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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생 역전

초월자들이 집착하는 성지글을 작성해버렸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엘생 역전

아론이 폐급엘프의 신점을 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 같은 시각, [신당 통합 후기 갤러리]의 실시간 중계글은 그야말로 폭발하듯 불타오르고 있었다. 급기야 엘프들의 서약식 현장에 있는 유저까지 등장한 탓이었다. [세계수벌목꾼] : 현장 인증함 내가 텍스트로 중계해줌. 방금 폐급엘프 단상 올라갔다. ㄴ 이 새끼 엘프 맞음? ㄴ 방금 현장사진 인증함 찐임 ㄷㄷ ㄴ 귀쟁이 닉 상태 ㅅㅂ ㅋㅋㅋㅋ ㄴ 세계수벌목꾼 미친놈인가 ㄴ 패륜은 엘평이다 ㅋㅋㅋㅋ ㄴ 모든 엘프가 비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갤질을 하는 엘프는 전부 미친놈들이다. 엘프의 종족값에 대한 품겨있는 토론이 오가길 잠시. 세계수벌목꾼의 다급한 중계가 이어졌다. [세계수벌목꾼] : 헐 미친; 지금 폐급 엘프 갑자기 단상에서 손 번쩍 들더니, 자기가 직접 정령 찾겠다고 선언하는 중;; ㄴ ??? 서약식에서 자기가 정령 찾는 건 무슨 초식임? ㄴ 복권 당첨 안 돼서 당첨금 복권방에서 훔치겠다는 수준 ㅋㅋㅋ ㄴ ㅋㅋㅋㅋ ㄴ 엘프 능지 ㅋㅋㅋ ㄴ 솔직히 엘프는 피해자지. 저 하꼬 신관이 가스라이팅 ㅈ되게 하더만. ㄴ 엘프 자1ㅈ... 뭐라구요? ㄴ ㅗㅜㅑ ㄴ ㅗㅜㅑ는 미친놈이 ㅋㅋㅋ ㄴ 근데 이게 맞음. 사실상 저 주작 신관한테 제대로 낚인 거지 뭐. ㄴ 저런 사기꾼 신관은 이단심문관이 잡아 가야 하는 거 아니냐? ㄴ 근데 원래 귀바퀴들이 지능이 낮아서 잘 낚임 ㅇㅇ ㄴ 드워프들은 키가 작아서 안보여서 사기 안당하는거임 ㄴ 응 다음 귀바퀴 폐급엘프가 악질 신관에게 낚였다는 여론이 우세해지는 사이. 아론은 서약식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니,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현장에 직접 서 있는 것처럼, 세계수 주변의 모든 기운이 생생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런 아론의 시야 끝. 거대한 세계수의 밑동 너머에서,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찬란하고 조그마한 정령. 아론은 그 어린 정령이 품은 감정마저 읽어내고 있었다. '겁을 먹고 있어.' 정령의 의지가 느껴졌다. 최근 엘프들의 서약식은 변질되었다. 타 신 들을 믿기 시작한 엘프들 덕분에 수많은 외지 정령들과 잡신들이 몰려왔으니까. 수백 년을 머물며 순수한 엘프를 기다리던 저 작은 아이에게, 탁해진 서약식의 풍경은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꼬마 정령은, 폐급엘프가 마음에 들었는데도 감히 다가가지 못한 채 세계수 뒤에 숨어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전후 사정을 꿰뚫어 본 아론의 손가락이 판석을 두드렸다. [무명의 신관] : 세계수 밑동으로 가. [폐급엘프] : 그... 그건 이유 없이 가면 엄청 혼나는데요……. 세계수는 엘프들에게 신앙의 상징. 함부로 접근했다간 숲에서 징계를 받을 수 있는 금기였다. [무명의 신관] : 내가 책임질게. 그러니까 군말 말고 가. 책임지겠다는 그 단호한 한마디에, 폐급엘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요.' 하지만 폐급엘프는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 그의 말이 없었다면 10번째 서약식에 나올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터. 그녀는 다시 한번 그를 믿기로 했다. 그녀가 뻣뻣하게 세계수를 향해 발을 떼자, 단상 아래의 장로가 황급히 앞을 가로막았다. "엘레나! 안 됩니다. 거긴 세계수를 섬기는 자만 들어갈 수 있는 성역입니다." "누, 누군가 절 부르고 있어요." 폐급엘프가 당당하게 나서려 했으나, 늙은 장로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열 번이나 실패해서 충격이 큰 건 알겠지만, 세계수에게 해코지를 하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해, 해코지요? 저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럼 대체 왜 다가가려 하는 거죠?" 범죄자를 추궁하듯 몰아붙이는 태도에 폐급엘프의 어깨가 다시금 쪼그라들었다. 애당초 1년 동안 방에만 박혀있던 그녀가 꼰대 엘프들의 기세를 이겨낼 리 없었다. 장로가 떫은 표정으로 혀를 찼다. "죄, 죄송해요." 포기하고 뒤를 돌아서는 척, 발걸음을 떼던 폐급엘프가. "이이익-!" 기합과 함께 몸을 획 틀더니, 제단을 가로막고 있던 굵은 목조 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어, 어어?!" "저, 저 폐급이 지금 무슨 짓을!" 식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지만, 폐급엘프는 오직 세계수의 밑동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이 믿기지 않는 돌발 행동은 현장에 있던 세계수벌목꾼의 텍스트를 통해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었다. -세계수벌목꾼: 와 ㅆㅂ 미쳤다 폐급엘프 갑자기 장로 무시하고 제단 난간 뛰어넘어서 세계수 쪽으로 달림 ㅋㅋㅋㅋ ㄴ 설득 특) 힘듦 ㄴ 담 넘기 특) 안 힘듦, 그냥 넘으면 됨 ㄴ ㅋㅋㅋㅋㅋ ㄴ 행동력 미쳤네 ㅋㅋㅋ 오늘 깐프 징역 가는 거 실시간 활자로 보겠누 ㄴ 귀바퀴에게는 감옥이 딱일세! 이단심문관 불러라! ㄴ 오늘의 진정한 승리자 : 서약식 안 가고 집에서 중계글 보는 드워프들 ㅋㅋㅋ ㄴ 이래서 사이비 점쟁이한테 빠지면 안 되는 거임. ㄴ 점쟁이 아무른 근거도 없이 가라하던데 저걸 믿네 수많은 조롱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지만 사력을 다해 달리는 폐급엘프의 눈앞에는 오직 아론의 텍스트만이 유일한 이정표였다. [무명의 신관] : 더 앞으로. [무명의 신관] : 조금 더 오른쪽. [무명의 신관] : 수풀 아래로 들어가. [무명의 신관] : 이제 무릎을 꿇고. [무명의 신관] : 손을 내밀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선 폐급엘프는 수풀 아래에서 조심스레 두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었다. '여긴 그냥…….' 메말라가는 세계수. 거친 세계수의 표피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쫓아오는 경비 엘프들의 발소리가 등 뒤로 가까워졌다. 역시 사기였던 걸까. 하지만. [ 무명의 신관 ] : 괜찮아. 그대로 기다려. 아론의 눈에 비친 세상은 달랐다. 폐급 엘프가 내민 두 손 앞. 수백 년을 기다려온 찬란한 꼬마 정령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주변을 휙휙 살피던 정령은, 탁한 외지 신들의 기운이 닿지 않는 안전한 장소임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눈앞의 금발 엘프는 어떤 신성력의 때도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드는 듯 했다. 꼬마 정령이 폐급엘프를 향해 도도도 달려가더니, 그녀가 내민 두 손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왜 저러는 거지? 당장 안겨들지 않고.' 아론이 의문을 품은 찰나. 꼬마 정령이 별안간 폐급엘프의 어깨 너머, 정확히 아론의 시선이 닿아 있는 허공을 향해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설마 나한테 인사한건가?' 아론이 당황하기도 잠시. 꼬마 정령은 이내 꺄르르 웃으며 폐급엘프의 손바닥 위로 가볍게 올라탔다. 파아앗-! 그 순간, 꼬마 정령이 올라탄 폐급엘프의 전신에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녹색 광휘가 폭발했다. 달려오던 장로와 경비병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빛의 폭풍 한가운데서, 폐급엘프의 머리 위로 신성하고 고결한 형체가 솟아났다. 나무로 만들어진 뿔 두 개. 그건 잠시 자라나더니, 투명해지며 천천히 자취를 감추었다. 침묵이 휩싸인 서약식. "저... 저건!" 그 침묵을 깬 것은 바닥에 주저앉은 늙은 장로의 비명이었다. "세, 세계수……." 그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세계수의 정령이다..." 식장이 경악으로 물들고, 수백 명의 엘프들이 입을 떡 벌린 채 굳고. 그 중심에서 폐급엘프만이 멍하니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압도적인 장면은 [세계수벌목꾼]의 쉴 새 없는 타이핑을 통해 토씨 하나 빠짐없이 직송되고 있었다. -세계수벌목꾼: 방금 폐급엘프 손바닥에서 녹색 빛 터지더니 머리에 나무 뿔 솟아났습니다. ㄴ 뭐야. 나무뿔이면 하이엘프아님? ㄴ 와 미쳤다;;;;; ㄴ 시발 진짜였네 ㄴ 아니 이게 말이 됨???? 주작 아니야? 혼자 판타지 소설 쓰냐고!! ㄴ 500년 만에 하이엘프 탄생하는 걸 내가 똥 싸면서 중계글로 달렸다고? ㄴ 너가 뭘싸는지는 안궁금했어요 ㅅㅂ ㄴ 방구석 갤붕이 인생 업적 달성 ㅋㅋㅋㅋ ㄴ 이건 인생 업적이 마따... 내 평생 볼 텍스트 운 다 썼다. ㄴ 사실 막 계약한 거라 아직 완전한 하이엘프는 아니긴 한데 저거 존나 대단한 거긴 함 ㅇㅇ 제국 역사책에 실릴 일임. ㄴ 님들 근데 저 하꼬 신관 대체 정체가 뭐임? 미친 거 아님? 후기 갤러리는 활화산처럼 폭주했지만. 폐급엘프에게 시선이 쏠린 아론은 그 광기 어린 트래픽을 알 리 없었다. [폐급엘프] : 신관님! 저 정말 해냈어요!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않을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십 번의 감사가 도배되었지만, 아론의 표정은 차분했다. 그는 무미건조한 손길로 판석을 두드려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무명의 신관] : 이제 내가 더 해줄 건 없어. [무명의 신관] : 그럼. 차갑고 깔끔한 마무리. 아론은 댓글을 등록하자마자 습관처럼 단말기 전원을 차단하고 시야를 닫아버렸다. 이 능력을 쓰고 난뒤의 후유증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응?" 시간이 지나도, 어제 같은 깨질 듯한 통증이나 코피는 터지지 않았다. 체력이 조금 깎여나간 느낌은 있었지만 충분히 버틸 만했다. "뭐야. 적응이 된 건가?" 아론은 제 코밑을 슥 문질러 보았다.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이 정도 소모값이라면, 하루에 두세 번도 무리 없이 점을 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문의가 그렇게 쏟아져 들어올 리도 없지만." 아론은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라도 정체불명의 하꼬 유저가 떠드는 예언을 쉽게 믿진 않았을 테니까. 칠흑의 검사나 폐급엘프처럼 벼랑 끝에 몰린 특수 케이스가 아니면 누가 이런 폐사당에 찾아오겠는가. "그래도 혹시 모르지. 누가 글이라도 하나 더 남기려나……." 느긋하게 중얼거리며 마른 빵조각을 집어 들던 아론의 동작이 멈췄다. "아." 깜빡했다. 어젯밤 분탕충들의 도배를 막기 위해 관리자 권한으로 '기타 유저 글 등록 제한'을 걸어놓았던 거. "이러면 손님들도 글을 못 쓰잖아." 아론은 황급히 빵을 입에 물고 단말기 판석을 켰다. 관리자 설정에 들어가 [기타 유저 등록 제한 해제] 버튼을 꾹 누르는 순간. — 띠링! 띠리리리리링! "어?!" 단말기가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한 알림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수백 개의 시스템 메시지가 팝업되며 화면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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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기가 그 전설의 하이엘프 뽑아낸 신당인가요? 성지순례 왔습니다.] [제목: 와 진짜 오늘 도파민 미쳤었다 ㅇㅈ? ㅋㅋㅋㅋ] [제목: 주딱 형님 제발요 저도 점 한 번만 봐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제목: 나 이제 여기 눌러 살래] [제목: 님 빨리 다음 예언 좀 가져와 봐요 현기증 나니까;;;] 제한이 풀리기가 무섭게 게시판은 초 단위로 갱신되며 글이 폭포수처럼 도배되기 시작했다. "왜, 왜 이래? 이게 다 뭐야!" 아론이 입에 물고 있던 빵을 떨어뜨리며 넋을 잃고 당황하기도 잠시. 그 모든 난장을 뚫고, 시스템 알림창이 눈앞에 번쩍이며 떠올랐다. [달성: 활성 방문자 수가 1,000명을 돌파했습니다!] [보상: + 1,000 공덕 포인트 지급!] "뭐, 1000 공덕? 미친 거 아니야?!" 하루아침에 쏟아진 거금에 턱이 빠질 듯 벌어졌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이어 웅장한 축포 소리와 함께 믿을 수 없는 메시지들이 연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위업 달성: 신당의 격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F급 -> D급)] [알림: '신당 관리 시스템'을 레벨업 할 수 있습니다.] [알림: '공덕 상점'을 레벨업 할 수 있습니다.] "……." 금빛으로 찬란하게 번쩍이는 시스템 창들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아론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뭔데 이거." 아무래도 떡상한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