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민족 (1)
저주받은 민족 (1)
이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아니, 정상은 커녕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이들로 가득차있다.그것이 내가 재상 블레인의 대규모 징병을 보고 느낀 소감이었다.그러니까, 바르티아 왕국의 인구 대부분을 구성하는 메르티인에 대한 대륙의 오해가, 사실은 오해가 아닐 수도 있다고 깨달아버린 것이다.“…….”아무도 없는 국왕의 집무실.그곳에서 이마를 짚은 채 한숨을 내쉬던 내 머릿속에, 그동안 내가 대륙의 오해라고 여겼던 것들이 스쳐지나갔다.온갖 괴물들이 쏟아져나오는 마경의 바로 옆에 위치한 땅.성황청을 포함한 대륙의 국가들은 오랫동안 바르티아 왕국을 악마의 후예라고 손가락질하고 두려워해왔다.“생각해보면 말이 안되는 일이었지.”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마경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국가를 적대해서 좋을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단순히 종교적인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바르티아 왕국을 남겨두는 장점이 명확하다는 이야기였다.“대륙에도 주신교를 믿지 않는 국가는 얼마든지 존재하는데 말이야.”허나, 오늘 이 나라의 이면을 보고난 뒤에 생각이 달라졌다.저들은 우리가 마경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아니, 오히려 이 나라조차 마경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이미 몇차례나 실패했음에도 거듭해서 십자군을 조성하는게 그 증거였다.“후우…….”바르티아 왕국의 실체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돌이켜보면 이전부터 이상을 느낄만한 징조는 많이 있었다.허나, 내가 그것들을 중세의 미개한 행정이라고 치부해 무시해왔을 뿐이었다.그래.이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인구수보다 많은 병력을 뽑아내고, 재상 하나가 말도 안되는 일을 해내고, 얼굴이 똑같은 인간이 몇명이나 돌아다니는건 어떻게봐도 정상이 아니었다.인구 4만의 국가가 십자군을 몇번이나 저지해낸 것조차도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실제로 몇몇은 사람이 아니라 괴이들이었잖아.”바르티아 왕국에는 지금도 크고 작은 이상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이 나라에는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뒤섞여있다.성황청이 악마의 후예라 부르며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존재들.—괴이(怪異).다시 말해서 사탄의 혈육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이었다.“…….”바르티아 왕국의 실체를 직시한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톡, 토독-.그렇게 내가 앞으로 이 나라를 어찌해야할까 고민하고 있던 것도 잠시.끼이익.머지않아, 문이 열리며 병든 국왕폐하가 안으로 들어왔다.“아, 폐하…….”“아버지라고 부르라 하지 않았느냐.”“예, 아버지.”병들고 노쇠했지만 3대 700정도 칠것같은 남자가 내가 앉아있던 책상으로 다가왔다.그리고는, 총기가 깃든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그래서, 나라를 다스려본 소감은 어떠냐.”이 나라를 다스려본 소감.그러니까, 내가 바르티아 왕국의 국왕대리를 해본 소감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후우-.그런 폐하의 질문에,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솔직한 소감을 이야기했다.“솔직히 말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모두가 그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걸 보니… 제가 이상한 사람인가 싶더군요.”대전에서 신하들이 보였던 이상한 반응.재상 블레인에 대한 과도한 신뢰.거기에 더해, 이 나라의 기이한 생태에 이르기까지.며칠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는 나를 향해서, 폐하는 믿음직스러운 아버지의 얼굴을 한 채 이야기했다.“한 사람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나라라는 것이 너무나도 거대한 탓이지.”“……아버지.”“허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네가 그들을 전부 이해했느냐가 아니다.”폐하의 눈빛이 나를 내려다보았다.나 역시, 총기가 서린 국왕의 진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마주하는 시선.그 속에서, 폐하가 내 책상에 금색 열쇠를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네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네가 다스려야할 백성이다.”폐하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그 한마디가 내 가슴속에 선명하게 파고들어왔다.“그, 말씀은…….”“자식이 못났다고 해서 쉽게 버리는 부모가 어디있더냐. 하물며, 한 나라의 왕은 만백성의 어버이가 되어야만 하는 자리다.”“…….”“이해하지 못한 이들조차 가슴에 품고, 그들과 함께 미래를 찾는게 왕의 책무라는 소리다.”그렇게나 진지한 폐하의 모습을 보는건 살면서 오늘이 두번째였다.무척이나 근엄해보이는 왕의 눈빛.나는 그런 폐하의 눈빛을 받으며, 그가 내민 열쇠를 조용히 챙겨들었다.“……아버지.”국왕대리에 앉은 첫날, 나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왕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어쩌면 내 생각이 틀렸는지도 모르겠다.정말로 자격이 부족한건 나 자신이었다.“알겠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저도 최대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그래, 아들아. 이 아버지는 너를 믿고 있다.”툭, 툭.아버지의 손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그 손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져서,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그래. 삐뚤어진 나라를 보고 포기하는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그 일그러짐조차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으로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스윽-.나는 폐하가 이야기한 교훈을 가슴속에 품은 채, 손에 움켜쥔 열쇠의 감촉을 확인했다.“그래서, 이 열쇠는 대체 뭡니까?”황금빛을 머금은 열쇠.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열쇠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신비로운 느낌이 전해져오고 있었다.열쇠를 바라보던 나를 향해서, 폐하가 입을 열어 그 용도를 이야기했다.“어디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열쇠지만, 어느곳에도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열쇠다.”“예?”“자격이 있는 자에게 어떤 장소를 보여준다고 하더군.”어느 열쇠구멍에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 열쇠.다시 말해서, 이상현상을 초래하는 유형의 물건이라는 이야기였다.“어떤 장소가 나타나는지 확인해보신겁니까?”“참고로 나는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왕가에 오랫동안 전해져내려온 물건이다만, 아무래도 나에게는 자격이 없었던 모양이다.”“…….”“어쩌면 선왕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그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지.”폐하의 이야기에 따르자면,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열쇠는 아닌 모양이었다.내 눈앞에 있는 폐하조차도 이 열쇠의 진가를 확인하지 못한 모양이니까 말이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겁니까?”“그렇기도 하지.”어쩌면,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열쇠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조차도 이 나라의 일부라고 했지.’열쇠를 돌리는 것으로 나타나는 특별한 장소.그 너머에서, 나는 자신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그러한 기대를 품은 채, 나는 폐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감사합니다. 이 열쇠는 잘 사용하겠습니다.”“…….”“……아버지?”그 직후, 무언가 할말이 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폐하의 모습을 발견했다.이걸로 서로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은데.대체 무슨 할말이 있길래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혹시…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겁니까?”나는 솔직한 질문으로 폐하에게 물어보았다.그리고 폐하 역시, 무척이나 솔직한 말로 대답해주셨다.“그래서, 공작부인은 언제 만나러 가면 되는거냐?”“……예?”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전부 이 한마디를 위한 복선이었음을 깨달았다.이럴수가.감동적인 대화의 끝에 찾아온 결론이, 폐하의 확고한 유부녀 취향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게 될줄이야.경악한 나를 앞에 두고서, 폐하는 나름대로 진지한 설교를 이어가는 모습이었다.“참고로 아들아. 무릇 왕족이라면 매력적인 귀족 여인을 데려와야하는 법이다.”“…….”“왕국을 이끄는 왕족은 바르티아의 백성들과는 혼인이 금지되어있으니 말이다.”허나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자신이 폐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이 나라에 약탈혼 관습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이유.그 이유가 폐하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아무리 그래도, 인간인지도 모를 처자를 왕비로 삼는건 조금 그렇지 않더냐…….”“아…….”나는 그동안 귀족여인을 약탈해오는 관습이, 메르티인의 뒤틀린 취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허나, 폐하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런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약탈혼은 귀족이나 왕족의 핏줄이 괴이와 뒤섞이는 것을 막기위한 수단.그러니까, 인간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뜻이었다.“아, 아버지… 저는 그것도 모르고……!”지난 며칠간,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다는게 부끄러워졌다.아무렴, 이렇게나 백성들을 사랑하는 성인군자가 그런 저열한 취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있겠는가.그렇게 충격적인 진실을 깨달은 내가, 멍하니 폐하를 바라보는 가운데.다시금 근엄한 폐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그래서 나 공작부인 만나러 가도 되냐?”“…….”아무래도 오해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아오, 국왕폐하.제발 좀 참으시라니까요.* * * * * *다음날 아침.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기상한 나는, 머리맡에 서있는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나보다도 투철해보이는 사명감을 가진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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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대표하기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얼굴.그러니까, 재상 블레인이 수상쩍은 양피지를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전하. 좋은 아침입니다.”“…….”“혹시 왕국군에 입대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나는 입대를 권유하는 블레인을 조용히 바라보았다.몇번을 다시 생각해봐도-.이 녀석은 사람이 아니라 괴이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