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무장 강도들이 왔다
우리집에 무장 강도들이 왔다
9화. 보통 압도되었다는 말을 쓸 기회가 인생에서 잘 오지 않는다.하지만 바로 지금. “미친.” 난 압도되었다.동부를 감싸고 있는 잔뜩 금 간 유리 조각을 천으로 두른 것처럼 둘려 있는 세계.이런 걸 보고도 압도되지 않는 자가 더 신기할 거다. “이게 대체...” 진법? 금제?무엇인지 형용하기도 어려운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바람에 출렁거리는 걸 보면 연기 같기도, 천 같기도 한데 유리 특유의 질감은 그대로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은한 빛은 이 유리 장막에 산산이 부서진다. 산란하는 듯한 햇빛이 쪼개져 내리쬐니 바람만 불어도 햇살이 제각각 움직이며 그림자를 다양하게 만든다. 생경한 풍경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자연이 주는 풀내음.바람이 가져다주는 햇살과 헤아릴 수 없는 산과 꽃의 냄새.교룡의 후각은 확실히 인간과는 다양한 냄새를 잡아내는 모양이었다.이처럼 다채롭고 다양한 냄새를 한줌 바람으로 느끼는 걸 보면. “자연 현상은... 아니겠지.” 난 즉시 캡쳐따서 요선방에 올리고픈 마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이걸 단서로 내 집을 추적할 수도 있을테니까... 오늘은 참자.’ 난 잠시 하늘거리는 유리인지 천인지 모를 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신식이 막히는 것을 깨달았다.신식이 막히길래, 혹시 봉인 비슷한 거 아닌가 했으나 그건 또 아니다. “몸은 통과하네?” 몸은 또 통과하기 때문이다.통과할 때의 감촉을 보면 천보다는 물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근데 또 젖지는 않아.이게 대체 뭐람.신식의 방해.하지만 육체는 통과하게 해뒀다.그럼 이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게 아니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라는 것일지도 몰랐다. “근데 그렇다기엔...” 뭔가 묘하다.신식이 뻗어나가는 걸 방해하는 걸보면 역시 뭔가 의도가 있는 거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그저 그런 느낌만 들뿐. “하긴, 원영기나 화신기 수사쯤되는 대수사들의 신식을 막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르지. 그런 거면 신식만 막는 걸로도 쓰임은 다한 거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하고 생각을 접었다.나중에 요선방에 살며시 물어보면서 정보를 캐는 수밖에 없다. “뭐, 그럼 가볼까.” 나한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거 같지는 않다.잠깐은 날 봉인한 무언가라면 어쩌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으니까.그냥 통과해도 뭐가 묻지도 않았고, 아무 영향도 없다.무시하고 쭉쭉 걸어가기로 한다. 백 년 만에 맞는 햇살과 바람.자연이 만들어낸 다양한 풀내음이 연신 기분을 좋게했다.이 정도라면 요선방에 안 들어가도 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그렇게 한참이나 걸으며 백 년만의 홀가분함을 만끽하던 그때. “음... 사람 냄새다.” 그냥 본능적으로 알았다. 사람 냄새가 난다.그것도 여럿.다른 냄새가 끼어있기는 하지만 집단으로 구성된 냄새였다. 물론 거기엔 철과 다양한 냄새 또한 섞여 있었는데, 썩 유쾌한 향은 아니었다. “은신, 은신부!” 화들짝 놀라 은신부를 사용하려다 영충대를 두드렸다.그러자 5마리의 부익충이 영충대에서 나와 몸에 달라붙었는데, 그중 은신부와 식기부가 적힌 부익충에 요력을 담았다.요력을 담자, 부익충의 날개에 적힌 부적의 글자가 붉어지고, 이내 효과가 발휘되기 시작한다.삽시에 내 모습이 조금 흐릿하게 변하고 기척과 냄새 또한 사라졌다. ‘그간 내가 만든 은신부와 식기부를 먹어 치운 부익충이야. 걱정할 거 없어. 침착하자.’ 고작 1, 2계지만 그간 먹어놓은 부적으로 은신과 식기부에 대한 영향으로 그 효과는 3계에 필적한다.웬만한 저계 수사의 눈을 가리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 ‘신식이 막혀 있어서 상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네.’ 요수의 몸이라 코가 좋아서 다행이다. 냄새로 사람 하나하나를 분별할 정도의 후각이 아니었다면 앞에 뭔가가 있는 줄도 모르고 나아갔을 터. 난 잠시 쭈그려 앉아 허리춤의 도를 만지작거리며 상황을 지켜봤다.부익충의 은신과 식기부는 잘 유지되고 있는 상황. 아마 한 시진(2시간) 정도는 유지될 거다.이대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냥 반대로 돌아가 동부에 숨는 것도 상관없다. 하지만 백 년 만에 나온 외출.이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나름의 이유가 있다. ‘말싸움을 하는 거 같은데.’ 교룡의 후각과 청력은 인간의 범주를 가볍게 벗어난다.거기에 3계 요결의 경지에 오른 내 신체 능력은 그보다 곱절은 더한다.애초에 법체쌍수 공법인 자하신뢰도 1성에 오르기도 한 몸이다.꽤 멀리 있는 거 같은 인간들의 말소리에서 다툼을 감지해 냈다. ‘제대로 들리는 건 아닌데...’ 거리는 대충 100장(300m) 거리.주변의 소음이라곤 바람 소리밖에 없어서 유난히 더 잘 들린다.눈을 감고 코와 귀에 집중하자 소소리와 냄새가 나는 진원지가 서서히 윤곽이 잡힌다. ‘움직이진 않고 있어.’ 다툼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뭐라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그런 느낌. ‘좀 더 다가가 볼까.’ 어차피 유리 장막으로 신식이 막혀 상대는 날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다. 조금 정도는 다가가도 괜찮을 거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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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로 싸우고 있는 터라, 날 전혀 모르는 눈치이니 지금이 적기.부익충의 힘을 더 믿어보기로 한다. 이내 10장(30m) 정도 다가갔다.그러자 소리와 냄새가 더 명확하게 들렸다. -은유사막은 닿기만 해도 영기와 진원을 상하게 하는 금제요. 한데 어찌 이곳을 통과하자는 게요!-진정하시오. 마 도우. 그러니 제가 이 요수 년을 쫓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은유사막은 길이 없는 금제가 아닙니다. 나풀거리는 은유 속에서도 도의 길은 있습니다.-이깟 요수 따위가 원영기 수사들도 겁내는 은유사막을 통과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게 정말입니까? 인원 수는 대략 열넷.원영기 수사도 겁내는 은유사막.그건 아마 이 나풀거리는 유리막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겁낸다고? 왜지. 몸에 닿아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영기와 진원을 상하게 하는 금제.하지만 내 몸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이것도 날 위한 금제?’ 그럴 확률이 높았다.그렇지 않고서야 나한테 아무런 불이익도 주지 않을 리 없으니.어쩌면 내가 동부 안쪽에서 걸어와서 그럴지도 모르겠다.아니면... ‘전송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옥패는 용이 그려진 옥패로, 척 보아도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묘리가 깃들어 있었다.어쩌면 이게 전송패겸, 이 금제를 출입할 수 있게 해주는 출입패의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품에서 옥패를 꺼내 은유사막에 가져다 대니, 묘한 파장이 느껴졌다. ‘맞네. 전송패가 출입증이었어.’ 순간 소름이 돋았다.만약 이 옥패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면 난, 은유사막을 만진 것만으로 진원을 크게 상하거나 그대로 죽었을지도 몰랐다.어마어마하게 무서운 녀석이었다는 걸 알고나니, 아름답게만 보였던 부서지는 햇살도 묘하게 기괴했다. “어... 쨌든. 원영기 수사도 겁내는 금제라서 못 들어온다. 이거네.” 숨죽이고 있던 방금 전까지의 나.사요나라! 이젠 다시 무서울 것 없는 교란 등장이시다! “은유사막은 겹겹이 둘러서 만들어낸 유리 천으로 만들어진 금제야. 바람에도 휘날리는 통에 길을 알고 있다고 해도 쉽게 들어올 순 없겠지.” 물론 상황이 썩 좋지는 않다.어쨌거나 밖의 인간 수사가 내 보금자리를 탐내고 있다는 증거니까. 퍽!둔탁한 소리가 조금 들렸다.다시 집중해 보자, 이젠 싸우는 게 아니라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직접 네 살을 갈라주랴? 그게 싫다면 스스로 피를 내어 길을 열어라. 뭘 해야 할지는 네년들 또한 잘 알고 있을 터. 뭔가 요수의 냄새가 나는 게 둘 정도 있다했더니 그들인 모양. ‘인간 수사 여럿한테 잡혀서 협박당하고 있는 모양이네.’ 사정이 꽤 딱했다.물론 내 감상은 거기까지였다.얼굴도 모르는 요수들이 불쌍하다며 도움을 건넬만큼 난 그렇게 착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않다.더군다나 이곳이 어디인가.바로 흉흉한 심계가 도사리는 선협 속 세상이다.한데 인간 수사 여럿이 있는 곳에 나 혼자 다가가 저들을 상대한다?말도 안 되는 소릴.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의심병 같긴 하지만, 이것 또한 날 끌어내기 위한 수작일지도 몰라. 모든 상황을 의심해야 해. 그래야 살아남는 게 수선계니까.’ 그래도 일단 더 지켜보기로 했다.그렇다고 저들이 순조롭게 은유사막을 통과하는 것도 영 껄끄럽다.은유사막을 통과하면 내 동부까지는 곧장이다.물론 내가 통과한 은유사막만 수십장에 달하니 길을 찾으며 도달하려면 수일, 또는 몇 달이 걸릴지 몰랐다.하지만 결국엔 도착할 수도 있다는 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영기 수사를 들먹이는 걸보면 저들의 경지는 원영 아래.’ 인간 수사의 경지는 다음과 같다. 연기, 축기, 금단, 구령, 원영.그리고 마지막 화신이다. 저들의 경지는 아마 원영 아래.4계인 구령 이하의 수사들일 확률이 대단히 높았다. “다르지만 비슷한 냄새들이 나. 이건 이들의 경지가 같은 건가.” 냄새 하나로 수사의 경지까지 가늠이 가능할 줄은 몰랐다.하지만 묘하게 비슷한 냄새들이 나는 자들이 있었는데, 아마 저계 수사들인 모양이었다.이를 한데로 묶어보면.열넷 중, 둘은 요수.열둘의 인간 수사.연기기가 여섯, 축기기가 넷, 그리고 금단기 수사가 둘이다. ‘금단 위, 4계의 구령기 수사일지도 몰라.’ 냄새만으로 경지의 판별이 가능한 것도 아직 떨떠름하다.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니 쉽게 확신할 필요는 없었다.물론, 내게 확신을 줄 이들에게 물어보면 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응애교룡: 이게... 인간의 냄새?]-밖에 나왔는데, 금제 밖에 인간들이 있는 거 같음. 공통된 냄새들이 나는데, 이거 경지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같은 것 맞지? 잠시 기다리자. └요선(178.1): ㅇㅇ 인간 수사들은 수련 방식이 비슷하니까 같은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냄새의 결이 존재함.└꼬리많아: 응애!! 인간 근처엔 가지 않기로 언니랑 약속했잖아! └응애교룡: 내가? └꼬리많아: 웅! └인간싫어: 인간 보면 목부터 따버린다고 나랑 약속했음. └꼬리많아: 뭐? 정말이야? └응애교룡: 그런 적 없는데? └인간싫어: 그럼 인간과 사이좋게 지내기라도 하겠다는 말??????? └응애교룡: 그건 아니고 ㅋㅋ;; 영양가 없는 답글이었지만, 유익한 내용도 있었다. 확실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코가 좋은 요수들은 냄새에서 경지의 결을 느끼는 모양.그렇다면 내 코에 확신이 깃든다. ‘뭐 그렇다고 뭔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아직 정보가 부족해.’ 언젠가 이곳을 뚫어내려고 할 놈들이라면 정보가 필요하다.결국, 금제를 피해서 동부로 오게 된다면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다시 귀를 기울여보자. -허튼 수작마라. 조금만 수작질을 부린다면, 네년의 동생을 금제에 처 밀어 넣어주지.-제발, 시키는 건 뭐든 하겠으니 제 동생만은...!-언니!-참으로 기연이 따랐습니다. 저 요수들이 하필 천혈의 보유자였다니요. -그러니 믿는 바가 있어 저들도 이곳에 온 거겠죠. 피 냄새가 난다.요수의 피 냄새다. “... 이 냄새는 쥐 냄새인가.” 쥐의 피 냄새가 난다.피를 흘려 길을 찾는 요수.천혈(天血).그리고 비경, 금환선향.들으면 들을수록 정보가 모인다. ‘역시 비경이었구나.’ 이런 곳이 아무 곳이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금환선향이라 이름 붙어진 비경 속에 내가 태어났다.금환선향이 곧 내 고향이란 말.소중한 정보였다.혹시나 옥패를 잃어버리더라도 이제 내 집을 찾아올 수 있게 됐다. ‘쓸만한 정보들이야. 더 들어보자.’ 어차피 시간은 많다.들으면 들을수록 취합되는 정보가 많으니 안 들을 이유도 없었다.은유사막의 금제는 내겐 다른 무엇보다 안전한 곳이었으니까. ... 꽤 시간이 흐르고 난 이후.난 자리에서 일어나 도를 뽑았다. -비경의 율법이 지엄한바. 금환선향은 3계 이상의 존재가 출입할 수 없는 법칙이 작용하는 곳. 어차피 저 안의 기연도 그 이상의 존재가 존재하진 않을 것이오!-그럼! 두려워할 것 없지. 금제만 걷어낸다면, 그 앞엔 하늘에 닿은 기연이 기다릴 것이니! 하하하!
더 기다릴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도둑놈들을 처단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