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주세요 (수정)
엄마 찾아주세요 (수정)
— 띠링! 띠링! 띠리링! 단말기 판석이 쉴새 없이 진동했다. 화면을 가득 메우며 쏟아진 봉헌 알림. 순식간에 봉헌 총합이 1,100 공덕을 돌파했다. "와……." 마지막에 1,000 공덕을 냅다 들이부은 [엘릭서로가글함]을 빼더라도, 대충 서른 명 이상이 3공덕, 다시말해 3만 크로네씩을 쥐고 줄을 선 셈. "미쳤네." 확실히 먹힌다. 하지만 선착순으로 받겠다고 공지한 이상, 실제로 점을 볼 인원은 가장 먼저 등록한 두 명뿐이었다. [1등 : 999년째솔로] [2등 : 엄마찾아주세요] "나머지는 환불해 줘야지." 규칙은 생명이다. 주딱이 약속을 어기면 갤러리는 한순간에 망한다. 상담 신청 탭을 잠근 뒤, 세 번째 글부터 하나하나 삭제하기 시작했다. 글을 지우면 봉헌이 자동 환불되는 구조였다. 마지막 [엘릭서로가글함]이 1000 공덕을 봉헌한 신청글. 잠시 멈칫한 손가락을 놀려 그 글까지 지우고 나자. 손가락이 꽤나 뻐근했다. "...이것도 일이네." 계속 이 기세로 잘되면 게시판 관리를 맡길 파딱이라도 하나 고용해야 할 판이다. 환불 처리를 마친 뒤 곧장 공지를 올렸다. [공지] 당첨자 빼고 전부 환불 완 [작성자: 무명의 신관] [내용] 선착순 1등, 2등 빼곤 전액 환불해 드렸습니다. 상담 탭에 상담 글 새로 팔 테니 순서대로 들어오세요. 5분 뒤 시작합니다. ㄴ 아 선착순 까비 ㄴ 내 손가락 뭐함??? 이 새끼 밥쳐먹고 제대로 하는게 없네 ㄴㄴ 손가락 : 왜 내 탓? — 와 엘릭서로가글함 뭐임 1000공덕 봉헌했는데? ㄴ ㅅㅂ 개부자 ㄷㄷㄷ ㄴ 근데 얘도 삭제 당한듯 ㅋㅋㅋㅋ ㄴ 주딱 미쳤네? 100만 크로네를 깐다고? ㄴ 아님 1000만 크로네 깐 건데? ㄴ 뭐? 유저들의 관심은 곧바로 거금을 환불당한 큰손과, 그 거금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걷어찬 주딱에게 쏠렸다. [제목] 1,000만 크로네 봉헌한 [엘릭서로가글함] vs 1,000만 크로네 깐 주딱 [내용] 자 이제, 누가 진짜 광기지? ㄴ 이걸 왜 깜??? 1,000만 크로네면 성도 외곽에 집이 한 채인데 ㄴ 진짜 1000만 크로네 깐 거임? ㄴ ㅅㅂ 미친놈이네 주딱 ㄴ 나였음 그냥 ㅎㅎ ㅈㅅ; 하고 1,000만 크로네 꿀꺽했다 ㅅㅂ ㄴ [강철모루] : 세상에나, 황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 드워프 장로님도 1,000만 크로네 앞에서는 수염을 조아리는데 저걸 칼환불하다니! 주딱의 자존심 경도는 미스릴 이상이오! ㄴ [초록엘프] : 원래 진정한 선지자는 속세의 황금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거든요! 수염 단지들은 저 고결함을 배워야 해요! ㄴ [칠흑의검사] : 역시 무명의 신관님이십니다. 돈과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그 올곧은 신념…… 평생 모시겠습니다. (호위기사 지원 2시간 째 대기 중) 뒤이어 주딱을 찬양하는 개념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제목] 주딱은 신이야 [내용] 병1신 . . . 넝ㅎ담ㅎ ㄴ ㄹㅇ 낭만 그 자체 ㄴ 주딱 >>>> 박새루이 ㄴ 이건 진짜 병1신 순위잖아요.. ㄴ 근데 우리가 잊고 있었는데 신관은 돈 욕심 없는 게 맞긴 함 ㄴ 호감 무빙인 것이담! ㄴ 정말 오랜만에 보는 참된 신당에 저희 아이가 참 좋아해요 ㄴ 이거 후기갤에 퍼감 소문이 타 갤러리로 퍼져나갔는지, 단말기 구석에 표시된 실시간 접속자 수가 순식간에 500명에서 700명을 돌파했다. 1000만크로네로 200명을 산 셈인가? 앞으로 유지될 이미지며, 다른 돈이나 권력에게 휘둘리지 않을 걸 생각하면, 그 가치는 더더욱 올라가겠지.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화면을 둘로 나눠 오른쪽엔 [자유] 탭을 띄워두고. 상담을 진행할 [상담] 탭을 새로 팠다. 그리고 새 상담 글을 등록. [상담] 999년째솔로 님 들어오세요. 몇 초 지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999년째솔로] : 왔소. — 상담 선착순 1빠 999년째솔로 입갤 ㅋㅋㅋ — 닉 보소 ㅋㅋㅋ 얼마나 간절할지 감도 안 잡힌다 — 999년이면 뭐임? 영생족임? ㄴ 저거 100퍼 드워프임 드워프들 지들 달력 써서 나이 10배 뻥튀기해서 말함 ㄴ 그럼 99년 모솔이네 ㄴ ㅅㅂ 이것도 묵직하누 ㅋㅋㅋㅋ — 드워프 특 : 모솔임, 가까이 가면 이상한 냄새 남 ㄴ 귀바퀴 특 : 바퀴벌레랑 다를 것 없음 ㄴ 응 다음 키 150짜리 꼬마~ ㄴ 내 ,,이걸,, 반드시,, ㄴ ㅋㅋㅋ 드워프 긁힌 거 보소 ㄴ 역시 드워프 잡는 건 엘프 의뢰인을 향해 감각을 집중하자 의뢰인의 모습이 뇌리에 맺혔다. 안경을 쓴 다부진 체구의 드워프. 책상 위엔 설계도면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영락없는 공대생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구석에, 지나치게 앙증맞은 분홍빛 편지봉투와 잔뜩 구겨진 편지지 뭉치, 그리고 밤새 세공한 듯한 머리핀이 놓여 있었다. 모태솔로의 급발진 냄새가 물씬 풍겼다. [999년째솔로] : 내가 상담을 신청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최근 공허의 균열 발생에 따른 국제 정세가…… [무명의 신관] : 국제 정세는 무슨. 연애 상담이지? [999년째솔로] : ……무, 무슨 말씀이시오! 이 몸은 오직 마공학 도면만 아는 기술자요! [무명의 신관] : 그래? 그럼 지금 네 책상 설계도면 구석에 숨겨둔 그 앙증맞은 분홍빛 편지봉투랑, 고백 멘트 쓰다 망쳐서 구겨 놓은 편지지 열두 장, 그리고 밤새 깎아 만든 은빛 머리핀은 뭔데. [999년째솔로] : ! [999년째솔로] : 그렇소. 사실 999년 넘게 연애 한 적 없는 게 걱정이어서 왔소. — 와 미친 방 안에 편지지 몇 장 구겨져 있는지까지 다 보임??? — 국제 정세 운운하다가 분홍 편지봉투 박제당한 거 개웃기네 ㅋㅋㅋㅋ — 1000년 차 모쏠 ㅅㅂ ㅋㅋㅋ — 어이 살살 때려라 주딱 — 잃을 게 없는 자들이 무서운 법 [999년째솔로] : 그, 그래서 상담을 하려고. 1000살이 되기 전에 연애는 꼭 한번 해보고 싶소. 의식을 조금 더 좁혔다. 드워프가 보고 있는 고급스러운 마도 단말기 화면. 갤러리 창 바로 옆에 실시간 통신 메신저 창 하나가 조그맣게 띄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상대방의 프로필은 누가 봐도 섬세하고 고운 필체의 이성이었다. 누가 봐도 호감 있는 이성이었다. [무명의 신관] : 지금 연락하는 사람 있지? [999년째솔로] : 그렇소만. [무명의 신관] : 방금 뭐 보내려고 했어. [999년째솔로] : 그…… 그건 비밀이오만. 특유의 고집을 부리며 방어막을 치는 드워프. 그걸 지켜보던 자유 탭의 유저들이 신나서 팝콘을 씹기 시작했다. — 오 뭐야 썸녀 있었던 거임? — 모솔 특) 무족권 급발진함 ㄴ 벌써 고백 대사 치고 있었을지도 ㅋㅋㅋ — 근데 뭘 보내고 있었는지 말해줘야 상담을 하는 거아님? ㄴ 드워프 특) 고집 쎔 ㄴ 드워프 특) 자존심 강함 ㄴ 드워프 특) 절대 말 안 할거임 ㄴ 드워프 특) 결국 영원히 모쏠 ㄴ ㅋㅋㅋㅋ ㅅㅂ 숨은 쉬면서 패라 ㄴ 근데 이게 마따 ㄴ ㄹㅇ 드워프 고집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지금 주딱도 식은땀 흘릴 듯 뭘 알아야 조언을 해주지 ㄴ ㄹㅇ ㅋㅋㅋㅋ 신점을 통해 들여다보는 시야에는, 드워프의 메신저 창에 오간 대화 내용이 그대로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상대] : 혹시 무슨 일 때문에 연락하셨어요? [999] : 그…… 물어볼 게 있어서 [상대] : ? [상대] :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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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그 아래. 드워프가 벌벌 떨리는 굵은 손가락으로 입력창에 열심히 쳐 넣고 있던. 차마 눈 뜨고는 봐줄 수 없는 끔찍한 문장. 그걸 전송했을 때 파멸로 치닫게 될 잿빛 미래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무명의 신관] : "언제 시간 되는지, 토 일 언제가 편한지, 밥은 뭐 좋아하는지." [무명의 신관] : 이거 뭐야? 이거 보내려고 한 거 아냐? [999년째솔로] : 대, 대체 어떻게?! 자유 탭이 폭발했다. ㄴ 나 피폭당한 거 같아… ㄴ 글카스 ㅅㅂ ㄴ 으아아아아아악!! ㄴ ㄹㅇ 이게 전술핵이지 ㄴ 언토밥 ㅅㅂ ㅋㅋㅋ [999년째솔로] : 하, 하지만 효율적으로 묻는 게 맞지 않소?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은데…… 드워프 고집이 발동하자, 길게 말할 것 없이 자유 탭의 경악 어린 반응들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어 주었다. 실시간으로 얼어붙는 999 솔로의 낯빛. [999년째솔로] : ……. [999년째솔로] : 시정하겠소. 그가 입력을 지우자 미래가 산뜻하게 바뀌었다.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은 덕분에 두 사람은 천천히,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며 거리를 좁혀갔다. 그리고 얼마 후의 미래. 어느 화창한 오후, 나란히 길을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상대방이 꽃집에 유난히 눈길을 주는 모습이 스쳤다. 하지만 눈치 없는 모태솔로 드워프는, 그저 '이성과 단둘이 산책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에 머리가 터질 듯 긴장한 채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무명의 신관] : 그리고. [무명의 신관] : 나중에 둘이 산책하게 되면 옆에 꽃집 보일 거야. [무명의 신관] : 그때 꽃 사줘. [무명의 신관] : 넌 말하면 마이너스니까 말은 하지 말고. [무명의 신관] : 그냥 툭 건네. 그거면 충분해. [999년째솔로] : 저, 정말입니까? [무명의 신관] : 그래. [999년째솔로] : 한번 그리 해보겠소! 만약 성공한다면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드워프의 명예를 걸고! [무명의 신관] : 그래. 나중에 성공하면 성검하나 만들어줘. [999년째솔로] : 그건 좀... — 주딱 이 새1끼 탐욕 뭐냐 ㅋㅋㅋ — 연애 상담 한 번에 성검 ㅋㅋㅋ — 천만크로네 깐 이유가 이거였네 ㅋㅋㅋㅋ — 드워프 바로 뇌 장착하는 거봐 [무명의 신관] : 넝ㅋ담ㅋ 힘내. 상담 글을 닫고 곧장 다음 글을 팠다. ◆ 글을 등록하기 무섭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간절함이 뚝뚝 묻어나는 장문의 댓글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엄마찾아주세요] : 안녕하세요. 저, 제발 저희 엄마 좀 찾아주세요. 글을 읽자마자 시야가 훅 일렁였다. 손가락을 덜덜 떨고 있는 열세 살 남짓한 어린 소년. 연한 하늘색 머리칼에 눈물 자국이 엉망으로 번진 아이였다. [엄마찾아주세요] : 어, 엄마가 며칠 전에 저 감기 걸렸다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복숭아 사 오신다고 나갔는데…… [엄마찾아주세요] : 벌써 사흘째 집에 안 들어오셔요. 제가 온 동네를 다 뒤졌는데 어디 계신지 전혀 모르겠고…… [엄마찾아주세요] : 경비대에 찾아가 봤는데, 요새 도시 외곽에 균열이 터져서 바쁘다고 어린애 장난 받아줄 시간 없다고 쫓아냈어요……. [엄마찾아주세요] : 다른 큰 신당에도 가봤는데, 기도를 올리려면 막 몇십만 크로네를 내야 한대서…… [엄마찾아주세요] : 저 정말 가진 돈이 3만 크로네밖에 없어서 여기밖에 못 왔어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신관님, 제발요. 자유 탭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 헐 뭐야 진짜 실종 사건임? — 사흘째 안 들어오셨으면 큰일 난 거 아니냐 ㅠㅠ — 경비대 새끼들 애가 울면서 찾아갔는데 그걸 내쫓네 ㅅㅂ — [칠흑의검사] : 도시 외곽에 균열이 터진 시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혹시 어느 지역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근처라면 제가 즉시 가보겠습니다. 간절함은 충분히 전달됐다. [무명의 신관] : 일단 진정해. 아이를 진정시키고는. 아이의 주변을 살폈다. 현관 구석에는 사흘 내내 어머니를 찾아 헤매느라 밑창이 다 닳아 해진 작은 신발이 놓여 있었고. 방바닥에는 삐뚤빼뚤하게 직접 그린 실종 전단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한가운데 그려진 어머니의 초상화. 그 얼굴에 시선이 닿은 순간. "……!" 시야가 한번 더 거칠게 뒤틀렸다. 축축하고 어두운 폐창고. 바닥에는 짓이겨진 새하얀 덩어리들과 흥건한 피 웅덩이.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거대한 발이 웅덩이를 밟고 있었다. 그 위로는. "……!" 어둠 속에서 시뻘겋게 번뜩이는 세 쌍의 안광. 철문을 거칠게 긁어대며, 썩은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이형의 괴물. 도시 외곽의 균열을 넘어 숨어들어온 마수였다. 그리고. 얇은 철문 바로 반대편. — 덜덜덜덜 낡은 철문 뒤에 등을 기댄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전단지 속 초상화를 쏙 빼닮은 모습.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문이 열리지 않도록 기댄 채 귀를 두 손으로 막고 있었다. 마수의 거친 숨소리와. — 끼기기기기기긱! 발톱으로 철문을 긁어대는 소리가 문 너머로 소름끼치게 들려온다. 문이 뚫리면 그대로 끝장이다. 망설일 틈은 없어보인다. [무명의 신관] : 무기 챙겨 [무명의 신관] : 지금부터 엄마 구하러 가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