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적중
예언 적중
[칠흑의검사: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요?]화면 너머의 당혹감이 글자 사이로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칠흑의검사: 사람들에게 파묻혀 죽는다니요? 악담도 정도가 있습니다. 내일은 제 가문의 명예가 걸린 날입니다. 그런 불길한 소리는 농담이라도 사양하겠습니다.]반발하는 건 당연했다.내일 있을 대회가 인생의 전부인 양 매달려 온 유망주에게 다짜고짜 '가면 죽는다'는 소리를 던졌으니 뺨을 맞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하지만 머릿속에 박혀버린 잔상은 선명했다.난간이 쪼개지는 끔찍한 파열음. 쏟아져 내리는 인파. 피로 물든 백은의 갑주.그 비참한 단말마가 귓가를 찢을 듯 울리고 있었다.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단말기 판석을 거칠게 두드렸다.[무명의 신관: 너를 구경하려 내려온 관객들로 인해서 관중석 난간이 무너질 거야.][무명의 신관: 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죽어.][무명의 신관: 가문의 명예는 나중에 회복할 수 있어.][무명의 신관: 하지만.][무명의 신관: 너의 목숨은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사실만 알아둬.]동정이나 위로는 섞지 않았다.어차피 화면 너머 얼굴도 모르는 남이다. 믿고 안 믿고는 저쪽의 몫이었다.단말기 상단의 입력 표시가 거칠게 요동치더니 다급한 댓글이 튀어나왔다.[칠흑의검사: 하지만……! 저는 이번 대회에 모든 게 걸려 있습니다! 고작 얼굴도 모르는 분의 불길한 말 한마디 때문에 기권하라고요? 증거라도 있습니까?]가문의 명예, 기권, 증거.절박한 외침이 들려오는 듯했으나 더 상대해 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가뿐히 무시하며 마지막 문장을 적어 내렸다.[무명의 신관: 말을 듣든 말든 그건 너의 자유야.][무명의 신관: 하지만.][무명의 신관: 나라면 조심하겠어.][무명의 신관: 여기까지.]엔터를 누른 순간, 관자놀이가 터져 나갈 듯한 격통이 뇌수를 후벼 팠다.시야가 빙글빙글 돌며 암전이 찾아왔다.마치 갤러리 단말기에 내 영혼이 통째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괴한 감각.손끝에 감각이 사라져 갔다.이러다 진짜 죽겠다 싶어, 단말기 하단에 꽂힌 마나 배터리를 인정사정없이 잡아 뜯었다.탁!배터리가 빠지자 희미하게 빛나던 화면이 툭 꺼졌다.사방을 짓누르던 무거운 압박감이 거짓말처럼 썰물처럼 빠져나갔다."하아……! 커헉, 쿨럭!"그제야 뇌리에 피가 돌며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메스꺼움이 전신을 덮쳤다.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코피가 침대보 위로 쏟아져 내렸다."... 못 버티겠는데."중얼거리기도 잠시.피범벅이 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그대로 침대 위로 고꾸라졌다.◆[알림: 해당 사당의 모든 신관이 접속을 종료했습니다.]은빛으로 장식된 단말기 판석 위로 차가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하?"제국 굴지의 무문, 블랙우드 가문의 차녀 프레야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이게 뭐죠?"검무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에 찾아 들어갔던 하꼬 사당이었다.그런데 신관이라는 자는 대뜸 자기가 내일 죽을 거라는 악담만 퍼붓더니, 제 할 말만 던져놓고 접속을 끊어버렸다."아니, 무슨 이렇게 뻔뻔하게 예언하는 사람이 다 있어?"프레야는 어이가 없었다.살다 살다 사람을 이따위로 대하는 신관은 듣도 보도 못했다.사람에 파묻혀 죽는다니, 그 견고한 북부대공의 경기장 난간이 무너질 리가 없지 않은가.황당함을 누르며 [이름 없는 옛 사당 갤러리]를 빠져나와, 평소 상주하던 [태양신당 갤러리]로 들어갔다.북새통을 이루는 게시판을 훑어보던 그녀의 눈이 한 개념글에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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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ㅋㅋㅋ 아까 수석 신관님 신탁 보고에 시비 털던 유동 박제함][내용: 아까 서북쪽 보급로에 흑사병 살기 꼈다고 개소리하던 새끼 갤로그 까보니까 하꼬 사당 주딱임 ㅋㅋㅋ신도 0명짜리 망한 사당 주딱이 어그로 끌어서 신도 한 명 낚아보려고 대형 신당에 테러 질한 거 실화냐? 닉네임도 '무명의 신관'이래 ㅋㅋㅋ]-빛의사도: 하꼬 신당이 이래서 안 됨. 수준 나온다.-태양바라기: 꼴에 신관이랍시고 어그로 끄는 거 역겹네.-단죄자: 신성모독으로 이단심문소에 신고 박았습니다.사제에게 시비 걸었던 댓글이 박제되어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었다.주로 하꼬 신당이 이래서 안 된다느니, 관심을 끌어보려는 저열한 수작이라는 악플이 줄줄이 달렸다."……그럼 그렇지."프레야는 헛웃음을 흘렸다.결국 관심을 끌어 신도를 모으려던 파렴치한 사기꾼의 분탕질이었던 것이다.'역시나 헛소리로 치부하자.'그렇게 마음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다음 날 죽는다는 소리를 들은 탓인지, 가슴 한구석이 얹힌 듯 찝찝하기 짝이 없었다.복잡한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이라도 하려고 방을 나섰다.심야의 저택 복도는 서늘했다.조용히 복도를 지나치던 프레야의 발걸음이, 저택 가장 안쪽에 자리한 아버지의 서재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등불.그리고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가주 블랙우드 백작과 정보관의 은밀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북방 원정군 쪽에서 까마귀 떼가 비정상적으로 몰려든다는 전언입니다. 게다가 일부 보급대 병사들의 피부에…… 원인 모를 반점이 돋아나기 시작했다고……."— "설마, 역병의 징조인가? 태양신당의 신탁은 분명 대승이라 하지 않았나……."짧게 오간 대화는 곧 무겁게 가라앉았다.하지만 문밖에서 그 몇 마디를 주워들은 프레야의 호흡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돋아났다.까마귀 떼. 병사들의 반점. 역병의 징조.조금 전 태양신당 갤러리에서 모두가 비웃고 조롱했던 그 '무명의 신관'의 댓글.'그 사람…….'프레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말이 맞았어.'수석 신관조차 보지 못한 역병의 징조를, 그 하꼬 신관은 홀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사기꾼의 헛소리가 아니다.진짜 신탁일지도 모른다.그렇다면.내일 경기장의 난간이 무너져 자신이 깔려 죽을 거라던 그 서늘한 경고는....어둠 속에서, 프레야의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으…… 으으……."깨질 듯한 두통에 눈이 번쩍 뜨였다.나무 틈새로 비쳐 드는 희뿌연 햇살. 다음 날 아침이었다."콜록! 아, 머리야……."상체를 일으키며 마른세수를 하던 손에 바싹 말라붙은 핏자국이 만져졌다.대체 뭐였지?어젯밤의 기억이 퍼즐처럼 맞춰졌다.머리가 터질 듯 뜨겁게 달아올랐고, 동시에 누군가 내 몸을 차지한 듯한 이질적인 감각.저절로 시야에 타인의 미래가 핏빛으로 맺히더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가락이 움직여 그 사람의 죽음을 예지했다.그리고 쏟아진 코피와 기절.마치…… 신내림을 받은 듯한 기괴한 경험."……그럴 리가."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애써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한국에서도 피해 다녔던 귀신놀음을, 이세계에 빙의했다고 해서 갑자기 능력을 각성해 시작한다고?순순히 납득할 수 없는 억까였다.그냥 영양 결핍으로 헛것을 본 거겠지.애써 현실을 부정하던 그때, 머릿속에 번쩍하고 불꽃이 튀었다."그러고 보니 마나 배터리……!"철렁.심장이 내려앉았다."좆됐다!"어젯밤 고통을 못 이겨 마나 배터리를 강제로 뽑아버렸다.만에 하나 배터리가 방전되면 이 산꼭대기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건 시간문제다.애당초 관리자 공덕 말고는 물건을 수급할 방도가 없다고!문제는 어그로를 끌어서 공덕을 모으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는 점이었다.게시글 조회수 1만 회가 나와야 겨우 10공덕.추천은 10개가 모여야 고작 1공덕이다.다시 말해, 추천을 1,000개 받거나 조회수 10만 회짜리 글을 써야 겨우 마나 배터리 하나를 살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제발, 몇 분이라도 버텨라!"황급히 바닥에 나뒹굴던 배터리를 주워 단말기에 쑤셔 박았다.치직거리며 화면이 켜지던 바로 그 순간.띠링! 띠리링! 띠링-!갑작스러운 알림음이 골방 안에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동시에 황금빛 알림창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알림: '이름 없는 옛 사당 갤러리'에 첫 번째 방문자가 발생했습니다!][보너스 지급: +50 공덕][알림: 갤러리 내에 첫 번째 게시글이 등록되었습니다!][보너스 지급: +50 공덕][알림: 갤러리 내에 첫 번째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보너스 지급: +50 공덕]"……어?"각각 50공덕씩, 이것만으로 순식간에 150공덕이 적립되었다."미쳤는데?"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역시 주딱 완장을 차고 있으니 돈을 이렇게 버는구나.갤러리 개업적 보너스가 이토록 달콤할 줄이야.나는 지체 없이 [관리자 상점]으로 들어가 [하급 마나 배터리 - 100 공덕]을 구매했다.쿠구궁.제단 위 허공이 비틀리며 차원 틈새가 열리더니, 박스 하나가 뚝 떨어졌다.뚜껑을 열자 영롱한 푸른빛을 내뿜는 마나 배터리가 들어 있었다."살았다……!"십년감수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였다.알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띠링-! 띠링-! 콰광-!마치 축포가 터지듯 웅장한 알림음이 연달아 귓전을 강타했다.[위업 달성: 첫 신도 발생! (+1,000 공덕)][위업 달성: 첫 공물 발생! (+1,000 공덕)][알림: 공물 가치 시스템 환산! (+300 공덕)][현재 보유 공덕: 2,353 공덕]"……뭐, 뭐야 이거?"멍하니 화면을 응시하던 내 턱이 툭 떨어졌다.천 공덕? 거기에 공물 삼백 공덕?하루아침에 2천 공덕이 넘는 거금이 폭탄처럼 쏟아져 들어왔다.영문을 몰라 얼어붙어 있는 사이, 화면 중앙에 붉은 알림창이 새롭게 떴다.[새로운 게시글이 등록되었습니다!]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알림을 클릭했다.새로고침 된 게시판 최상단, 어젯밤 그 칠흑의 기사가 올린 글 제목이 두 눈에 박혔다.[작성자: 칠흑의검사][제목: 신관님……!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이세요ㅠㅠㅠ]"……엥?"내 예언이.정말로 적중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