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빙의야 환생이야 (2)
이거 빙의야 환생이야 (2)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부님.”율리안이 방을 떠나고,그의 대부- 헨델 니히리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저 멀리 별관 쪽으로 걸어가는 작은 실루엣이 보였다.헨델에게는 그 작은 모습이 위태롭게만 느껴졌다.소년의 뒷모습을 감상하던 헨델이 입을 열었다.“집사장. 그 약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걸렸더라.” “2년입니다, 주인님.” “2년….” 헨델은 무심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해열 포션이 듣지 않아 얼음물에 몸을 담갔던 밤들.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에 잠을 설치던 하인들.정확히 헨델 남작이 남부 시찰에서 돌아온 직후에 시작된 일이었다.“2년이라… 조금만 늦었다면 나도 친구들 곁으로 갈 뻔했군.”헨델의 그 말에 집사장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집사장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교단의 치유사는 고개를 저었다.슬슬 관을 짜야하지 않겠냐는 말들도 복도에서 오갔다.그렇게 모두가 남작가의 몰락을 각오하던 순간이었다.아홉 살짜리 아이가 시커먼 약병을 들고 나타나 병실 문을 열었다.“도련님께서 직접 가져오셨을 때, 솔직히 저는….” “반신반의했겠지. 나 또한 그랬으니까.”헨델은 쓴웃음을 지었다.그 또한 마찬가지였다.죽어가는 와중에도 ‘설마 애가 만든 약이 듣겠어’라는 생각을 했으니. 당시 그는 율리안을 믿지 않았다.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마셨을 뿐이었다.그리고 그 선택이 기적을 일으켰다.“…그런데 그 아이는 내가 나은 뒤에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더군.”사업 제안?그것은 보상이라 할 수 없었다.애당초 헨델도 같이 수익을 배분받는 입장에서 이득밖에 없는데, 이를 보답이라 할 수도 없었다.하지만 율리안은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이후로 목숨의 은인이라고 매달리지도, 보답을 바라지도 않았다.대신, 아이가 입에 담은 조건은 딱 하나였다.[군인들에게는 반값에 팔아주세요.]헨델은 그 말을 떠올리며 나직이 탄식했다.“피는 못 속이는 법인가.”헨델은 세상을 떠난 친구 부부를 떠올렸다.전장의 군인들에게는 자신들이 필요하다며, 어린 아들을 자기에게 맡겨두고 전선으로 향한 바보 같은 친구들.군인들을 치료하던 부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그리고 그 부부의 아이는 열 살도 채 되지 않아, 군인들을 위한 약을 만들어냈다.심지어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을 줄여가면서 약값을 낮췄다.과연 이게 우연일까.과연 이 성품이 우연일 수 있을까.“그곳에서 무얼 본 걸까, 그 아이는.”2년 전.부모님의 시신을 수습하던 아이는 그곳의 군인들을 보며 충격을 받은 듯했다.그리고 그곳에서 돌아온 아이는 밤새 불을 밝히고 나무껍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헨델은 그것을 아이의 치기라 여겼다. 연금술의 기초도 배우지 않은 아홉 살짜리가 신약을 만든다니. 슬픔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애도 의식이려니 생각했다. 적당히 만족하면 포기하겠거니, 그리 생각하며 연금술사를 보조로 붙여줬다.하지만 아이가 2주, 한 달, 석 달이 지나도 멈추지 않자, 헨델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솔직히 말해주게. 저 아이에게… 연금술 재능이 있는 건가?] 당시 헨델은 율리안에게 붙여줬던 연금술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들은 냉정했다. — [재능은 평범합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좀 둔한 편이에요. 감각이 없달까. 보통 재능 있는 아이들은 실패하면 ‘아, 이건 아니구나’ 하고 방향을 틀 줄 아는데, 이 아이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진짜 막다른 길인 걸 확인하고 나서야 돌아오는 타입이랄까요. 솔직히 어린아이 수준의 실험이라 지출이 크지 않은 것이지, 다 큰 어른이 이러면 패가망신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헨델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재능이 없다. 그 말은 곧, 아이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그 수많은 실패를 지켜보는 동안, 헨델은 율리안에게 포기하기를 에둘러 권유하였다.농도가 맞지 않아 쏟아진 실패작들. 악취가 나서 폐기해야 했던 추출물들. 열 번, 서른 번, 일흔 번. 아이를 조용히 응원하던 연금술사들도 이제는 못 보겠다며 그 곁을 떠났다.그럼에도 율리안은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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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은 그런 율리안의 모습에서 마치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인상을 품었다.그 모습이 마치, 군인들의 병을 치료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그리고 소년은 끝내 홀로 답을 찾아냈다.남부 시찰을 마치고 온 헨델의 목숨을 살려내면서 말이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헨델에게만큼은 이 기적이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집사장. 생각해 보면 나는 7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네.”7년이었다.헨델은 친구 부부의 기일이 될 때면 매년 휴가를 내고 남부로 향했다. 마수의 영역을 뒤지고, 무너진 잔해를 파헤치고, 돌아오지 못한 시신들의 명부를 뒤적였다.“그 친구들을 찾을 때까지… 나는 절대 멈출 생각이 없었네. 주변에서 뭐라 해도 말이지.” “….” “그런 내가 그 아이에게는 포기하라고 했더군.”헨델의 입가에 자조가 서렸다.“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일이야. 나는 내 고집은 신념이라 여기면서, 아이의 고집은 치기라 여겼으니.” 창틀에 기댄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나뭇결을 긁었다.“어쩌면… 내가 지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헨델은 서서히 마모되어 가고 있었다.해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남행. 동정 섞인 시선들. ‘이제 그만 놓아주시죠’라는 권유. 그 모든 현실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부터 헨델은 ‘노력해도 안 되는 일’에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재능 없는 아이가 밤을 새워가며 실패를 거듭하는 모습이, 남부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였던 것은.“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신을 안 믿네.”“….”“물론 신은 존재하고 말고. 그러지 않고서야 신성 마법이라는 기적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 신이라는 작자들이 정말로 인간을 위한다면… 7년이나 걸려서는 안 되었네.”그들이 제국에서 구한 사람이 몇 명이고, 또 얼마나 신실했는지 신이라는 것들이 모를 수가 없을 것이었다.신탁을 받아도 마땅한 이들이었다.헨델이 보기엔, 부부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신들은 적어도 그들의 죽음은 막지 않을지언정, 그 늪에 그들을 7년이나 방치해서는 안 되었단 말일세.”하지만 부부가 받은 대우는 비참했다.“그래서 나는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도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지 않았네. 마찬가지로 내세 따윈 믿지 않았고.”“주인님….”“그런데 말일세.”창밖을 바라보는 헨델의 눈에, 율리안의 뒷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방향을 응시했다.“…그 친구들의 아이가 나를 구했군. 부모가 죽은 그 땅에서 본 것으로.”헨델은 생각했다. 만일 저 아이가 군인들을 위하던 부모의 뜻을 잇지 않았더라면, 만일 7년 동안 헨델이 친구 부부의 시신을 찾고자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헨델이 저 아이를 그 마경으로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만일 이 모든 과정에서 둘 중 한 명이라도 주변의 말대로 포기했더라면,과연 그가 지금도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하고.“나는 지금도 내세를 안 믿네. 하지만 … 이번만큼은 그 친구들다운 선물이었다 생각되는군.”집사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손등으로 눈가를 훔칠 뿐이었다.헨델은 그런 집사장을 못 본 척하며, 책상 위의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창밖에서는 별관 쪽 창고에 불이 켜지고 있었다. 열한 살짜리 아이가 오늘 밤도 무언가를 연구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헨델은 그런 아이의 노력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할 뿐이었다.재능은 이제 그에게 아무래도 좋은 단어였다.***한편, 그 시각 율리안은…‘생각해보니 이거 빙의야 환생이야.’별관에 도착하자마자 최근 맞닥뜨린 난제와 씨름하고 있었다.퀴닌 개발에 매달리느라 몇년 동안 미뤄뒀던 숙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고민이었다.‘쓰읍… 분명 기억은 아기 때부터 있긴 했는데.’첫 생일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 잠깐 열병을 앓았다는 기억이 있다. 열병이 가라앉으며 전생의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율리안이 고민하는 문제는 그 부분이었다.환생의 기준은 태어나자마자 기억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아는 한, 의학적으로 기억 능력은 대략 12개월 이후부터 생긴다.유아기 기억상실(infantile amnesia). 이 이론에 따르면 해마의 수초화가 완성되기 전에는 장기기억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그 말인즉슨, 환생이더라도 12개월 전에는 뇌가 덜 발달해서 기억을 못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그럼 나는 빙의야 환생이야.’율리안은 턱을 문지르며 고민했다.물론 빙의냐 환생이냐에 따라 바뀌는 건 없다.하지만 일단 우연히 고민을 시작했으니 오기로라도 답을 찾아내고 싶은 율리안이었다.‘에이씨. 어떻게든 첫 문장이라도 읽었어야 했는데.’그날 이후 며칠간 율리안의 방의 불은 늦은 밤까지 꺼지지 않았다.이를 바라보는 집사장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