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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흉터

당선됐더니 가족들이 후회한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7. 흉터

카메라 앞에서 15초 동안 수술 자국을 보여줬다.      헤드셋 마이크를 잡고 있던 PD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고,   카메라맨은 잠깐 멈칫해 있더니 내 수술 자국을 줌인했다.   작가는 그냥 멍청한 표정. 그나마 편성엽 후보의 일그러진 면상이랑 비교하면 양호했다.     “이제 믿음이 좀 가십니까?”   토론은 창난 분위기 속에서 종료됐다.     “시청자… 여러분? 어떻게 보셨는지요. 매산시의 미래를 이끌어갈 적임자가 누구인지 검증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마무리까지 합쳐서 총 75분짜리 토론이었다.   하지만 그중 엑기스 분량은 많아봤자 1분 내외.   내가 족구랑 마라톤하는 사진을 들이밀면서 실실 쪼개는 편성엽 후보. 악에 받쳐서(받친 척하면서) 상의를 벗는 나.   그러자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사회자의 반응. 딱 여기까지만.   하지만 1분이면 장작으로 충분했다.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대기실 앞에서 날 기다리던 캠프인사의 표정이 꽤 밝았다.     “이만 돌아갑시다.”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하면서 복귀하려는데.   다민주의 편성엽이 다가오더니 분노한 얼굴로 날 붙잡았다.     “어이, 민 후보!”   당연하게도 편성엽 후보는 빡친 상태였다.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 핏발 선 눈깔.   강제로 아픈 가족사를 공개한 피해자는 난데 어째 이 양반이 더 억울해하는 것 같네.   본인이 당했다고 여겨서 저러는 거겠지만, 지금 와서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처음부터 나 낚으려고, 응? 저번에 군대 얘기 나왔을 때 안절부절못하는 척 연기한 거지? 오냐, 너 아주 배때지 예쁘게 잘- 쨌다! 젊은 사람이 정치질을 징그럽게 배웠어. 벌써부터 그러면 쓰나?” “편 후보님, 진정하시죠.” “진정? 크하학허!”     크하학허?   바보 같은 소리를 내는 게 좀 이상해서 편성엽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편성엽의 나이는 만 60세였다.   놀랍게도 기초단체장 출마자 중에서는 비교적 젊은 편.   하지만 그래봤자 60대는 60대였다.     ‘게다가 비만이야.’   키는 대충 170 턱걸이, 몸무게는 최소 85.    지금 보니 목이 유독 짧은 체형이었다.    “방송에서 배 까고 즙짜바자, 우리 매산시민들이 그거에 속지를 않아.” “편 후보님, 괜찮으십니까? 말씀하시는 게 좀 이상한데요.” “오히려 역풍각이야, 민 후보. 젊은 사람이 그걸 아나아 돼!”   발음도 어눌했고, 안색이 진짜 안 좋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중.   편성엽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배때지! 어어.”     심지어 나한테 삿대질하다가 잠깐 비틀거리기까지.     “편성엽 후보님? 진짜 괜찮습니까?” “당연, 하지.”     그런데 정작 편성엽 본인은 자기 몸상태가 어떤지 모르는 눈치였다.   벽면에 손을 짚은 채 부릅뜬 눈으로 날 노려볼 뿐.   이 인간, 아무리 봐도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다.     “편성엽 후보님.” “내가 화천에서 군대를.” “또 군댑니까? 그쯤 하세요.” “아니, 내가 사전투표에서 민 후보 당신 정도는, 음, 그때 가서 보자고.” “예. 근데 병원부터 가보시죠.” “뭔 병원.”   나는 물론 자기 측근들의 부축마저 거절하면서 씩씩거리는 편성엽.   다행히 그도 곧 안정을 되찾긴 했다.   그렇다고 완벽한 상태처럼 보이진 않았다.   저러다 진짜 쓰러지는 건 아닌지… 그래도 내가 병원에 끌고 갈 순 없었다.      “편 후보님? 선거보단 건강이 중요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병원행을 권한 뒤 떠났다.   뒤통수에서 편성엽이 뭐라고 지껄이는 소리도 무시했다.   내 입장에선 성공적이었던 매산시장 후보자 토론.   떡밥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시간 들여서 일일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스마트폰을 봤더니.   [부재중 전화 78건]     토론 중에 부재중이 쌓여 있었다.   그중 절반 가까이는 가족이 건 전화였다.     “라이브로 봤나. 잘됐네.”     최근 3년 동안 가족과 한 통화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였다.   톡도 꽤 밀려 있었는데, 내용은 뻔했다.     [너 진짜 엄마 죽는 꼴 보려고 이러니? 전화 좀 받아. 너 배 가른 거 엄마도 그때 가슴 찢어지게 아팠어. 근데 동생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던 거잖아. 네가 선뜻 나선 거면서 엄마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을 만들어야 했니?] [삼류 정치꾼처럼 방송에서 감성팔이를 하는구나. 너한테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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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준. 너 미쳤어? 왜 불필요하게 일을 키우고 그래?] [오빠. 전화해. 나 심각해.]   가족으로부터 이토록 열렬한 관심을 받아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답장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이대로 두면 선거운동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업무폰을 따로 가지고 다니긴 하는데, 현장에서 뛰다 보면 공사가 칼같이 구분되지 않았다. 정치가 특히 심했다. 본인이 공사를 철저히 구분한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이야 많지만.     다행히 이것도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가족 그룹> 수신 차단, 알림 끄기.     화면 몇 번 터치하는 것만으로 가족을 전부 차단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진작 해야 했던 일.   오늘은 마음 편히 쉬고, 내일부턴 다시 선거운동에 집중할 예정이었다. @@@     “사람 같지도 않은 놈!”     매산시청 시민협력과장 민태기가 분을 못 참고 폰을 집어던졌다.   퍽! 탁! 짜개객!   액정에 금이 갔지만 지금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 자식이, 토론도 끝났는데 왜 전화를 안 받아?” “다인 아빠. 이제 어쩔 거야?”   민서준이 방송토론에서 저지른 돌발행동.   그 여파로 집구석 분위기가 아주 박살이 나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민다인.   티슈로 눈물을 훔치는 아내 김정란.   그나마 민다정은 대회 때문에 군산에 체류하고 있지만, 통화해보니 그 아이도 역시 놀란 상태였다.   평소엔 그저 화목한 가족이었는데.     “서준이놈 한 명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대체.”     미쳐버린 민서준 때문에 다들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민태기는 가장으로서 이 난리를 수습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민서준은 방송에서 거하게 사고 치고서 전화도 안 받는 중이었다.     “아빠. 멍하게 있지 말고 민서준 걔 선거사무소라도 찾아가.” “나도 어딘지 모른다.” “몰라? 그걸 지금 말이라고….” “다, 다인아?” “아… 미안.”     이러다간 가족끼리 싸울 판이었다.   민태기는 요동치는 심장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표정을 굳혔다. 일단은… 그래.   어쩌면 지금처럼 호들갑 떨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알겠지만, 방송토론이 시청률이 높지가 않아. 68번 채널에서 하는 토론을 솔직히 몇 명이나 챙겨보겠냐?” “이미 실트 떴어. 아빠.” “뭐?” “직접 확인해….”     민다인의 조금은 신경질적인 지적.   민태기는 잠깐 울컥했지만, 딸이 틀린 지적을 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이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건수였다.   방송토론에서 옷을 벗어? 그리고 가족사까지 떠들어?   졸지에 민씨 일가는, 장기 떼어준 아들의 선거운동조차 안 도와주는 막장가족이 됐다.   물론 민태기의 생각은 달랐다. 가족들이 따돌린 게 아니라, 민서준 그 녀석이 홀로 겉돌면서 점점 가족과 멀어진 측면도 컸다.    하지만 대중이 거기까지 관심을 가질 리가.   “내일이면 뉴스에도 나올 거야. 돌발영상 이런 류로.” “허어.” “커뮤니티에서 화제되고, 기자들이 물고… 정치이슈는 이게 수순이잖아.”     끔찍했다. 막말 한 번만 잘못 뱉어도 영원히 박제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다인 아빠, 우리 다정이 어떡해?” “후우.” “걔는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잖아! 서준이가 혹시 몰라서 그런 걸까?”   민다정. 부부가 장녀인 민다인 못지않게 공들여 기른 소중한 막내딸.   직업은 프로골퍼로, 올해는 KLPGA 2부인 드림투어에서 나름 상위권이었다. 드림투어는 상금 1등도 적자 구간이긴 한데, 그래도 다정이는 유망주라 미래라는 게 있었다.   민태기-김정란 부부도 시간 날 때마다 막내의 뒷바라지를 해줬고.     “근데 오빠란 놈이 초를 친 거지.” “진짜 미쳤어. 도와주진 못할망정!”   서준이 녀석이 부모한테 섭섭함을 느끼는 건…   이제 부부도 약간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동생한테까지 이토록 잔인한 짓을 저지를 이유가 있나? 졸지에 부모리스크 있는 선수가 되지 않았나.   골프는 평판과 멘탈이 중요한 스포츠였다. 시드권이 간당간당한 순위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여동생을 가련히 여긴다면 이럴 순 없는 거였다. 중요한 순간에 서로 돕는 게 가족 아닌가?   관심 좀 끌어보겠다고 동생 앞길까지 방해하는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됐다.     “용납해서도 안 되고.” “맞아. 다인 아빠.”   민태기, 김정란 부부가 나름 비장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저번에는 살짝 삐딱하게 굴었던 민다인도 이번만큼은 적극적으로 편을 들었다.     “엄마. 힘내. 아빠도.” “고마워, 다인아. 솔직히 요 며칠은… 정류장에서 서준이 혼자 출근 인사하는 거 보면서 좀 안쓰럽기도 했다? 힘내라고 인사라도 건네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고. 근데 지금 보니 내가 너무 안일하고 순진했지.” “괜찮아. 엄마 잘못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딸.”   제 엄마를 위로하는 민다인, 애써 웃으면서 한숨을 내쉬는 김정란.   그리고 그런 모녀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민태기.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가 없었다.     『매산시장 토론회 감정싸움 과열… 민서준 후보, 생방송 중 복부 흉터 노출 파문』     이딴 기사가 이미 뜨기 시작했으니까.   유튜브도 가족에겐 걱정거리였다. 알고리즘 때문인지 서준이놈이 옷 벗고 수술자국 보여주는 쇼츠가 메인에 떠 있었다.   조회수도 벌써 10만에 육박했다.   방송토론에서 민서준이 벌인 추태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증거.     “웃기는 놈. 내가 기증하라고 협박이라도 했나?” “우리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 다인 아빠. 내 기억엔 서준이가 군대 얘기 먼저 꺼내면서 우리 안심시켰던 것 같은데?” “정치욕심이 애를 망친 거야. 그것밖에 없어.”   민태기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답답하게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억 속에는,   이렇게까지 원망받을 만큼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부부는 솔직히 억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