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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의 주딱이 되었다(4)

들키지 않는 사제 사칭범이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갤러리의 주딱이 되었다(4)

위급한 환자들이 일시에 몰려들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무장한 병사였다.  “허억.. 누, 누가 제발 독한 술 좀 가져 와줘..”  의식을 잃지 않은 병사 중에선 차마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술을 찾기도 했다.  혹여 주변에서 전쟁이라도 벌어진 건가 싶었지만 무기에 찔린 것 치고 상처가 투박했다.  흡사 얼마 전 오크에게 당했던 환자들을 다시 보는 기분이었다.  ‘오크들은 전부 토벌했다고 들었는데.’  의문이 들었지만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환자들을 한곳에 모아 주십시오.”  병사들이 들것을 옮기는 사이 천천히 힘을 끌어올렸다.  ‘힐링 웨이브.’  화아악-  화사한 빛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빛에 휩싸인 병사들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고, 고통에 신음하던 목소리도 하나둘 잦아들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치료를 끝내기가 무섭게 새로운 부상자들이 연달아 들어왔다.  ‘힐링 웨이브.’  ‘힐링 웨이브..!’  겨우 상황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힐링 웨이브를 세 번 정도 더 펼친 뒤였다.  “영지 내에서 던전이 발견됐습니다.”  “던전, 말씀이십니까?”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티를 내지 않고 갤러리에 검색했다.  원하는 정보는 탭으로 한 차례 걸러 낸 다음 페이지를 몇 번이나 넘기고서 찾을 수 있었다.   제목 : 던전개론(1) 글쓴이 : 던전이답이다  던전은 실제하는 현실의 공간이 아니다.  현실과 연결된 이계의 공간. 그게 흔히 말하는 던전인 것이다. . . (후략)   던전의 정의를 파악하는 것은 첫 두 줄이면 충분했다.  다만 궁금한 것은 병사들이 어째서 던전에 들어갔느냐였다.  그 이유는 병사가 눈치를 보며 털어놓은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실은, 영주님께서 사제님의 짐을 찾으면 포상을 크게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크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발견한 동굴에 짐이 있지 않을까 하고..”  “…”  “물론 들어간 곳이 던전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결국 나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짐을 찾겠다고 병사들이 다친 셈이다.  “영주님에게 전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다쳐 가면서 회수할 만큼 귀중한 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만약 제 짐을 찾아서 오는 날에는 그냥 다른 도시로 가버리겠습니다.”  물론 공갈이었다.  하지만 영주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잘 먹힐 터였다.  “자네 짐이야 그렇다 쳐도 던전이 해결될 때 까지 고생 좀 하겠구만.”  마가렛 사제가 혀를 차며 말했다.  흡사 던전을 방치하면 큰일이라도 벌어진다는 말투였다.  몇 줄 읽지 않았던 던전개론의 내용을 마저 확인했다.  … 던전은 생성 되고 일정 시간이 경과 할 때 마다 내부의 몬스터를 배출 하게 된다.  그리고 이 횟수가 누적 될 경우, 던전 안에서 모든 몬스터가 한꺼번에 배출 되는데, 이를 던전 역류 혹은 몬스터 웨이브라고 부른다.  역류를 막기 위한 방법은 대략 두 가지이다. …   ‘뭔가 익숙하다 했더니.’  이와 비슷한 것을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탑.  어느 날 고향에 세워지게 된 정체불명의 구조물.  던전은 이 구조물과 닮아 있었다.  ‘사실 그냥 탑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군.’  탑 역시 외부와 연관 없는 공간이 이어져 있었고 층수를 갱신 하지 못하면 결국 무너지며 몬스터가 쏟아졌다.  글에서 설명하는 던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가.’  관련이 있을 법도 했지만 던전의 실물도 보지 않고 판단하긴 어려웠다.  갤러리에 물어볼까 싶기도 했으나, 탑의 존재를 모르는 이용자들에게 질문해 봐야 제대로 된 답을 얻기도 힘들 거였고.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했다.  “마가렛 사제님, 출장 좀 다녀오겠습니다.”  직접 확인하면 그만이다.  그러자 마가렛 사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거였다.  “우리는 외근 수당이 없으니 나중에 딴말 하지 말게.”  “그건 안타깝군요.”  참고로 진심이었다.  표정은 전혀 아닌 듯이 지었지만 말이다.   …   “타시죠, 사제님.” “그럼, 감사히 타겠습니다.”  병사가 타라고 권한 마차는 물자가 가득 실린 허름한 짐마차였다.  당연 승차감이 좋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걸어 가는 것 보다는 나을 거였다.  “조심히 다녀오게나.”  한편 배웅 나온 마가렛 사제는 노파심인지 걱정하는 태도였다.  “또 괜히 성질 난다고 진상에게 그러던 것처럼 오크에게 소리치지 말고.” “제가 그 정도로 겁이 없겠습니까.”  없었다.  “하긴, 목숨이 아까우면 그러진 않겠지.”  아깝긴 했어도 그러긴 할 거였다.  “후후, 그럼 며칠 있다 뵙겠습니다.” “다녀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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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짧게 마쳤다.  슬슬 출발할 시간이 된 것이다.  덜컥, 덜컥-  마차는 행군 속도에 맞춰 점차 바퀴를 굴렸다.  도시 입구에서 배웅을 하던 마가렛 사제의 모습이 오래지 않아 보이지 않게 됐을 무렵, 마차 옆을 걷던 병사가 가까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 속도라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 할 겁니다. 한숨 주무십시오.”  병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하지만 다들 힘들게 행군 하고 있는 마당에 자는 것은 눈치가 보여 선선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잠이 오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그냥 경치 구경이나 하지요.” “옙.”  ‘그나저나 이 속도로 해가 지기 전이면, 꽤 길군.’  정오가 조금 넘어서 출발 했으니 대략 거리는 15 키로 미터쯤 될까.  도시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거리였다.  ‘이 정도 거리라면 방치해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한데.’  냉큼 병사들을 따라 외근 나온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다급히 병사를 보낸 영주의 행동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길을 따라 펼쳐진 풍경을 보고 나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농부가 있었군.’  하긴 모든 사람이 도시 내에서 살지는 않을 거였다.  거기다 주변의 농경지 까지 생각하면 영주 입장도 이해가 갔다.  “밀밭이군요.”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내가 밀밭에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병사가 말을 걸어왔다.  “참고로 저희 부모님 밭입니다. 초가을이 되면 팔다 남은 밀로 항상 맥주를 담그는데 보리 맥주와는 다른 각별한 맛이 나지요.”  “그거,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군요.”  “하하, 사제님이라면 언제든지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말을 붙인 병사는 꽤나 살가운 태도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친근한 게 아닌가 싶던 순간, 병사의 얼굴이 낯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게 얼굴이 낯익을 만한 병사라면 한 부류밖에 없었다.  “..저번에 치료 받으셨던 병사분이셨군요.” “하하, 맞습니다. 기억하시는군요.”  기억해내자 병사는 화색을 띠었다.  “그때는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방금은 빈말이 아니니 꼭 와 주십시오.” “그러죠.”  병사는 주변 눈치를 살피고는 다시 대열로 돌아갔다.  아마 감사하다는 인사를 꺼내기 위해 잠깐 자리를 벗어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직접 기른 밀로 담근 술이라.’  나쁘지 않겠군.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술 자체보다 직접 키운 밀로 담갔다는 점이었다.  ‘듣기로는 힐을 뿌리면 작물도 잘 자란다고 하던데.’  교회를 받게 된다면 텃밭을 가꾸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텃밭에 심을 작물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도착했습니다, 사제님.”  병사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살폈다.  멀지 않은 곳에 수상한 기운이 풍기는 동굴이 보였다.  “보시는 동굴이 던전 입구 입니다. 보초를 세워 두긴 했으나 조심하십시오. 그러실 일은 없겠지만,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죠.”  병사의 말에 수긍 했다.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오크 여럿을 홀로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둘 정도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들어가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  나중에 병사들을 따라 진입할 적당한 명분을 찾기로 하고, 물자를 옮기거나 천막을 치는 등 잡일에 손을 거들었다.  “어엇, 사제님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들 고생하시는데 어찌 구경만 하고 있겠습니까.”  게다가 자신 역시 복무 했던 시절이 있어서 안다. 다른 사람들은 뺑이 치는데 누구 하나만 편히 쉬고 있으면 그만큼 꼴 받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병사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꽤나 낯선 모양이었다.  “원래 사제님들은 다 저러시나?”  “그럴 리가. 내가 용병 생활을 오래 해서 아는데 기적을 쓰실 줄 아는 사제님들은 대개 발도 고개도 무거우시다고.”  “아니, 사제님이 혹여 들으시면 어쩌려고.”  “사제님들은 항상 조용히 지내시느라 소음이 조금만 있어도 잘 못 들으시니 걱정 마.”  “그, 그래?”  참고로 잘 들렸다.  ‘아무래도 이곳에서도 힐러 취급은 비슷한 모양이군.’  고향 땅에서는 힐러를 힐룡인 이라고 불러댔다.  병사가 말한 것처럼 같이 탑을 오르는 주제에 고개를 뻣뻣하게 세워 유래된 말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단 말이지.’  사지나 다름 없는 장소를 함께 등반하는 동료의 빈정을 괜히 살 필요는 없었다.  정작 진짜 위험해지는 순간 동료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 지 뻔한 일이었으니까.  “후, 이게 끝입니다 사제 님. 고생하셨습니다.”  물자를 모조리 옮기고 나자, 마침 천막을 치던 병사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일을 끝마쳤다.  천막을 배정 받은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사제님께서 지내실 천막입니다.”  천막은 넓었다.  하지만 내부를 둘러보자 눈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넓은 천막 안에는 고작 모포 하나만 놓여 있었다.  모포가 적어서 불만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넓은 천막을 저 혼자 쓰는 모양입니다.”  “하하, 사제님은 편히 쉬셔야죠.”  고개를 저었다.  사제 행세를 하는 동안 특별 대우를 대놓고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병사와 함께 자도록 하죠. 이런 장소에서 까지 특별 대우를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불편하시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로 찡찡거릴 거면 고추를 떼야죠.”  “큽..”  병사가 황급히 입을 가렸다.  다행히 천박한 농담이 효과가 있었는지, 병사의 태도도 한결 편해졌다.  결국 천막에는 병사들이 사용할 모포 몇 장이 추가로 들어왔다.  “..아참, 던전 토벌은 내일 점심 전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오늘 가지 않는 건, 날이 늦어서 그런가요?”  “날은 크게 상관없습니다. 저도 던전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던전 내부의 시간대는 일단 고정되어 있으니까요.”  병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다만 지금 바로 출발하지 않는 건 만전의 상태에서 들어가는 편이 좋기도 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인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지금도 병사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데, 병력이 더 오는 겁니까?”  “병력이라기보다는..”  병사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기사님께서 오십니다.”  기사.  혹 위계가 높은 기사라도 오는 걸까.  아무리 기사라지만 지나치게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영주님의 따님이십니다.”  어려울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