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갤러리란 이름의 괴물들
007. 갤러리란 이름의 괴물들
동이 트기도 전, 거울 앞에 서서 수염을 깎으려던 참이었다.‘진짜 신기하네.’거울 속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매끈했다.회귀 전, 나름 배우랍시고 혼자서 관리에 애썼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d3kza0VLSVdxajZ6L09aWC8xUnR2SkhnSmZ3ejZZckR4NmpMd2VXcWs3VFZYY2xDTzZIZEtUaklyMy9jVUxDSw
‘이게 젊음의 힘인가.’손을 쥐었다 폈다.‘부드럽네.’손가락 마디마디, 무릎 관절이 걸리는 느낌 없이 움직인다.새삼스러운 감각이다.회귀 직전에는 관절이 닳아서 뻑뻑한 관절 탓에 섬세한 동작이 어려웠다.손끝에 힘을 주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었다.‘이젠 다르다.’윤활유를 바른 듯 몸이 부드럽게 움직인다.딱딱하게 굳은 손가락도 내 의지대로 손끝의 텐션이 들어간다.이 몸이라면 내가 생각한 연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배우를 한다고 마음먹은 이상 이번 생은 실패할 수 없다.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그리고 모든 걸 끌어모아서라도 ‘배우’로서의 자질을 보여줘야 한다.그 몸이 목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거다.“천만 관객.”지금은 20년 전의 대한민국. 아직 스크린에 ‘천만 관객’이라는 숫자가 새겨지기 이전의 시대다.먼 훗날, 사람들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야기하며 몇몇 배우들의 이름을 떠올리겠지.그 이름들 사이에, 나 김도윤의 이름을 새겨 넣을 것이다.그저 평범한 성공이 아니다.대한민국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배우.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의 주역.오늘부터 그것이 내 목표다.이전 생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대하고 찬란한 꿈.“후.”쏴아-가볍게 얼굴을 씻어내고 손에 들고 있던 면도기를 내려놓았다.‘이 능력도 철저히 사용해야겠지.’눈앞에 글자들을 바라보았다.[감독의 시선]‘몇 번을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오디션 후 몇 가지를 확인했다.이 능력은 오직 ‘감독’ 앞에서만 발동한다는 것.이세린이나, 다른 스태프 앞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오디션 때 봤던 생생한 풍경.그건 이태륜 감독이 상상하는 <꽃은 진다> #4번 씬의 재현이었겠지.단역을 거치며 여러 세트장을 다녔었지만, 그런 인위적인 느낌과는 달랐다.‘이미 완성된 영화의 한 장면 안에 있었던 것 감각이었지.’과거에도, 지금도 연기는 언제나 좋았다.하지만 [감독의 시선]이 보여준 풍경 속에서의 연기는 차원이 달랐다.‘어릴 적 혼자 동물원에 가고 싶어서 눈 감고 상상하던 아이가 갑자기 디x니 랜드에 떨어진 느낌이었지.’쉽게 말해서.기분이 아주 짜릿한 감각이었다.‘그리고 출연료… 포인트도 감독 앞에서 연기해야만 얻는 거겠지.’그리고 얻은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배우 갤러리에서 사용 가능하다….’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면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침대에 앉았다.‘갤러리’마음속으로 외치자 눈앞의 푸른 창이 떠올랐다.-연기 못하는 애들 특징(12)-대사 전에 침묵 타이밍 왜 중요한지 설명해 준다(0)-메소드 << 이거 개 틀딱 이론이면 개추ㅋㅋㅋㅋ(8)-메소드로 여주 뺨 좀 때렸다고 질질 짠다 ㅅㅂ(11)여전히 천박한 말투의 글들이 가득하다. 하지만.글 중 하나를 클릭하자 게시글이 열렸다. 제목 : 메소드로 여주 뺨 좀 때렸다고 질질 짠다 ㅅㅂ(11)작성자 : 롱테이크괴물 과몰입해서 한 대 때렸다고 이게 맞냐? 느낌 좋았는데 촬영중지됐다….억울하다. avi 댓글 [한대가 아니잖아 개 또라이새끼야 ㅋㅋㅋㅋㅋ]└[롱테이크 괴물이 아니라 그냥 괴물이었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롱테이크로 후렸노 ㅋㅋㅋ]└[닉값 미친련아 ㅋㅋㅋㅋ]└[바로 이거였노ㅋㅋㅋㅋㅋㅋㅋㅋㅋ][과몰입은 메평 ㅋㅋㅋㅋㅋㅋ]└[드큘라 : 뜨거운 몰입 없이 어떻게 연기가 나올 수 있겠는가? 그저 기술과 기교만으로 연기가 가능하다고 믿는 건가?]└[얘 또 이러네]└[역시 폭력 옹호는 드평 ㅋㅋㅋㅋㅋㅋㅋ]…저렴하다 못해 경박해 보이기까지 한 말투들이다.이 사람들이 명배우라 하면 누구도 믿지 않겠지.하지만. 억울하다. avi 게시글에 담긴 영상을 클릭했다.한 남자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앞 뒤 내용을 몰라도 알 수 있다. 지금 이 남자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생각이 없다.그리고 이어서 대사를 뱉는다.「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남자의 손이 매섭게 뻗어 나가, 눈앞의 여자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나도 모르게 영상을 멈췄다.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분명 저 남자는 인간 쓰레기일 것이다. 자기 탓에 벌어진 일을 억울한 사람에게 쏟아내는 게 틀림없다.그리고 그게 정확하게 그가 목표한 연기일 거다.이 게시글뿐만이 아니었다.배우 갤러리라는 곳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연기는 이 정도 퀄리티였다.할리우드에 가도 이런 퀄리티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배우들은 손에 꼽으리라.하지만 이곳에는 널려있다. 아니, 이 연기마저 이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즉, 잘만 이용한다면 이 탈 지구급 배우들의 연기와 경험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그런 면에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게시글을 닫으니, 다시 게시글 목록이 나타났다.-니들이 죽였어(2)-뉴비 연기 분석해 왔다 개추좀(34)-뉴비 도대체 어디 간 거냐(1)-5555년 만의 뉴비 돌아오기 바라면 개추(52)-뉴비야 너만 돌아오면 난 다시는 메소드를 하지 않아도 좋아 제발 돌아와 줘(21)대부분의 유저들이 내게 호의적인 것 같다는 점이다.“뉴비를 귀여워하는 고인물들처럼 보인단 말이지.”쉬는 동안 이곳의 글을 좀 읽다 보니 알게 된 몇 가지가 있다.이곳의 유저들은 나와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그리고 각자의 세계에서 굉장한 배우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몇 시간을 헤맨 결과 글 작성법을 알게되었다.글쓰기 버튼을 누르자 푸른 창이 떠올랐다.[기본 닉네임 ‘뉴비’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닉네임을 변경하시겠습니까?]뉴비…는 멋이 없으니까.글씨를 써 내려갔다.“괴..물 신.. 인.”내 나름대로의 바람을 담은 닉네임이다.[괴물 신인으로 닉네임이 고정됩니다. 변경은 불가능합니다]“고정된다고?” 뭐야 그런말은 없었잖아요?!…엎질러진 물이니 어쩌겠는가.한숨을 쉬며 눈앞의 푸른 창을 바라보았다.일단 인사라도 적어볼까. 제목 : 안녕하세요. 뉴비입니다^^…. 작성자 : 괴물 신인 첫 오디션에서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연에 캐스팅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질문할게요.“이렇게 적으면 되려나.”이 사람들도 하루 종일 배우갤러리에 있지는 않을 테니 댓글이 달리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그리 생각하던 순간이었다.ㅡ띠링ㅡ띠링ㅡ띠링어?미친 듯이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이 무슨….”-안녕하세요. 뉴비 입니다^^….(24)잠깐 사이에 내가 쓴 글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제목 : 안녕하세요. 뉴비 입니다^^….작성자 : 괴물 신인 첫 오디션에서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연에 캐스팅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질문할게요. 댓글 [뉴비 왔다!!!!!][이게 왜 진짜임?????][닉 뭐노 ㅋㅋㅋㅋㅋㅋㅋㅋㅋ][뉴비 돌아오면 메소드 관둔다고 했던 메평 나와라 ㅋㅋㅋㅋㅋㅋㅋ]└[한 번만 봐주라]└[죽어][룬나 : 돌아왔구나. 당찬 닉네임 정말 보기 좋아.][뉴비 이제 200pt 아니냐? 닉값 하려면 어느정도는 돼야한다고 보냐?]└[괴물 신인? 일단 우리 세계 기준으로는 최소 500만부터 시작이다 ㅋㅋㅋㅋ]└[뉴비야 앞으로 4999800만 더 모으면 닉값 할 수 있겠다!]도대체 이 포인트라는 게 뭘 의미하는 거길래.[괴물 신인 : 포인트가 뭔가요?]└[나 졸도할 것 같아]└[미치겠다 뉴비]└[그냥 쓰러질게]“이게 무슨….”말문이 막혔다. 다들 손주 재롱 보는 할부지들 처럼 구니 대화가 안 된다. [룬나 : 포인트는 배우로서 너의 지표와도 같은 거야. 네 연기만으로 네가 동원할 수 있는 관객 수라고 생각하면 돼.] 연기로서 동원할 수 있는 관객의 수인가.내 포인트가 200. 그렇다는 건….“씁.”눈물이 나려고 한다.‘앞으로 차차 늘려가면 괜찮겠지.’[마리는 공쥬 : 본녀 생각에는 포인트는 별 의미 없으니, 그냥 별 것 아니라 알면 되는 겁니다.]└[이 년 또 이러네 ㅋㅋㅋㅋㅋㅋㅋ]└[이제는 뉴비한테도 거짓말이노. 그저 놀랍다!]└[니 포인트 적다고 그러면 쓰냐?]└[포인트 비공개 해둔 이유가 보이노ㅋㅋㅋㅋ]이 사람은… 무시하자.그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댓글을 시작으로 갤러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잠깐. 근데 우리 뉴비 갤 조언 듣고 오디션을 붙었다고?]└[어?]└[생각해 보니 그러네?]└[????]뭐지?└[조언을 들었다고???]└[진짜에요?]“실수한 건가?”역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라 이런 부분에 민감한 걸까. 내가 멋대로 조언을 오디션에서 사용한 게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나는 급하게 댓글을 달았다.[괴물 신인 : 죄송합니다. 제가 훌륭한 조언을 들어서 멋대로 적용했나 봐요….]└[아니 그게 아니라]└[그러니까 지금 우리 뉴비가 우리 조언을 듣고 연기를 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는 거니????]어라? 반응이 이상하다.[나 눈물 날 것 같아][나 이제 그냥 죽을게 내 포인트는 뉴비 너 가져라]└[죽긴 왜 죽노??? 드디어 조언을 들어 처먹는 에가 생겼는데???!!!!]└[이거 진짜에요?????!!!]“이거 설마.”[괴물 신인 : 혹시 지금까지는 아무도 조언을 듣지 않았나요?]└[조언을 먼저 듣겠다고 하는 갤러는 니가 처음이다]└[갤창 역사 30년. 당신 같은 뉴비를 기다려 왔다우…]└[처음은 아니지 않나? 마리인가. 걔 파딱 말은 잘 듣잖아.]└[그건 그년이 파딱을 좋아해서 그런 거고]└[팩트는 말만 잘 듣고 절대 적용은 안 한다는 거임 ㅋㅋㅋㅋㅋㅋㅋ]└[뭐, 여기 있는 애들 중에 지가 최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애들이 있어야 들어 처먹지ㅋㅋㅋㅋㅋ]└[하긴 지들 세계에서는 제일 잘 나가니까 진짜 지들이 제일 연기 잘하는 줄 암]└[마리는 공쥬 : 본녀가 제일 연기 잘하는 거 맞다만?]└[내가 연기 제일 잘하는 건 맞음]침을 삼켰다.여태 아무도 조언을 듣지 않았다.아마도 그들이 고집불통이라서 아닐 거다.이제서야 그들 닉네임 옆의 포인트가 눈에 들어왔다.[롱테이크괴물 (98,000,000 pt)][마리는 공쥬 (비공개)][메소드가인생임 (220,000,100 pt)][드큘라 (480,500,000 pt)]...[룬나 (2,980,000,000pt)]단 한 명도 빠짐없이 말도 안 되는 수치들 뿐.배우가 끌어올 수 있는 관객수에 대한 지표라면 이들은 하나같이 규격 외의 괴물이라는 뜻이다.아마도 이 배우 갤러리라는 건 그런 괴물들만이 올 수 있는 거겠지.그리고 그 말이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연기에 있어서 미친 고인물들이 훈수를 두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고, 조언을 이뤄줄 뉴비가 절실하게 고프다는 거다.유토피아가 여기였구나!당장 오늘이 첫 리허설이다.마다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바로 이용해 주마. 제목 : 첫 작품 분석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작성자 : 괴물 신인 다시 한번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좋아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