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눈부신 풍경
006. 눈부신 풍경
오디션이 끝나고 밤.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원룸이 아니었다.예전에는 익숙했던 곳.왁자지껄한 소음과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른다.어머니의 작은 포장마차.[도윤이 포장마차]왜 이런 이름으로 지었냐고 부끄러워했던 가게 이름이었다.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배우가 되겠다고 객지에서 방황하는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이 작은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후우.”비닐 막을 들추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회귀 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그놈의 연기 때문에 그 곁을 지키지 못했다.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온다.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벅차오른다.이 비닐 막을 들추면.“무슨 일이야 바로 집으로 안 갔네?”앞치마를 두른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어머니의 모습.회귀 전, 병색으로 야윈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응, 오늘은 장사 준비 도와줄까 싶어서.”나도 모르게 시큰거리는 눈을 애써 올리며 웃었다.건강하시다.그것 하나면 충분했다.“오늘 오디션은 어땠어? 우리 대배우님, 잘 보고 오셨나?”“아주 그냥, 씹어먹고 왔죠.”“어이구, 우리 아들 장하다.”어머니는 웃으며 내 등을 쓰다듬었다.나는 한쪽에 걸린 앞치마를 찾아 둘렀다.“뭐야? 웬일로 우리 배우님이 앞치마까지 두르시나? 배우 얼굴 상하면 안 된다고 기름 앞에는 얼씬도 안 하시더니.”어머니의 농담 섞인 말에 어딘가 뜨끔했다.‘쓰레기도 이런 상 쓰레기가 없었네.’혹시라도 옷에 밴 기름 냄새 때문에 오디션에서 안 좋은 인상을 줄까 봐, 어머니가 아무리 힘들어도 포장마차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전집에서 죽어라 알바 해보고 나서야 불 앞에 서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았지.’나는 말없이 커다란 철판 앞에 서서 익숙하게 불을 올렸다.능숙하게 기름을 두르는 내 모습에 어머니가 의아한 듯 물었다.“뭐야? 도윤이가 전도 부쳐주려고?”“그럼요. 아주 기가 막히게 맛있는 걸로.”“괜히 화상 입으면 어쩌려고···.”어머니의 얼굴에는 잠시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럴 만도 하지. 이때라면 달걀 하나 제대로 못 부치던 실력이었으니까.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머니.이래 봬도 강남 유명 전집 알바 경력이 5년.매일 같이 웨이팅이 걸리던 그곳에서 어깨너머 배운 노하우를 선보일 기회다.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포장마차의 비닐 문이 요란하게 걷혔다.“우리 왔소 아줌마!”“아이고, 어서 오세요! 일찍 오셨네요!”반갑게 손님을 맞는 어머니. 한 무리의 단체 손님이었다.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랜 단골이었던 아저씨와, 가장 앞에 서 있던 화려한 미모의 젊은 여자였다.‘기억나네.’포장마차 근처에 꽤 큰 식자재 유통을 하는 곳의 사람들이었다. 어머니께서 사장 수완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아마 삼룡 식자재였던가.‘그러고 보니 미래 SL 엔터의 전신이 되는 회사의 이름도 삼룡이었지.’당연히 우연일 거다.“어이, 도윤이 아니냐? 진짜 오랜만이네.”아저씨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그러게. 요즘은 통 안 보이더니, 또 배우 한다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녔구먼?”“네, 오늘은 포장마차 일 좀 도와드리려고요.”예전과 달리 싹싹하게 웃으며 인사했다.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어머, 웬일이래? 크고 나서는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누님 오신다는 소식 듣고 달려왔어요. 저희 포장마차 최고 미녀 단골분이 오시는데, 제가 직접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내 능글맞은 대답에 아저씨와 여자는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허허, 내가 벌써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건가?”아저씨가 헛웃음을 터트렸다.“그렇지? 방금 그 싸가지 없던 도윤이가 나보고 누님이라는데? 그것도 최고 미녀래.”어쩌다 어머니를 도와주러 나올 때에도,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일만 했었다. 지금처럼 변한 내 모습이 낯설 법도 하지.‘생각해 보니 진짜 개쓰레기였네 나.’잊자!오늘부터는 뉴 김도윤이 되는거다!기껏 과거로 돌아왔으니 지금부터 잘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그리 생각하며 미소 짓고 있자, 아저씨가 감탄하며 대답했다.“이야, 우리 도윤이 언제 이렇게 싹싹해졌다냐.”“그래도 보기 좋다야~. 앞으로도 계속 누님이라고 불러, 알겠지?”여자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활짝 웃으며 자신의 가슴팍에 나를 끼웠다.죽는다.이렇게 죽으면 호상인가?겨우 풀려나 당황한 채 조금 상기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아, 네, 넵. 누님!.”그런 내 모습을 귀여운 듯 웃음 짓는 여자.회귀했더니 정신상태도 어릴 적 그대로 돌아온 걸까.얼버무리며 말했다.“조금만 기다리세요. 항상 드시던 걸로 금방 부쳐 드릴게요!”“그래, 그래.”철판 위로 미리 반죽을 철판 위로 올렸다.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난다.응, 훌륭하네.“도윤아! 언제 파전을···.”“자, 여기 있습니다!”어머니가 놀란 듯 말을 꺼내려했지만, 파전을 받아 든 단골 아저씨가 먼저 눈살을 찌푸렸다.“뭐야 이거, 파전이 왜 이렇게 말라비틀어졌어? 아줌마, 도윤이한테 밀가루 아깝다고 아끼라고 시킨 거야?”그 말에 어머니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어머, 죄송해요. 제가 다시 제대로···.”그런 어머니의 말을 가로막고 미소를 지었다.“일단 한번 드셔보세요. 맛없으면 제가 오늘 술값까지 다 내도 괜찮으니까.”“엥? 네가? 허허, 그렇다면야 뭐.”아저씨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파전 한 조각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그래 맛보쇼 아재.50년 전통이 깃든 전집의 명물, 자타공인 시그니처 ‘파전’을. 다이어트 중이던 여배우조차 게걸스레 두 판을 비워냈다는 마성의 파전을.바삭-포장마차를 울리는 경쾌한 소리.눈이 휘둥그레진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파전을 씹더니, 옆에 있는 여자에게 다급하게 말했다.“드, 드셔보세요!”“뭘 그렇게 오두방정을 떨어.”여자는 핀잔을 주면서도 파전 조각을 입에 넣었다.바삭-“뭐야, 이거?! 파전이 어떻게 이렇게 맛있어?!”놀랄 것도 없지.밀가루는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기름에 튀기듯 구워내어 겉은 극한의 바삭함을, 속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파전.‘성공했네.’이거라면 충분히 포장마차를 도울 첫걸음이 되려나.여자는 계속 감탄하며 중얼거렸다.“파전이 맛있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야….”“그렇죠? 이런 끝내주는 파전을 먹고 싶으시면 어디로 와야 한다? 누님, 형님들?”내가 너스레를 떨며 묻자, 아저씨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하하하! 당연히 우리 도윤이 포장마차지! 걱정 마라, 앞으로 우리 회사 회식은 무조건 여기서 할 테니까!”“허.”왜인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 짓는 여자. “그래. 뭐, 이 누나가 허락할게.”둘 다 내 바뀐 태도와 파전 맛에 완전히 넘어온 듯했다.‘기분 좋네.’전생에도 진작 이렇게 싹싹하게 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그때는 그렇게 모나고 어리석었는지.어머니는 그 모습에 신이 나서 거들었다.“우리 도윤이가 전만 잘 부치는 게 아니죠! 우리 아들, 오늘 엄청 큰 오디션 보고 왔다니까요? 그 유명한 이태륜 감독 알죠? 그 사람 작품이래요!”“이야, 이태륜 감독? 그거 완전 대단한 양반 아니야? 그 뭐냐, 찍었다 하면 대박 나는! 도윤이 너 진짜 출세하겠네!”손님들의 칭찬에 어머니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그때 구석 테이블에 혼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손님이 비죽거렸다.“겨우 오디션 본 거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들이야. 거기서 붙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데.”순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 굳어지려는 찰나, 단골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에이, 김 씨. 요즘 일 좀 안 풀린다고 괜히 젊은 친구한테 꼬장을 부리나.”“그래, 도윤아! 나중에 진짜 배우 되면 이 누나 잊으면 안 된다?”단골 여자가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애썼다. 따뜻한 말에 나는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하하, 아직 한참 멀었어요. 워낙 대단하신 감독님이라 결과는 기다려 봐야죠.”내 태연한 반응에 남자는 김이 샌 듯 혀를 차며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20년간 배우 지망생으로 살면서 수없이 겪었던 나다. 이 정도 비아냥거림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에이, 기분이다! 도윤아, 오늘 여기 테이블은 이 누나가 다 쏜다! 너도 앉아서 같이 먹어!”“네? 그래도 괜찮아요?”“그럼! 이래 봬도 이 누나가 돈은 좀 번다?”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의외로 저 아저씨가 아니라 이 아줌마, 아니 누님이 삼룡 식자재의 사장 이랬었지.***“아이고, 손님들! 이제 마감해야 합니다! 다들 그만 일어나세요!”어머니가 외치자, 어느새 꽤 취한 단골 아저씨와 여자가 아쉬운 듯 일어섰다.“아줌마 너무해애~ 손님 쫓아내는 사장이 어디써~~.”여자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투덜거렸다.“아이잇! 도윤아, 너 오늘 이 아저씨 따라와라! 2차 가야겠다!”“아잇! 이 과장 사장이 앞에 있는데 우리 도유니를 빼돌리려고 그래애? 도유나! 누나 따라와! 누나가 오늘 다 사줄게~!”어느새 내 옆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더니 둘 다 꽤 취해버렸다.“우리 아들은 두고 가요!”“에잇! 왜 안 되는데.”어머니가 나를 감싸며 둘을 겨우 보냈다.작은 소란이 지나가고, 익숙하게 테이블을 닦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엄마, 저 앞으로는 포장마차 일 계속 도와드릴까 봐요. 다들 절 이렇게 좋아해 주는데.”철판을 정리하던 어머니의 손이 멈칫했다.“왜? 오늘 오디션 사실 잘 안된 거니? 그래서 그래?”“아니요! 완전 잘 봤어요. 거기서 같이 오디션 본 유명한 배우한테도 칭찬도 들었다니까요?”조금 오바하며 과장 섞인 자랑을 늘어놓았다.이세린이 칭찬 비슷한 걸 하긴 했으니까,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거기에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배우갤러리 사람들의 칭찬까지.“칭찬했던 사람들 중에 무슨 상을 세 번이나 받은 사람도 있었다니까요?”이 정도면 조금은 자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내 대답에 어머니는 그제야 안심한 듯 웃었다. “우리 아들, 엄마는 네가 연기할 때가 제일 좋거든.”“네?”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내가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고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주신 건 알고 있었다.하지만 내가 연기하는 걸 좋아하셨다니.“네가 연기 이야기할 때 어쩜 그렇게 얼굴이 환하게 피는지 몰라.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지금처럼 말이야.”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회귀 전,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던 몹쓸 놈이 바로 나였다.연기가 좋아서, 그 헛된 꿈을 놓지 못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그런데 그런 나의 연기를 어머니는 좋아해 주고 계신다.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어머니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씩 올렸다.“게다가 말이야. 솔직히 너 여기서 전 부치는 것보다, CF 찍고 드라마 주연 맡아서 엄마 호강시키는 게 훨~씬 낫지 않겠니?”“…네?”“엄마도 말이지, 늙기 전에 크루즈 여행 한 바퀴 돌고, 라스베이거스 가서 슬롯머신도 땡겨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게 아주 많단다?”슬, 슬롯머신?당황스러운 단어들이 어머니의 입에서 계속 나온다.“게다가 말이야.”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리고 이래 봬도 네 엄마는, 널 가지기 전까지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타짜였단다. 손끝 감각이 아주 예술이었다니까.”“엄, 엄마?”당황스럽다.당신 누구야, 우리 엄마 돌려줘요.어머니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하기도 잠시, 그녀는 자신의 손끝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기술이 좋은 건 아니었어. 하지만 배팅을 아주 잘하는 편이었단다. 배팅도 올인도 과감하게!”어머니는 내 어깨를 강하게 쥐고서 말했다.“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이번에 엄마는 너한테 올인한 거니까.”깔깔 웃는 어머니.도무지 고생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이 비치는 환한 미소.‘그렇네.’어머니의 능청스러운 말에 묵직하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이런 말에 편해지는구나.그래, 여전히 나는 몹쓸 놈이다.띠링-그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무심코 화면을 켜자 [부재중 전화 2건] 알림과 함께 낯선 번호로 온 문자 메시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KBC 드라마 2부 팀입니다. 김도윤 님, 연극 <꽃은 진다> 캐스팅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손이 떨려서 제대로 문자를 읽을 수가 없다.하지만 ‘캐스팅’ 세 글자는 선명하게 보였다.이래도 되는 걸까.이번 생에도 후회하는 건 아닐까.핸드폰 화면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피식, 헛웃음이 나왔다.결국 또 이 길이다.“저도 제가 연기할 때가 제일 좋아요. 그러니까, 같이 가요 라스베가스.”같은 길이라도, 달라야 한다.이번 생에는 반드시 성공한 배우가 되겠다.이태륜 감독이, 이세린 배우가 보는 그 광경에 나도 서리라.
d3kza0VLSVdxajZ6L09aWC8xUnR2S2oveDMybUorVUIrMXI4NGtaallROERsY1doZCtyUllRWnQ3SlFKcDY3ZQ
아니, 그들을 뛰어넘어 그 너머의 풍경을 보겠다.그리고 그 눈부신 풍경을, 반드시 이 사람에게도 보여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