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 김밥
삼각 김밥
칠흑의 검사가 마수를 베어 넘기고, 아이와 어머니의 안전이 확인된 순간.한 켠에 띄워둔 [자유 탭]은 열광으로 뒤덮였다.— 와 이번에도 사람 하나 구했네— 아니 둘이지 엄마 죽었으면 애도 흑화했음[제목] ㄴㄴ 둘이 아니라 몇백 명일지도 모른다[내용] 열셋에 벌써 칼 다루는 앤데엄마 구하려다 거절당하고 엄마까지 죽었다?그럼 무조건 흑화해서 마검사 각임나였으면 경비대부터 썰었음 ㅇㅇㄴ 오마이깟… 개쳐무서운거에요…….ㄴ 근데 이건 글 작성자가 사이코패스인 거 아님?ㄴ 보통 피의 복수까진 생각 안 하긴 함 ㅋㅋㅋㄴ 혹시 모르지 ㅋㅋㅋ— 숨 졸이면서 봤는데 진짜 다행이다— 솔직히 제국 모든 신당 중에 재미 GOAT는 여기가 맞음훈훈한 찬사와 카타르시스가 게시판을 달궜다.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창고 안의 아이, 테오가 칠흑의 검사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건 엄마가 비밀로 하랬는데…… 누나한테만 특별히 알려드리는 거예요!그 한마디에 등골이 서늘해졌다.단말기 관리자 창을 다급히 두드렸다.[상담 게시글을 '비공개'로 전환합니다.]찰나의 순간, 게시글의 열람 권한을 틀어막았다.테오는 제아무리 의젓해도 열세 살 꼬맹이다.자신의 음성이 단말기를 통해 수백 명에게 실시간 텍스트로 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을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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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비공개 창 너머로 아이가 털어놓은 비밀이 붉은 활자로 찍혀 올라왔다.— 테오 벨바인이라고 해요! 벨바인.대륙을 구원했던 전설적인 용사의 성씨였다."휴우……."식은땀을 닦아냈다.저게 그대로 게시판에 박혔다면 제국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 아이와 어머니는 온갖 세력의 추적을 받으며 목숨이 위험해졌을지도 모른다. '실시간 신점은 사생활 노출 위험 있네.'앞으로는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지도.그런 생각을 하며 살피는 테오의 시야.모자가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는 모습이 보였다. 일은 깔끔하게 해결되었다.[엄마찾아주세요] : 정말 감사해요 신관님. 이 은혜는 절대로, 평생 잊지 않을게요.[무명의 신관] : 어머니 잘 챙겨드려라. 고생 많았다.짧게 답글을 남겨주며 상담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그리고 다시 [자유 탭]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예상대로, 게시판은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뭐임 왜 갑자기 비공개로 바뀜?— 정체뭔데정체뭔데정체뭔데— 나 현기증 나서 쓰러질 거 같애— 애는 구함?ㄴ 칠흑의 검사 갔으니 무조건 구했지ㄴ 마수 썰어버렸을 듯?— [제목] 난 주딱이 잘했다고 생각함[내용] 상담자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지ㄴ 이게 맞긴 해ㄴ 근데 난 프라이버시보다 내 도파민이 중요함ㄴ 이게 더 맞긴 해 ㅋㅋㅋㄴ ㄹㅇ 일단 보고 모른 척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에요ㄴ 알없신붕이들은 비밀 잘 지킬 수 있는 것이지요 (캡처를 하며)도파민에 굶주린 유저들의 원성이 자자했다.뭐,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한창 절정으로 치닫던 상담 글이 갑자기 먹통이 되며 비공개로 잠겨버린셈이니까.서둘러 공지사항을 등록했다.[공지] 상담자 개인정보 보호 안내[작성자: 무명의 신관]상담자의 프라이버시가 과도하게 노출될 위험이 있을 경우 모든 상담은 즉시 비공개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때맞춰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제목] 현장에 있던 칠흑의검사입니다.[내용] 아이와 어머니는 안전합니다.경비대 쪽에서 뒷수습을 도와주셨습니다.두 분 모두 무명의 신관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달라 하셨습니다.실시간으로 현장에 있던 네임드의 등판. 그 덕분에 주딱의 대처가 옳았다는 여론과, 이번에도 오차 없이 적중한 신관의 예언력에 소름이 돋는다는 반응이 대세를 이루었다. 게다가 한 유저가 언론사의 속보 링크를 물어오며 갤러리는 더욱 들썩였다. [(베르몬트 스트리트) 예언으로 모자 구출한 신당. 이번에도 경비대는 외면?]— 신당 유명세 타기 시작했네 ㅋㅋㅋ— 언론 진출 ㄷㄷㄷ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한번 불붙은 호기심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기사엔 아이 정체 없음?— 안 나오던데— 그럼 이거 어디 가야 알 수 있음?— 칠흑의 검사는 알지 않을까?— @칠흑의검사 님 제발 한 번만 알려주세요 ㅠㅠ이제는 칠흑의 검사에게까지 달라붙어 정체를 캐묻는 놈들이 생겨났다."…에휴."'역시 주딱 마음대로 통제되면 갤러리가 아니지.'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수년간 갤질로 뼈가 굵은 입장에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진리가 하나 있다.불타는 떡밥을 강제로 억압하고 삭제해 봐야 소용없다. 여기서 글을 지우며 틀어막으면, 유저들은 다른 대형 갤러리로 뛰쳐나가 소설을 쓰고 분탕을 치며 판을 더 크게 키울 뿐이다. "떡밥은 다른 떡밥으로 덮어야지."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도파민을 던져주지? 마침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보류해뒀던 관리자 상점 업그레이드.그리고 상점 업그레이드 시 해금되는 것 중 하나는…….[본인이 속했던 차원의 물품 구매가 해금됩니다.]"한번 질러볼까."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같은 시각. 대륙의 호령하는 오대 가문 중 하나. 베르몬트 공작가의 장엄하고 고풍스러운 집무실.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백발이 성성한 노집사가 안으로 들어섰다."아가씨." "무슨 일이죠?"책상 뒤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던 여인이 서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려앉은 빛이 차갑게 부서지는 눈부신 옅은 금발. 날카롭고 어딘가 독처럼 치명적으로 보이는 초록빛 눈동자. 베르몬트 공작가의 장녀이자, 차기 가주 후보 중 한 명인 실비아 베르몬트였다."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올라와 가져왔습니다. 다만…… 가주님께 직접 보고드릴 만한 중대한 사안은 아닌 듯하여, 아가씨께 먼저 고합니다."노집사가 정중하게 내민 신문을 받아든 실비아는, 턱짓으로 그를 물린 뒤 활자를 훑어내리기 시작했다.[(베르몬트 스트리트) 신비한 사당의 예언으로 조난된 모자 극적 구출…… 이번에도 공작가 경비대는 늑장 대응?]신문을 내려다보는 실비아의 미간이 차갑게 일그러졌다."하."경멸 어린 실소가 그녀의 매끄러운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빈민가 평민들의 징징거림을 빌미 삼아 공작가의 치안 정책을 물고 늘어지는 저열한 찌라시였다."고작 하급 마수 한 마리조차 스스로 상대하지 못해 쩔쩔매 놓고는, 그 책임을 가문에게 돌리다니."실비아의 초록빛 눈동자가 오만하게 가라앉았다."미천한 잡종들 같으니."가차 없이 구겨진 신문이 휴지통 속으로 처박혔다.동물처럼 섞인 피로 재능이 개화하지 않는 천 것들의 나약함 따위.순혈 마법사인 자신에게는 소음에 불과했다.하지만.차갑게 무시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 속에 적혀 있던 기묘한 한 줄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먼 곳에 위치한 신당의 신관이,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미래를 예견하여…….'예언이라.'예언이라는 경지는 허무맹랑한 기적이 아니다. 점성술의 극에 달하여, 세상의 인과율을 엿볼 수 있는 초월자의 문턱에 닿은 자들만이 간신히 흉내 낼 수 있는 신의 영역 중 하나.호기심이 일었다.'신당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하는 신당이라…….'네트워크라.보나 마나 사기극일 터였다.실비아는 신당 네트워크를 혐오했다.그야 신당 네트워크는, 초월에 이르기 위한 사도라고 생각했으니.초월에 이르는 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온갖 미사여구로 대중의 선망을 사고 기도를 받아 공덕을 모으는 것. 다른 하나는, 오직 자신의 신념과 재능을 갈고닦아 만물의 극의에 도달하는 것.마법사라면 마땅히 마법의 궁극을 깨우쳐 초월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베르몬트 가문은 오직 순수한 혈통의 마법사들로만 이루어진, 대륙 최고의 순혈 마법 명가였다. 가문의 시조가 순수한 마도의 극의에 도달해 초월자가 된 이래, 그들은 대륙의 오대 가문 반열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그렇기에 실비아는 단 한 번도 신당 네트워크 따위에 접속해 본 적이 없었다.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것도 아니요, 그저 헛된 꿈과 기적을 파는 장사꾼들의 집합소. 무지몽매한 평민들의 등을 쳐서 공덕을 긁어모으는 기생충들의 소굴.진짜 실력 있는 신관들은 평민 따위를 상대하지 않는다. 오직 베르몬트 같은 대귀족만을 상대할 뿐.결국 신당 네트워크는 떨거지들의 바닥일 뿐이었다."우리 같은 부류가 들어갈 이유가 없지."하지만 기사에 대한 호기심은 식지 않았다.어리석은 평민들이 어떤 조잡한 연극에 속아 넘어가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실비아는 집무실 단말기를 켰다.[신당 네트워크에 접속하셨습니다.][사용하실 닉네임을 설정해 주십시오.]"닉네임……?"긍지 높은 베르몬트의 이름을 버리고 천박한 가명을 쓰라니. 가명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차갑게 자판을 눌렀다.[순혈마법사]잡종들과 자신을 구분 짓기엔 이보다 적절한 이름은 없었다.◆아니나 다를까.신당 네트워크의 대부분 신당들은.특히 그게 이름 있는 9파의 신당일지라도.전부 사기와 다름없었다.눈을 찌푸린 실비아는.기사에 적혀 있던 주소를 입력해 [이름 없는 옛 사당 갤러리]에 들어선 순간."……뭐지?"멍하니 화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신성하고 엄숙한 사당? 혹은 신도를 현혹하는 사이비 종교의 소굴? 그런 예상 따위는 완벽하게 박살 났다. 눈앞의 화면은 신당 따위가 아녔으니까.— 내게도 그 삼각김밥이란 걸 팔아라 주딱!— 삼김! 삼김! 삼김!— 당장 올려라 현기증 난다!— 나도 좀 먹자 ㅠㅠ제국의 가장 난잡한 빈민가 시장바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혼돈 그 자체였다. "……뭐지, 이 시장바닥은?"예언은 어디 가고, 유저들은 해괴한 음식 이름을 연호하며 날뛰고 있었다.실비아가 어이없어하며 창을 닫으려던 찰나였다.[주딱] 아직 못 팝니다. 기능이 덜 열렸어요.[주딱] 딱 하나만 랜덤 추첨으로 더 뿌릴게요.그리고 곧바로 뜬 시스템 알림.[순혈마법사 님이 삼각김밥x1에 당첨되었습니다!]— 쟤는 뭔데?— 글 0 댓글 0 눈팅 뉴비인데?— ㅁㅊ 개부럽다 진짜— 뉴비인데 당첨되다니 녀석은 순도가 낮아— 오마이깟.. 공주는 또 탈락해서 너무 마음이 아픈것이에오..툭.공간이 미세하게 뒤틀리더니, 실비아의 책상 위로 물건 하나가 떨어졌다."……!"실비아는 손끝에 마나를 모으며 물러섰다.하지만 위험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이게, 삼김?"완벽한 삼각형 형태.검은 해초 같은 것이 겉을 둘렀고, 얇은 투명 비닐로 포장되어 있었다.마력의 파동도, 정령의 숨결도 없는 조잡한 물건.역시 천박한 평민들의 군것질거리였다.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치우려는데, 단말기 창이 깜빡였다.— 뭐 해 왜 후기 안 올려— 먹튀 차단해라 주딱— 촌놈이라 먹는 법 몰라서 못 먹고 있는 거아님?— 빨간 끈부터 당겨라 뉴비야 ㅋㅋㅋ"흥."귀족인 자신이 촌놈이니, 먹튀라는 모욕을 들을 순 없었다."입에 대는 흉내 정도는 내주지."실비아는 유저들의 글대로 가운데 붉은 테이프를 아래로 잡아당겼다.스르륵, 포장지가 양옆으로 매끄럽게 벗겨졌다.순간."……어?"비닐이 벗겨지자마자 풍겨오는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저녁 만찬을 즐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실비아는 홀린 듯 삼각형의 모서리를 베어 물었다.바삭—!경쾌한 식감 뒤로 고슬고슬한 밥알이 씹혔다.그리고 입안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자극적이고 진득한 풍미."……!"눈동자가 하얗게 탈색될 만큼 강렬한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