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멱살
2. 멱살
부모자식 사이에 정치성향이 다른 집안은 흔했다. 나는 국민의선택당 월급쟁이. 그런데 부모님은, 특히 아버지는 80년대부터 충직하게 민주당계에만 투표한 사람이었다. 그 당에 아버지의 학생운동 선후배들도 좀 있었다. 그래도 직업이 공무원이라 그런지 극성지지자까진 아니었는데. “아버지? 일단 제 옷부터 놓고 말씀하세요.” “네가 한 짓을 먼저 생각해라.” 지금은 출마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멱살을 붙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잠깐 말리는 척하더니 이내 포기. 떨쳐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랑 몸싸움 벌였다가 일이 커지면 독박 쓰는 건 나. 여기서 사고가 터지면 선거도 끝나는 거였다. ‘그냥 여기 찾아온 내가 병신인 걸로 치자.’ 와중에 진심으로 궁금한 게 있었다. 도대체 아버지는 어디에 긁혀서 이렇게까지 흥분한 걸까? 단순히 내가 국선당으로 출마한 게 싫어서? 물론 유쾌하진 않을 듯했다. 정치성향도 성향이지만, 본인이 매산시청 과장인데 아들이 매산시장이 되겠다고 나섰으니 좋을 리는 없었다. 후배들 눈치도 보일 거고. 다만 그 때문이라고 하기엔 태도가 너무 과격했다. “네가 나를 애비로, 그리고 우리를 가족으로 여긴다면 이럴 순 없는 거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내가 본인한테 민폐를 끼쳤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대체 근거가 뭘까.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씩씩거리던 아버지가 곧 이유를 말해줬다. “내가 이건 치사해서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만.” “기왕 멱살까지 잡은 김에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버지.” “너 때문에 매산투데이 칼럼 계약 해지당했다.” “…….” “이게 무슨 뜻이겠냐? 이미 소문이 퍼진 거다.” 생각보다 더 시시한 이유라서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칼럼 계약 해지. 아버지가 듣보잡 지역언론사의 칼럼진이라는 건 대충 알고 있었다. 당연히 시장의 허락받고 하는 일이었다. 고정연재다 보니 겸직 허가를 받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당연히 돈 때문에 하는 일은 아니겠고, 업적 쌓는 느낌으로 하는 듯했다.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저 때문에 잘렸다고 보시는 거네요.” “그게 아니면 뭐겠냐?” 사실이라면 내가 민폐를 끼친 건 맞았다. 아버지가 그 잘난 칼럼 써주고 원고료로 월 1만원 이상 벌어본 적은 없을 것 같지만. 당사자한테는 아마 소중한 부업이었겠지. 그나마 맥락 없이 지랄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해명은 가능하잖아. “제 출마로 피해를 보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후우.” “예, 분노하시는 게 당연하죠. 이제 알겠습니다.” 한결 진정한 듯 멱살을 놔주는 아버지. 부디 아버지의 귀가 열려 있기를 기원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버지? 평범하게 회사 다니는 분들도 총대 메야 하는 상황이 가끔 옵니다. 공무원이니까 잘 아시겠지만요.” “뭔 소리냐.” “일단 들어주세요.” “…….” “적자 사업부로 밀리거나, 리콜 사태 같은 게 터졌을 때 담당 TF팀에 배치되거나. 아마 당사자들도 일이 잘못 풀리면 자기가 피해를 본다는 알 겁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잘해봤자 본전이라는 것도요.” 그런 짬처리의 피해자들이 참고 응하는 건 결국 생계 탓이었다. 좆같다고 거절하면 어떤 일이 닥칠지 너무 뻔해서.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결국 회사원입니다.” “…….” “제가 정치인 지망생이라 국민의선택에 입사한 게 아니라, 월급 받으려고 당직자 공채에 지원하고 합격한 겁니다. 웬만한 중견 수준은 되니까요. 그리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뿐입니다.” 원래 공천이 유력했던 후보가 도망쳐서 내가 억지로 떠밀린 거다, 나도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핍박하실 일은 아니라고 본다. 여기까지 설명하고 입을 닫았다. 남은 건 아버지의 대답. ‘이만하면 설명이 됐으려나?’ 비록 지금 보여주는 행동은 무식하지만, 아버지는 배울 만큼 배운 편이었다. 대학도 나름 좋은 곳을 나왔고… 어머니의 임신이 아니었다면 학자가 됐을 거라는 말을 30년 동안 지겹게 떠 사람이기도 했다. “민서준.” 침착함을 되찾은 아버지가 날 나직이 불렀다. 이만하면 평화롭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엔 넌 월급 벌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공적 가치를 판 거다.” “예?” “내가 젊을 때 하버마스 파면서 밤 지새운 이유가 뭐겠냐? 조금 간지러운 말이긴 하다만, 자본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 인간,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서였어. 내가 다른 길을 택했으면 지금쯤 대학에서… 됐다.” 갑자기 하버마스가 왜 나와. “생계 때문에 정치를 해? 어쩔 수 없었다?” “……?” “나는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키웠는데. 되물으려다가 그냥 접었다.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걸 마침내 깨달은 탓이었다. ‘그냥 오지 말걸.’ 아무도 안 보는 칼럼 계약 좀 잘렸다고 자식 멱살까지 잡은 주제에, 돌연 점잖은 척하면서 공적 가치 운운하는 인간이랑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겠어. “민서준, 이번 일이 네 행동에 대해 반성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다행히 후보 사퇴하라는 말은 안 하는구나.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몸을 돌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집구석을 떠나고 싶어서. “이놈이, 애비가 말하는데 대답도 않고…!” 아버지가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소리도 그냥 씹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종종걸음으로 날 따라온 건 어머니. 실은 쫓아올 줄 알았다. 나한테 뭐라고 할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서준아. 너희 아버지 좀 이해하렴. 얼마나 속상하겠어.” “…….” “애초에 공무원하는 사람한테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하면 어떡하니? 공무원 정치중립의무 그게 있는데.” “직계가족은… 아니. 됐어요.” 아버지가 지랄하면 어머니가 대충 봉합하는 게 우리 집안의 패턴이었다. 어머니는 본인이 가정의 평온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하겠지? 사실 나도 어릴 땐 그나마 엄마한테 의존하면서 버텼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보단 어머니한테 긁히는 날이 더 많았다. “근데, 서준아. 넌 어차피 지는 선거에 왜 출마한 거니?” “말했잖아요, 아까.” “그랬나? 기억이 안 나네.” “하하….” “웃지 말고. 엄마가 걱정돼서 그래. 이런 말 미안한데, 솔직히 매산시민 중에 누가 널 시장으로 뽑아주겠어? 매산시는 무조건 다함께민주당인데. 또 인물론으로 승부하자니 넌 경력이… 그렇지?” 모처럼 만난 부모한테서 정말 크게 응원받는구나. 집에 찾아온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였다. 그래도 마냥 무의미한 짓거리는 아니었다. “앞으로는 이런 부탁 안 할게요. 약속합니다.” 부모님의 정털리는 행태 덕분에 최소한의 기대마저 버릴 수 있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만약에 두 사람이 갑자기 머리가 어떻게 돼서 내 선거운동을 헌신적으로 도와줬다면. 두고두고 빚쟁이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라면 언젠가 상환 명목으로 날 불러내서 무리한 부탁을 했을 거고. 이번에 확고히 선을 그어준 덕분에 그 지랄맞은 일은 안 겪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는 가족 없이 치르기로 했다. @@@ 당연히 선거캠프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여러분. 가족의 도움은 못 받을 것 같습니다.” “아이고, 후보님.” “걱정하시는 바는 알지만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더는 언급 마세요.” 평범한 선거운동원의 10인분… 어쩌면 그 이상을 해줄 수 있는 자원이 사라졌으니 분위기가 나빠지는 게 당연했다. 분위기만 흐려진 게 아니었다. 탈주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어… 후보님, 부디 건투하십시오. 캠프는 뉴페이스 위주로 꾸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실은 제가 신장결석이… 아이고, 온다. 와!” “아내가 갑자기 아프답니다.” 남아 있는 몇몇도 얼굴이 썩어 있었다. 그들을 쭉 돌아보다가 문득 웃으면서 말했다. “또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전 군면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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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결국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력도 일천하고, 가족한테도 버림받고, 심지어 면제자. 어쩌다 저런 결점으로 가득한 새끼가 공천을 받았나 싶겠지.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입을 놀렸다. “스무 살 때 간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 “장기이식 때문이었죠. 제 간을 받은 수혜자는 가족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장기간의 요양이 필요한 수술이라 재신검에서 5급 판정이 나왔습니다.” 나를 쳐다보는 표정에 의구심이 깃들어 있었다. 다행히 내가 예상한 반응이었다. 가족한테 간 떼어주는 건 나름 숭고하게 포장할 수 있는 일. 하지만 간까지 주고 가족한테 따돌림받는 건 기이한 일이었다. 간이식이 다른 장기에 비하면 비교적 안전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헌신이니까. “가족한테 장기까지 헌납한 인간이 왜 중요한 선거전에서 부모에게서 외면받는 건지 궁금하실 겁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아해하는 게 정상이죠.” 오래전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호구짓이었다. 그동안은 면제에 대해 떠들고 다닌 적도 없었다. 내가 한때 얼마나 호구였는지 알리기 싫어서. 하지만 잘만 이용하면 선거에서는 이익을 볼 수 있었다. [5급 전시근로역(처분사유 비공개)] 유권자들한테 뿌릴 공보물에 적힌 내 병역 사항이었다. 자세한 군면제 사유는 아직 밝히지 않기로 했다. 대한민국에 5급 전시근로역(옛날로 치면 제2국민역)이라는 어그로를 그냥 넘겨주는 정치인은 별로 없었다. 분명히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시비를 걸겠지. “활용하기에 따라 이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캠페인의 방향성이 어그로로 잡히는 순간이었다. 재미를 얼마나 볼 수 있을지 아직은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생각이었다. 이기면 당연히 좋겠지만. ‘지더라도 가족이랑 인연은 끊을 수 있어.’ 뭐라도 남기는 선거가 될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