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그냥 답이 없다 (1)
이 나라는 그냥 답이 없다 (1)
나는 환생이니, 영혼이니 하는 이야기를 그다지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런 이야기들을 단순히 오컬트적인 요소로 치부하고서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그랬던 내가 지금에 이르러서 환생을 믿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그야, 내가 직접 환생했으니까.중세시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열악한 도시국가의 왕세자, 라인 바이어스.그것이 내가 얻게 된 새로운 신분이었던 것이다.“오늘로 벌써 15년인가.”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나는 왕자의 몸으로 두번째 삶을 시작했다.정확히는 바르티아 왕국의 첫째 왕자로 환생했다.바르티아 왕국은 인구 4만명 규모의, 왕국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국가다.문명의 수준은 중세에 가까울 정도로 뒤쳐져있으며, 이렇다할 자원 없이 농사나 짓고 사는 한적한 동네.그것이 바로 바르티아 왕국의 실체였다.“…….”그럼에도 이 나라는 대륙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국가들 중 하나였다.주신교를 믿는 다른 국가들에게서 악마의 후예라고 불리며 손가락질 받는 민족.매번 십자군을 조직해 성전의 이름아래 침공하는 일순위 토벌대상.왕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메르티인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심각한 탓이었다.“대륙의 왕국들은 왜 우리 나라를 그리 증오하는걸까.”나는 시종에게 마음속의 근심을 토로했다.순진하고 착한 메르티인들을 악마의 후예라고 모함하며 핍박하는 모습이라니.나로서는 조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적어도, 내가 도시를 돌아다니며 마주한 바르티아 왕국의 모습은 악마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바르티아 왕국만큼 평화로운 곳도 없을텐데 말이야.”이 나라는 그냥 마경이 조금 가까이에 있을 뿐인 평범한 나라에 불과했다.공기좋고 물좋으며 인심좋은 소도시.그게 내가 십오년간 바르티아 왕국을 지켜보며 내린 평가였다.“왕세자 전하, 외부인들의 평가에 괘념치 마십시오.”스윽.고개를 숙인 시종이 나를 향해 자그마한 조언을 전했다.외부의 시선에 상처받지 말라는 이야기였다.“하지만 성전을 명목으로 수시로 쳐들어오는건 도가 넘었잖아. 주신교로 개종하지 않은게 그렇게 큰 죄야?”“어차피 저희가 주신교로 개종하더라도 납득하지 않을 이들입니다.”“하기야, 그것도 그렇겠어.”시종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꽤나 논리적인 내용이었다.종교의 차이는 단순히 증오해야할 이유에 불과할 뿐.저들은 우리가 개종하더라도 메르티인들에 대한 증오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이미 종교 하나만으로는 돌이킬 수 없을만큼 골이 쌓여버렸으니까 말이야.”대륙의 국가들에겐 증오의 대상이 필요했다.종교라는 깃발 아래에서 그들을 하나로 결속시킬 사악한 적 말이다.그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메르티인들을 악마의 후예로 둔갑시킨 이유일 터였다.“주신교 국가들과의 증오의 연쇄는 절대 끊을 수 없는걸까.”그렇게, 내가 고민에 젖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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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 터벅.익숙한 얼굴의 시종 하나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전하! 왕세자 전하!”“무슨 일이야?”“폐하께서 급하게 전하를 찾으십니다!”내 아버지, 국왕폐하가 나를 부른다는 이야기.그에 나는 곧장 시종에게 물었다.“무슨 용건으로 찾으시는데?”“그게, 폐하께서 중병에 걸리셨다고 하여…….”“뭐?”시종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놀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아무래도, 아버지의 침소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 * * * *화려한 비단으로 가득차있는 침소.그 위에서 골골대는 국왕폐하의 모습을 보며 내가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하나였다.‘못해도 10년은 더 사실 것 같은데?’환자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0년은 더 사실만큼 튼튼해보이는 모습이었다.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이었을까.툭, 툭.이불을 두드리던 국왕폐하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라인…….”“예, 폐하.”“눈빛이 심히 불경하구나.”스윽.나는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손을 정성스럽게 붙잡았다.“너무 걱정이 되어서…….”“뭐, 그만하면 되었다.”타악-.병상에 누워있는 폐하께서는 기운찬 손으로 내 손길을 떼어내셨다.아무래도 사내놈이 다정한 눈길로 손을 잡는건 별로 안좋아하시는 모양이었다.“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하나다.”그 대신에, 메르티인들을 이끄는 위대한 군주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콜록, 콜록.그는 살짝 피곤해보이는 듯한 얼굴로, 가래가 섞인 기침을 터뜨리며 이야기했다.“당분간 나를 대신해 국정 좀 보거라.”그런 폐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내용이었다.당분간 나보고 국정을 대신하라니.병이 낫기 전까지는 왕 노릇을 하고 있으라는 이야기였다.“하지만, 폐하께서 정정하신데 제가 어찌…….”물론 나는 아직 정무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허나, 폐하는 억센 손길로 내 손목을 잡으며 이야기했다.“네가 한량처럼 노는걸 봐줬으면 이만 정신차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꽈아악.내 팔을 붙잡은 폐하의 눈동자가 나를 들여다보았다.그의 눈동자에 비추어지는건 명백히 한량에 가까운 소년의 모습이었다.흐읍.나는 숨을 참고 폐하의 손길을 떼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어째서인지 손아귀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뭐야. 이거 왜 안떨어져.’중병에 걸렸다는 분이 뭐가 이렇게 힘이 강하단 말인가.억지로 떼어내려다간 내 팔이 떨어질 지경이었다.결국 나는 탈출을 포기한 채 얌전히 폐하의 이야기를 들었다.“라인. 나는 네 나이때 당당하게 옆나라에 쳐들어가 신부를 약탈해왔다.”“저희한테 그런 문화가 있었어요?”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의문을 표했다.물론, 폐하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냥 넘어가는 모습이었다.“바르티아의 사내라면 누구나 갖춰야할 덕목이지.”“아하…….”내가 모르던 바르티아 왕국의 새로운 면모였다.나는 주변 국가들의 증오가 어디서 나온건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왕족이라면 무릇 대귀족의 부인정도는 약탈해와야 하기 마련.”“예?”“원래 남의 부인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이지.”더군다나 폐하께서는 다소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계셨다.나는 주변 국가들의 증오가 어디서 나온건지 적당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후작부인정도는 빼앗아와야 남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그 당시에는 식량이 부족해서 일단 아무 영지에 병력을 보내고 생각을…….”아니, 이제는 그냥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더 이상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어보였다.가만보니 증오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수준이었다.나는 머릿속에서 메르티인들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악마의 후예까지는 아니더라도, 야만의 화신정도로 불러도 될 것 같았다.그리고는 슬그머니 폐하의 손아귀에서 팔을 빼냈다.“정무를 보지 않을거라면 나가서 신부라도 데려오거라. 참고로 이 아버지는 네가 공작부인을…….”“그냥 정무나 보겠습니다.”나는 폐하의 앞에서 당당하게 정무를 보겠다고 선언했다.어쩔 수 없지.전쟁터에 나가는 것보다는 왕 노릇을 하는게 더 합리적이었다.“잠깐, 그럼 공작부인은?”“공작이랑 잘 지내라고 하십쇼.”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말이다.이 나라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운영해볼 생각이었다.야만적인 국가를 어떻게든 고쳐보려는 것이다.나라를 운영하는게 어려워봐야 뭐 얼마나 어렵겠는가.커다란 문제만 안터지면 순조롭게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그렇게 자신만만한 생각을 가지고서, 폐하를 대신해 대전에 들어선 첫날.나는 곧바로 폭탄을 마주했다.“전하! 성황청에서 제21차 십자군을 조직하고 있다는 급보입니다!”“뭣이……!”야만국가를 응징하기 위한 정의의 십자군이 조직되기 시작한 것이다.허어-.그 이야기를 들은 대전의 신하들이 하나같이 탄식을 흘리는 모습이었다.정무를 보자마자 첫날에 전쟁위기를 직면하게 되다니.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적들의 규모는 얼마나 되지?”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대신에게 그 규모를 물어보았다.그리고 머지않아, 대신의 입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이번 십자군은 무려 3만명이나 되는 규모로 모집될거라고 합니다!”“허어…….”“자그마치 3만명이라니, 허어…….”적들의 규모는 자그마치 3만명.바르티아 왕국의 인구인 4만명에 비견되는 숫자였다.지금부터 징병을 시작해봐야 저들의 반도 모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한마디로 바르티아 왕국의 존립위기에 가까운 상황이었다.“3만명? 그게 사실인가?”“예, 전하.”후우-.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그리고는 복잡한 심경으로 혼잣말을 조용히 내뱉었다.“3만명이라니… 이거 큰일이군…….”“허어…….”“정말 큰일이군, 허어…….”흐음-.나는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뭔가 이상했다.이 대전은 뭔가 잘못됐다.어딘가 콕찝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리만치 위화감이 들었던 것이다.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하들을 향해 다시금 이야기했다.“자그마치 3만명이라니… 어떻게 막아야할지 모르겠군…….”그 직후, 대신들이 수심에 찬 얼굴로 이야기했다.“3만명이라니, 허어…….”“허어…….”“이를 어찌해야할지, 허어…….”스윽.고개를 끄덕이던 대신들 중 하나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껌뻑, 껌뻑.대신의 눈동자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그리고는 이내 다시금 조용히 고개를 숙여보였다.“허어…….”더 이상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이유같은건 없었다.퉁! 데구르르-.우당탕탕-!수많은 물건들이 신하들을 향해 날아들었다.나는 손에 잡히는걸 모조리 집어던지며 신하들을 대전에서 내쫓았다.“나라를 좀먹는 무능한 놈들! 전부 꺼져라!”“허어…….”“나라를 좀먹었다니 정말 큰일이군, 허어…….”이 나라는 뭔가 잘못됐다.그게 내가 국왕대리를 맡은 첫날에 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