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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대

당선됐더니 가족들이 후회한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4. 군대

현재 시점, 경쟁자인 다함께민주당 후보와 내 격차는 절망적이었다.     ------ [매산일보 - 한국정세연구소 공동 여론조사] 다함께민주당 : 편성엽: 59.2% 국민의선택 : 민서준: 21.8% 기타 / 무응답: 19.0% ------ D-14 여론조사였다.   실제로 투표함을 까면 21.8퍼센트만 나올 일은 없었다.   이건 그냥 내 인지도가 낮다는 뜻이었다.     “민서준 후보님. 내부조사 결과입니다만… 후보님의 관내 인지도는 15.4퍼센트입니다.” “지지율보다도 낮네요. 제가 듣보잡인 건 압니다.” “송구하지만.” “듣보 그 이하일 수도 있구요. 그것도 압니다.”     매산시 유권자 중 내 이름과 얼굴을 전부 아는 사람은 소수였다.   이미 선거벽보까지 붙어 있는데 이름값이 거의 없는 수준. 지지율이 21이라도 나온 게 신기한 지경이었다.     ‘투표함을 까면 이보다야 높게 나오겠지.’   지금까지 웬만하면 국선당을 찍었던 보수성향 유권자라고 해도,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하긴 힘들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당세회귀 현상이 발동해서 득표율이 꽤 나오겠지만.     “지금 추이 그대로면, 제 패배는 확정입니다.”     캠프 인사 중 누구도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뭔가 직언하는 사람도 없었다. 눈치가 보여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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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떠들기로 했다.     “우리가 원도심 위주로… 재래시장과 아파트 단지를 저인망식으로 훑으면 20퍼센트 후반까진 빠르게 오르긴 할 겁니다.” “…후보님.” “일주일쯤 지나면 특별한 계기 없이도 표가 결집하기 시작해서… 글쎄요. 실책이 없다는 전제로 30퍼센트까지.”     그러다 사전투표일이 되면 또 슬금슬금 올라서 33퍼 내외.   그리고 마침내 본투표 당일이 되면-   “출구조사에서 38퍼센트, 실제 최종 득표율은 40퍼센트 내외.” “따로 분석하신 겁니까?” “아뇨. 돈이 얼만데.”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도 동의합니다.”   무난하게 가면 40퍼 받고 패배.   굳이 시뮬레이션 따위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까 선거운동 따위는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선거운동은 당연히 중요했다.   병신처럼 하면 하루에 몇백 표씩 뜯겨나갈 수도 있거든.   반대되는 현상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뭐라도 해야 판세가 바뀐다는 건 변하지 않아.’     그래서 준비 중인 게 있었다.   좀 고루하긴 해도 선거는 뚜껑 열어봐야 안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니 나도 운동원들 다독여가면서 최선을…   “휴우!”     하필 이때 선거운동 알바의 한숨이 초를 쳤다.   급격하게 침울해지는 사무소.   다행히 나한텐 이럴 때 스펠용으로 쓰는 게 있었다.     바로 스마트폰에 저장된 가족사진이었다.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다섯 명의 가족 중 나만 쏙 빠진 사진이었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와 팔짱을 낀 채 뚱하게 서 있는 누나.   그리고 아버지의 곁에 서 있는 늦둥이 여동생.   사진만 보면… 솔직히 평범했다.   내가 이걸 사기진작 용도로 쓸 수 있는 건, 그때 어머니가 사진을 보내주면서 태연하게 떠든 몇 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서준아. 기억나니? 네 누나 변시 합격 기념으로 스페인 갔을 때… 어머?” “사진에 네가 왜 없니?” “아, 생각났다. 너 그때 바쁘다고 그랬잖아. 근데 서준아… 아무리 직장일이 바빠도 가족끼리 좋은 순간은 같이 하는 편이 좋은 건데… 휴. 됐어. 보나마나 엄마가 쓸데없는 잔소리한다고 불평이나 하겠지.” “그래도 너도 잘 생각해야지. 결국 곁에 남는 건 가족이다?” 그땐 진짜 어이가 없었지. 난 가족끼리 유럽에 다녀왔다는 사실조차 몰랐는데.   애초에 같이 가자고 제안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당연한 듯 “서준이가 바빠서 거절했다.”라며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꺼내서 나한테 훈계까지 했다.   어머니한테 조기 치매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어차피 다른 가족도 비슷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땐 자연스럽게 소외.   반면 가족으로서의 책임은 똑같이, 혹은 더 무겁게.   그게 가족 내에서 내 위치였다.     ‘다시 생각해도 좆같네.’     기분이야 더럽지만, 사기를 회복하는 효과는 탁월했다.   만약 내가 무난하게 운동하다가 처발린다면… 가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나 쉽게 상상할 수 있으니까.     “자! 끝까지 열심히 해봅시다.”     분노는 때로 훌륭한 동력이었다.     @@@     그날 오후. 세교지구 집중유세현장.   나랑 다함께민주당의 후보가 동타임에 유세를 펼치는 중이었다.   경쟁자의 선거송이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찍어봐요 편성엽!(샤방샤방♬) 행복해요 우리 동네!(샤방샤방♬) 기호 1번 편성엽!   역시 돈질을 꽤 했구나.   무조건이랑 질풍가도 바로 다음 티어의 곡을 쓰다니.   저작권료랑 개작비 합쳐서 최소 700만원 이상 쓰지 않았을까?   ‘나는 60만원짜린데.’     반면 나는 저작권료가 아예 없는 전래동요를 활용하고 있었다.   노래만 다른 게 아니었다.   현장에서 육안으로만 봐도 체급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민서준 후보님… 우리 완전 묻히게 생겼는데요?” 그나마 나랑 같이 ‘다녀주는’ 매산시의원 출마자의 우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머릿수의 차이부터 현격했다.   나는 기껏해야 네 명만 데리고 꼬물거리고 있었다.   반면 다민주 캠프에선 파란색 잠바를 입은 아줌마+아저씨 16명이 율동을 추고 있었다.   훈련을 잘 시켰는지 합이 아주 제법이었다.     “역시 격차가 조금 나네요.” “지금 조금…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조금.”   다함께민주당 매산시장 후보 편성엽. 그는 몹시 전형적인 단계를 밟아 올라온 로컬정치인이었다.   시의원 2회, 도의원 2회.   도의원 시절에는 경기도의회 부의장까지.   인구 25만쯤 되는 도시의 시장이라고 하면 이 정도 경력이 기본이었다.   실제로 능력도 있다고 봐야겠지?   16년 동안 지방의원으로 일하다 보면 수완이란 게 생기기 마련이라.   경쟁력은 나보다 확실히 우위였다,   “일 잘하는 젊은 일꾼~ 기호 1번 편성엽이 매산시민 여러분의 든든한 발이 되겠습니다! 기호 1번! 편성엽입니다!”     나이 환갑인 양반이 젊은 일꾼을 자처하는 건 좀 그렇지만.   그것도 단점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본인은 젊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건 개인의 자유였다.     ‘어차피 정면승부로는 못 이겨.’   그걸 알면서도 내가 괜히 편성엽 캠프 앞에서 기웃거리는 건 아니었다.   내 목적은 편성엽과 마주치는 것 그 자체.   집중유세가 대충 끝나자 기회가 돌아왔다.     “야, 우리 민 후보! 이렇게 만나나?”     패거리를 끌고 와서 나한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편성엽.   공식적으로는 초면인데 갑자기 반말… 괜찮았다. 나는 오히려 주눅 든 척 멈칫거리다가 그가 내민 손을 잡아줬다.     “예… 안녕하십니까.”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힘 좀 내야지!” “하하….” “이렇게 젊은 사람이랑 붙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나를 아래위로 가소롭게 훑어보는 눈길,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악력.   편성엽 이 양반은 나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이것도 불편하지 않았다. 되려 고마웠다.     “그건 그렇고… 민서준 후보?”   웃으면서 슬슬 운을 떼는 편성엽.   이 순간 내가 떠올린 건, 이 양반의 병역 기록이었다.     [육군 제7보병사단(칠성부대) 수색대대 병장 만기전역]     다민주 편성엽의 공보물에 적힌 내용이었다.   편성엽의 숲속위키를 보면, DMZ에서 북한애들이랑 서로 총 겨눈 채 대치했던 썰이 몹시 길고 장황하고 리얼하게 적혀 있었다.   그걸 사관들이 스스로 알아내서 적어줬을 리가 없지.    편성엽 본인이 어떻게든 자랑하고 싶어서 기록한 게 분명했다. 위키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정치인이 꼭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한테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민 후보, 군대는 다녀오셨나?” “하하… 그게.” “사지육신 멀쩡한데 당연히 갔다 왔겠지.”     본인의 강점을 내세울 기회가 오면 절대로 참지 않는다는 거. 못 참는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지도 몰랐다.   편성엽이 난데없이 이러는 건 아니었다.   이 양반은 그냥 내가 던진 미끼를 문 것뿐이었다.   [5급 전시근로역(처분사유 비공개)]   30대 보수정당 후보의 병역문제?   정치하는 인간이 이걸 안 물기는 아무래도 힘들었다.   물론 내 병역까지 안 건드려도 편성엽이 유리했다.   하지만 요즘 선거판의 메타는, 이기는 선거에서도 경쟁자를 잘근잘근 밟는 거였다.   미리 싹을 잘라놓는 느낌으로. 혹은 상대방의 허점을 후벼파서 본인의 사이다 행적을 추가하는 목적으로.   “편 후보님. 개인적인 질문은 조금.” “공직출마자 병역이행 사항이 개인적인 문제…? 민 후보, 말을 이상하게 하시네?” “…….” “군생활, 어디서 했어요?”     내 병역 정보를 뻔히 봤으면서도 “군생활 어디서?”라고 물어보는 저 태도.   면제자는 당신네 당에 더 많다고 받아치진 않았다.   오히려 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듯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 올리며 난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부 다 편성엽 보라고 하는 짓.   그러다 문득 정색하면서 말했다.     “편성엽 후보님… 송구하지만, 그건 개인신상 문제입니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라도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허?” “그럼 저는… 예, 이만.”     적당히 얼버무린 뒤 자리를 다급하게 피했다. 누구한테 연락하는 척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맞았다.   그래야 편성엽이 내 면제 사실을 더 열심히 공론화시켜줄 테니까.     '부탁합니다, 편 후보님.'     다행히 다민주 캠프에서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공개질의서] [국민의선택 민서준 후보는 전시근로역 지정 사유와 상세 병명, 신체검사 당시 의료 기록을 25만 매산시민 앞에 즉각 투명하게 공개하라!] -----     다음날 아침.   이름 모를 단체가 날 겨냥해서 발표한 공개 질의서였다.   공식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얘네한텐 나중에 꼭 보답해야겠구나.”     샤워도 할 겸 화장실 거울 앞에서 옷을 벗었다.     명치에서부터 시작되는, 역L자 모양의 수술 자국이 보였다.     오래전에 막내동생한테 간을 떼어주고 얻은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