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빙의야 환생이야 (1)
이거 빙의야 환생이야 (1)
*대부님이 쓰러지셨다.치유마법을 건 직후에는 잠깐 동안 좋아지시다가도, 3일이 지나면 다시 상태가 나빠지기를 반복하였다.‘전형적인 말라리아군.’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내 손에는 지금 말라리아를 치료할 약이 쥐여져 있었다.곧바로 나는 대부님에게 퀴닌을 사용했다.“율리안…그 약은….”“남부 열병 치료제입니다. 효과는 다른 군인들에게 검증 받았으니 안심하세요.”“여태껏…그런 걸 만들고 있었던 건가.”대부님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으셨다.돌아가신 건 아니고, 말할 기운이 없어서 잠든 것이다.곧바로 나는 잠든 대부님에게 퀴닌 치료를 시작했다.약을 드린 뒤, 나는 병실 한구석에서 밤을 새웠다.치유사는 주기적으로 치료 마법을 걸고, 하인들은 교대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나는 그 사이사이 대부님의 호흡 수를 세고, 맥박을 재고, 해열 추이를 기록했다.그렇게 3일이 지났다.전에는 이맘때쯤 다시 열이 치솟곤 했다.하지만 이번엔 올라오지 않았다.그리고 다음 3일도, 다다음 3일째도.말라리아 증상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됐다.'9일째 아침.대부님이 스스로 몸을 일으켜 물을 찾으셨다.집사장이 급히 물잔을 올렸고, 치유사가 달려왔다.복도에서 누군가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나는 그 소란 속에서 조용히 한 발짝 물러났다.대부님은 무사히 회복하고 병상을 털고 일어나셨다.그때, 돌아서는 내 뒤통수를 향해 대부님이 말씀하셨다.“율리안. 고맙구나. 받고 싶은 보상이 있느냐.”“힘드신 줄 알지만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말하거라.”“대부님의 이름을 빌려 이 약을 상단에 납품하고 싶습니다.”“…고작 그것 뿐이냐?”“그걸로도 충분합니다.”덕분에 퀴닌의 유통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역시, 착각물이라 그런가 일이 술술 풀리네.’*퀴닌 덕에 되살아나신 이후.대부님은 약속대로 대부님의 이름으로 상단과 계약을 맺었다.상단은 곧바로 퀴닌을 팔기 시작했고, 몇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남부 전역에 약이 퍼지기 시작했다.남부 전선을 담당한 군부도 퀴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본래 말라리아와 마수를 동시에 상대해야 했던 군부였다.하지만 퀴닌의 등장으로, 이제 마수에만 신경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그 결과, 군부는 퀴닌에 대한 대규모 계약을 맺기로 했다는 소식이 상단으로부터 전해져 왔다.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오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지.’그 결과가 나오는 날이 되었다.이른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정돈을 위해 거울 앞에 섰다.거울 앞에 서자, 세상 다 산 것 같은 얼굴의 음울한 소년이 보였다.까마귀 깃털 같은 푸른 광택이 감도는 이질적인 검은 머리카락. 그 아래로 보이는 차가운 회청색 눈동자. 처진 눈꼬리에 반쯤 감긴 눈.나는 그 거울 속 소년의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며, 원작에서의 캐릭터를 추측해 보았다.‘생긴 것만 보면 원작에선 나는 조용하고 신사적인 캐릭터였을 것 같은데.’아마 점잖고, 품위 있고, 사연 있어 보이는 천재 캐릭터가 아니었을까.아님 말고.어쨌든 나는 율리안이라는 인물의 캐릭터성을 그쪽으로 잡았다.차분하고, 나긋나긋하며, 언제나 말을 조곤조곤하는 그런 교회 오빠 같은 캐릭터로.‘…좋아. 이 정도면 됐다.’4살 때부터 하다보니 이젠 거의 몸에 배다시피 했다.나는 어딘가 음울한, 그러면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은 얼굴을 만들고 거울에서 돌아섰다.그렇게 거울 앞 루틴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던 중이었다.똑, 똑.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도련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집사장의 목소리였다.“네, 일어났어요.” “가주님께서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식사 전에 잠깐 들러주시겠냐고 하셨습니다.”아침부터 집무실이라.무슨 용건인지 감이 왔다.대부님의 도움을 받아 퀴닌을 팔기 시작한지 몇 달째.이제 슬슬 그 결과가 나올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대부님은 나를 진짜 아들처럼 여겨 주신다.물론 사용인이라고는 집사 하나뿐인 별관에 보내 놓고 거의 방치에 가깝게 내버려 두셨지만,그래도 죽은 친구 아들이라고, 사달라는 책들도 사주고 용돈도 부족하지 않게 챙겨주시는 편이다.수도권 자가에 필수 교육 다 받고 용돈 꾸준히 들어오는 도련님?이 정도면 대부님이 날 진짜 아들처럼 여겨주는 거나 틀림없다.아님 말구.각설하고.대부님이 나를 본관의 집무실로 부르셨다.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에 앉은 대부님과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집사장님이 보였다.아직 말라리아 후유증이 남으신 듯 수척해 보이셨다.아니면 저번에 대부님 방문 앞에서 대모님이 역시 외동으로는 불안하다고 중얼거리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거랑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다.“율리안. 네가 만든 약에 대해서 말이다.” “네, 퀴닌 말씀이십니까.”“그래. 네가 군부에는 퀴닌을 싸게 납품해 달라고 한 건 말이다. 그 건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단다.”“네. 무슨 일일까요?”“군부 쪽에서 생각보다 발주량이 많이 들어왔단다.”대부님이 책상 위의 서류를 한 장 집어 들었다.거기에 적힌 숫자가… 하나 둘 셋 넷… 어머나. 몇 자리 수야, 이게.많이 벌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상상 이상이네.이 정도면 이자만 받고도 평생 놀고먹을 수 있지 않을까.‘이렇게 주문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이게 왜 문제인 걸까.혹시 군부에서 특허권이라도 빼앗아가려는 건가?그런 걱정을 하고 있으니 대부님께서 말을 이어가셨다.“이대로 전부 받아들이면 네가 원래 받아야 할 몫에 적지 않은 손해가 갈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니?”아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배당 이야기셨구나.“꼭 네 몫을 줄여야 하겠니?”“….”실은 이 약을 선보일 때, 나는 상단과 한 가지 계약을 맺었다.바로 내 배당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군인들을 대상으로는 반값에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마경 같은 곳에선 마수 못지않게 모기가 군인들을 많이 죽이긴 하지. 나도 죽을 뻔했으니.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구나.”“대부님. 하지만 약이 너무 비싸면 군인 분들이 약을 사지 못하잖아요. 모든 군인이 귀족은 아닌 걸요.”“….”“상단에서는 더 이상 싸게 할 수 없다고 했으니, 제가 포기해야죠.”군인들 월급이 짠 건 어느 세상 어느 나라를 가도 똑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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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닌 비용도 퍽 부담스럽다고 하더라고.그래서 군인들에게 호감 이미지도 쌓을 겸 이런 계약을 맺었다.‘돈은 나중에 벌 수 있잖아. 퀴닌으로는 이미지부터 만들어야지.’내 목표는 돈 많은 졸부 같은 게 아니다.기왕 주인공이 된 김에 역사에 길이 남을 제국 최고의 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지.‘그리고 군인들은 자기네들에게 잘해준 사람들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내가 대한민국 군대 나오고 면도기 계속 똑같은 거 찾던 게 그 증거다.솔직히 익숙해져서 그런 거 같긴 한데.‘그리고 주인공은 이게 맞아.’무엇보다 착각물은 돈이 안 되는 짓을 해야 오히려 돈이 잘 벌리기 마련.이런 선택도 결과적으로는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다.“괜찮습니다. 이대로 진행해 주세요.”“율리안. 아직 어려서 실감이 안 갈 수도 있지만, 배분에서 2퍼센트는 결코 적지 않은 몫이란다.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괜찮습니다. 돈은 나중에 벌면 되지만, 사람의 목숨은 그렇지 않으니까요.”“….”대부님이 잠시 말을 잃으셨다.곁에 서 있던 집사장님도 수첩을 든 손이 멈춘 것 같았다.‘이 정도면 잘 먹힌 것 같은데?’그런데 생각보다 침묵이 길었다.감동이 그만큼 깊은 걸까.감동을 곱씹을 충분한 시간을 드리고자, 나는 두 분을 차분히 기다렸다.이윽고 대부님은 안경을 벗어 눈두덩이를 지그시 누르시더니, 한숨을 내쉬셨다.“… 그래. 이대로 진행하마.”“감사합니다.”“이만 나가 보거라.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거라.”“그럼 실례하겠습니다.”나는 대부님께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리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아, 율리안.” 문고리에 손을 얹으려는 찰나, 대부님이 나를 불러 세우셨다. “오늘이 네 생일이었구나. 10번째 생일 축하한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렴.” 돌아보니, 대부님이 희미하게 웃고 계셨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말이었다.마치…꿈속에서라도 들어본 것 같은.“… 감사합니다.”나는 뭔가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을 붙잡지 않았다.대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문을 나섰다.발걸음을 옮기며 문득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렸다.‘그러고보니…오늘 아침에 꿨던 악몽이랑 관련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하지만 짙은 안개라도 낀 것처럼, 꿈의 내용은 도무지 선명해지지 않았다.나는 고개를 젓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퀴닌을 만든 뒤로 할 일이 많았다.기억나지도 않는 꿈에 연연할 정도로 나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 이것은 잊혀질 이야기. 혹은 준비되었던 이야기.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태양이 되고 싶었고, 사랑을 받고 싶었고, 세상을 구하고 싶었던.한때 소년은 수재라 불리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먼저 빛난다고 더 높이 오르는 건 아니었습니다.밤이 깊어 별들이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갈 때도, 소년은 고작 풀숲을 맴돌 뿐이었으니까요.소년은 별이 아니었습니다.밤의 어둠을 빌려야 겨우 빛을 내는 미천한 날벌레.그는 「개똥벌레」였습니다.*개똥벌레에게 세상은 가혹했습니다.사랑을 줘야 할 부모는 기억이 생기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사랑을 주려던 새 부모는 그 사랑을 베풀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그리고 추락하는 소년에게는,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한 정의 리볼버와 싸구려 납탄 하나뿐.소년은 실린더를 열고, 흙이 묻은 손으로 총알을 밀어 넣었습니다.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관자놀이에 총구를 가져갔습니다.만일 지금, 이 세상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아 있었다면.과연 소년에게 무슨 말을 해 주었을까.고민을 거듭한 끝에, 소년은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중얼거렸습니다."10번째 생일… 축하해, 율리안."타-앙-!단발의 총성이 있고, 소년의 육신은 무덤 위로 쓰러졌습니다.도시는 그 총성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그렇게 소년의 이야기는 끝나는 듯하였습니다."…허."눈을 감았던 소년이, 차가운 숨결과 함께 탄성을 터뜨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