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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작은 배우는 없다

엑스트라의 2회차는 괴물 배우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001. 작은 배우는 없다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메소드연기의 뿌리가 되는 한 명배우의 말이었다.나 또한 믿고 있었다.비록 20년째 이름 없는 단역을 전전하고, 손이 닳도록 고깃집 불판을 닦고 있더라도.나는 배우다.***“더럽게 안 지워지네.”기름때가 달라붙은 불판을 철 수세미로 문지르다 보니, 거칠어진 손 끝이 얼얼하다.“3번 테이블 반찬 안 나가냐?!”뒤통수에 꽂히는 사장의 호통. 돌아보지 않아도 뻔한 표정이다.20년 차 배우다운 미소를 짓고 반찬을 챙겨 홀로 향했다.“바로 갈게요!”사장이 뒤통수에 한마디 놓는다.“똑바로 하자.”“넵!”불판 닦기, 서빙, 고기 굽기, 설거지까지. 혼자 다 맡는 처지에 실수가 없을 수가 있나.내가 그게 됐으면 이미 방송을 탔지.그럼, 얼굴이라도 좀 유명해졌으려나.“오래 기다리셨습니다!”바로 반찬을 챙겨 손님에게 갔을 터지만, 이미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다.“이제야 가져오냐! 기본이 안 돼 있어, 쯧.”“아니, 형님 왜 안 부리던 진상을 부리고 그래요.”“요즘 애들은 뭘 해야 하는지도 몰라요. 이럴 땐 음료수 하나쯤 얹어야지.”“괜찮으니까 어서 가봐요.”“하하, 네……”반찬을 내려놓고 돌아서려던 순간, 남자는 이상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잠깐, 어디서 본 것 같은데···.”“아이 형님, 여기 처음 와봤으면서 뭘 봤다고 그래요. 그만하고···.”고기를 씹던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아니, 봤다니까. 아! 그 아침 드라마! 거기 나온 거 같은데!”주역은 따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20년간 배우밥을 먹은 덕분에 자잘한 단역정도는 꽤 맡았었다.“맞습니다.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대답했다.“뭐야? 진짜 배우였어요?”“거봐, 내가 뭐랬어? 봤다니까?!”진상이라 하더라도 내 연기를 봐줬다는 것 하나만으로 마음이 기뻐진다.“네, 이래 봬도 꽤 많이 출연했거든요.”이러다가 싸인도 해달라고 할지 모른다.펜이라도 하나 준비해 둘 걸 그랬나.내 미소에 남자가 갑작스레 호통을 쳤다.“쯧, 배우라는 양반이 그 나이 먹고 서빙이나 하고 앉아있어? 재능이 있었으면 진작에 떴겠지.”“아, 형님. 밥 먹는데 왜 그래요.”“내 딸내미가 텔레비전 보더니 하도 배우 하겠다고 바람이 들어서 그래. 저런 건 다 재능 있는 놈들이나 하는 건데 말이야. 안 그래요?”“하하…. 그렇죠.”수많은 단역과 알바를 전전하면서 웬만한 진상과 인간군상은 다 봐왔기에 이런 일 정도로 얼굴을 구기지는 않는다.다만,‘재능인가.’그 말이 폐부를 뚫고 지나간다.어릴 적 연기 학원에서도, 가끔 따내는 단역 현장에서도, 수도 없이 들었던 말.[사람도 성실하고 연기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영혼이 안 느껴진단 말이야…… 아쉬워.][자네는 연기가 조금 엇나가는 느낌이야. 방향성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 타고난 느낌이 없어.][아무래도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애들이랑은 차이가 나네.]단어의 형태는 달라도 그 본질은 같았다.반짝이는 재능.그것이 나에게는 없었던 거다.[그런 연기로 내 시간 뺏지 말아 주게.][솔직히, 재능이 없어.]생애 첫 오디션에서 존경하는 감독이 한숨을 내쉬며 했던 말이었다.그 말이 20년이 지난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밤늦게 마감시간. 젖은 걸레를 짜던 중, 홀 구석 TV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ㅡ어느덧 오백만 관객 동원으로 최고 흥행을 달리고 있는 영화죠?ㅡ맞습니다. 오늘 저희 <시네마 인터뷰>에서는 오백만 신화의 주역들을 어렵게 모셨습니다.매주 금요일 방영되는 장수 프로그램 <시네마 인터뷰>였다.“이세린이랑, 김찬욱인가.”하나같이 당당하게 빛난다. 기름 냄새 밴 작업복 차림의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그러고 보니 둘 다 이태륜 감독이랑 작품을 찍었다고 했지.”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부럽네.”쉰 목소리가 나왔다.나는 뭐 하고 있는 건지.20년 전 같은 오디션장에 섰다는 것 외에는 어떤 연관성도 없는 하늘 위의 별들이다.“대단하긴 하단 말이지.”드라마, 영화 할 것 없이 대박을 터트리며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사람들 앞에서 환히 웃는다.내가 단 한순간이라도 뛰어넘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다.‘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우울해지려는 찰나, 가볍게 뺨을 치고서 걸레를 꽉 쥐었다.“정신 차려라.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 김도윤!”비록 지금은 초라해도 언젠가는 내가 빛낼 수 있는 배역을 찾을 수 있을 거다!그때 TV 속 인터뷰어가 이세린 배우를 향해 물었다.[이번 블랙 프레임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으셨습니다! 굉장히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 덕분에, 저도 극장에서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고맙습니다. 제 연기를 좋게 봐주셨다니 기쁘네요.][수많은 배우 지망생들이 이세린 배우님을 롤 모델로 꼽습니다. 혹시 연기 비결이나 조언을 해주신다면?]의례적으로 할만한 가벼운 물음.그러나 어떠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제 연기에 관한 질문인가요. 조금 뻔한 대답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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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해 둬야지.’뒷주머니에서 다 해져가는 메모장을 꺼내 들었던 순간이었다.이세린의 마이크를 가로챈 남자가 대답했다.[재능입니다.]순간 마음속에 무거운 무언가가 툭 하고 짓눌렀다.“……”인터뷰를 가로챈 이태륜 감독 탓에 당황한 듯한 인터뷰어는 이내 수습하려는 듯 말했다.[이야! 역시 이태륜 감독님입니다.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만큼 대담한 말씀이네요. 그래도 커가는 배우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주신다면···.]이태륜 감독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없습니다. 반짝이는 재능. 배우에게, 특히 스타에게 재능이 없다면 그걸로 끝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그대로 연기하여 홀리는 재능. 연기의 연습이니 기술이니 하는 건 그 뒤의 이야기입니다.]불판을 닦다 말고 손을 멈췄다.걸레를 바라보았다.“얼룩덜룩하네.”방금 닦아낸 기름때처럼, 내 20년이 하찮게 느껴졌다.[그래도 열심히 노력한다면···.][제가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건 시나리오의 본질, 감정선을 살필 비상한 통찰력이나,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미장센 같은 게 아닙니다.]이태륜 감독은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이 눈. 천재를 알아보는 이 눈이 전부입니다. 미장센이니 연출이니 하는 건 재능 있는 배우가 제자리에만 서 있으면 저절로 따라오는 겁니다. 그건 연습이나 노력으로 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하하···. 이렇게 직설적인 모습도 이태륜 감독님의 인기 비결 중 하나겠죠···.]급하게 마무리 지으려는 듯한 인터뷰어의 목소리.그러나 이미 내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눈앞이 부옇게 흐려지고, 목이 멘다.“야, 야! 뭐 해 마감 안 하고 어디가?!”뒤에서는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하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우욱!”가슴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역류하는 느낌이 든다.나도 모르게 고깃집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숨이차게 달렸다.정신이 빠진 듯 달렸다.빗소리가 들렸으나 비가 몸에 느껴지는 것도 몰랐다.몸이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졌으나,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띠리릭-정신을 차렸을 때는.어느새 눈에 보이는 건 3평 남짓에 더러운 원룸.“하.”그제야 앞이 보였다.방 안에는 수많은 대본과 연기 지침서, 연습 메모들이 널브러져 있다.이곳이 내 공간이다.내가 배우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곳에서라면.“하하……”책상 위에 쌓인 대본 중 하나를 들어 펼쳤다.대본 귀퉁이가 너덜너덜 때가 타 있다.기억난다.대본의 구석에 빼곡히 적힌 메모들.[감정의 흐름을 더 자연스럽게.][대사보다 표정을 먼저 생각할 것.][대본이 아닌 대사의 의미와 의도를 파악할 것.][이 대사 전에는 숨 한번 크게 쉬기. 감정을 끌어올리고 시작.][이 단어는 세게. 감정의 톤을 바꿔야 함.][단역도 주역처럼.][재능은 노력의 다른 이름이다!]몇 번을 읽고, 몇 번을 썼을까.내가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 발버둥 쳤던 흔적이다.이게 결코 의미 없을 리 없다.“근데 이게 뭐냐고……”비좁은 방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거울이 나를 비췄다.젊을 적 그나마 쓸만하다 들었던 마스크.관리를 한다고 했음에도 눈가에 주름이 가득했다.고깃집에서 새벽까지 연기와 열을 받은 피부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으리라.“왜 이렇게 된 거냐.”주역 하나 못 잡고, 고깃집 불판이나 닦고 있다.마음이 무너져 내린다.“왜.”턱을 책상에 묻고, 속삭이듯 중얼거렸다.“왜 나만 안 되는 건데…….”눈물이 나왔다.재능이 없다는 말은 수 없이 들었다.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배우가 되고 싶었다.사람들에게 내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재능이 없어도, 이 노력을 재능이라 믿었다.“왜…….”눈을 감고, 누구를 향한지도 모를 저주를 뱉는다.“왜! 연기를 이렇게 좋아하게 만든 겁니까! 그래놓고 재능의 한 톨도 주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모른다.그저 주저앉은 채, 오래도록 울었다.“끄윽…… 노력했잖아. 죽을 만큼…….”돌잡이 때부터 내 눈은 해진 장난감보다 방구석의 작은 상자 속 얼굴을 따라갔다.나를 홀로 키워내신 어머니의 사랑에, 배우로서 성공하여 보답하고자 애썼다.[우리 도윤이, 나중에 텔레비전에 얼굴만 나와도 엄만 동네방네 소문낼 거야~][우리 아들이 배우야, 배우!]하지만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실 때조차,나는 잘난 ‘연기’를 하겠다고 곁을 지키지 못했다.[도윤아, 오디션 보러 간다 했지? 엄마 걱정일랑 말고 어서 다녀와.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란다.]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아, 그래서였나.’이미 재능이 없다는 걸 눈치채고도 이상하리만치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그날 놓친 손을, 연기로라도 붙잡고 싶었다.‘그것도 결국 자기만족이겠지.’20년간 배우를 꿈꿨지만,단역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인생.그게 내 현실이었다.“이젠 그만하련다.”어느새 손에는 연습소품으로 사용하던 낡은 밧줄 하나가 있었다.충동적인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철제의자 위에 올라 천장에 줄을 걸었다.발바닥에 닿는 싸늘한 감촉삐걱, 의자가 위태롭게 흔들린다.“조금만 기다려요.”ㅡ탁발이 바닥에 닿지 않게 된 순간이었다.“크으읍!”눈앞에 무언가 아른거린다.이게 주마등이라는 걸까.-메소드 vs 테크닉 갈드컵 지겨우면 개추(23)-메소드가 구식인 거 인정하면 개추 ㅋㅋㅋㅋ(32)-인생작품 찍었다. 보고 안 울면 탈갤함(12)-연기의 정수를 알려주겠다(3)-내 광기 연기 보고 안 웃으면 죽을게(12)“무..슨….”헛웃음도 나오지 않을 저질의 글들.그리고 그 정체 모를 글 속에는 생전 처음 보는 배우들이 아득하게 빛나고 있다.이 세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각자 숨 막힐 듯 강렬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저런 연기라면 이세린.아니, 누가와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다.내가 감히 그들의 발끝이라도 넘볼 수 있다면.아니, 그들과 단어 한마디라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숨이 막혀오는 와중에도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반짝임,눈부신 반짝임을…저 별들을!내 두 눈은 쉬지 않고 허공의 영상을 핥고 있었다.내게 재능이 없다고 했던가.살고 싶다.살아서 저 괴물들의 연기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연기를, 삶을 끝내야 한다는 이성과 달리 본능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그러나 이내 온몸의 힘이 풀렸다.마지막 순간, 천장에 붙여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 ‘…없기는 개뿔, 있잖아요.’가장 싫은 건 여전히 연기가 좋다는 것.그런 내가, 정말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