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없던 것도 생겨난다 (1)
가끔씩은 없던 것도 생겨난다 (1)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일찍 기상한 내가, 블레인이 방에 없다는걸 확인하고 움직이려던 이른 아침.여동생이 방에 찾아왔다.그러니까, 바르티아 왕국의 또 다른 왕족이 나를 찾아왔다는 이야기였다.“오라버니, 블레인 공에게 소식 들었어요!”“…….”“사악한 십자군에 맞설 용맹한 군세를 모으신다면서요!”아침부터 내 방에 쳐들어온 왕녀는, 왕족의 특징인 백금발을 흩날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블레인 공에게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왕녀의 눈빛에는 선명한 애국심이 깃들어 있었다.“그 소식을 듣고서 저도 바르티아 왕국의 국민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사악한 십자군에 대해 떠올리던 왕녀의 얼굴이 비장한 사명감으로 물들었다.그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물론, 오라버니가 막내인 저를 무척이나 아끼고 걱정하신다는건 알고 있어요.”“…….”“하지만 저는 바르티아의 왕족이고, 제 나름대로 왕족의 책무를 다해야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스윽-.왕녀의 시선이 나를 올려다보았다.그 직후, 그녀가 나를 향해 당당하게 이야기했다.“그러니까, 오라버니… 저도 왕국군에 함께하게 해주세요!”그렇게, 그녀는 블레인의 자원입대서류에 서명한 왕족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꺼냈고-.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덜덜덜덜-.나는 자원입대의 의지를 표명하는 여동생을 바라보며, 그녀의 참전선언보다도 더욱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너 대체 누구냐?”참고로 나한테 여동생같은건 없다.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 * * * *여동생이 찾아온 그날 오후.어전회의를 마친 나는 스스로를 왕녀라고 주장하는 기괴한 무언가를 데리고 이동했다.그녀가 진짜 내 여동생인지 확인하기 위해, 바르티아 왕국의 국왕폐하를 찾아간 것이다.그리고 폐하에게 찾아가는 동안, 나는 몇번이나 놀라운 일들을 왕궁에서 경험해야만 했다.“안녕하십니까, 메릴 왕녀 전하.”“안녕하세요, 한스!”“오늘도 건강해보이시는군요, 공주님.”“안녕하세요, 막시무스 장군!”폐하를 만나러 이동하는 내내, 왕궁의 관료들이 정체불명의 여동생에게 친근하게 인사한 것이다.단체로 기억을 조작당하기라도 한 것일까.그들은 내 옆에 있는 여동생을 보며 당연하다는 듯이 왕족으로 대우하고 있었다.“블레인 공. 잠깐 궁금한게 있는데.”오죽하면, 내가 지나가던 블레인을 멈춰세우며 질문을 할 정도였다.“말씀하시지요, 전하.”“얘 대체 누구냐?”나는 내 옆자리에 선 여동생을 가리키며 물었다.스윽.블레인의 시선이 잠시 여동생을 바라보더니, 이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메릴 왕녀 전하이십니다.”“…….”“그럼 저 명재상 블레인은 바빠서 이만…….”대답을 마친 블레인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총총총총-.나는 자리를 벗어나는 블레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물론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도망가는 블레인을 지켜보는 와중에도, 왕녀를 자처하는 기괴한 무언가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오라버니, 빨리 가죠! 아버지를 만나기로 했잖아요?”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자신감인 것일까.그녀는 서둘러 폐하를 만나 자신이 진짜 여동생이라는걸 증명하고 싶어했다.그렇게 나는 자칭 여동생의 손에 이끌려 국왕폐하의 방에 찾아가게되었다.“…….”끼이익-.나와 여동생이 폐하의 방에 도착한 이후.병들고 쇠약한 몸으로 한손 푸쉬업을 하던 폐하가 우리들을 반겨주었다.“내 사랑스러운 아들딸들이 왔구나.”자리에서 일어난 폐하가 곧장 의자에 앉으며 이야기했다.여동생을 마주한 폐하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딸취급하는 모습이었다.설마, 정말로 그녀가 폐하의 숨겨진 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폐하를 바라보았다.‘이 작은 나라에서 내가 배다른 여동생을 모를수가 있나?’스윽-.왕가의 상징과도 같은 두 사람의 백금발이 눈에 들어왔다.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왕족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저 앞에 있는 자칭 왕녀, 메릴이 내 기억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말이다.“…….”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그렇기에, 나는 눈앞의 폐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아버지, 이 아이가 누군지 아십니까.”툭-.내 손가락이 옆에 있던 여동생의 뺨을 쿡쿡 찔렀다.그에, 폐하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네 여동생이 아니더냐.”폐하는 눈앞의 여동생이 본인의 딸이 맞다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그 모습에, 나는 다시 한 번 폐하를 향해 물어보았다.“제 여동생이 확실합니까?”“왜 그런 질문을 하는거냐, 아들아. 누가 봐도 네 여동생이 분명하지 않더냐.”폐하는 왜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는 듯한 얼굴로 이야기했다.다른 사람도 아니고 폐하가 하는 말이었다.이렇게까지 확신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태어난 이복동생인게 분명해보였다.그게 아니면, 내 기억이 어딘가 잘못됐거나 말이다.후우-.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폐하의 맞은편에 있던 의자에 걸터앉았다.“이 아이가 제 여동생인건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과의 사이에서 나온겁니까?”“그야 당연히, 백작부인과의 사이에서 나왔지.”내가 메릴의 출생에 대해 묻자, 폐하는 당연하다는 듯이 백작부인을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아니에요!”그에, 메릴은 뺨을 부풀린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절대 백작부인은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그녀가 백작부인에게서 나온 딸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아니라는데요?”“그럼 후작부인인가?”스윽-.나와 폐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메릴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이번에도 메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절레절레.절대 후작부인은 아니라는 뜻이었다.“그것도 아니랍니다.”“그럼 공작부인인가?”스윽.나와 폐하가 다시금 메릴을 바라보았다.이번에도 메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절레절레.공작부인 역시 오답이라는 뜻이었다.“…….”“…….”흐음-.그렇게 폐하가 조용히 고심하고 있던 것도 잠시.머지않아, 폐하는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이, 충격에 젖은 얼굴로 메릴을 바라보았다.“허어어어억……!”깜빡, 깜빡.멍하니 메릴을 바라보던 폐하가, 이윽고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이야기했다.“아들아, 쟤 정체가 뭐냐?”“…….”그럼 그렇지.폐하 역시 이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그걸 지금에서야 눈치챈 것도 대단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겠다고 본인의 화려한 과거를 드러낸 것도 대단했다. 허어-.진실을 알게된 폐하는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메릴을 바라보았다.“다시 생각해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그래서 제가 아버지한테 데려온 것 아닙니까. 저 여자가 가짜 왕녀라는걸 판별하려고 말입니다.”나와 폐하의 시선이 진실을 추궁하듯이 메릴을 바라보았다.왕궁의 모든 왕족들이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는 상황.이 상황에서 가짜 여동생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그렇게, 내가 그녀를 지켜보던 순간이었다.“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버지?”메릴이 폐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흐읍-.머지않아, 숨을 크게 들이마신 메릴이 폐하를 향해 당당한 얼굴로 이야기했다.“저와의 추억을 전부 잊어버리신건가요? 분명 저랑 같이 십자군을 무찌르고 공작부인을 데리러가기로 했잖아요!”“뭐, 뭣이……!”쿠궁-.폐하의 얼굴이 다시금 충격에 물들었다.“아, 아아…….”그런 폐하의 입에서는 나지막이 탄식이 흘러나오는 모습이었다.꽈아악-.메릴의 이야기를 들은 폐하가 주먹을 움켜쥐던 것도 잠시.그는 머지않아, 양팔을 활짝 벌리며 메릴을 향해 이야기했다.“다시 생각해보니 너는 내 딸이 맞다.”나는 경악에 젖은 얼굴로 폐하를 바라보았다.방금전에 눈앞에서 주고받은 대화의 결론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던 까닭이었다.“아아… 어떻게 내가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딸을 잊고 있었단 말이냐!”“아버지!”“딸아!”여동생을 자처하는 기괴한 무언가가, 양팔을 벌린 폐하에게 달려가 안겨들었다.흑흑-.그렇게 오늘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의 재회를 하고 있는 가운데.나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아무리 생각해도 괴이같은 존재가 하나.사고방식이 괴이같은 인간이 하나.무척이나 닮은 두 사람을 지켜보던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그냥 두 사람 다 전쟁터로 보내버리자.’저 괴이들을 가능한 왕궁에서 멀리 떠나보내자.어떻게든 나와 마주할 일이 없는 머나먼 곳으로 보내버리는 것.그것이 내가 찾은 유일한 해답이었다.* * * * * *새로운 여동생이 생긴 다음날.어전회의에 참석한 나는, 막시무스와 5만 대군의 보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왕국 역사상 최대규모로 모집된 병력을 보급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식량이 필요할지 논의한 것이다.“전하, 5만 5천의 병력을 보급하려면 적지 않은 군량이 필요해질겁니다.”“5만 5천명에게 보급할 식량이 필요하다고?”“예, 전하. 충분한 보급이 있어야만 십자군에 맞서싸울 수 있습니다.”막시무스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스윽.나는 뭔가 이상한 숫자에, 막시무스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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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의 병사 숫자는 분명 5만이었는데, 대체 언제 5만 5천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왜 숫자가 5만 5천이지?”“그렇게 되었습니다.”무거운 정적이 잠시동안 어전회의에 내려앉았다.짧은 침묵.그 뒤에, 내가 다시 막시무스에게 물었다.“왜 그렇게 된건데.”“지난 밤에 군영에 불우한 탈영사고가 벌어져 그렇게 되었습니다.”“아니, 이게 무슨…….”자고로 탈영병이 발생했다면 숫자가 줄어들어야 정상이었다.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하루아침에 병사 5천명이 늘어났단 말인가.5천 한스가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게 아니고서야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나는 황당함에 물든 얼굴로 막시무스의 보고를 들었다.“그래서… 5만 5천명의 병력에게 보급하려면, 이전에 상정했던 것보다 더 많은 군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아무래도 블레인 공의 지혜를 조금 빌려보는게 어떻겠습니까?”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가끔씩은 없던 것들이 알아서 생겨나는 모양이었다.갑자기 생겨난 내 여동생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