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사칭범이되었다(2)
사제 사칭범이되었다(2)
“그래.” 사제냐는 아이의 물음에 짧게 답했다. “그럼 꽃의 사제님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야 꽃의 여신님을 믿는 사제님들은 옷에 이렇게 예쁜 꽃무늬를 넣는다고 들었거든요!” 아이는 내 셔츠가 마음에 들었는지 꽃무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보는 눈이 있는 꼬마로군.’ 애착 셔츠를 칭찬받자 기분이 퍽 좋아졌다. 당연히 꽃무늬 옷을 입는다는 꽃의 여신교에 대한 호감이 오르는 것은 덤이었다. ‘꽃의 여신이라. 나쁘지 않겠어.’ 자연스럽게 사칭할 종교도 정해졌다. “그래, 꽃의 여신님을 모시고 있단다.” 비록 지금부터 모시게 되었지만 말이다. … 여관 주인은 말끔하게 나은 아이의 이마를 연신 살폈다. 실밥을 꿰맸던 자국은 물론이고 상처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세상에..” 몇 번이나 아이의 이마를 쓸어본 끝에야 여관 주인은 안도했다. 그러나 이내 무엇인가 고민하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어떻게 보답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약소하지만 헌금이라도.” “아뇨, 마음만 받겠습니다.” 진짜 마음이야 숙박비를 돌려받고 싶었다. 하지만 사제 연기를 하는 주제에 사제답지 못한 행동을 할 수는 없어 애써 거절했다. 대신 다른 부탁을 꺼냈다. “정 마음에 걸리신다면 도시 내 치료소 위치만 알려주시죠.” “치료소를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분간 도시에 머무르려고 합니다.” 틀린 말은 없었다. 머물러야 하는 것도 맞았고, 개인적인 사정인 것도 맞았다. “그러니 그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합니다.” 일단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이곳에 머무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관 주인은 흡사 사제의 표본이라도 보았다는 듯 감격한 눈치였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알려드려야죠! 치료소 가는 길이 조금 복잡하긴 한데 걱정 마세요.” 그러더니 숀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숀 이 녀석이 잘 안내해드릴 거예요.” “..위치만 알려 주셔도 괜찮습니다.” 괜히 어린 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것 같아 거절하려는 찰나 였다. “헤헤. 어차피 근처에 들를 일이 있어서 괜찮아요, 사제님!”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숀이 먼저 괜찮다며 나섰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마침 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마냥 사양하기도 무엇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동행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다 먹지 못한 조식을 마저 먹고, 여관을 나오며 본 도시의 풍경은 꽤나 분주해 보였다. 상인들은 가판대에 물건을 늘어놓았고, 길거리에서는 채소 따위를 실은 수레가 쉴 새 없이 오갔다. 숀은 익숙한 듯 수레와 사람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그 뒤를 따라붙으며 물었다. “치료소가 제법 먼 곳에 있나 보구나?” “아뇨 길이 어렵고 복잡해서 그렇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 굳이 치료소를 복잡한 곳에 둘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해답은 금방 들을 수 있었다. “원래는 눈에 띄는 곳에 있었다고 하는데 사제 할머니가 치유의 기적을 사용 하실 수 있게 된 이후로 외지인이 너무 자주 찾아 온다며 영주 님이 위치를 옮기게 했데요. 정작 주민들이 치료를 못 받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과연 일리 있는 이유 였다. 거기다 숀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는 유용하기 까지 했다. 갤러리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도시의 소소한 정보가 작은 입을 통해 쏙쏙 튀어나왔다. ‘치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제가 드물다고 들었지만, 이 넓은 도시에 고작 한 명인 건가.’ 그마저도 외부에서 사람이 몰릴 정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해 돈은 잘 벌릴 것 같아 보였다. 도시 외곽을 향해 몇 번 길을 돌아서 갔을까.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저기예요.” 숀의 손끝은 누가 봐도 커다랗기만 할 뿐 가정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확실히 꽁꽁 숨기긴 한 모양이었다. “그럼 저는 볼일이 있어서 가볼게요!” 치료소 앞까지 도착하자 숀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근처에 볼일이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숀은 정말 치료소 앞까지만 안내하고 시장 쪽으로 달려갔다. 아이를 배웅한 뒤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약초 냄새와 희미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현대의 병원이나 치료원에 비하면 날 것에 가까운 냄새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공간을 가득 채운 냄새와 달리 치료소 내부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기침을 하는 노인과 손목을 감싸쥔 청년 정도가 의자에 앉아 처치를 받고 있었다. 가벼운 질환이나 상처는 약을 통해 해결하는 모양이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찾아 오셨나요?” 내부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막 청년을 처치한 여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꽃의 여신 이리스 님을 모시는 종, 플라위 입니다.” 대충 지은 이름이지만 그럼에도 제법 그럴듯하게 지었다는 생각에 내심 만족스러웠다. “꽃의 사제셨군요.” 여사제는 꽃무늬 셔츠를 확인하고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말을 돌리지 않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 “면접 보러 왔습니다.” “예?” 잠시 당황하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 치료소가 그렇게 넉넉하지는 못해서요. 사제 님을 새로 모실 수 있을지는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 돌려 말하지만 명백한 거절이었다. 하지만 이걸 보고도 거절 하진 않을 거라 믿었다. “비록 보잘것 없으나 재주가 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화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펼친 손바닥 위로 화사한 빛이 피어났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빛을 발하는 손으로 모였다. 보기 드문 치유의 기적(아님)에 치료소 안이 잠시 술렁였다. 곤란해하던 여사제의 눈 역시 휘둥그레졌다. “치유의 기적..” “꽃의 여신께서 보우하사, 미약하게나마 허락 받았습니다.” 새삼스럽지만 구라 였다. 여사제는 손 위에 맺힌 빛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다급히 치료소 안쪽으로 들어간 여사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늙은 여사제와 함께 돌아왔다. 다만 할머니 사제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기 마련인 인자한 외모는 아니었다. 외려 깐깐한 늙은이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게다가 피로해 보이는 안색이 그런 인상을 더욱 두텁게 만들고 있었다. “치유의 기적을 사용할 수 있다고?” 노사제는 대뜸 본론부터 꺼냈다. 심지어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한번 보여주게.” “그러죠.” 약간은 긴장하며 힐을 재차 사용 했다. 화악- 밝은 빛이 손 위에서 피어났다. 노사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피어오른 빛을 한참 살폈다. 혹시나 치유의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챈 걸까. 제 발이 저리기 시작했지만, 이내 노사제의 굳어 있던 표정이 풀렸다. “잘됐군.” “예?” “당장 돕게나.” “..그러죠.”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사제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라면 들킬 걱정은 정말 없겠군.’ 갤러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치유의 기적을 사용할 수 있는 사제가 도시에는 나 뿐이라 힘에 부치던 참이었는데, 가이아께서 도우셨어.” 노사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거침없이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향했다. 도달한 곳은 누가 봐도 중환자실로 보이는, 분리 된 별도의 병실이었다. 열고 들어간 병실 내부는 꽤 참혹했다. 침대마다 붕대와 부목을 두른 환자들이 누워 있었다.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이번 주조차 넘기지 못할 환자만 자그마치 여덟 명이었다. “허. 집채만 한 괴물이라도 만났답니까?” “오우거였다면 시체도 못 건졌겠지. 오크 무리였네.” “..그렇군요.” “그래도 급한 불은 껐어. 지금 남아 있는 환자들은 오늘 하루 버틸 정도는 되니 말이야.” 그제서야 노사제의 피로한 안색이 이해됐다. 당장 죽을 위기였던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살리느라 있는 힘 없는 힘을 모조리 쥐어짠 탓이었다. ‘노인 혹사가 따로 없군.’ 괜히 여관집 딸아이가 치유 기적을 받지 못한 채 돌아온 게 아니었다. “그럼 당장 치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간 끌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힐을 끌어 올렸다. 다만 운용 방식은 평소의 것과 조금 달랐다. “무리해서 치료하지는 말게, 당장 명줄만 연장하는 식이어도 상관 없으니..” 노사제는 말을 미처 잇지 못했다. 말을 잇기도 전에 병실 내부를 가득 채우듯 화사한 빛이 퍼졌기 때문이다. ‘힐링 웨이브.’ 하나 하나 치료하기에는 숫자가 많아 시전한 광역 힐이었지만, 효과는 발군이었다. 뭉개진 살이 아물고 손상된 장기가 회복 됐다. 환자들의 거칠고 위태롭던 숨소리도 차츰 잦아들었다. 치료가 끝난 것은 병실을 가득 채우던 빛이 완전히 사그라든 뒤였다. “끝났습니다.” “..벌써 끝났다고?” 노사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대답 대신 가장 가까운 환자의 붕대를 걷어냈다. 벌어졌던 상처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있었다. 다른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노사제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지 침상 사이를 빠르게 돌아다니며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상처가 있었던 부위를 촉진 하기도 했고 맥박을 다시 짚거나 눈꺼풀을 열어 동공까지 살폈다. 확인할 때마다 굳어 있던 표정에는 경악만 더해졌다. “허..” 노사제는 안면을 쓸어내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네, 진작 안 나타나고 왜 이제야 나타났나?” “민들레 홀씨가 떨어질 자리를 어찌 스스로 정할 수 있겠습니까. ” “염병.” 노사제는 썩은 표정으로 욕을 뱉었다. 제법 사제다운 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모든 반응이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를 수는 없었다. ‘일단은 합격인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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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제의 반응에 그리 여기며 기념 삼아 갤러리에 글을 작성했다. 제목 : 취직 했습니다. 작성자 : ㅇㅇ(123.123)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네요. [사제한테 안 들켰음?] ㄴ[아무 눈치도 못 챈 것 같습니다. 대놓고 썼는데도 모르네요.] ㄴ[너는 미리 숨 오래 참기 연습해라..] ㄴ[왜죠?] ㄴ[(눈치.. 콘)] ㄴ[풍!!!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