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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간이식

당선됐더니 가족들이 후회한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5. 간이식

나한테 간을 받아갔을 때 막내는 초등학생이었다.   민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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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끼리는 사이가 꽤 좋은 부모님이 뒤늦게 낳은 늦둥이.   어떤 의미에선 누나보다 더 사랑받은 자식이었다.   민다인이야 부모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더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이라도 있었겠지만…   막내인 민다정은 오직 귀여움만 받으면 그만이었으니까.   특히 어머니는 민다인보다는 민다정을 확실히 더 예뻐했다.   나도 민다정이랑은 사이가 극악하게 나쁘진 않았다.     지금도 짧게나마 톡은 가능할 정도였다.   [나 오빠 선거 나가는 거 다 상관없거든? 근데 제발 내 이름은 꺼내지 마라] [알았다.] [왜 이러는지 알지? 나 괜히 정치색 묻으면 입장 개난감해져] [굳이 설명하지 마.] [나 올해는 진짜 진지하게 정규투어 승격 보고 있어. 알지?] [관심이 없어서 몰라.] [나한테 중요한 시기니까 조심해 경고야.]   민다정은 프로골퍼였다. 아직은 2부 투어에서 구르는 유망주지만.   내가 기호 2번 달고 출마하는데 불만이 없다는 것만 봐도 가족 중에선 선녀였다.   이만하면 민씨 일가 기준으로는 정상적인 인간.   그래도 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었다.     ‘경고라고?’ 과거에 간까지 떼어준 나한테 할 말은 아니었다.   장기 기증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후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자발적으로 떼어준 게 아니기에.     @@@     내가 장기를 뺏긴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다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는데.   이성을 잃고 울부짖는 목소리가 귀를 따갑게 찔렀다.     “서준아!!! 너 어디야? 뭐든 당장 그만두고 아주대병원으로 뛰어와… 빨리!” “알바 중인데.” “지금 그게 할 말이니! 너 미쳤어?” “이유를 말해줘야 가죠. 무슨 일…” “무슨 일이긴 무슨 일이야. 네 동생 다정이, 다정이가 지금 병원 실려와서 죽기 직전이란 말이야!!”     민다정은 그때 이미 주니어 골퍼였다.   민다인이 대학교 들어가면서 아낀 지출을 민다정의 골프에 쏟아붓는 느낌이었지.   혹시라도 골프장 오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난 건가 싶었다.   몇 번이나 이유를 물어봤지만 어머니는 그저 흐느낄 뿐이었다.   빨리 와, 네 동생 죽어, 빨리.   그래서 난 순진하게도 병원으로 향했다.   동생이 죽는다는 상상만으로도 눈시울이 화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도착하기 전에 죽으면 어쩌나… 속이 울렁거렸다.   병원에 가보니 실제로 민다정은 위독한 상태.     하지만 이유는 내 예상과 달리 교통사고 따위가 아니었다.     “약물유발성으로 급성간부전이래…! 지금 빌리루빈 수치가 너무 높아!” “약물?”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네 동생이야!” “…….” “간이 다 녹아버린다고!”     초등학생 여자앤데 급성간부전이라니.   민다정을 그렇게 만든 범인은 어머니였다.   고의는 아닌 듯했다.   자기 딴에는 사랑스러운 막내딸을 챙겨주고 싶었던 건지 녹차추출물이랑 한약을 부지런히 먹였다고…   적당히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됐겠지. 무슨 신진대사 촉진이라든가.   문제는 다정이가 초등학생이라는 거였다. 그것도 운동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미쳤어요?” “흐흑!” “민서준, 너 이 자식, 지금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냐!”   나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건기식과 한약 수발.   하지만 그 서포트를 너무 과하게 받은 여동생은 부작용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허탈하고, 화도 나서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부모가 내 손을 각각 붙잡았다.   마치 내가 도망 못 치도록 미리 붙들어 두는 것처럼.     “서준아. 48시간… 그 정도밖에 없나봐.” “48시간이요?” “간이식 수술 못 받으면, 간성뇌증 그걸로 죽을 거래. 의사선생님이 그랬어. 시간이 너무 없다, 서준아. 응? 응?”     다정이한테 급하게 간을 떼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준아. 지금 당장 검사부터 받자.” “네 엄마 말 들어라, 민서준! 지금 상황이 그렇게 쉽지가 않아.” “두 분은요?” “검사? 당연히 받았지! 넌 부모를 뭘로 보고…!” “여보, 그냥 있어. 일단 나는 지방간이라 안 된다. 네 엄마는 불일치고.” 부모님은 다정이한테 장기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다인이 옆에서 얼쩡거리길래 그쪽을 지그시 쳐다봤더니   아버지가 그 앞을 쓱 가로막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감히 망측한 발상 따위는 하지 말라는 것처럼.     “민서준, 네 누나는 안 된다.” “저는 되구요?” “지금 상황이 급한데 그런… 네 누나 다음 주에 중간고사 치는 거 모르냐? 상위권 로스쿨 가려면 학부 4년 내내 최소 4.0은 지켜야 된다. 근데 너는 어차피 한진ㄷ… 그렇게까지 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는 상황이잖냐.”   네 누나는 안 된다, 절대.   막내가 죽어가는 상황인데도, 아버지에게 누나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결국 남은 건 만만한 나.   동생이 죽는 건 나도 싫었다.   친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족. 그리고 부모처럼 재수없이 군 적도 없는 어린 막내.   그렇다고 갑자기 불러서 간을 떼주라니…   지금이야 알지만, 당시에는 명확한 실체를 몰랐던 좆같음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부모가 나를 붙들고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네가 간 안 주면 다정이 내일 밤 못 넘기고 죽는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다정이 저렇게 가면 넌 멀쩡히 살 수 있을 것 같니… 그게 안 통하자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추한 몰골로 처울더니.   결국 내 앞에 무릎까지 꿇은 두 사람이었다     “서준아!!” “내 딸 좀 살려줘라! 부탁한다!”     싫다고 말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간을 주지 않으면 동생이 죽는 건 틀림없는 사실.   이후로 나한테 쏟아질 원망과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이었다면 그냥 손절치고 병원을 떠났겠지?   하지만 당시엔 나도 멍청한 병신이었다. 그래서 결국-   “일단, 검사는 받을게요.” “고맙다!!”   도살장 끌려가는 심경으로 속행 검사에 응했다.   혈액형, 항체, 심전도…   초응급으로 진행했는데도 대략 6시간이 걸렸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전부 적합이었다.   마지막으로 코디네이터라는 사람이 나한테 물었다.     “본인 의지로 결정하신 거 맞습니까? 혹시 가족들이나 주변에서 은근히 눈치를 주거나 강요한 사실이 있나요?” 여기서라도 강압에 의한 결정이라고 대답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엄두도 안 났다.   검사받는 동안 또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이었다.   민다정은 눈동자랑 피부가 전부 노랗게 변한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자발 맞아요.”라고 떠밀리듯 대답했고,   병원에서 준 서류에도 내 손으로 서명했다.     “코노스에서 승인 떨어졌습니다. 바로 수술 진행하시죠.”   그렇게 난 동생한테 간을 떼어줬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체감으로는 별로 무사한 것 같지가 않았다.     “쿨럭, 쿨럭!”   복부 전체를 바위가 누르는 듯한 통증, 기침할 때마다 장기가 쏟아지는 기분.   갈증 때문에 죽겠는데 물도 마실 수 없었다.   이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닌가?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던 중, 가족들이 나타났다.   “수술은 잘 됐단다. 어쨌거나 이번에는 네가 고생했다.”     어쨌거나가 왜 붙는 거야.   물어볼 기력이 없어서 그냥 뒀다.   그러자 가족들은 허덕거리는 내 앞에서 뭐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근데 아빠. 서준이 쟤 그래도 군대는 안 가.” “그렇지. 잊고 있었다.” “병역처분 변경원 내면 5급으로 면제라고 나오는데?” “네 누나 말 들었냐, 서준아? …좋게, 그저 좋게 생각해라. 남들은 군대 빼려고 손가락도 자르고 치아도 뽑고 그런다는데 넌 동생 살리면서 떳떳하게 군대도 피하는 거잖냐. 다정이가 너한테 면제길을 열어준 걸 수도 있어.” “맞네, 다인 아빠. 길게 보면 이게 윈윈이지.”     윈윈. 면제길.   자기들 딴에는 위로랍시고 한 말이었겠지?   하지만 장기 뜯긴 채로 누워 있는 나한테 그냥 티배깅으로만 느껴졌다.   이 사람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가족이 떠나고 몇 시간 동안 혼자 울었다.   상복부에서 치미는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 배에는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터.   흉터 탓에 곤란할 때도 가끔 있었다.   사우나, 워터파크에 갈 때마다 수술자국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었거든.   그때마다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가족한테 간 바치고서도 쓰레기로 대우받는 비참한 신세가 새삼 떠올라서.     “이렇게 써먹을 기회가 올 줄은 몰랐는데.”   지금도 내 병역면제 이슈는 화제성을 키우는 중이었다.   내가 다민주 편성엽의 추궁을 받고 찌질하게 도망치는 쇼츠가 퍼진 덕분이었다.   이래서 숏폼이 좋았다. 실은 편집빨인데, 마치 본색을 들킨 것처럼 보이거든.   -“공직에 출마하는 사람은 도덕성과 신체적 건강함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30대 사지 멀쩡한 청년 정치인이 병역면제 사유를 숨기는 건 시민을 기만하는 행위이자 전형적인 특권의식 아닙니까!?”     다민주에서 장악한 지역 관변단체 하나는 내 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사설] 30대 청년 정치인의 병역 은폐, 매산시민은 '깜깜이 후보'를 원하지 않는다     지역언론사에서는 사설을 올렸다.   사설 따위 아무도 안 볼 것 같지만, 정당에서 공보 담당하는 애들은 좀 달랐다. 윗분들이 아직 중요하게 여겨서.   그리고 마침내.     [국민의선택이 매산시에 30대 청년을 공천했다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입니다. 청년이라는 탈을 쓰고 병역 사항조차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 후보가 인구 25만 매산시의 행정을 이끌겠다구요? 병역 의혹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민서준 후보는 즉시 면제 사유를 공개하고, 매산시민 앞에 해명하십시오. 매산시민은 진실을 원합니다.]     매산시 국회의원인 임현호(다민주)도 SNS에서 날 거론했다.   “이만하면 됐나?”     기초단체장 선거전에서 이보다 더 크게 주목받긴 힘들 터.   어차피 이젠 더 빌드업할 시간도 없었다.   방송토론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선관위에서 주최하는, 다함께민주당 편성엽과 나의 1대1 토론.     당연히 정책토론이나 하다가 끝날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