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없던 것도 생겨난다 (3)
가끔씩은 없던 것도 생겨난다 (3)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악마의 솥에 한스를 집어넣는데 성공했다.바르티아 왕국의 오랜 야망.십만 한스 양병설의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치이익-.연기가 뿜어져나오는 악마의 솥에서 한스 두명이 걸어나오는 가운데.나는 옆자리에 있던 재상 블레인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블레인 공. 이정도면 다음에 십자군을 상대할때는 상비군을 움직여도 되겠어.”사각, 사각-.블레인은 점토판에 무언가를 분주하게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장은 군량문제때문에 어렵겠지만, 한동안 절인생선을 열심히 만든다면 다음번에는 가능하겠군요.”“그래, 그런거지.”“명재상인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30초에 한명을 복사하는게 한계일 것 같습니다.”블레인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점토판에 숫자를 계산하더니, 머지않아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1분에 2명의 한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면, 1시간당 120명의 한스가 생기겠군요.”“…….”“왕국 표준 근로시간인 12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했을때 하루에 1440명… 휴일을 계산하면 한달에 3만명 이상의 병사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나는 블레인의 이야기를 듣고서 잠시 머리가 멈췄다.그리고는 이내, 블레인을 향해 물어보았다.“잠깐. 우리 왕국에 근로기준법도 있었어?”“명재상인 제가 만들었습니다.”나는 허탈한 얼굴로 블레인을 바라보았다.이제와서는 그가 뭘하더라도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블레인이 역사상 최고의 재상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어찌되었든 악마의 솥을 이용해 한스를 찍어내는 경우, 한달에 대략 3만명 정도의 한스를 보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3달만 열심히 한스 복사기를 굴려도, 10만 한스 양병설을 실천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한스를 그만큼 뽑는게 불가능했다.“군량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한달에 모집하는 병력의 숫자는 1만명 수준으로 제한하는게 좋겠군요.”병사가 늘어난다는건 그만큼 필요한 식량도 늘어난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뭐가 되었든 21차 십자군을 저지한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그렇게 내가 블레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고 있던 것도 잠시.머지않아, 그런 내 앞에서 이변이 벌어졌다.“가짜 주제에 대체 누구를 흉내내고 있는거냐!”“가짜는 너다, 한스!”악마의 솥이 가지고 있는 끔찍한 부작용.블레인이 사전에 경고했던 것처럼, 한스 두명이 서로가 가짜라며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내가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머지않아 두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전하! 이 한스는 가짜입니다!”“아닙니다! 저 한스가 가짜입니다!”도플갱어를 봐도 멀쩡하던 놈들이, 솥에 들어갔다 나오니 분노조절장애가 되어있었다.둘 다 가짜같이 생긴 놈들이 서로가 가짜라며 지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퍼억! 퍽!머지않아 두 한스는 치열하게 주먹질을 하며 다투기 시작했다.“전하! 어떤 한스가 진짜인지 가려주십시오!”“…….”“부탁드립니다, 전하! 제가 진짜라는걸 증명해주십시오!”더군다나, 그들은 나에게 어느 한스가 진짜인지 가려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솔직히 말해서,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 다 가짜같아서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다.‘굳이 가려야하나?’거기에 더해, 굳이 진짜를 가려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흐음-.잠시동안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한가지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아무래도 이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가 필요하겠군.”솔직히 말해서 진짜를 가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냥 극단적인 해결책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막시무스 장군을 데려와라.”“예, 전하!”나는 고민 끝에 전문가를 데려오기로 했다.장군 역사상 최고, GOAT.막시무스 장군이 바로 그 전문가였다.* * * * * *“군대에 입대한 이상 너희가 누구인지는 잊어라!”으스스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검은 숲.그곳에서 팔이 네개달린 장군, 막시무스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서 한스들을 노려보았다.3대 1600정도 칠것같은 명장 막시무스의 앞에서, 한스들은 겁에 질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너희들의 이름이 무엇인가!”“하, 한스……!”“한스입니다!”쿠웅-.막시무스의 발이 대지를 내려찍었다.그에, 정신이 번쩍 든 한스들이 막시무스를 바라보았다.“멍청한 놈들! 너희는 지금 한스가 아니라 밥버러지다!”“허억……!”“그, 그럴수가……!”충격받은 한스들을 앞에 두고서, 막시무스가 네개의 팔을 움직이며 이야기했다.“하지만, 여기에 있는 내가! 지금부터 밥버러지인 너희들을 한명의 전사로 키워낼거다.”“…….”“생각하지 마라.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라. 왕국을 위해 움직이는 전사가 되어라!”스윽.막시무스의 손가락이 한스들을 하나씩 삿대질했다.정말 놀라운 것은, 그러고도 그에게 손이 두개나 더 남아있었다는 것이다.“나 막시무스! 비록 어릴적 불우한 사고로 팔이 네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노력해서 왕국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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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모두가 팔이 네개밖에 없는 나를 비웃었다! 허나, 나 사나이 막시무스는 그런 불우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다!”쿠궁-.명연설에 충격받은 한스들을 앞에 두고서, 막시무스가 무척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하물며, 팔 두개가 온전히 달려있는 너희가 대체 나보다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뭐가 부족하긴.당연히 팔 두개가 부족하겠지.“겁먹지마라 제군들! 나 막시무스가 해낸 일은 당연히 너희들도 해낼 수 있다!”물론, 나는 그런 생각을 굳이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막시무스의 명연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던 까닭이었다.그는 왕국군을 이끄는 총사령관답게,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으로 한스들을 교육시켰다.“아무리 몸이 불편하더라도, 의지만 있으면 해내지 못할게 없다! 다들 알겠나!”“아아, 이럴수가……!”“막시무스 장군!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막시무스의 명연설에 감명받은 한스들이 그를 우러러보는 가운데.터벅, 터벅.한스들의 앞에 선 막시무스가 당당하게 이야기했다.“다시 묻겠다. 아직도 너희가 한스냐?”“아닙니다!”“너희가 누군지 대답해라.”“왕국의 전사입니다!”한스들의 대답이 울려퍼지는 아래.막시무스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잘했다, 제군들.”그리고는 이내, 나에게 돌아와서 이야기했다.“해결했습니다, 전하.”도플갱어의 분쟁을 해결한 막시무스가 뿌듯해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나는 그런 막시무스를 향해 이야기했다.“역시 명장 막시무스 장군이군.”“과찬이십니다, 전하.”“정말 잘 해주었다, 장군.”솔직히 말하자면, 막시무스의 연설에는 태클걸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지만.그래도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는가.앞으로는 순조롭게 병사들을 찍어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거였다.“날이 늦었군. 다들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예, 전하.”그렇게, 한스 복사기의 성능을 확인한 이후.나와 신하들은 저물어가는 태양을 배웅하며 금지구역을 떠났다.* * * * * *그날 저녁.나는 황금열쇠를 이용해 마녀가 있는 기록보관소에 들어왔다.개인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정보가 있었던 까닭이었다.“정말로 백성들을 해방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건가요?”그렇게 기록보관소에 들어온 나를 향해서, 마녀는 스킵 불가능한 5초짜리 광고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이었다.이쯤되면 백성들을 저주에서 해방하면 마녀에게 이득이라도 있는게 아닌가.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당연하게도 내가 마녀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다.“간식거리 좀 챙겨왔어.”툭-.나는 대답을 대신해 마녀에게 왕궁에서 가져온 다과를 건네주었다.마경의 기록을 확인하는 동안 집어먹기 위해 챙겨온 간식거리였다.다과를 확인한 마녀는 더 이상 나에게 영업을 시도하지 않았다.“의외로 센스가 있는 분이셨네요.”그 대신에, 내가 가져온 상자를 열어서 과자를 집어먹는 모습이었다.“이런 곳에 계속 갇혀있다보면, 아무래도 가끔씩은 단게 먹고 싶어지거든요.”옴뇸뇸뇸-.그렇게, 마녀가 과자를 집어먹으며 흥미롭게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록물들을 조용히 살펴보았다.“어디보자… 분명 여기 어디 있을 것 같은데…….”내가 오늘 기록보관소에 찾아온 이유.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최근에 발견한 이상현상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였다.내 여동생을 자처하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그러니까, 왕녀 메릴에 대한 자료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찾아온 것이다.“…….”펄럭, 펄럭-.수많은 기록물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가운데.나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는 기록물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여기 있었네.”—메릴 바이어스.나는 메릴의 이름이 적혀있는 기록물을 손으로 힘껏 낚아챘다.“후우…….”신선한 기록물이 손아귀에서 파닥거렸다.허나,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은 채 조용히 기록물을 넘겼다.과연, 메릴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이상현상일까.그렇게 내가 첫 페이지를 확인한 순간. - 메릴 바이어스는 당신의 여동생이다. 나는 종이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깜빡, 깜빡.내가 멍하니 기록물을 응시하던 것도 잠시.나는 머지않아, 페이지를 몇장 더 넘겨보았다. - 오라버니, 몰래 훔쳐보면 안돼요!- 오라버니, 몰래 훔쳐보면 안돼요!- 오라버니, 몰래 훔쳐보면 안돼요!- 오라버니, 몰래 훔쳐보면 안돼요! 그리고는 이내, 기록물을 완전히 덮어버렸다.툭-.손에 들린 기록물이 무겁게 느껴졌다.나는 조용히 과자를 집어먹던 마녀를 바라보았다.“나 말고 누가 찾아온 적 있어?”“기록보관소에는 당신 말고는 아무도 못들어와요.”“…….”“물론 가끔가다 만에 하나 정도는… 어쩌다가 기록물이 오염되는 경우도 있겠지만요.”나는 마녀의 이야기를 듣고서, 다시금 손에 들고 있던 기록물을 내려다보았다.메릴 바이어스.여동생의 이름이 적혀있는 표지가 시야에 들어왔다.“…….”아무래도-.당분간은 메릴을 여동생으로 대우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