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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사칭범이 되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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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사칭범이 되었다(4)

이번에도 이른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었다.  한가롭게 조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으므로 빵 한 덩이만 챙긴 뒤 곧장 밖으로 나섰다.  향한 곳은 치료소가 아닌 시장이었다.  “참나무 조각 얼마입니까.” “동화 반 개만 주쇼.” “..거슬러 주시죠.”  동화 반 개에 대한 개념을 몰라 동화 하나를 그대로 건네니 상인은 잘려나간 동화를 건넸다.  ‘이래서 동화 반 개였군.’  한국이었다면 생각도 못할 방식이었다.  한다 쳐도 화폐 훼손으로 잡혀 가지나 않으면 다행이 아닐까.  ‘이제 조각을 할 칼만 사면 되겠군.’  나무 조각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칼이었다.  “..이 작은 칼이 정말 은화 한 닢이 맞습니까?”  “작아도 쇠로 만든 데다 날까지 세운 물건이오. 은화 한 개면 정가가 맞지.”  혹시나 바가지를 쓰는 걸까 갤러리에 묻기도 했다.   [정가 맞음ㅇㅇ 여긴 쇠가 존나 귀하고, 제철 기술도 발달 못해서 쇠로 만든 건 다 비쌈] [특히 날카로운 검은 종류 불문 비싸다네. 장인들이 무기의 수를 조절하고 기술 또한 베풀지 않으려 하니 말일세.]   하지만 바가지가 아니라는 말에 한숨을 쉬며 가격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지출이긴 했지만, 거의 텅 빈 주머니에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반응일 것이다.  그나마 직장을 일찍 구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으로 일터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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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출근했군.”  이는 다름 아닌 출근하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흡사 노예가 도망치기라도 할까 걱정되었다는 듯이.  “..혹시 오지 않을까 의심하신 겁니까?”  “그만한 힘을 다룰 줄 아는 놈이 여태 방랑하고 다녔다 하는데 그럼 순순히 믿겠나? 심지어 아쉬울 것도 없을 놈인데.”  일단 돈이 아쉬운 놈이었지만 차마 내색하지는 않았다.  노사제를 대동하고 들어간 치료소의 내부는 어제와 달리 고요했다.  ‘잘됐군.’  마침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치료소 주변 좀 눈에 익힐 겸 나갔다 오겠습니다.”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거참, 좀 믿으십시오 사제님.”  이제는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노사제의 의심을 피해 치료소 뒤편으로 숨었다.  ‘햇빛도 잘 들고, 이목에도 안 띄고 좋군.’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시장에서 구매했던 참나무 조각과 조각칼 대용으로 구매한 대거를 꺼내 손에 쥐었다.  마침 주변에는 민들레꽃이 활짝 피어 있었기에, 실물을 본보기 삼아 형태를 잡을 수 있었다.  사각- 사각-  ..서걱.  ‘흠.’  물론 조각에 익숙하지 않아 손을 몇 번 베이기도 했다.  하지만 즉각 자기 치유를 하며 조각을 이어나갔다.  “뭘 그리 숨어서 하나 했더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칼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노사제가 허리를 숙인 채 손에 들린 나무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자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찾은 모양이다.  ‘곤란하게 됐군.’  아니나 다를까.  노사제는 나무판 위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민들레 형상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심볼 아닌가?”  “그렇습니다.”  “근데 그걸 왜 직접 만들고 있나?”  변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토해졌다.  하다 보니 변명도 제법 능숙해진 모양이었다.  “..오크를 조우해 도망치느라 짐을 잃었습니다. 심볼도 그때 함께 잃어버렸지요.”  “그래서 직접 만들고 있다는 건가?”  “꽃의 교회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재발급을 받았겠지만, 이 근방에는 없더군요.”  노사제는 턱을 쓰다듬으며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수도나 성지가 아니면 꽃의 교회를 보는 것은 힘들지.”  다행히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떠돌이 사제라면 충분히 겪을 법한 일이라 여기는 듯했다.  의심이 풀린 노사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각을 이어 갔다.  ‘..하다 보니 꽤 재밌군.’  손가락도 몇 번 베이다 보니 조각 실력도 일취월장하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잠시 뒤 둥근 나무판 위로 민들레꽃 한 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참고용으로 올라왔던 사진보다는 엉성하긴 했지만, 일단 누가 봐도 민들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갤러리에서 본 설명에 따르면 진짜 심볼에서는 기적 특유의 기운이 묻어 있다고 했다.  형태만 똑같이 깎는다고 심볼이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기운이 필요하다면 넣으면 그만이지.’  형태를 잡은 심볼 위로 손을 얹었다.  화악-  손에서 피어난 빛이 참나무 조각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축성을 할 줄 아는군.”  노사제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축성?’  그저 심볼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힐을 불어넣고 있을 뿐이었으나 노사제의 눈에는 이것이 축성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적어도, 틀린 방법은 아니라는 거군.’  나름 확신을 얻고 계속해서 힘을 불어넣자 음각된 민들레가 희미한 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이미 완성됐으니 좀 작작 불어넣게. 성물이라도 만들다 죽을 셈인가?”  노사제가 손목을 붙잡아 말렸다.  “..열중하다 보니 과했나 봅니다.” “두 번 열중하면 성물 만들다 진짜 죽겠구만.”  그제야 힘을 거두었다.  그리고 완성된 심볼을 들어 올려 가만히 살폈다.  ‘빛나는군.’  음각된 민들레는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희미하게 꽃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내 힘에서 이런 냄새도 났었나.’  당연하겠지만 나무토막에 힐을 불어넣은 건 처음이었다.  처음 보는 변화였지만,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탑이 나타난 뒤로 상식 밖의 일은 수도 없이 겪었으니 말이다.  몰랐던 기능이 하나쯤 더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름은 안 새기나?”  ‘이름을?’  참고하기 위해 띄어둔 심볼 사진을 힐끔거렸다.  확실히 민들레 음각 아래로 희미한 글자가 보이고 있었다.  워낙 작은 글씨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간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곤란하군.’  아직 이곳의 문자를 공부하지 못해 차마 이름을 새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갤러리에 글자를 정리해 둔 정보글이 있었다.  글자마다 대응되는 발음을 확인한 뒤, 이름을 한 자씩 새겨 넣었다.  플라위  사각거리던 칼끝이 마지막 글자를 완성한 순간이었다.  노사제는 완성된 심볼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플라위, 그게 자네 이름이었군.”  “다른 사제님께 듣지 못하셨습니까?”  “듣기는 했지. 하지만 그게 자기 소개는 아니지 않나.”  돌려 말하고는 있었지만 슬슬 인사 좀 하라는 재촉이었다.  어려울 것도 없었기에 성호를 그리며 자기 소개를 했다.  “꽃의 여신 이리스 님을 모시는 작은 종 플라위입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 님을 모시는 늙은 종, 마가렛이라고 하네.”  노사제 마가렛 역시 마주 성호를 그으며 화답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가렛 사제님.”  “잘 부탁하지, 플라위 사제.”  생각해보니.  어제 하루를 같이 일했으면서 정작 이름을 나눈 것은 오늘이었다.  ‘하루 종일 도망치지 않을까 걱정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군.’  마가렛 입장에서는 기껏 부려먹을 만한 사제가 굴러들어왔는데, 이름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었으니 언제 도망칠지 몰라 불안했을 법했다.   …   “그럼 농땡이는 그만 부리고 안으로 들어가지.”  “어차피 환자도 없지 않습니까. 급할 것도 없으니 느긋하게 가지요.”  애당초 몰래 심볼을 깎으러 나온 것도 환자가 없어서였다.  건물 뒤편에 숨어 조각하고 있긴 했지만 환자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를 따로 듣지는 못한 만큼 지금이라고 환자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가렛은 피식 웃으며 말을 했다.  “환자는 없긴 하지. 다만 그보다 귀찮은 게 곧 올 거라네.” “뭐 돈 빌려준 사람이라도 온답니까.” “흠, 비슷한 거긴 하군.”  쿵쿵쿵-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걸까.  마침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어제 아침에 보았던 여사제가 희게 질린 표정을 하며 뒷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마가렛 사제님!”  “거, 이미 왔나 보구만?”  벌써부터 질린 기색이 역력한 마가렛과 창백하게 굳은 여사제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됐다.  그리고 곧이어 들려온 여사제의 말에, 어째서 오늘따라 환자가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여, 영주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안 올만 하군.’  영주의 품행을 떠나 부담스러워서라도 오고 싶지 않을 거였다.  오히려 기존 입원했던 환자도 도망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럼 얼른 가지 플라위 사제.”  “..저도 갑니까? 부담스러워서 빠지고 싶습니다만.”  “애초에 영주가 온 것도 자네 얼굴 보겠다고 온 건데, 정작 자네가 도망치면 쓰나.”  “그렇군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제길.’  하지만 도망치는 것도 웃긴 일이라 태연함을 가장하며 마가렛을 뒤따랐다.  여사제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장소에는 병사 여럿과 표독한 인상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아마 눈치를 보건대 저 중년인이 영주인 모양이었다.  ‘왠지 영지민의 고혈을 쥐어짤 것 같은 인상이군.’  이런 속마음이라도 짐작한 걸까.  “얼굴은 저래도 좋은 영주라네. 괜한 오해는 말게나.”  마가렛이 슬쩍 고개를 기울이며 귓속말했다.  “크흠, 다 들립니다, 마가렛 사제님.”  정작 영주의 귀에도 똑똑히 들린 듯 했지만 말이다.  “거, 못 들은 척하게.”  “하하..”  도리어 뻔뻔하게 나오는 마가렛의 태도에 영주는 난처한 웃음만 흘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표정을 가다듬은 영주가 내게 성큼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플라위 사제님! 저희 도시에 와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생김새만 보면 탐욕스럽고 표독하기 짝이 없는 인상이었지만.  실제 영주의 성격은 겉보기와 전혀 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마가렛 사제님 혼자 고생하시는 것 같아 걱정 많던 참이었습니다.”  일단 생각보다.. 격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플라위 사제님께서 와주셨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한 도시의 주인치고 말도 상당히 많았고.  “그리고 여관에 머물고 계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원하신다면 편히 지낼 교회도 한 채 지어드리겠습니다. 부디 이 도시를 고향처럼 여기고 오래 머물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물론 강요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의아한 것은 따로 있었다.  도시의 주인인 귀족이, 지나칠 만큼 저자세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목 : 혹시 사제 신분이 많이 높습니까?  영주가 저자세인데 이 외에는 이유를 알 수 없군요. 혹 아시는 분 계십니까.   [사제가 높은 신분이긴 한데 모든 사제한테 그러지는 않음] ㄴ[그러면 왜죠?] ㄴ[겉보기에는 치유 기적을 쓸 수 있는 사제라서 그럴 거임] ㄴ[? 그게 이유가 됩니까.] ㄴ[뭐, 그만큼 신과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서 조심하기도 하는데] ㄴ[일단 그 정도 급 사제가 영지에 있으면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 영지민 숫자가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게 제일 크지] ㄴ[당연 영주 입장에서는 설설 기어서라도 붙잡으려 들지 않겠음?] ㄴ[이해했습니다.] [나도 귀족이 설설 기는 삶을 살고 싶구나..] ㄴ[다시 태어나는게 더 빠르겠는데] ㄴ[시발 꺼져]   마침내 이해가 됐다.  영주 입장에서는 단순히 사제 한 사람 때문에 절절매는 것이 아니었다.  움직이는 대학 병원을 자기네 도시에 유치하기 위해 저자세로 기는 거였지.  이제야 의문이 풀리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적어도 도시를 위한 행동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참, 그리고 성문 병사에게 들었습니다. 오크에게 쫓겨 짐을 잃으셨다고요.”  “아, 예.”  “마침 어제 병사들이 오크 무리를 토벌했으니 사제 님의 짐을 찾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겁니다.”  “…”  ‘그런 거 없는데.’  가볍던 마음은 어느덧 다시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