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rawler

1. 출마

당선됐더니 가족들이 후회한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1. 출마

대한민국 제1야당인 국민의선택의 시장후보가 되었다.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한 결과라서. ------ 공천장 (제2026-052호) 성명: 민서준 추천직명: 매산시장 후보 위 사람은 당헌 제8조 및 당규 지방선거 후보자 추천 규정에 의거해,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국민의선택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 매산시장 후보자로 추천되었으므로 이 공천장을 수여합니다. 국민의선택 당대표 양동현 ------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라는 구라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경기도 매산시.   수원-화성-평택의 중심축에 끼어 있는 도시였다.   고향이라 하는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괜찮은 동네였다.   서울로 출퇴근하기도 좋고, 땅덩이는 그리 안 넓은데 산책할 곳도 많고.     “그래도 출마는 다른 얘긴데.”     시장 말고 시의원 공천이었다면 편하게 받았겠지.   중선거구제라 어지간하면 당선이니까.   국민의선택이 요즘 연전연패긴 해도 기본 체급이란 게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차원이 달랐다.   감시하고 참견하는 게 아니라, 관리하고 집행하는 감투.   그래서인지 연령대도 높았다.   국회의원 중에는 30대, 심지어 20대도 가끔 볼 수 있지만.   시장군수는 40대조차 거의 없었다.   60대 이상이 전체 당선자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게 현실…   그런 판에 30대인 나를 억지로 꽂는다는 건, 나가서 뒈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힘내라, 서준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냐.” “의원님.” “저번 지선 때 출마했던 고 변호사가 건강 핑계로… 핑계가 아니라 건강 문제로 불출마했잖냐. 대체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역 국회의원이기도 한 공천관리위 간사가 내 어깨를 두들겨줬다.   결국 총대 멜 사람이 없어서 나를 내보냈다는 소리.   아예 근거 없는 차출은 아니었다.   나는 매산시에서 초중고에 대학까지 나온 원토박이였다.   작년 대선 때 종합상황실에서 일한 덕분에 윗분들한테 얼굴도 널리 팔렸고.   급하게 출마자를 구하던 당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렇다고 웃으면서 받을 이유는 없었다.     “결국 전 총알받이군요.” “어허. 그래도 말을 좀.” “패전처리로 바꾸겠습니다. 이게 더 맞겠네요. 지방의원들도 못 나가겠다고 드러누운 자리에 굳이 절 밀어 넣으셨으니.” “크흠! 못 들은 걸로 하지.”

d3kza0VLSVdxajZ6L09aWC8xUnR2SEVNNkh0RnBDOTRZSWRRSkh4N1kvTlJ2Z2dRN0hOT2xmdzZWTkxuL3JueQ

내가 현역의원이랑 격의 없이 친해서 이딴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공천하고 싶은 놈과, 피하고 싶은 놈끼리 온갖 지랄을 하면서 싸우다가 서로 민낯을 보인 것에 가까웠다.   그만큼 피하고 싶었던 출마.   하지만 공천이 확정된 이상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국민의선택에 공채로 들어와서 벌써 9년.   이젠 나도 고인물이라, 어쩔 수 없이 정치권에서 밥을 벌어먹어야 했다.     “일단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노력한다고 당선될 일은 없었다.   나이보다 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였다.   바로 국민의선택이라는 당적.   아쉽게도 매산시는 현 여당인 다함께민주당의 텃밭이었다.   부천이나 시흥이랑 비교하면 그나마 국선당도 비벼볼 만한 곳이긴 한데…   그래봤자 다민주가 웬만하면 먹는 지역이었다. 선거비용 보전을 걱정할 일이 없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힘내라고, 민서준 후보!”     먼 장래를 보고 표밭 다지는 차원에서 노력하자.   이런 건 아니었다.   선거판에 기어 나와서 건성으로 일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안일하게 굴다간 커리어가 끝날 수도 있었다.     ‘기본만 하자.’   공천장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몇 가지 목표를 떠올렸다.   가성비 캠프, 45퍼 득표율, 그리고 똥볼 안 차기.   이것만 달성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     나도 나름대로 짬이 있어서 선거캠프를 싸게 꾸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선거캠프 사무소는 낡은 상가 3층에.   사무집기는 업체를 이용하는 대신, 경기도당 창고에 굴러다니는 걸 인맥으로 얻어왔다.   유세차는 소박하게 1톤짜리 두 대만.   종이공보물은 최소화하고, 현수막도 필요한 만큼만 걸기로 했다.   “이만하면 한도액 50퍼센트 안쪽으로 맞출 수 있겠네요.” “예. 충분히 가능합니다, 후보님.”   지금까진 순조로웠다.   돈은 적게 쓰면서도 구색은 웬만큼 갖췄으니까. 부족한 물량은 발품으로 때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발품으로도 메울 수 없는 구멍이 하나 있었다.     “저… 그런데 민서준 후보님. 가족분들은요?” “…….” “기획파트에서 일해보셨으니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캠페인에서 가족의 기여도는 절대적입니다. 도저히 배제하고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본부장으로 섭외한 동료의 조언. 이 말대로 가족은 중요했다.   일당 몇만원짜리 선거운동원과 차원이 달랐다.   형제자매는 솔직히 별거 없지만(연예인 제외) 배우자와 직계의 존재감은 특별했다.   “후보님, 제가 알기로는 가족분들이…?” “예. 부모님이 매산시에 삽니다.” “그렇군요. 혹시 소통은 잘 되십니까?” “…….” “후보님?”     상식적인 의문이긴 했다.   30대의 미혼 후보가 출마했는데, 지역구에 사는 부모의 도움을 아예 못 받아?   그것만으로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었다.   실무적으로도 문제였다. 정글이 오픈 선언하고 잠수탄 격이라.     “저도 압니다. 미혼 후보자가 출마했는데 부모가 팔짱 끼고 구경만 하면 상대 캠프에서 그냥 넘어갈 리가 없죠.” “아시는 분이 왜?”   특별한 이유는 없고, 내가 가족과 사이가 안 좋기 때문이었다.   굳이 따지면 내가 일방적으로 당한 느낌이긴 한데…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좆같아서 가족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으니 할 말은 없었다.   명절에 형식적인 안부만 물어보면서 살아온 세월이 벌써 여러 해.   ‘그래도 이번엔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   부모한테 대단한 도움을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뒷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내가 동네 노인들한테 후레자식이라는 욕을 듣지 않을 정도의 서포트만 받고 싶었다.     “좋습니다. 오늘 가족과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결심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 시간을 쪼개서 모처럼 들른 집. 운암주공 1단지였다.   어머니 혼자 거실을 지키고 있었다.   네가 여기 웬일이냐는 듯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는 저 표정…   예의상 면목 없는 척 웃어줬다.     “어머니. 혹시 기사 보셨어요?”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소리니?” “저 출마합니다.” “아, 그거?”     스마트폰만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   자식이 시장에 출마한다는데, 이건 너무 덤덤한 반응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무시하는 건 아닐 텐데.   아무래도 어머니는 못마땅한 눈치였다.   가족의 반대를 무시하고 출마한 게 거슬려서.   아니면 내가 국민의선택으로 출마한 것 자체가 싫어서.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그래도 지금 아쉬운 건 나였다.   “부탁드릴게요. 조금만 거들어주세요.” “너도 알겠지만 우리한테 돈이 어디 있겠니. 네 아버지 공무원이고… 나는 그냥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인데?” “돈 달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아버지랑 같이 얼굴 한두 번만 비춰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부모님한테 부탁하고 싶은 건 딱 두 개뿐이었다.   출정식할 때 잠깐 들러서 박수 및 사진.   그리고 사전투표 첫날에 나랑 같이 투표소 가주기.   정말 이게 전부였다. 더 바라는 건 없었다.     “다 합쳐도 두 시간이 채 안 걸릴 겁니다.” “글쎄… 난 잘 모르겠구나.” “……?” “내가 정치에 대해서 뭘 알아야 말이지.”   설마 정알못으로 행세할 줄은 몰랐는데.   어머니의 경력을 생각하면 도저히 모를 수가 없었다.   대학교 시절엔 아버지랑 같이 운동권 서클.   졸업한 뒤에야 결혼해서 쭉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그래도 매산천살리기본부 같은 데서 잠깐씩 활동한 사람이 어머니였다. 그런데 지역정가를 모를 리가 있나.     ‘그냥 하기 싫다는 소리잖아.’   내가 기대한 반응은 아니었다.   아무리 소원하게 지냈다지만, 그래도 가족은 가족.   아들이 선거 출마한다고 하면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게 보통 아닌가?   근데 어머니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어머니, 이거 진짜 별거 아닌데.” “얼굴 내밀고 운동하는 게 별일이 아니야?” “명함 돌리고, 출근 인사 같이 해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남한테 손가락질 안 받도록 출정식 때 사진 한 장만…” “그것도 내가 보기엔 선거운동이야. 게다가 너희 아버지 공무원이잖아?”     실제로 아버지가 공무원이긴 했다.   직계가족이 출마했을 땐 예외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가 날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예외 조항도 쓸모가 없었다.     “더 할 말 있니?”     어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목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단순히 선거전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게 새삼 떠올라서.   하지만 따져봤자 나만 손해였다. 얼굴 붉히면서 말싸움이나 할 게 뻔하잖아.     “아뇨. 그렇게 알고 가보겠습니다.” “기분 상했어?” “아닙니다.” “근데 생각해 보면 너도 참 그래. 나나 너희 아빠가 불편해할 거 뻔히 알면서 굳이 국선당으로 출마를 해야겠니? 어차피 당선 가능성도 없는데… 하긴. 네가 언제 우리 말을 귀담아들은 적이 있어야 말이지.”     어머니의 잔소리를 5분쯤 묵묵히 들어줬다.   어른이 말하는데 중간에 씹고 떠나긴 싫어서. 그래도 좀 힘들었다.   잠깐 조용해진 틈을 타서 적당히 떠나려는데.     “너 이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어머, 다인 아빠.”   마침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한테 멱살을 붙잡혔다.   혐오스러운 것을 본 듯 사납게 찌푸린 눈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아버지는 명백히 분노해 있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는 아냐?” “출마했습니다.” “뭐!”     아버지의 손아귀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딴짓을 하고, 내 집에 얼굴을 들이밀어!?”   대체 왜 이래. 여전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시간 내서 사진 좀 찍어달라고, 욕만 안 먹게 해달라고 찾아온 것뿐인데.도움은커녕 멱살을 잡힐 줄은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