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작 의심
주작 의심
[제목: 신관님……!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이세요ㅠㅠㅠ] 글을 클릭하자 장문의 글이 쏟아졌다. [내용] 신관님. 정말, 정말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불길한 헛소리라고 치부했던 제 오만함을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신관님의 경고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싸늘한 시체가 되어 빈소에 누워있었을 겁니다. 도저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진짜라고?" 어젯밤 눈앞에 펼쳐졌던 그 끔찍한 핏빛 환상. 관중석 난간이 무너지고, 수백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내리며 청발의 기사를 짓뭉개던 그 압사 사고. 그게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진짜로 일어날 미래였다는 소리였다.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건가?' 예전에 지나쳤던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무당을 할 팔자라고. 그때는 비현실적인 말이라고 치부했지만. 지금와서는 더 이상 그게 비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애당초 여긴 판타지 세계고, 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고. "... 신내림이라도 받은 셈인건가." 아무리 무당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라도 알고있다. 평범한 사람이 신내림을 받으면 신의 능력을 대신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대신 원래 평범했던 시절로는 못 돌아간다고. 따지고보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인거다. "최악...은 또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이 정신나간 산 꼭대기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곤 갤질을 통해 공덕을 쌓는 거 빼곤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능력이 생겼다는 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써먹어야하는 셈. 애당초 신을 섬기는 신관의 몸에 빙의하기 까지 했으니... "하아." 멍하니 턱을 쓸어내렸다. 원래 이 판타지 세계관에서 신당이란, 공물을 바치는 신도들에게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들어주는 곳이다. 신성력으로으로 상처를 치료해 주는 성수를 내려주거나. 전쟁의 신을 모시는 곳에선 신체 능력을 강화해 주는 버프를 걸어주기도 하고. 물론, 그중에는 기도를 하면 좋은 관직을 얻게 해 준다느니,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느니 하며 희망을 주는 신당들도 있다. 당연히 예언이나 점성술을 봐주는 신당들도 있고. "그런 녀석들은 좀 사기성이 짙긴했는데." 실제로 신성력이란 게 존재하긴 하지만, 두루뭉술한 말로 과거를 맞추는 척하며 허상이나 꿈을 파는 곳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나 역시 예언이란 건 전부 그런 쪽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내 눈앞에 맺혔던 상. 그건 분명 진짜였어.' 신성력이고 마법이고 나발이고, 이건 크게 다르다. 정확하고 상세한 예언. 이건 돈이 될 수밖에 없거든. 신도 하나 없던 신당이 날아오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당장 칠흑의 검사만 해도 그래. 거의 내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그녀의 글을 마저 읽어 내렸다. [칠흑의검사: 감사의 의미로 300만 크로네를 공양했습니다. ] " 300만 크로네……!" 이 돈이 신당의 제단에 바쳐지면서, 시스템을 통해 자동 환산되어 내게 300공덕으로 들어온 셈이었다. "300공덕이면…… 배터리가 몇 개야." 단번에 하급 마나 배터리 세 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이 정도면 무려 세 달 치 생명 연장. 매일같이 24시간 대형 갤러리에서 어그로를 끌고, 욕을 처먹고, 차단을 당해가며 뼈 빠지게 분탕을 쳐야 겨우 모을까 말까 한 돈이 단숨에 굴러들어 왔다. "와…… 이거 예언 성능 미쳤네." 무당 짓 안 하겠다고 발악하던 과거의 나침반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나쁘지 않다. 아니, 최고다. 살아남으려면 기꺼이 이세계 명품 박수무당이 되어주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글의 마지막 줄을 읽던 나는, 순간 시선을 멈췄다. [칠흑의검사: 아! 그리고 신관님의 은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상세한 썰은 통합 후기 게시판에 올리겠습니다! 그편이 신관님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도 좋을 것 같아서요! 링크 남겨둡니다!] "……어?" 후기? 후기 게시판? 이름 없는 폐사당의 주딱인 내 예언이, 제국 전체의 신도들이 모이는 [신당 통합 후기 게시판]에 올라간다고? 나는 다급히 칠흑의 검사가 남긴 링크를 클릭했다. [신당 통합 후기 갤러리] 페이지가 넘어가자마자, 실시간 베스트 개념글 최상단에 불타고 있는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개념: 님들... 저 진짜 하꼬 신당에서 점 한 번 봤다가 목숨 건졌습니다. (인증 有)] 조회수는 이미 폭발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킨 나는 글을 클릭했다. 그곳에는, 칠흑의 검사가 검무회에서 겪었던 생생한 썰이 풀려 있었다. ◆ 제국 북부대공이 주최하는 성대한 검무회. 투기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만 명의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하지만 대기실에 선 블랙우드 가문의 차녀, 프레야의 안색은 창백했다. — 검무회에 가지 마. — 너를 구경하려 내려온 관객들로 인해서 관중석 난간이 무너질 거야. 어젯밤 보았던 무명의 신관이 남긴 경고. 그 서늘한 텍스트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후우……." 프레야는 마른입술을 축이며 대기실 바깥, 경기장 상층부의 목조 관람석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견고해 보이긴 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낡은 나무 기둥들이 위태로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그녀는 참지 못하고 근처를 지나던 대회장 직원에게 다가갔다. "저기, 저 위쪽 난간 말입니다. 사람들이 저렇게 몰려 있는데, 안전상 불안해 보이지 않습니까? 괜찮은 건가요?" 프레야의 질문에 직원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사님. 매년 치러지는 검무회입니다. 아주 튼튼하게 지어졌으니 무너질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실 수 없습니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요." 프레야가 재차 고집을 부리자, 직원의 얼굴에 찰나의 짜증이 스쳤다. 그는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관람석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투박한 손으로 목조 난간을 툭툭 치더니,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쯧, 지가 무슨 대단한 우승 후보 참가자인 줄 아는 건가. 여기 네임드가 몇 명인데 유난은……." 기사인 프레야의 예민한 청각에는 그 비아냥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똑히 꽂혔다. '저 자식이 진짜…….' 프레야는 당장이라도 직원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애써 주먹을 꽉 쥐며 참았다. 직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블랙우드가 아무리 명문이어도, 이번 검무회는 제국의 내로라하는 초특급 인사들과 기사단장 급이 참여하는 거대한 대회였다. 여기서 가문의 이름을 걸고 난동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직원은 대충 난간을 몇 번 두들기곤 돌아와 심드렁하게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아주 튼튼하니 신경 쓰지 마시고 시합이나 준비하시죠." 프레야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슴속의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너무 매달리지 말라고 경고라도." "아... 직접하시던가요." 그렇게 말한 직원이 사라지고. 프레야는 화를 억누르며 잠시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는 곧장 접수처로 다가갔다. "……등록을 포기하겠습니다." "예? 기권하시겠다고요? 대체 왜?" "제가 죽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관계자들이 프레야를 미친놈 바라보듯했지만. 프레야는 단호했다. 그녀가 기권을 선언하고 대기실을 빠져나오자, 그녀의 대전 차례에 대신 들어가게 된 라이벌 가문의 기사가 코웃음을 치며 도발했다. "블랙우드의 차녀가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리다니. 이름값이 아깝군 그래. 똑똑히 구경이나 해라, 내 화려한 검무를!" 프레야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옅은 미소만 지은 채 관중석 멀리 외곽으로 물러나 섰다. 그리고 잠시 후. "와아아아아아!!" 프레야 대신 출전한 기사가 화려한 갑주를 뽐내며 투기장 중앙으로 나서자, 관중들이 그를 더 가까이서 구경하기 위해 일제히 앞쪽 난간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순간. — 우지끈! 콰아앙! 끔찍한 파열음. 그리고 수백 개의 목재 지지대가 일시에 부러져 나가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상층부 관람석 난간이,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아아악-!" "사람 살려!" 거대한 흙먼지가 솟구치고, 날카로운 파편들과 사람들의 몸뚱이가 경기장 위로 비 오듯 쏟아졌다. 프레야가 서 있어야 했을 바로 그 대기석 자리에. "……!" 프레야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전신에 소름이 돋아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경비병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빨리 구급 신관들을 불러! 다행히 밑에 대기자가 없어서 깔려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와, 사람 좀만 더 몰렸거나 밑에 누가 있었으면 진짜 다 죽을 뻔했어요!" "큰일 날 뻔했네요. 진짜 천운입니다, 천운!" 천운? 아니. 이건 천운이 아니다. '그분…… 무명의 신관님의 예언이…….' 만약 자신이 고집을 꺾지 않고 저 자리에 서 있었다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부러진 나무 기둥들에 깔려, 처참하게 피를 토하며 죽어갔을 것이다. 프레야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바라보며,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 [……그렇게 된 겁니다. 진짜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신탁이었습니다. 제 목숨을 살려주신 무명의 신관님께 다시 한번 무한한 감사를 올립니다!] -라고 끝맺어져 있는 칠흑의 검사의 글. 나는 모니터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진짜였어……." 내 예지 능력이 통했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잠시. 그 밑에 수십 개의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미친 듯이 리젠되고 있었다. 반응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었다. -빛의인도자: 헐 미친; 블랙우드 차녀분 왜 갑자기 기권했나 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구나 ㄷㄷ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ㅠㅠ 네임드인 그녀를 걱정하는 댓글. -검성바라기: 와 소름 돋는다. 대체 어느 신당의 신관이 점을 봐준 거임?? 그리고 정보의 출처를 묻는 댓글. -유동ㅇㅇ: 지랄하네 ㅋㅋ 딱 봐도 짜고 치는 바이럴이구만. 특히 세 번째 부류, 즉 주작이라고 몰아가는 놈들의 기세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진실의눈: 이거 백퍼 하꼬 사당에서 네임드 돈 주고 고용해서 어그로 끄는 거임. 글만 보고 점을 친다고? ㅋㅋㅋㅋ 지나가던 오크가 웃겠네. -태양만세: 팩트) 어제 태양신당 갤러리에서 분탕 치다가 욕처먹은 하꼬 사당 주딱임 ㅋㅋㅋㅋ 신도 모으려고 발악을 하네. 조작설이 대세로 굳어지려던 찰나. [칠흑의 검사]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직접 댓글을 달며 참전하기 시작했다. -칠흑의검사: 바이럴 아닙니다! 이거 오늘 낮에 올라온 제국일보 뉴스 기사 링크 보세요! [링크] 어제 신관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사고 났다고요!! -ㅇㅇ: 응~ 사고 난 걸로 끼워 맞추기 ㄴㄴ~ 사고 나니까 허겁지겁 소설 써서 올렸쥬? -칠흑의검사: 그럼 제가 주작 하나 하겠다고 가문의 명예가 걸린 검무회를 포기했다고요?! -ㅇㅇ: ㅇㅇ 바이럴은 원래 그렇게 인생 걸고 하는 거임 ㅅㄱ ㅋㅋ 그 댓글을 본 칠흑의 검사가 이성을 잃었는지 급기야 급발진을 해버렸다. -칠흑의검사: 님 어디 삼? 결투장으로 튀어와. 결투 뜨실? 내가 블랙우드의 이름으로 당신 대가리를 쪼개버리겠음. "푸흡!" 그 댓글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뿜고 말았다. 아니, 무슨 이렇게 성격이 직설적인 사람이 다있어. 아무리 그래도 넷상에서 키보드 배틀하다가 냅다 현피를 신청한다고? 무슨 전투 민족이야 뭐야. 하지만 상대는 잃을 게 없는 유동 분탕충. 끝까지 칠흑의 검사를 조롱하며 긁어댔다. -ㅇㅇ: ㅋㅋㅋㅋ 네임드 기사님 넷상에서 화난 거 무섭네여~ 근데 어쩌나? 난 익명인데? 그 주작 신관이나 데려와 보시든가 ㅋㅋㅋ 그러자 칠흑의 검사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칠흑의검사: 여기 신당 링크다. [이름 없는 옛 사당 갤러리 ] 그렇게 못 믿겠으면 당신들이 직접 가서 한 번 점이나 봐보든가!! 사기인지 진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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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야 잠시만!" 나는 다급히 손을 뻗었다. 당황하기도 잠시. 갑자기 내 허공에 띄워진 관리자 시스템 화면이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리며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 실시간 접속자 수 10명 돌파! 보상 : 10공덕 ] [ 실시간 접속자 수 100명 돌파! 보상 : 100공덕 ] [ 실시간 접속자 수 500명 돌파! 보상 : 500공덕 ] "미, 미친! 이게 무슨 상황이야!" 3년 내내 파리 한 마리 날아들지 않던 정전 갤러리에, 대형 커뮤니티의 트래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이렇게 몰려온 건 처음이라 넋을 잃고 당황하기도 잠시. 그들이 갤러리에 글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제목: 여기가 그 바이럴 주작 사당입니까? ㅋㅋㅋ] [제목: 주작도 적당히 해라. 닉네임만 보고 점을 치는 게 말이 되냐?] [제목: 하꼬 주딱아 나와봐라 ㅋㅋㅋ 내 미래도 좀 맞춰봐!] 게시판이 분탕들의 조롱과 의심으로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수십 개씩 리젠되는 쓰레기 글들을 멍하니 쳐다보던 중. 그중 한 글의 제목을 눈에 담은 순간. 갑자기 어젯밤처럼 머리가 깨질 듯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크윽……!" 코끝으로 비릿한 피 냄새가 훅 끼쳐오며, 시야가 다시 한번 검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제목 하나가 망막을 파고들며 강제로 운명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목: 내일 정령과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저 같은 폐급엘프도 선택받을 수 있는 정령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