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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개안

초월자들이 집착하는 성지글을 작성해버렸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강제 개안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처럼 좆 같은 일은 흔치 않다. 특히 주어진 운명이 쓰레기 같다면 더더욱. — "야는 공부시키지 마. 박수 될 팔자여. 공부가 소용없어." 어릴 때 길을 걷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 박수? 뭔데 그게? 찾아보니 남자 무당을 이르는 말이란다. '21세기에 무당이니, 점이니.' 그런 걸 누가 믿겠냐고. 그냥 미친 노인네의 헛소리라 치부하고 넘겼다. 그 이후 나름 피 터지게 공부해 대학도 졸업하고, 마침내 본격적인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될 거야." AI로 얼어붙은 취업 시장이라지만 나름 스펙도 쌓았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김아론 님. 귀사의 면접에 지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발."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김아론 님과 함께하지 못…….] "……시발." 탈락만 753번째. 서류에서 갈리고, 인적성에서 미끄러지고, 면접에서 막히길 반복했다. 눈높이를 낮추면 부담스러워서 못 뽑겠다며 탈락. 높이면 높이는 대로 다음 기회에. "뭐 어쩌라고, 진짜." 이쯤 되니 혹시나 하게 된다. 어릴 적 지나가던 노파가 혀를 차며 내뱉었던 그 저주 같은 말. — "너는 노력해도 소용없어. 박수 팔자는 기를 써도 안 사라져. 네가 문제가 아니라, 네 뒤에 앉아있는 분이 문제여." 그 말이 설마 진짜였던 걸까. 아이씨. 내 뒤에 앉아있는 게 뭔데? 진짜 신내림이라도 받으라는 건가? 굿이라도 해야 해? "굿은 무슨 얼어 죽을 굿. 물럿거라 잡귀들아." 귀신? 좆까라 그래. 753번 떨어졌으면 800번 지원하면 그만이다. 또 떨어지면 1000번 지원하지 뭐. "내가 무당 따위 되나 봐라." 그렇게 악을 쓰며 침대에 엎어진 순간. "……엥?" 눈을 뜨고 나니, 이세계였다. ◆ "아니. 이게 맞음?" 마법과 이능, 그리고 온갖 신들이 범람하는 판타지 세계. 내가 이세계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부터가 비현실의 극치였으니까. 하늘에 떠있는 두 개의 태양과 발 밑에 깔린 새하얀 구름. 뭐, 여기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칠 수 있다. 판타지 전이? 누구나 사춘기 시절 한 번쯤은 망상해 보는 일이니까. 문제는. 내가 뒤집어쓴 몰골과 처한 장소였다. 펄럭거리는 품넓은 흰색 바지. 그 위에 걸쳐진 새파란 도포 자락. 그리고 머리 위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리며 흙먼지를 쏟아내는 쓰러져가는 폐가. 그 와중에 기도를 올리는 사당 제단만 묘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판타지 세계의 이름 모를 신관으로 전이되어 버린 모양새였다. 그것도 아주 쫄딱 망해버린. "……장난하냐?" 한국에서 그 지랄을 떨며 무당 팔자를 피해 도망쳤더니. 이 빌어먹을 운명이 기어코 차원을 건너 무당의 몸 속에 영혼을 꽂아 넣었다고? 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한번 해보자는 거지?" 내가 여기서 얌전히 무릎 꿇고 방울이나 흔들 것 같냐. "이딴 신당 가출한다, 시발!" 쾅! 도포 자락을 거칠게 걷어붙인 채, 부서져 가는 낡은 사당 문짝을 걷어차고 밖으로 박차고 나갔다. 당장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서 용병이 되든 노가다를 뛰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휘이이이잉—!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뺨을 후려쳤다. "……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심장이 덜컥 멎었다. 발밑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새하얀 구름 바다. 사방을 둘러봐도 깎아지른 수천 미터급 절벽뿐인 첩첩산중. 구름이 발아래에 깔려 있는 까마득한 꼭대기 칼바위에, 오로지 나와 이 낡은 사당 하나만이 덜렁 놓여 있었다. 내려가는 길? 계단은커녕 발 헛디디면 그대로 자유낙하로 30분 쯤 떨어질 거 같은 절벽 그 자체다. 애당초 구름이 깔려서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어쩐지 구름이 바닥에 깔린 게 이상하다했더니. 판타지라 그런 게 아니라 존나 높아서 그런거였구나. "시발." 망연자실한 욕설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어떻게 사냐, 여기서." 칼바람에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멍하니 구름을 응시했다. "……그래도 경치는 좋네." ◆ 판타지에 떨어진지 3년차. 몇 가지 사실을 알게됐다. 이 판타지 세계에서 '사당'이란 건 일종의 영적 통신 기지국 같은 개념이었다. 대륙 전역에 깔린 거대한 마나 네트워크망. 신도들은 그 마나망을 통해 기도를 올리고, 신관들은 신탁을 내리며 교단을 굴린다. 신도들이 모여 기도를 바칠수록 사당에는 공덕이 쌓이고, 공덕을 통해 신기한 일들을 행할 수있다. 그런데. "흐음." 암만봐도 내 눈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로 보인단 말이지. "영차." 사당 한가운데 놓인 제단 위로 푸른빛이 도는 납작한 마도 판석을 얹었다. 지잉- 미세한 진동음과 함께 허공에 떠오르는 푸르스름한 홀로그램 화면. [이름 없는 옛 사당 갤러리 (등급: F급 폐사당)] [관리자: 무명의신관] [실시간 접속자: 0명] [누적 게시글: 0개] 조금 생김새만 다를 뿐 그 파란 사이트랑 똑같다. 문제는. "하아……." 내 갤러리는 완벽한 정전 사태에 있다는 점 정도일까. 이 세계의 신당 법칙은 정직했다. [ 갤러리 이용자 수 ≈ 신도의 수 ] 게시판의 트래픽과 신도들의 반응이 곧 신당의 규모다. 애당초 대륙이 넓다보니 다들 오프라인 신당을 찾아오기보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게 그 이유. 그리고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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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아직 잘 안 와닿는다. 아무튼. 대형 교단들은 수천만 신도를 거느리며 번쩍이는 대리석 신전에서 공덕을 쓸어 담았다. 반면 내가 모시는 신은 이름조차 지워진 정체불명의 옛 신이었고, 사당은 아무도 못 올라오는 설산 꼭대기에 박혀 있었다. 신도가 단 한 명도 없으니 공덕이 1도 쌓일 리 만무했다. 결국 내 손에 남은 거라곤 머리통 위에 얹힌 관리자 권한 하나뿐. "주딱 완장 차고 있으면 뭐 하냐고. 3년째 글 리젠이 0개인데." 꼬르륵—.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그렇다면 신도도 없고 공덕 수급도 안 되는 이 고립지에서, 나는 지난 3년간 도대체 어떻게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가? 답은 간단했다. 일명 '갤러리 쌀먹'. 내 사당 갤러리가 정전 갤러리일지언정, 나는 엄연히 절대 관리자 권한을 쥔 주딱이었다. 주딱에게는 공덕을 소모해 물자를 불러올 수 있는 [공덕 상점] 기능이 열려 있었다. 내 사당에서 공덕을 못 번다면? 남의 사당에서 털어오면 된다. 다른 대형 사당 갤러리에 잠입해 뻘글을 쓰거나, 위선 떠는 신관들 글에 팩폭 댓글을 달며 분탕을 친다. 그렇게 남의 갤러리에서 어그로를 끌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 주딱 권능을 통해 아주 쥐꼬리만 한 '부스러기 공덕'이 내 계정으로 적립된다. 그럼 그걸로.... [ 공덕 상점 (F) ] [ 보유 공덕: 6 ] - 호밀빵과 육포 묶음 (3 공덕) . . . - 하급 마나 배터리 (100 공덕)] 이 누더기 같은 상점에서 사먹는다. 한숨을 삼키며 그동안 어그로를 끌어 모아둔 귀한 공덕을 털어 넣었다. [호밀빵과 육포 묶음을 구매하셨습니다.] [공덕 3이 차감됩니다.] 허공이 일렁이더니 바닥으로 툭, 딱딱한 빵과 소금에 절인 육포가 떨어졌다. 질겅질겅—. 침으로 빵을 조금씩 녹여 먹자, 절로 해금 창에 눈이간다. [🔒 D급 상점 해금 대기: [기본 잡화] / [향상된 음식] ] [🔒 C급 상점 해금 대기: [장서각] / [건축] ] "D급이면... 신도 1000명이었나? 그걸 어떻게 해." 비참하기 짝이 없는 방구석 분탕 쌀먹 라이프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당장의 먹을거리 따위가 아니다. [경고: 마나 배터리 잔여량 4%.] 시뻘건 경고창이 눈앞에서 깜빡거렸다. 식량보다 더 치명적인 건 이 빌어먹을 마나 배터리. 대륙의 문명권 도시나 대형 신전에는 전기처럼 마나 네트워크 배선이 촘촘하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해발 수천 미터가 넘는 이 첩첩산중 고립지에 그런 인프라가 닿을 리 만무했다. 결국 사당 단말기를 켜두려면 순수한 마나 배터리를 주기적으로 갈아 끼워야만 했다. 문제는 그 배터리 가격이 살인적으로 비싸다는 점. "어그로를 몇 번을 끌어야 배터리 하나를 사는 건데……." 공덕 상점에서 마나 배터리의 가격은 무려 100공덕. 지금 내 잔고는 호밀빵을 사고 남아 있는 3공덕이 전부였다. 배터리가 닳아 단말기가 꺼지면?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공덕 수급도 끊기고, 식량도 못 사고, 그대로 아사하는 거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상황. 당장 굶어죽는 걸 면하기 위해 빵을 샀지만. 살기 위해서라도 갤질을 해야 했다. 단말기 판석을 두드려 대륙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로 접속했다. [태양신당 갤러리] [실시간 접속자: 1,184,291명] 접속자 수 단위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금빛 테두리가 번쩍거리는 화면 위로 귀족 신관들의 화려한 글들이 쏟아져 내렸다. 어디 어그로 끌 만한 떡밥 없나 스크롤을 내리던 그때. 개념글 목록을 누르자 가장 상단에 박힌 게시글이 보였다. [개념글: 태양신당 수석 신관의 신탁 보고] [북방 차원 균열을 토벌할 제3십자군 원정대의 출정을 신께서 축복하셨습니다. 한달 내로 대승의 낭보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신도들의 열렬한 찬양 댓글이 수천 개씩 줄줄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글을 가만히 내려다보는데, 관자놀이가 징하게 울렸다. 눈앞이 일렁거리더니 텍스트 사이에서 검붉은 핏빛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으니까. '……뭐야?'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썩어 문드러진 시체 더미처럼 보였다. 코끝으로 비릿한 피비린내와 썩은 내장이 짓이겨지는 악취가 훅 끼쳐왔다. 머릿속으로 무언가 들어와서는 안 될 거대한 형상이 강제로 비집고 들어오는 감각. 그러더니... 파앗 ㅡ 눈 앞에 영상이 떠올랐다. 서북쪽 보급로. 질퍽거리는 진흙탕. 하늘을 뒤덮은 까마귀 떼. 그리고 목이 잘려 나간 병사들의 시체 위로 돋아나는 흉측한 검은 반점. 흑사병이었다. 소름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뭔데 이 감각.' 어릴 적 귀신을 본다며 굿판을 벌이라던 그 무당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박수 팔자. 신병(神病).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신할 수 있다. 저 원정대는 승리는커녕 보급로에서 전염병을 만나 몰살당한다. 홀린 듯 손가락이 움직였다. [제목: 북방 제3원정대 검은 반점 역병으로 패퇴한다] [작성자: ㅇㅇ] [내용: 서북쪽 보급로 진흙탕에 까마귀 떼 내려앉고 병사들 목덜미에 살기가 가득하다. 출정 강행하면 마물 구경도 못 해보고 역병으로 궤멸한다.] 폭탄을 던졌으니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글이 올라가자마자 실시간으로 조롱이 쏟아지더니, 단 3분 만에 내 글과 사당 프로필이 캡처되어 개념글에 조리돌림 박제됐다. [개념글][박제] ㅋㅋㅋㅋ 신도 0명짜리 하꼬 주딱이 어그로 끌려고 십자군 흑사병 저주글 쓴 거 박제함.jpg (박제.jpg) 유동인 줄 알았더니 갤로그 까보니까 신도 0명짜리 폐사당 주딱이네 ㄴ 빛의기사: 흑사병 같은 소리 하네 방구석 백수가 수석 신관님 신탁에 훈수질 ㄷㄷ ㄴ 강철모루: 내 동생이 이번에 보급대 대장간 지원 갔는데 저주질이냐? 내 망치로 대가리 깨버린다 ㄴ 단죄자: 성지순례는 무슨 이단심문관 순례 가겠네 신고 박았습니다. ㄴ 아뇨아뇨아뇨: 신당 좌표 좀 테러 ㄱㄱㄱ ㄴㄴ 빛의기사: 신도 없는 0명 짜리 신당에 글남기면 귀신들린다 비웃음과 살해 협박이 줄줄이 달리고, 어그로 보상으로 부스러기 공덕이 짤랑거리며 들어왔다. "알려줘도 지랄들이네." 헛웃음을 지으며 화면을 끄려던 참이었다. 띠링-! 단말기 판석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맑고 청명한 알림음이 골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알림: '이름 없는 옛 사당 갤러리'에 새로운 게시글이 등록되었습니다!] [실시간 접속자: 1명] 내 눈을 의심했다. "……유입?" 방금 태양신당 갤러리에 박제된 내 성지글 링크를 타고 누군가 이 정전 사당까지 온 듯했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알림창을 터치했다. 텅 비어 있던 게시판에 새 글 하나가 덩그러니 떠 있었다. [제목: 내일 검무회에 나섭니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요?] [작성자: 칠흑의검사] "치, 칠흑의검사?" 닉네임을 확인하자마자 입을 벌렸다. 태양신당 갤러리에서도 사제들에게 꽤 좋은 취급을 받는 신도였으니까. 공양금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다시 말해 열혈신도. 그런 네임드가 왜 굳이 이 폐사당에? 글을 클릭하자. [내용: 아까 박제된 북방 역병 글 보고 들어왔어요. 보아하니 자신감이 대단하신 분 같은데, 정말 미래를 보시는 분인지 관심을 끌려는 사기꾼인지 확인하고 싶군요. 검무회에 집안의 명예가 걸려 있습니다. 저…… 내일 이길 수 있을까요?] 날 선 경계심 너머로 불안감이 뚝뚝 묻어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ㅡ 아까보다 더 심한 울렁거림과 함께. 눈앞에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국 명문 기사 가문 블랙우드의 문양. 칼자루를 쥔 채 하얗게 질린 가녀린 손. 불안에 떨고 있는 청흑발 여기사의 얼굴이 텍스트 뒤편에 투명하게 겹쳐 보였다. "커헉……!" 숨이 턱 막혔다. 화면 너머 의뢰인이 처한 감각이 여과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차디찬 밤공기의 냉기. 손바닥에 배어 나오는 끈적한 식은땀. 무리한 훈련 탓에 오른쪽 갈비뼈 아래에 감아둔 피 묻은 압박붕대의 통증과, 침대 밑에 나뒹구는 진통 포션 빈 병 세 개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이 신다에서 모시는 옛 신의 권능인가? 아니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그 징글징글한 무당의 신기가 터져 나온 건가? 혼란을 추스를 틈조차 주지 않았다. 더 깊은 인과율을 들여다보려 하자, 순간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격통이 들이닥쳤다. 머리통이 통째로 쪼개지는 것 같았다. "큭!" 코 안쪽에서 뜨끈한 액체가 울컥 쏟아지더니,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후두둑. 새파란 도포 자락 위로, 그리고 단말기 판석 위로 붉은 핏방울이 번졌다. 머리가 타는 감각과 함께 정신줄을 놓기 직전. 기괴하게 번쩍이는 섬광 너머로, 장면이 내 망막에 똑똑히 박혔다. — "와아아아아아아!" 수만 명의 관중들이 내지르는 광란의 함성. 유명한 천재 검사인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 경기장 상층 목조 관람석이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 콰직! 난간이 사람들의 무게를 못 버티고 갈라지면서 나는 끔찍한 파열음. 우지끈, 쾅! 수백 개의 목재 지지대가 부러지며 거대한 흙먼지가 솟구쳤다. 그대로 쏟아지는 사람들과 날카로운 파편들. 그리고 그 무너져 내린 잔해 한가운데에. 출전을 기다리며 대기석에 서 있던 여기사가 고스란히 파묻히고 있었다. 장면이 뚝 끊기며 현실로 튕겨 나왔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소매로 코밑을 훔쳤다. 손가락이 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명의신관] : 사기꾼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지. [무명의신관] : 너 지금 오른쪽 갈비뼈에 피 묻은 압박붕대 감고 있네. 침대 밑엔 진통 포션 빈 병 세 개가 굴러다니고. [칠흑의검사] : 그걸 대체 어떻게 안거죠? [무명의신관] :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무명의신관] : 검무회에 가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