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기름칠도 해야지 (4)
사람이 살다보면 기름칠도 해야지 (4)
내 그릇을 가지러 가는 하녀장을 보며, 나는 감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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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양자니까. 피가 섞이지 않은 외부인이니까. 가족끼리의 식사에 끼어드는 건 주제넘은 일이라고.그런데.“뭘 그렇게 서 있느냐. 앉아라.”대부님이 탁자 한편을 가리켰다.어머니가 미소 지었다.“그래, 율리안. 이리 와서 앉으렴.”“오라버니, 빨리요!”프레이야가 손짓했다.“…”나는 천천히 요람에서 물러나, 탁자 앞에 섰다.여전히 어색했다.21세기에서도 이런 경험은 드물었다. 외과 레지던트 시절엔 밥을 혼자 먹는 게 일상이었고, 펠로우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특히나 가족과 함께하는 식탁이라는 건.‘…언제 이후로지?’기억이 가물가물했다.“앉으세요, 도련님.”하녀장님이 어느새 돌아와 네 번째 그릇을 내려놓았다.나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숟가락을 들고, 첫 술을 떴다.내가 만든 요리인데, 묘하게 맛이 달랐다.“어떠냐?”대부님이 물었다.“…맛있습니다.”“네가 만든 거 아니냐.”대부님이 피식 웃었다.“율리안.”“예, 대부님.”“이제 별관에서 짐을 빼거라.”“…네?”설마, 나 쫓겨나는 거야?지금 분위기에 어째서?이거 최후의 만찬이었어?하지만 대부님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매일 이렇게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데, 매번 별관에서 부를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 그리고…”대부님이 어머니와 시선을 교환했다.어머니와 무언의 합의를 마친 대부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 딱딱한 호칭 좀 어떻게 바꾸자꾸나. 언제까지고 대부라고 부를 것이냐. 이제 아버지라 부르거라. 듣고 있자니 딱딱해서 체할 것 같구나.”나는 멍하니 대부님을 바라보았다.“….”저 말은 사실상 나를 입양하겠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물론 이미 대부님은 내 후견인이다. 하지만 저 선언은, 나를 프레이야처럼 가문을 이을 수 있는 친자식처럼 여기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내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대부님이 대답을 독촉하듯 담담하게 말했다.“싫으면 말거라.”“아뇨…"나는 고개를 저었다.“감사히…그러겠습니다.”“그래.”“그럼 이제 가주님이라 부르면….”“네가 가주라 부를 나이는 아니지 않느냐.”대부님이 피식 웃었다.“네가 크고 나서 공공장소에서 부른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버지라 불러라.”“…알겠습니다.”“그래.” 대부님이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프레이야와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숟가락을 들었다.나도 따라서 숟가락을 들었다.‘…’다시 숟가락 소리가 달그락거렸다. 나는 리소토를 한입 머금었다.크림의 고소함과 미역의 부드러움이 입안에서 퍼졌다. 기대했던 맛인데, 어딘가 낯설었다.‘이것도…착각물의 문법일까.’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가족에게 인정받는 주인공의 서사가 아닐까.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다고 나라를 들쑤시고 다닐 필요 없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주변이 착각해서 날 받아들이는 전개 말이다.그렇게 정리하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편했다.하지만 오늘따라 그 해석이 잘 와닿지 않았다.‘…이걸 그렇게 읽어도 되는 건가.’가족이라는 관계를, 착각으로 맺어도 되는 걸까.그런 찝찝한 의문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전생의 경험은 늘 내게 경고했다.완전무결한 선행은 세상에 없고, 모든 선행은 이해타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 [ㅇㅇ : 어차피 외상외과 요새 돈 잘 번다며? 그 돈을 받았으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그 건조한 세상에서 나는 냉소를 배웠다. 기대하지 않는 법과,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법, 그리고 호의 뒤에 따라올 청구서를 파악하는 법 말이다.그리고 전생한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귀족은 서로를 견제하고, 평민은 생존에 급급하다. 벽 안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고, 호의를 악의로 되돌려주는 세상. 전생에서 배운 냉소를 버릴 이유가 없는 세상이었다.그래서 나는 호의를 착각물의 틀로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다.내가 대부님의 대자일 때는 그걸로 충분했다.‘그런데 입양은….’가족이다.가족은 그런 관계여서는 안 된다. 착각으로 맺어져서는 안 된단 말이다.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 가족마저 거짓이 되는 순간, 내가 가면을 벗고 쉴 공간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이니까.‘어떡하지….’리소토가 식어가고 있었다.크림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기기 시작했다.‘…역시, 입양 전에 말하는 게 맞겠지.’저분들은 나라는 사람을 착각하고 있다.나는 그렇게 숭고한 사람이 아니다. 내 모든 행적이 이 가족을 위해 행한 것들도 아니다.내 선의는 주인공이라는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지, 딱히 이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다.무엇보다, 나는 이들의 호의를 나를 위해 잘만 이용해 왔다.그러니 나는 이들의 가족이 되면 안된다.그건 이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넘어, 나 자신의 거짓된 가면이 정착해 버리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대부님.”“아버지라 부르래도. 됐다. 일단 무슨 말을 하려는지나 들어보자꾸나.”“저는 대부님께서 생각하시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널 어떻게 생각했다고 보는 거냐.”“저는….”목이 메었다.아마 이 사실을 밝히면 이들은 나를 거부하겠지.하지만 입양이 된 뒤, 언젠가 최악의 형태로 파투 나는 것보단 낫다.나는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제가 니히리트 가문에서 해온 모든 일은 전부 가문 내에서 제 입지를 다지기 위해 행한 것이었습니다.”눈을 질끈 감았다.식탁이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해졌다.나는 대부님의 반응을 기다렸다.이윽고 피식, 그가 웃었다. “생각해 보면 넌 이 집에 온 뒤로 한 번도 내 눈치를 살피지 않은 적이 없었지.”대부님이 숟가락질을 멈췄다.“그럼 어디까지가 네 처신이었던 거냐?”“….”“내게 말라리아 약을 주고, 옆에서 밤새 간병한 것도 처신이었느냐?”“….”“리니에를 위해 이런 요리를 고안해 내는 것도 처신인 것이냐?”“….”“가문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프레이야의 그릇에….”대부님의 눈이 프레이야의 그릇에 머물렀다.“…이 아이의 그릇에서만 당근이 빠지는 것도 처신인 것이냐?”“….”대부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네가 이렇게 곪아 있었을 줄이야. 다 내가 부족한 탓이구나. 그 사실을 네 몫만 빼고 그릇을 세 개만 들고 왔을 때야 겨우 깨달았지.”“아닙니다. 전 그저 외부인으로서 당연한….”“처신이라는 말로 도망치지 말거라.”그 말을 듣자마자 숟가락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그의 시선이 아무런 토핑도 올라가지 않은 내 리소토를 훑었다.“율리안. 내 눈에는 상처받을까 미리 물러나고, 거절당하기 전에 먼저 포기하는 아이가, 그러면서도 손은 멈추지 못하는 걸로 보이더구나.”그리고 대부님은 자신의 그릇에 올라갔던 전복 토핑을 건져, 내 리소토 위에 올렸다.“그래서 이제라도 바로잡으려는 거다.”“바로잡다니요….”“핑계처럼 들릴 걸 안다만, 네 어머니와의 사이가 어색한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끼어들면 더 꼬일 것 같았고. 네가 알아서 적응하겠거니 생각했다.”대부님이 내 리소토 위의 전복을 가리켰다.“근데 4년이 지나도 네 그릇에는 아무것도 안 올라가더구나.”“….”“처신이라면 적당히 하면 된다. 적당히 잘 보이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이용하면 그만이다. 너처럼 똑똑한 놈이 그 적당히를 모를 리가 없지.”대부님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그 눈빛에서는 연민과 죄책감…그리고 애정이 엿보였다.마치, 내 친부가 보일 법한 눈이었다.“근데 너는 적당히를 못 하더구나. 간병도, 요리도, 당근 한 조각도. 전부 지나치게 정성스럽거나, 지나치게 물러났지. 그 중간이 없었어.”“….”“네가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다만, 그런 건 처신이라 부르지 않는단다. 처신은 중간에 머무르는 걸 말하는 거다.”대부님의 손이 내 어깨에 얹어졌다.“네가 해오던 일들은 가족에게나 할 법한 행동이었다.”툭툭.“이번 입양은 네 자리를 새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네가 10년 동안 내 그릇에 올려주던 걸, 이제 네 그릇으로 옮길 뿐이다.”“….”“그러니 대부님이니 대부님이니 하는 소리 그만하고, 아버지라 불러라.”“그건….”“처신이라면 시키는 대로 부르면 될 텐데. 그것마저 적당히를 못 하겠느냐?”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여보.” 대부님을 나무라듯 말씀하시는 어머님.“식사 자리예요. 체하게 무슨 훈계를 그리하세요? 그리고… 율리안이 이러는 건, 전부 우리 탓이잖아요.” “크흠.”대부님이 헛기침과 함께 물 잔을 들이켰다.어머니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전복 내장이 들어간 리소토 그릇 위를 배회하던 시선이, 천천히 내 눈을 마주했다. 망설임이 역력했다.귀족 부인의 자존심과 어머니로서의 미안함. 그 사이에서 적당한 단어를 고르는 침묵이지 않을까.이내 내면의 방황을 마친 어머니께서 입을 여셨다.“율리안.” “…예, 어머님.” “나도….” 말끝이 흐려졌다. 어머니는 물이 담긴 와인잔의 스템을 만지작거렸다.“네가 다가오면 받아줬어야 했는데, 묵은 감정이 앞서서 벽을 쳤단다. 내가 어른답지 못했구나.” “….” “앞으로는… 노력해 볼게. 그러니 너도….”어머니가 잠시 말을 멈추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어리광을 부려주렴. 늦었지만 그게 보고 싶구나.”서툰 고백이었다. 귀족 부인답게 감정을 절제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나는 그들이 보내는 그 날 것의 감정을 곱씹다가,이내, 나의 감정을 내뱉었다.“…감사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어머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더 길게 말하면 목이 멜 것 같아서, 나는 짧게 답하고 고개를 숙였다.달그락. 정적이 흐르는 식탁 위로 다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때,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에 눈동자만 도르륵 굴리던 프레이야와 눈이 마주쳤다.“저기 오라버니?” “응?” “저도 미안해요.”프레이야는 내게 미안할 게 없었다.그래서 갑작스러운 그녀의 사과에, 나와 부모님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모였다.“…뭐가 말이니?”내 물음에 프레이야가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피했다.“죄…죄송해요. 왠지 해야 할 것 같아서요….”뭔가 상황이 심각하다는 건 느꼈는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숟가락을 꼭 쥔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부모님이 사과하니까 자기도 일단 해야 할 것 같았던 모양이다.이게 무슨 사과하기 돌림노래도 아니고. 이유도 모르면서 일단 분위기에 탑승하고 보는 10살짜리 여자아이의 처세술에, 팽팽하던 긴장의 끈이 툭 끊어졌다.“…고마워.”어머니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프레이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우리 딸이 제일 착하네.” “헤헤.” 프레이야가 으쓱거렸다. 본인이 왜 칭찬받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기분은 좋은 눈치였다. 아버님도 콧등을 긁적이며 숟가락을 들었다. “크흠. 이제 이야기는 끝내자꾸나. 음식 식겠다. 어서 들자꾸나.”다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식당을 채웠다.나는 식어가는 리소토를 한 술 크게 떴다. 입안 가득 퍼지는 크림의 풍미와 부드러운 전복의 식감.그제야 첫 술에서 낯섦을 느낀 이유를 깨달았다.전생의 차가운 당직실에서 혼자 삼키던 김밥이나 샌드위치와는 명백히 다른 온도였기 때문이다.나는 그 따뜻함을 천천히, 아주 오래 씹어 넘겼다.*식사를 하던 중.전복을 내게 전부 건네신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리셨다.버터에 구운 전복을 나한테 전부 넘기면서 내장의 쓴맛을 가려주던 요소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몇 번 리소토를 입으로 가져가던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율리안. 그런데 왜 내 접시만 유독 초록빛이 도느냐?”“대부님, 아니, 아버님의 건강을 생각해서 좀 더 재료를 첨가했습니다.”“…이런 건 조금 처신을 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구나.”“사랑하는 아버님께 어찌 그러겠습니까.”동양에서는 전복 내장이 귀했으니, 아무튼 사랑이다.결코 가장에게 남은 재료 짬처리는 아니었다.“… 그래.”내 말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