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용사
어린 용사
아론은 단말기 너머로 아이의 어머니가 갇힌 폐창고를 살폈다.바깥에서 썩은 침을 흘리며 문을 긁어대는 이형의 마수.사방이 막힌 채 녹슨 철문 하나에 위태롭게 매달린 창고.시간이 없었다. 아이가 지금 경비대에 달려간들, 흔한 어린애의 헛소리로 생각 될 것이 뻔하다.차원의 균열이 수시로 터져 나오는 세계.혼란이 일상이 된 도시에서 하층민 거주구의 실종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비극에 불과했다.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아론의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감정에 휘둘려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보이는 잔인한 미래를 바탕으로 냉정하게 타이핑을 이어갔다.[무명의 신관] :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하는 일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일이야.[무명의 신관] : 네 어머니는 지금 마수에게 쫓기고 있어.[엄마찾아주세요] : 마, 마수요?단어 하나가 던져지자마자 자유 탭이 요동쳤다.— 마수면 ㅅㅂ ㅈ된 거 아님? ㄷㄷㄷ— 와 어디냐 진짜 균열 제대로 터졌나 보네— 최근에 균열 터진 도시면 베르몬트 공작령 아님?— 베르몬트면 제국 오대마법가문 중 하나 아니냐? 벌써 정리했을 텐데?— 공작령이 워낙 넓어서 외곽 빈민가는 빠진 곳도 수두룩할걸?— 베르몬트 놈들 더러운 평민 잡종 핏줄은 나 몰라라 하긴 함 ㅋㅋㅋ게시판이 타오르는 와중에도 아론은 화면에 집중했다.[무명의 신관] : 지금은 널 도와줄 사람이 보이지 않아.망막에 비친 미래에서, 아이의 어머니의 운명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무명의 신관] : 네가 어머니를 구해야 해. 할 수 있겠어?망설임 없는 질문.곧장 댓글이 달렸다. [엄마찾아주세요] : 네! 저 열세 살이에요! 어른이에요! [엄마찾아주세요] : 엄마, 구할 수 있어요!— 열세 살짜리 애기였음?— 무슨 열세 살이 벌써 저렇게 철이 듦? ㅠㅠ— 나 열세 살 때는 침 흘리면서 또보트 보는 게 다였는데ㄴ 열셋에 또보트는 좀…….ㄴ 님 변신하는 경찰마차무시함?ㄴ 난 핑키퐁ㄴ 핑키퐁은 ㅇㅈ이지ㄴ 꼴잘알ㄴ ?????— 열셋인데 어미를 구하려 하다니 이 개체는 순도가 아주 높아화면 한켠에 올라가는 반응을 뒤로하고.아론은 아이의 방 구석을 살폈다.벽에 기대어 세워진 낡은 검 하나.성인용보다 조금 작았지만, 자루에는 손때가 반질반질 묻어 있었고 날은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제대로 훈련받은 흔적이었다.[무명의 신관] : 좋아. 그럼 그 검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엄마찾아주세요] : 제, 제가 검 연습한 거 어떻게 아셨어요?[무명의 신관] : 다 보여.아론의 세 글자에 자유 탭이 뒤집어졌다.— ????— 어어…… 열셋 꼬마가 검을 왜 들지?— 설마 지금 애보고 직접 가서 마수 잡으라는 거임?— 근데 저 상황이면 방법이 없긴 해. 가만히 있으면 엄마 죽잖아— 생각해보니 용사 벨바인도 열네 살 때 처음으로 마수 잡긴 했음 ㅇㅇㄴ 얘는 무슨 인류 역사상 GOAT를 끌고 오냐ㄴ 너 벨바인님이 ㅈ으로 보이냐? 벨바인님은 영장류 사상 GOAT다ㄴ 드워프인데 ㅇㅈㄴ 엘프도 ㅇㅈㄴ 수인인데 좀 논란의 여지가 있음ㄴ 퍼리는 나가서 집이나 지켜라게시판의 소란과 달리, 화면을 마주한 둘 사이는 차분했다.[무명의 신관] : 할 수 있겠지?[엄마찾아주세요] : 네. 아버지라면 이렇게 했을 테니까요.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열세 살 소년, 테오 벨바인은 망설임 없이 방을 뛰쳐나왔다.품에는 어머니가 비상용으로 쥐여준 휴대용 마도 단말기가 있었다.— [엄마찾아주세요] : 저 이제 음성 입력 모드로 전활할게요.시야 한편에 떠오르는 푸른빛 상담 창.테오는 [무명의 신관]이 지시하는 방향을 따라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렸다.— [무명의 신관] : 주변에 뭐가 있는 지 말하면서 가.신관님은 분명 내 근처에 있는 게 뭔지 아는 것같은데.왜 이렇게 상세하게 골목길 위치를 물어보았는지는 몰랐다.하지만 무명의 신관님께서 하는 말에는 뜻이 있겠지 분명.신관님이 안내한 장소는 도시 외곽의 버려진 거대한 창고였다.끼이익—.녹슨 문을 밀고 들어서자 쇠 냄새와 피비린내가 훅 끼쳤다.천장 틈새로 비치는 창백한 달빛 아래, 바닥에 찍힌 붉은 발자국들이 눈에 들어왔다.— 덜덜덜테오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공포가 온몸을 옥죄었다. 테오는 떨리는 손끝으로 단말기에 글을 남겼다.— [엄마찾아주세요] : 죄, 죄송한데…… 발이 떨어지지 않아요.— [무명의 신관] : 앞을 봐. 복도에 찍힌 발자국.어두운 복도 바닥, 피로 붉게 찍힌 작은 신발 자국.— [엄마찾아주세요] : 엄마의 발자국이에요.테오는 주먹을 쥐고 발을 뗐다.무서운 건 사실이었지만 엄마를 구해야 했다.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움직여야 한다.신관의 말을 되뇌며 계단을 올랐다.올라갈수록 핏자국은 짙어졌고, 짐승의 거친 숨소리가 공기를 울렸다.계단을 돈 순간, 바닥에 짓이겨진 채 붉은 피에 젖은 새하얀 덩어리가 보였다.'이, 이거 사람의 살……? 그럼 엄마가…….'숨이 멎을 듯한 공포에 시야가 하얘졌다.그때 단말기 글자가 번쩍였다.[무명의 신관] : 패닉 하지 마. 복숭아야.테오는 목구멍까지 치밀던 헛구역질을 삼키고 살을 툭 건드렸다.드러나는 복숭아 껍질.소년은 입술을 깨물며 발걸음을 옮겼다.모퉁이를 돌자 마침내 형체가 드러났다.시커먼 가죽과 세 쌍의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는 마수.테오는 숨을 삼키며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손바닥의 땀 때문에 검 자루가 자꾸만 미끄러졌다.'죽을 거야. 사람이 이길 수 있는 괴물이 아니야.'다리가 후들거렸다.바로 그때. — 흐으으윽…. 흑. 제발, 제발 누가 구해주세요. 아이를……. 아이에게 인사도 못하고 나왔는데.철문 너머에서 희미한 흐느낌이 들려왔다.어머니의 울음소리였다.테오는 심호흡을 했다.이제 갤러리 창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나만이 엄마를 구할 수 있어.'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기둥 뒤에서 걸어 나왔다.한 걸음, 다시 한 걸음.스륵, 하는 발소리에 마수가 고개를 돌렸다.세 쌍의 핏빛 눈동자가 테오를 응시했다.몸이 굳어버렸다.배운 대로 검을 겨누었지만, 압도적인 살기 앞에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키에에에엑—!"마수가 포효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테오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친 순간.파아앗—!누군가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게 느껴졌다.한 줄기 서늘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테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달빛을 머금은 새까만 흑발이 허공에서 우아하게 찰랑거렸다.그것도 잠시.서걱—!쿵.마수의 거대한 상체가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피가 솟구쳤다."……어?"테오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피비린내 나는 어둠 속에서, 은빛으로 번뜩이는 장검을 스르릉 갈무리하며 돌아보는 한 사람. 새까만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어 올린, 칠흑의 갑주를 두른 눈부시게 아름다운 누나였다. "괜찮니?"다정한 목소리. 테오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가, 감사해요 누나! 누나가 아니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요!"울먹이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검사가 옅게 미소 지었다."아니."그녀가 나직하게 덧붙였다."내가 아니었어도 넌 죽지 않았어."◆[칠흑의검사]. 프레야 블랙우드는 쓰러진 마수와 소년을 번갈아 보았다.'내가 구했다…… 고 할 수 있을까?' 때마침 근처를 지나던 중.습관처럼 접속한 이름 없는 사당 갤러리를 눈팅하다가 사태를 파악하고 이곳으로 전력 질주했던 프레야였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내가 아니었어도 넌 죽지 않았어."바닥에 쓰러진 마수는 치명상을 입고 겨우 숨만 붙어 있던 상태였다.외형만 흉측할 뿐, 근육은 찢겨 있었고 공격력도 바닥난 개체.그걸 꿰뚫어 보았기에. 그 신비로운 [무명의 신관]은 아이에게 망설임 없이 검을 쥐여주며 이곳으로 보냈던 것이리라. 정면에서 급소에 칼끝만 밀어 넣어도 소년의 힘으로 충분히 숨통을 끊을 수 있었을 테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다치긴 했겠지만.'아이의 자세와 눈빛을 보아하니.충분히 해나갈 순 있어 보였다.하지만 프레야는 그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았다.아이가 공포에 질려 굳었던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었다.열세 살에 이 끔찍한 괴물 앞에 검을 쥐고 섰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였다.무엇보다 이 마수는, 멘탈 드레인 울프.인간을 공포에 빠트려 공략하는 마수였으니까.프레야는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이런 마수를 상대로 버티고 대단한데? 어머니를 구한 건 바로 너야.""저, 전 겁먹고 아무것도 못 했는데요…….""아니란다."프레야는 시야 한구석의 갤러리 창을 흘끗 보았다.— [개념글] [엄마찾아주세요]가 말한 걸로 특정한 위치 -> 공작령 외각 폐창고임ㄴ 베르몬트 치안대에 신고 완료ㄴ 나도 신고함ㄴ 주딱도 아까 좌표 찍고 신고 넣은 듯?ㄴ 지금 베르몬트 갤러리 신고 탭 불타는 중 ㅋㅋㅋㄴ 아까 [칠흑의검사]도 간다고 글 남김그리고 잠시 뒤.창고로 달려오는 수 명의 경비대 병력들.그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자신까지.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다.이들을 움직인건 어머니를 구하겠다며 홀로 검을 들고 나선 소년의 용기였다.물론 [무명의신관]님의 활약도 빼놓을 순 없겠지만. 애당초 소년에게 위치를 말하게 한 것도 이런 의도가 있었겠지.어쨌든.'어린 꼬마가 대단하긴 하네.'이 꼬마는 분명 장했다.같은 검사이기에 더욱 정이 갔다.프레야의 시선이 아이의 머리칼에 멎었다.'연한 하늘색 머리…….'어릴 적 동화에서 읽었던 전설적인 영웅, 용사 벨바인의 상징과 같았다.세상을 구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용사.경비대가 마수를 치우는 사이, 프레야가 무릎을 굽혀 눈을 맞췄다."누나 이름은 프레야란다. 프레야 블랙우드. 네 이름은 뭐니?"아이가 허리를 펴고 씩씩하게 답했다."프레야 누나! 이름과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 저는 테오예요! 테오......"소년이 주변을 살피더니 프레야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성은 엄마가 절대 비밀로 하랬는데, 누나는 은인이니까 알려드리는 거예요!"가슴을 펴며 자랑스럽게 이름을 입에 담았다."테오 벨바인!""……벨바인?"프레야가 굳어버린 사이, 경비대장이 안쪽의 생존자를 확인했다고 외쳤다.테오는 프레야에게 꾸벅 인사하고 철문으로 달려갔다."엄마!"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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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모자의 애틋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어, 엄마! 괜찮아?!""테오?! 너 여길 어떻게 왔어!""엄마는 내가 구해야지!""밖에 마수가 있었잖니! 위험하게!""괜찮아 엄마! 저기 프레야 누나랑, [무명의 신관] 님이 도와주셨어! 그리고 무엇보다……."소년의 당찬 목소리에 프레야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피 묻은 어머니의 품에 안긴 하늘빛 머리의 소년이,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당당하게 외치고 있었다."아빠라면, 무조건 이렇게 했을 테니까!"책 속에서 대륙을 구했던 용사와.똑 닮은 포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