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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기름칠도 해야지 (3)

다크판타지 의사는 성자로 착각당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사람이 살다보면 기름칠도 해야지 (3)

***날것의 살, 뼈, 내장, 피. 설거지통의 기름 찌꺼기와 남은 음식물, 뜨거운 물에 불어 터진 행주. 손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곧 품격인 계급사회에서, 부엌이라는 공간은 적어도 귀족에게 어울리는 공간은 아니었다.더군다나 세계관이 세계관이라 쥐와 벌레와 부대껴야 한다는 사실에서 더더욱.나는 그런 귀족의 금기나 다름없는 장소에 발을 디뎠다.‘재료는… 있군.’내가 가지고 있던 재료들과 원래 여기 있던 재료들을 나열했다.미역, 전복, 크림… 기타 등등.‘재료는 다 있고.’우선 검게 말라비틀어진 해초를 물에 담갔다.죽어있던 미역이 수분을 머금자 본연의 푸른색을 되찾으며 피어올랐다.그렇게 미역을 불리는 동안 전복으로 손을 뻗었다.‘내장은 굳이 넣진 말자.’숟가락을 근육과 껍질 사이로 밀어 넣었다. 관자를 분리하고, 제거한 내장은 따로 덜어두었다. 내장은 한창 예민해진 산모에겐 너무 쓰기 때문이다. 색깔이나 맛이 리소토와 안 어울리기도 하고.다음으로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달궜다. 마늘향이 올라올 때쯤, 물기를 짠 미역과 불린 쌀을 넣는다.육수를 붓고, 생크림과 치즈가 녹아들 때까지 천천히 저었다. 쌀이 전분을 내어놓고 육수가 걸쭉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마지막으로 요리를 접시에 담고, 버터에 노릇하게 지진 전복 슬라이스를 정갈하게 토핑했다.이로써 리소토가 완성되었다.“시식 부탁드립니다, 아가씨.”작은 그릇에 리소토를 조금 덜어 프레이야 앞에 내밀었다.그녀는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어, 접시 앞에서 머뭇거렸다.하얀 치즈와 크림으로 색을 입혔다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짙푸른 빛깔이 영 익숙치 않은 모양이었다. 바다 잡초로 만든 요리라는 사실도, 어딘가 포션을 닮은 색도.먹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니.하지만 프레이야는 이내 눈을 질끈 감고, 한 숟가락을 입에 머금었다.“…!”“어때?”“… 맛있어요.”“다행이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께 드릴 분량을 접시에 담았다.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파인다이닝 셰프에 빙의해서 플레이팅에도 신경 썼다. 그렇게 장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때, 프레이야가 입을 열었다.“오라버니.”“응?”“… 또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의외의 부탁이었다.“입에 맞았니?”“네! 평소 먹던 것들이랑 달라서요.”프레이야가 싹싹 비운 그릇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후추랑 기름이 잔뜩 들어간 것 말고, 이렇게 부드러운 건 처음이에요.”아, 그렇겠구나.벽 안쪽 귀족의 요리는 대체로 향신료 범벅이다. 후추, 정향, 육두구 등등.벽 안에서 키우기 어려운 향신료들을 아낌없이 뿌림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덕분에 귀족 음식은 뭘 먹어도 혀가 얼얼하고, 위장은 기름에 절어 있기 마련이었다. 여기에 소화불량은 서비스다.그런 식단에 길들여진 아이에게 크림과 치즈의 부드러운 감칠맛은 어떻겠는가.아마 낯설면서도 충격적인 경험일 것이다.“알았어. 가끔 만들어 줄게.”“… 정말요?”“그런데 문제가 있네.”“네?”사용을 마친 내 식칼을 행주에 닦으며, 부엌 입구를 가리켰다.입구에서 굳어 계신 집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내가 부엌에 다시 들어올 수 있을는지는 나도 모르겠구나.”***간혹 생각하는 건데, 세상에는 금기가 참 많다.남자는 산파의 영역을 넘보면 안 된다.어린아이는 어른의 영역을 넘보면 안 된다.의사는 치유사의 영역을 넘보면 안 된다.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이쯤 되면 해도 되는 걸 따로 명단으로 추려내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그리고 오늘.나는 또 한 번 금기를 어겼다.감히 도련님이 부엌에서 손에 물을 묻힌다는 금기를 말이다.“도련님.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무두장이 거리에서 일할 때 익혔습니다. 거기에는 요리사가 없었거든요.”집사장님의 물음에 아직 조금 뜨거운 리소토를 식히며 답하였다.참고로, 무두장이 거리는 홍등가를 점잖게 부르는 표현이다.옆에 프레이야가 듣고 있는데 내가 창녀촌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그래도 이런 천한 일을…”집사장은 내가 만든 요리를 보며 중얼거렸다.요리가 왜 천한 일입니까, 순간 그런 말이 나올 뻔했으나 입을 다물었다.‘어차피 말해봤자 모를 텐데.’요리사가 장인 취급받으려면 이세계 프랑스 대혁명 정도는 일어나야 한다.이후에나 셰프가 귀족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게 되었으니.그런데 황제가 드래곤이랑 캐삭빵을 뜰 수 있는 세계관이라, 그런 혁명이 올 일은 영원히 없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그래서 그냥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요리가 천하지 않은 게 아니라, 요리를 하는 내 마음이 천하지 않은 것으로 말이다.“집사장님. 이건 어머님께서 드실 약선입니다. 약을 만드는 건 천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그야 그렇습니다만…”“어머님이 드시고 기운을 차리실 수만 있다면, 저는 바닥이라도 닦을 수 있습니다. 그게 자식 된 도리 아니겠습니까.”“…!”집사장님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감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무시는 것이, 단전 깊은 곳에서 감정이 치밀어 오른 모양이다.아마 속으로 엄청난 감동을 하고 계신 것 아닐까.‘사실 다재다능 콘셉트도 있고, 그냥 이 세계 요리가 너무 맛없어서 내가 먹을 거 만들려고 시작한 요리지만.’그걸 굳이 진실하게 밝히는 일은 없었다.다들 이런 과대포장한 요소 한두 개 정도는 있잖아.집사장님은 떨리는 손으로 쟁반을 받아들었다. 그의 눈가가 촉촉해진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식기 전에 가져가시죠. 크림은 식으면 맛이 떨어지니까요.”“예, 예! 당장 올리겠습니다.”집사장이 황급히 몸을 돌려 부엌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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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뒷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했다. 저렇게까지 반응해 버리니 내가 무슨 최후의 만찬이라도 만든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옆에 있던 프레이야가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오라버니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어깨를 으쓱였다.가끔 생각하는 건데, 고작 이런 걸로도 칭찬을 받을 땐 착각물의 권능이 너무 과하다는 느낌도 있다.그래도…‘비아냥보단 낫네.’내가 살던 21세기는 칭찬이 황금보다 비쌌는데.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놔도 그건 돈값을 해야 하는 기술자의 당연한 의무로 치부되었다. 의사가 논문이나 환자가 아닌 다른 것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면 어땠던가. ‘그럴 시간에 잠이나 자라’ 거나 ‘배가 불렀다’는 핀잔이 날아와 박히기 일쑤였다.아닌 사람들도 있다고?근데 내가 출연했던 다큐에 달린 악플들은 그러던데.교수도 아닌 것이 벌써 빠졌다고 욕하더라. 안 그래도 귀한 외상외과 소공자님에게 못하던 소리들이 없었지, 아주.그런 건조한 세상을 떠올리면, 이런 무지성 칭찬이 백 배 천 배는 나은 것 같다.“자. 올라가자. 프레이야도 어머님 곁에서 먹고 싶지?”“네!”“그럼 네 몫도 같이 챙길까. 내 것도 챙기고.”참고로 프레이야의 그릇에서는 특별히 당근은 빼뒀다.*트레이를 들고 방으로 향했다.아, 트레이 말고 쟁반. 전생의 습관이 덜 빠졌다.방문 앞에 도착했을 땐 대부님이 계셨다. 열린 문틈 사이로 얼굴을 바짝 붙이고,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프리드와 어머니를 관찰하고 있더라.뒷짐을 진 손가락이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이, 당장이라도 안으로 뛰어들어가 프리드를 와랄랄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안타깝게도, 대부님일지라도 프리드를 아무 때나 만지는 것은 허락해 드릴 수 없었다.안 그래도 면역력이 바닥을 기는 조산아다. 외부에서 무슨 균을 옮겨와도 치명타란 말이다.앞으로 적어도 100일 동안은 산모와 의사 아니면 아기를 만지는 것은 제한할 수밖에 없다.과한 것 같지만, 이 시대엔 조산아 살리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그때까지 입구에 금줄이라도 달아야 하나.’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대부님 뒤로 다가갔다.“프리드 보러 오셨습니까.”“율리안…!”대부님이 화들짝 놀라 이쪽을 돌아보았다.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감격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대부님.“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다.”“아, 그거라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요.”내가 여기 있잖아.내가 누구? 미래에 성자라 불릴 주인공. 그때였다.와락! 갈비뼈가 으스러질 기세로, 대부님이 나를 끌어안으셨다.직전에 들고 있던 트레이는 가까스로 집사장님께 토스했다. 나이스 캐치.“율리안! 고맙다. 정말 고마워…”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직접 전해졌다.그는 내 어깨를 꽉 쥐어 감정을 추스르더니, 내 뒤에 있던 집사장님을 향해 시선을 향했다.“아침에 불렀던 목수는 돌려보내게. 관 짤 일은 없을 테니.”아무래도 프리드가 오늘 밤을 못 넘길 거라 생각하셨던 모양.이 삭막한 세상에선 그게 상식이긴 한데, 그래도 서운하네. 창녀촌의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못 믿으셨다니.… 이거 칭호 어떻게 안 되나.“그리고 관 짜려고 준비한 나무는…. 그래. 우리 프리드랑 리니에가 춥지 않게, 이 방 덥히는 땔감으로나 쓰는 게 낫겠어.”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집사장님.아유. 다들 왜 이래.리액션이 너무 부담스러운데.그런데 또 처음 겪는 일은 아니라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홍등가에서도 이렇게 반응하던 사람들이 한둘이어야지.생존이 당연했던 21세기와 달리 죽음이 당연한 이 펑크 장르 세상에선 저런 반응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율리안. 그런데 이건 뭐니?”몇 분 뒤.가까스로 여운에서 벗어난 대부님이 뒤늦게 요리를 발견하셨다.“이건… 코들?… 은 아니구나. 리소토군. 주방장에게 네가 시킨 것이냐?”“제가 한 겁니다.”“네가 말이냐?”가주님의 눈썹이 모였다.왜 다들 하나같이 반응이 이러실까.내가 사람을 재료로 요리한 것도 아닌데.가주님의 시선은 리소토 위에서 한참을 맴돌았다.크림에 감싸인 짙푸른 미역. 버터에 지져 윤기가 흐르는 전복.분명 낯선 조합일 것이다. 바다 잡초를 굳이 요리에 넣다니, 하는 생각을 하고 계실지도 모른다.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이내 가주님께서 입을 열었다.“… 그릇이 3개구나.”가주님이 중얼거렸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프리드의 상태가 안정되기도 했으니, 가족들이 다 함께 식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프레이야 몫까지?”“예. 어머님, 가주님, 그리고 프레이야. 세 분이서 식사하고 오시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나는 그릇을 집사장님께 맡기고, 어머니께 다가갔다.“프리드는 제게 맡기고 식사하시고 오시죠, 어머님.”어머니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멈칫했다.“율리안, 너는?”“저는 괜찮습니다. 프리드를 봐야 하니까요.”“…”어머니의 눈이 묘하게 흔들렸다.무언가 말씀하시려는 듯 입술이 달싹거렸으나, 끝내 고개만 끄덕이셨다.“그래, 알았다. 부탁한다, 율리안.”집사장님과 하녀장님이 침상 옆에 작은 탁자를 끌고 왔다.식당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산모를 위해 준비된 식탁이었다.가주님은 리니에 어머니 곁에 앉고, 프레이야가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나는 한 걸음 물러나 요람 옆으로 갔다.프리드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 작은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잘 자라. 꼬마야.’요람 난간에 기대어 니히리트 일가의 식사를 바라보았다.한 숟가락을 입에 넣은 어머니의 표정이 변했다.“… 맛있구나."프레이야가 눈을 빛내며 동조했다.“저도 아까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후추가 없어서 혀가 안 얼얼해요.”“그러게. 이렇게 부드러운 건 처음이야. 이런 것도 참 좋구나.”가주님도 숟가락을 들었다.특별히 내장이 듬뿍 들어간 녀석으로.한 입.잠깐 표정이 굳어졌다가 이내 풀어졌다.“특이한 맛이구나. 어디서 배웠느냐? 이건…”가주님이 말끝을 흐렸다.맥락상 아마 ‘귀족이 알 리 없는 맛’이라고 하시려다 삼키신 것 같다.자칫하면 내가 귀족답지 않다는 모욕처럼 전해질 것을 우려한 것이리라.하지만 나는 딱히 신경 쓰진 않았다.“무두장이 거리에서요. 거기엔 요리사가 없어서, 직접 배워야 했습니다.”“…”가주님이 숟가락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그리고.“하녀장.”“예, 가주님.”“그릇 하나 더 가져오게.”“?”가주님이 탁자 위를 턱짓했다.“한 자리 비었잖느냐.”“아, 저는 괜찮습니다. 프리드를—”가주님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하지만 가주님은 내가 말을 끝맺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잘라냈다.“프리드는 자고 있다. 네가 굶주린다고 더 잘 자겠느냐? 아니면 금식기도라도 하는 것이냐?”“그건 아닙니다만…”“그런 거라면 됐다. 가져오게, 하녀장.”“알겠습니다, 가주님.”하녀장님이 몸을 돌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