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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교룡

갤러리 요선들이 나한테 집착함 — novelpia.com · All chapters

응애교룡

1화.         그날은... 어김없이 신작 선협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아니, 이따위 쓰레기 게임을 선협이라고 내놓은 개발자 뇌 구조부터 파헤쳐야 한다니까? 수련은 개뿔, 동굴 처박혀서 딸깍거리기만 하면 끝이냐? 방치 겜 주제에 뭐 이렇게 해야 할 게 많은 건데! 방치 아니잖아! 방치라면서 경지 왜 안 올라!!”   키보드를 거칠게 두드리며 신나게 게임을 까 내리던 그 순간이었다.   [--------------------]   찌릿-.온몸을 감싸는 기묘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었다.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에 정신을 차려보니, 좁고 답답한 감옥 속에 갇힌 듯한 압박감이 전해져 왔다.순간 납치 당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뜬금없는 상황.   탕. 타탕.뭔가를 두드렸다. 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눈 부신 빛이 쏟아졌다.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본 내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 뭐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동굴 속.오직 사방의 벽면에서 흘러내리는 영기(靈氣)로 가득 채워진 시커먼 먹물 같은 신비로운 연못.그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껍데기, 그것은 인간들이 천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한다는 ‘교룡의 알’이었다.   조금 전까지 알을 깨고 나온 나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새끼 교룡의 형상을 한 몸뚱이에는 뿔의 흔적과 은빛 비늘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단순한 파충류의 껍질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치밀하게 얽혀 있는 은빛 비늘은 철강이나 옥석보다 단단하면서도, 물결이 치듯 유연하게 흐르는 곡선을 그렸다.   “아니 근데 교룡이라니?! 혹시 여기 선협 세상인 건가?”   은빛 표면 아래로 삼라만상의 신비가 소용돌이치듯 깃들어 있는 것만 같다. 비늘과 비늘이 맞물릴 때마다 사방에 가라앉아 있던 천지원기가 미세하게 흩어지며 튀어 올랐다.   아직 온전한 용으로 진화하기 전의 과도기라지만, 이마 부근에 솟아오른 한 쌍의 뿔은 그 자체로 상위 존재의 위압감을 뿜어냈다.거대한 체구와 뼈마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량감.허나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아무런 어려움조차 없다.이만한 무게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부하가 있을 텐데 그런 건 결코 느껴지지 않았다.   “근데 뭐야, 나 조금 전까지 게임하고 있었는데.”   당황스러움도 잠시, 사방을 가득 채운 천지원기(天地元氣)가 호흡할 때마다 콧속으로 밀려들어왔다.동굴 안은 굳이 도를 닦거나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을 만큼 짙고 무거운 영기의 바다였다.   선협에서 수선자는 자고로 천지원기를 몸속에 담고 이를 금단으로 만드는 행위를 힘겹게 한다.그대로의 원기는 인간에겐 독이 되기 때문이다.하여 필터 비슷한 단전을 만들고 이것을 키우며 경지를 올린다.천지원기에서 인간에게 삿된 것을 가려내여 들이는 것이 바로 영기.영기라는 것이다.단전 안의 영기는 응고되어 금단이 되고, 이것을 심기체를 집어넣어 원영이란 것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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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수백 년 동안 애쓰면서 경지를 올리는 것이 수선.정확하게는 인간의 수선이다.   허나 요수.꽤 급수가 높은 교룡은 조금 달랐다.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 뱃속 내단에 천지원기가 모인다.가려내지 않은 원기는 그 자체로 막강한 힘이 된다.   ‘내가 알기로 요수의 경지는...’   선협마다 경지가 달라서 모르겠다.하지만 급으로는 대충 요졸, 요병, 요장, 요왕, 요존 정도로 치부되는 걸로 안다. 세부적인 경지로는 내가 하던 게임을 생각한다면...   요물(妖物).요화(妖和).요결(妖結).요명(妖命).요겁(妖劫).요원(妖原).   이러한 순서로 알고 있다.  꾸르륵, 소리가 배에서 울렸다.먹을게 뭐 있나 했는데 많다.동부의 못 근처에는 냄새만 맡아도 향기로운 영과들이 줄줄이 열려 있다.귀한 영목에 매달린 영과와 바닥에는 영식과 영초가 즐비하다.나는 주변에 널려 있던 영과(靈果) 하나를 주워 대충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달콤하고 쌉싸래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마자, 뱃속에서 뜨거운 열감이 뭉치며 단단한 덩어리를 이뤘다.   “음? 이거 뭐야?”   특별히 뭘 한 것도 없었다.그냥 영과를 배 터지게 먹고, 연못 물가에 대충 배를 깔고 누워 낮잠을 잤을 뿐인데, 뱃속의 기운이 묵직하게 압축되며 온몸의 세포가 찌릿찌릿해졌다. 사흘을 내리 자고 일어나니, 몸이 훌쩍 커져 있었다.   “이 껍데기 내꺼? 자는 동안 탈피라도 한 건가... 파충류는 파충류네.”   일주일 동안 배를 두드리며 게으름을 피우니, 웬만한 인간 도사들은 수십 년을 수련해도 못 뚫는 경지가 저절로 뚫렸다.   “내단이 생겼으니 요물의 경지로 올라선 건가?”   인간 수선자와 달리, 요수의 경지는 내단의 개수로 정해져 있다.내단 하나당 일요(一妖)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인간 수사로 비교한다면 연기기에 입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마 밥만 먹고 잠만 자도 수행이 오르는...?”   쾌재를 불렀다.비록 인간의 몸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적수라곤 없어 보이는 최상위 포식자 교룡의 삶이다.그도 그럴게, 선협 게임에서도 교룡의 비늘과 내단은 급수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최상위 법기나 단약을 만드는 데 쓰이잖아? 게다가 굳이 고생하지 않아도 먹고 자는 것만으로 강해지는 무한 성장.   “... 나 사냥당할 수도 있는 건가. 그건 좀 무서울지도.”   그래도 이 동부에서 나가지 않고 수련한다면 큰 위험이 없을지도 몰랐다. 모르긴 몰라도 이 동부는 교룡의 보금자리로 내 부모가 날 위해 마련해 둔 곳처럼 보였으니까.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곳에 알을 뒀을 리가 없다. 혼자서도 알아서 잘 먹고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마련 해 뒀잖아?   “그래 그래, 금수저 쯤은 되어줘야 교룡이 됐어도 안 억울하지!”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짧은 앞발로 벽에 빗금을 그어가며 날짜를 셌다.대충 배가 두 번 고프면 빗금을 그어 시간을 계산했는데, 태어난 이후 오늘로 벌써 석 달이 지났다.슬슬 무료함이 머릴 치켜들었다.   “...아, 심심해.”   심심하다는 건, 외롭다는 증거라고 누가 말했던 게 생각났다.하지만 동굴 밖으로 나가는 건 좀 무섭다. 나, 최상급 법기 재료잖아. 사냥당하면 어떡해?그렇다고 다른 뭔가랑 교류를 하는 것도 아니다. 사방이 캄캄한 동부에서 물소리만 듣고 있으려니 엄청난 고독감이 몰려왔다.배부르고 등 따신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이곳에 있으니 지루해서 죽을 거 같았다.폰도 없고, 쇼츠도 없고, 커뮤니티 갤러리도 없는 세상.   “정신병 걸리기 딱 좋네.”   속으로 투덜거리며 차라리 인간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치직- 팟!내 시야 구석,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푸른빛의 반투명한 창 하나가 느닷없이 툭 튀어나왔다.   [요선방(妖仙坊)에 연결되었습니다.]   “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환각이 아니었다. 내가 자주 쓰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정갈한 커뮤니티 게시판이었다.   “요선방... 요수 선사들의 갤러리란 뜻이겠지?”   게시판 속에는 계면 전역에 숨어 사는 온갖 요수 선사들이 실시간으로 글을 싸지르고 있었다.   [꼬리많아: 아오 오늘 인간 도사 새끼들 또 산등성이에서 난리 치는데 시끄러워 죽겠음. 인간들 다 멸종했으면 좋겠네.][흑풍: 인간들은 저들만 만물의 영장인 줄 알지. 우리 내단 뺏어가려고 혈안이 된 것들이 아주 그냥 싹 다 쳐 죽여야 한다.]   나는 멍하니 허공에 떠오른 창을 바라보았다.인간들이 미치도록 밉다며 핏대 세우는 요수들의 찰진 똥글.수련 방식이나 인간 문파 털어먹는 팁을 공유하는 기묘한 커뮤니티는 내가 알던 것과 다르지만 흡사했다.친근함까지 느껴질 정도.   “이건 좀... 쩌는데?”   외로울 틈이 사라졌다.입꼬리를 슥 올리며, 허공의 키보드 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물론 손은 아니다.의지.선협에서는 파장과도 같은 신식으로 두드리는 거였다.요선방을 하려면 일정 요기와 신식이 필요했다.뭐 이 정도는 선협 갤 국룰이지.   [작성자: 응애교룡]-응애, 뉴비 와떠염!   글을 올리자마자 조회 수가 치솟는다. 댓글 창에는 대륙의 내로라하는 썩은 물 대요수들의 의문 가득한 댓글들이 달렸다.캬, 이 맛에 갤질하지.   [거북하다거북해: 뉴비? 그게 뭐지? 왠지 모르게 입에 쩍쩍 붙는군.][꼬리많아: 교룡? 너 내단있니?][인간싫어: 인간, 좋아해? 그럼 내 글 볼래?]└흑풍: 절대 이놈 글을 보지 마라!   그날 이후로 내 지하 동굴 생활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배가 고프면 연못 가에 자란 영과를 뜯어먹고, 배가 부르면 누워서 요선방에 들어가 인간 혐오 조장 글이나 구경했다.   작성자:[인간싫어]-요수가 진짜로 경지를 올리고 내단을 묵직하게 압축하려면 인간만큼 가성비 좋은 재료가 없다.특히 도종(道種)이나 천영근(天靈根)을 품고 태어난 인간 녀석들은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영약이야. 진짜배기 인단(人丹) 뽑는 법 알려주겠다.아무 인간이나 잡아서 삶아봤자 찌꺼기밖에 안 나온다. 최소한 영기 좀 만져 봤다고 거들먹거리는 '정통 대종문 천교 정도 애들을 골라야 한다.이 녀석들은 어릴 때부터 온갖 영초와 비싼 단약을 처먹고 자라서 몸 전체가 최고급 보약 덩어리다.이때 중요한 건, 절규하며 품는 원한의 살기를 함께 솥 안에 쑤셔 박아야 단약의 품격이 올라간다.   “어우... 이건 좀...”   친근감을 가질만하면 이런 글이 튀어나와서 새삼 느끼게 된다.내가 진짜 요수가 되긴 했구나 하는 그런 거 말이다.물론 이런 똥글 말고도 도움이 되는 글들은 꽤 많았다.   [작성자: 수리수리마수리]-취기(聚氣), 단계를 지나, 뱃속에 단단한 요단이 맺히는 응단(凝丹)의 시기. 뱃속이 미치게 간지럽고 답답해질 때 가만히 있지 말고 몸 움직여야 함. 안 그러면 내단 걸림.   “내단이 알도 아니고 걸리긴 뭐가 걸려. 웃기지도 않네.”   웃기는 소리라고 치부하던 똥글은 곧 내 목숨을 살리기도 했다.   “어억!”   동부에서 밥, 똥, 글만 써댔더니 비대해진 내단이 몸에 걸렸다. 이걸 걸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아무튼 이상한 곳에 안착해서 그런지 몸이 조화롭지 못하고 아랫배가 꾸욱꾸욱! 아팠다.   작성자: [응애교룡]-어어어어억!! 내단 걸림! 나 어떠케! 살려줭놜ㄴ어ᅟᅵᆯ나어리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응애교룡:웃지만 말고!!!!!!!!!!!! ㄴ[거북거북해:벽치기 하셈.]   벽치기?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무시하려 했는데 다른 답글이 달리지도 않는다. 속는 셈 치고 동부 한 켠에 몸을 부딪쳤다.쿵-!!   “아아악! 아프기만 하잖... 어라?”   조금 괜찮아졌다.하지만 다시 아랫배가 살살 아픈 게 계속해야 하는 모양이다.   “에라 모르겠다.”   쿵! 쿠웅!!거대한 암반이 부서져 나갈 때마다 내단은 더욱 단단하게 압축되어 가는 게 느껴진다.   [응애교룡: [거북거북해]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이 빚 언젠가 갚겠삼.][거북거북해: 그럼 공덕 줘.]ㄴ응애교룡: 없는데 어떻게 줘요...   아무튼, 그렇게 하루 일과를 밥, 똥, 글만 쓰면서 지냈다. 그거만 해도 수행은 자동으로 쌓였고, 내단은 점점 비대해지고 응축을 거쳤다.   그리고 그렇게 백 년이 흘렀다.   “아... 마침내.”   경지가 올랐다.요물에서 요화. 그리고 요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대부분은 영과 먹고 똥글만 썼지만 아무튼 많은 일이 있었다.요결에 올라 응축된 내단 위에 또 다른 내단이 쌓였다.딱히 뭔가를 하진 않았다.그냥 숨만 쉬어도 수련됐다.   ‘드디어 요결! 그렇다면...!’   요수는 요결정도만 되면 화형의 순간이 찾아온다. 요수마다 다르긴 하지만 교룡이라면 아마 맞을 거다.   그리고 마침내, 덩치 큰 짐승의 형상을 벗어던지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일대 전환기 화형(化形)의 순간이 찾아왔다.온몸의 핏줄을 태우듯 거친 신비가 역류하며 뼈가 재조립되는 고통스러운 시간. 나는 이를 악무는 대신 허공에 요선방 창을 띄워 놓고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작성자:응애교룡]-화형 뚫을 때 너무 아픈데 진통제 추천 좀...   ㄴ붉은안개: 엌ㅋㅋ 화형 앓이 시작됐네. 거따 대고 참선해 봤자 소용없다. 그냥 념글 보면서 낄낄거려라.꼬리많아: 맞음. 정신 딴 데 팔면 아픈 줄도 모름.ㄴ응애교룡: 오케이 고맙다. 인간 단약 만드는 법 보러 간다.   고통을 잊기 위해 요선방 똥글을 스크롤하며 키득거리는 사이에, 거칠었던 교룡의 덩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 천겁 없네...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교룡이라 그런가?”   새하얗고 매끄러운 머리칼, 붉고 단단한 한 쌍의 뿔, 그리고 인간의 자그마하고 예쁘장한 소녀의 형상.요수 공주로 거듭난 내 모습이었다.자그마한 손을 까닥이자, 손끝에서 보랏빛의 뇌기가 가볍게 퍼득였다.내단은 응축을 견고해졌고, 온몸에 힘이 가득 찼다.   “근데 왜 여자애...?” 958a413d688284169c9f22cb67fcb84c.jpg 그것만이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