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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기름칠도 해야지 (1)

다크판타지 의사는 성자로 착각당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사람이 살다보면 기름칠도 해야지 (1)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돈? 음식? 명예?아니다.‘뭐긴 뭐야. 숨을 쉬어야 살지.’일단 숨을 쉬어야 체온, 감염, 영양을 논하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신생아도 다를 거 없다.34주, 세상에 일찍 나온 미성숙한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 호흡이다.너무 일찍 나온 아이는 아직 폐가 덜 성숙해서 호흡곤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호흡곤란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별관에 왔다.‘뭐, 34주면 아슬아슬하게 폐가 성숙했을 수도 있는 시기인데.’어쩌면 지금 이 준비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그러면 최고지.’차라리 내 설레발로 끝나면 모두가 행복하겠지.— #. 사람이 살다 보면 입에 기름칠도 해야지 —아기에게 필요할지도 모르는 약이나 기구들을 잔뜩 들고 본관으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하녀들의 위생 점검이었다.‘제발 잘 씻고 있어라.'꼭 안 보고 있으면 요령 부리는 사람이 한둘 있단 말이지.솔직히 그걸 이쪽 세계 사람들을 무식한 탓이라고 하긴 어렵다.세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시대이니, 손을 씻으라는 말이 얼마나 황당하게 들리겠는가.게다가 석회수는 진짜 독하다. 과장 보태서 락스에 비유해도 될 정도로.당장 나만 해도 손이 엉망진창인데, 산파나 하녀들은 오죽할까.여자인 만큼 피부에 훨씬 예민할 텐데, 그걸 감수하면서 씻으라고 하니 불만이 쌓일 만도 하다.이해한다. 진심으로 이해해.‘그래도 이건 아니지.’근데 목장에서 소똥 만지던 산파가 손도 안 씻고 아이를 받으러 오는 건 좀 너무하잖아.아무리 세균을 모른다 해도 똥 묻은 손으로 아기를 만지면 안 된다는 건 상식 아닌가?문제는 이 시대 산파들은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런 비슷한 사건들을 경험한 이후 나는 이 세상에서 상식을 논하지 않기로 다짐했다.‘그러니까 피부 까진다고 손 안 씻었으면 아주 뒤집어 버려야지.’이 시대 사람들이 미개하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타협해 줄 생각도 없다.시대를 존중한다고 산모랑 아이의 목숨도 타협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저 왔습니다. 다들 손 씻었죠?”손 씻었는지 점검하는 방법은 쉽다.석회수는 냄새가 지독하다. 그러니 씻었으면 손에서 대놓고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킁킁다행히 어떤 하녀도 꼼수를 부리진 않았다.비록 내가 친아들이 아닌 대자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도련님이기도 하니 말을 철저히 따른 듯하다.이래서 권위가 최고라니까.“타월은요?”“분부하신 대로 전부 삶은 것들로만 준비했습니다.”전부 뽀얗게 삶아진 타월과 이불로 교체되어 있었다.그래. 잘 지켰구나. “그럼 이제 집사장님이랑 가주님 빼고 다들 나가 주시죠.”“???”내 축객령에 하녀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나는 그런 하녀들에게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오늘부터 제가 대모님이랑 아기를 돌볼 예정입니다. 혹시 이견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도련님께서요?” “제가 의사고, 환자가 우리 가족인데, 당연히 내가 봐야죠. 그렇지 않다면 누가 봅니까? 이제 다 나가주십시오.”아기가 태어난 직후엔 되도록 출입하는 인원은 적을수록 좋다.소독이나 감염 예방도 어려운 시대인만큼, 차라리 무식하게 나와 산모만 방에 남는 것이 생존율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뭘 자꾸만 반박하려는 하녀들은 전부 쫓아냈다.집사장님과 대부님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렇게 막무가내로 전부 쫓아내고.나는 입구에서 대부님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대모님과 아기의 예후에 대해 설명했다.“대부님. 대모님께서는 이제 한시름 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틀 뒤면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실 겁니다.”후산을 처리하며 살폈을 땐 출혈을 우려할 징조도 보이지 않았고, 양수에 특기할 만한 사항도 보이지 않았다.특별히 감염을 우려할 이벤트도 없었고.그러니 대모님은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이틀 간은 아마 하루 종일 잠만 주무시겠다만, 그건 병이 아니라 출산이 원래 그렇게 힘든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고.“문제는 우리 소공자님인데,… 아, 아이의 이름은 정해두셨습니까?”“… 프리드다.”“프레이야랑 ‘프’자 돌림입니까?”대부님의 외동딸을 떠올리며 농담을 던졌다.서양에서도 이름 돌려 쓸 줄은 몰랐는데.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대부님.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마 우리 프리드가 오늘 밤이 고비일 겁니다.”“뭐? 그게 무슨 말이냐!?”“프리드가 아버지를 빨리 보고 싶었는지,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왔습니다. 숨을 쉬기엔 폐가 너무 약합니다.”미숙아의 흔한 사망 원인은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이다.풀어서 설명하자면, 일찍 태어나버린 탓에 폐가 미성숙해서 숨을 못 쉬는 현상을 말한다.“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죠. 원래 사람의 폐에는 얇은 기름막이 발려 있습니다.”이 기름막 덕분에 폐 속의 작은 공기주머니들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해도 서로 들러붙지 않는다.그런데 미숙아는 그 기름 코팅이 완성되기 전에 태어난다.기름 코팅이 없는 공기주머니는 젖은 풍선처럼 서로 달라붙어 다시 펴지지 못할 수 있다.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펴지지 못하는 공기주머니가 점점 많아지고, 그러면서 아이는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여기까지 이해하셨죠?”“…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냐?”“홍등가 도축장에서 제가 잡은 돼지만 백 마리일 겁니다. 거기서 알았습니다.”물론 돼지 배를 가르기 전부터 알고 있던 전생의 지식이긴 한데,일단 지식은 알고 있고, 배를 가른 돼지도 있으니, 삼단 논법에 따라 나는 진실을 말한 셈이었다.“그러니 우리 프리드가 만에 하나 숨을 못 쉬면, 숨을 쉴 수 있도록 밖에서 그 기름을 넣어줄 겁니다.”“그럼 뭐 하는 거냐! 설명할 시간에 빨리 넣어주지 않고!”“아니, 숨을 못 쉬면 그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고 미리 안내드린 것이지, 지금 필요하다는 게 아닙니다. 치료 과정이 조금 거칠어 보일 수 있어서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겁니다.”“율리안, 나는 전적으로 널 믿는다. 그러니 무엇을 해도 괜찮으니 나에게 했던 것처럼, 프리드랑 리니에를 살려만 다오.”절박하게 매달리는 대부님. 아니, 반응만 보면 내가 대부님을 되게 금기까지 어겨가며 기적적으로 살린 거 같네.퀴닌 딸깍으로 살린 건데.어쨌든 대부님께 허락은 받았다.나는 땀에 절은 채로 아기를 껴안고 있는 대모님께 다가갔다.“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제가 곁에서 지키겠습니다, 대모님.”대모님은 뭔가 석연찮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대부님과 달리, 대모님은 나를 별로 안 좋아하시기 때문이었다.그 이유는 알고 있다.‘우리 엄마가 대부님의 전 약혼자였다지.’내가 ‘남편 전여친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불편하신 것이다.그 때문인지 안주인의 지위를 이용해, 이 저택 안에서 은근 나를 따돌리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계시고.하지만 그런 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자고로 주인공이란 이런 사사로운 은원 정도는 넓은 마음으로 품어야 하는 법.그리고 제국 최고의 의사가 될 사람이 고작 이런 걸로 속 좁게 반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대모님. 일단 눈 좀 붙이시지요.”대모님은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더니,이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시며 눈을 붙이셨다.***니히리트 가문의 남작 부인, 리니에 니히리트는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다.바로 자신의 대자(代子)였다.‘그 여자는 도대체 어떤 아이를 남기고 간 것일까.’율리안 슈나벨.남편의 전 약혼녀이자 첫사랑이 남기고 간 아이.니히리트 남작 부인은 이 아이가 불편했다.율리안에게서 그 여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물론 남편은 언제나 부인이 마지막 사랑이라고 속삭이며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그 불편감이 질투로 번지는 일은 없었다.하지만 마음 한 구석의 불안감은 지울 수 없었다.혹여나 그이가 친자식이 아닌 율리안에게 가문을 물려주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그러던 어느 날, 리니에는 율리안의 가정교사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도련님은 산술에선 뛰어나시지만… 그 외의 영역에선 조금 걱정이 됩니다.] 가정교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 [특히 철학이나 신학 쪽에서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마치 이상한 상식에 사로잡혀 계신 것 같달까요.] - [이상한 상식이라니?] - [가르쳐드리는 지식을 거부하시는 느낌입니다. 머리로는 외우시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이질 않으세요.] 가정교사는 한숨을 쉬었다. - [귀족 자제분께서 신학의 기초도 못 받아들이시면…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리니에의 가슴 한구석에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배우는 속도가 느리다. 지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말은 곧, 이 아이가 학자나 마도사로서는 몰라도 귀족 사회에서는 높이 오르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프레이야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 다행이다.’ 그 생각이 스친 순간, 리니에는 자신이 한없이 비열하게 느껴졌다. 고작 열 살짜리 아이의 부족함에 안도하다니. 그것도 남편이 그토록 아끼는, 죽은 친구의 유복자에게. 하지만 그 죄책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 안도감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배움이 느린 아이라면… 욕심을 버리는 게 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닐까.’그래서일까.그녀는 조금씩 아이를 가문의 바깥으로 밀어냈다.*그러기를 1년.그녀는 그 아이에게 구원받았다.‘내가 무슨 짓을….’야심한 새벽.문득 목이 말랐던 그녀는 회상인지 모를 꿈에서 깼다.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옆에는 책을 읽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밤늦게 공부에 열중이던 소년은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대모님? 혹시 추우십니까? 난방을 더 세게 할까요?”“… 목이 마르는구나.”“아, 물이시군요. 여기 있습니다. 사레들리지 않게 조심히 마시세요.”율리안이 별관을 다녀온 사이, 가주는 율리안의 행적을 알려주었다.그가 홍등가로 가던 것은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함이라고.마치 율리안의 부모가 그랬듯이.그 말을 들은 순간, 리니에는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는 율리안을 ‘홍등가나 전전하는 되바라진 망나니’라며 하녀들에게 험담을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무슨 짓을…’이 아이가 그 사실을 모를까?그럴 리가.이 총명한 아이라면 충분히 알아차리고도 남을 것이다.그럼에도 율리안은 그녀와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수고를 끼쳐 미안하구나.”죄악감이 그녀의 심장을 짓누르는 듯했다.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율리안은 싱긋 웃으며 물잔을 건넸다.“대모님이 주신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아니라고 답하고 싶었으나, 비겁하게도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리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목을 축였다.그때였다.“… 대모님. 잠시만 프리드를 제게 맡겨주시겠습니까?”갑자기 자뭇 심각한 눈으로 아기를 바라보는 율리안.“무슨 일이니?”“아무 문제없을 테니 저한테 맡기세요.”전혀 문제없는 것 같은 목소리가 아니었다.순간 오늘 낮에 율리안과 남편이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프리드가 숨을 못 쉴 수도 있다는 설명.그 설명을 떠올리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설마 프리드가…”“충분히 상정하고 대비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대모님. 절 믿으세요.”하지만 율리안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고작 10살 조금 넘은 앳된 아이의 목소리인데, 어떻게 이토록 안심이 될 수 있는 것일까.리니에는 떨리는 손으로 율리안에게 아기를 넘겼다.“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율리안은 작은 몸으로 아기를 받아, 미리 데워둔 따뜻한 시트 위에 눕혔다.그의 시선은 아이의 가슴으로 향했다.‘가슴이 함몰된 건 아이가 숨을 못 쉰다는 증거다.’피부도 조금 파랗고, 미약한 신음 소리도 들린다.우려했던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이 발생한 것이다.율리안은 빠르게 아기의 상태를 진단하고, 준비해 둔 약과 도구를 꺼냈다.가방에서 웬 기다랗고 얇은 관 같은 것이 나타났다. 끝이 뭉툭하게 갈린, 리니에는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율리안, 그게 뭐니?”“거위의 깃대를 가공해서 만든 튜브입니다. 이걸로 기름을 흘려 넣을 겁니다.”율리안은 주저 없이 새끼손가락을 아기 목구멍 깊숙이 집어넣었다.따뜻하고 축축한 점막이 손가락을 감쌌다. 그는 아기의 입천장을 스치고, 혀뿌리를 지나, 목젖 뒤쪽으로 손끝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 한 마디, 두 마디. 헛구역질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아기가 꿀꺽 삼키려는 반사에 손가락이 조여왔다. 그 저항을 무시하고 더 깊이 넣었다.수지 촉지법이라는, 손가락으로 기도 입구를 찾는 기술이었다.‘찾았다.’손끝에 물렁한 연골- 후두개가 느껴졌다.그는 손가락 옆으로 깃대를 밀어 넣었다.사족이지만 그 깃대의 주인인 ‘거위’는 조금 큰 조류형 마수를 부르는 은어였다.  율리안은 그 마수를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시장에 나도는 깃털이 쓸만해 보여서 튜브로 가공해 애용하는 중이었다.깃대가 아이의 기도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은 기름의 차례였다.돼지들의 폐를 쥐어짜고, 연금술사들을 공밀레공밀레해서 얻어낸 기름. 이 기름의 정확한 명칭은 계면활성제였다.기름이 튜브를 통해 아기의 허파로 흘러들어 갔다.직후 아기의 가슴이 작게 들썩였다.율리안은 목구멍에서 깃대를 빼냈다. 끝에 묻은 점액과 기름이 뒤섞여 반들거렸다.조용히 프리드를 내려다보는 율리안.호흡 한 번. 두 번. 세 번.그는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세며 조용히 프리드를 내려보았다.몇 분 뒤.함몰되어 있던 가슴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아기의 피부가 눈에 띄게 분홍빛을 되찾았다. 칭얼거림이 멎고 고른 숨소리만 남자, 리니에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율리안 또한 같이 한숨을 토해내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그도 내심 초조했던 것이다.모든 게 끝나고, 율리안은 한숨을 돌리며 너스레를 떨었다.“휴우. 우리 막내 동생 때문에 밤새 잠도 못 자고… 이게 무슨 고생이랍니까.”그 애늙은이 같은 말에 리니에는 기가 찼다.이게 정녕 11살이 맞는 걸까? 하지만 동시에 안심했다.그 능청스러운 농담이, 그만큼 프리드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시사하였기 때문이다.“율리안… 정말 고맙구나.”리니에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죄책감과 고마움이 같이 포함된 눈물이었다.그에 율리안은 잠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낯빛을 굳히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가끔 신이 자리를 비울 때도 있죠. 저는 의사로서 그 빈자리를 잠깐 채우려고 발버둥 쳤을 뿐입니다.”순수하게 기뻐하는 대신 겸손을 보이는 율리안.마치 이런 걸로 자신은 기뻐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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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에, 리니에의 가슴이 저려 왔다.도대체. 도대체 이 아이는 이 나이에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사는 걸까.얼마나 희생하기에 이런 감사 인사마저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리니에는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율리안의 두 손을 꼭 잡았다.‘적어도.’자신이 이 아이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싶어졌다.그것은 어른의 의무이자,지금까지 아이를 박대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속죄였다.*그 시각, 율리안은 생각했다.‘이야. 이게 사네.’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그는 외상외과 의사다.소아과나 산부인과가 아니라.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제를 결코 착각하는 일이 없었다.'산모랑 신생아 케이스는 언제 봐도 살 떨린단 말이지.’그렇기에 적어도 이쪽 영역에 있어서는, 그는 자신의 실력을 그쪽 전공의와 비슷한 수준이라 여겼다.아니, 오히려 더 한 단계 떨어지고 있다 생각하였다.그가 보기에 홍등가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그가 성공한 모든 치료와 처치들은, 전부 실력이 아닌 운 덕분이었다.이번에도 그러했고.‘심지어 블라인드 테크닉으로 저질러도 사고가 안 나네. 역시 착각물이 최고야.’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