하고 돌아옴.작성자 : ㅇㅇ*- 살아서 보자. 이 글에 대한 댓글 확인은 갔다 와서 하는 걸로.초월자 갤러리를 종료하고 단말기를 허리춤에 단단하게 묶인 등 뒤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그작- 시민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식량들.호두와 땅콩 등의 견과류, 소량의 육포를 씹어먹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가보자고.나, 한유성.이런 괴상한 곳에서 죽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