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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맞춰주기 어렵네.

교환 아내 — novel.naver.com · All chapters

제 4화. 맞춰주기 어렵네.

소파에 앉은 강석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 앞으로는 인하와 재희가 강석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강 회장 측에서 원래대로 인하와의 약혼을 진행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내키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아빠, 나 그냥 한다니까. 뭘 고민해?”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재희가 고민하는 강석을 향해서 몸을 기울였다.

“여보, 어차피 인하도 이렇게 바라니 그냥 시킵시다.”

재희가 마침표를 찍으며 하는 말에 강석이 다시 눈을 흘겼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어차피 우리 쪽 흠이 아니잖아요. 안 그래도 기우는 결혼일까 싶어서 고민했는데 이렇게 되면 인하도 그 집으로 가서 기 좀 펴고 지낼 수 있지 않겠어요?”

인하가 재희의 말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래. 아빠. 내가 말 했잖아. 그 미친 게 몸으로 덤빈 거라니까. 욕심나니까 그랬겠지. 막말로 어느 집에서 그런 앨 좋아하겠어? 이걸 빌미로 나도 선우 휘어잡고 살면 된다니까.”

강석이 마른 입술을 축였다.

“너 진짜 괜찮겠어?”

인하가 피식 웃었다.

“아빠, 더케이 대기업이야. 내가 이 자리 놓칠 것 같아?”

인하의 머리에는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탐나는 자리였다.

애초에 강석조차 더케이에서 자신들이 혼처를 넣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강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자- 이 정도면 정리된 것 같고. 인하야 내일은 엄마랑 백화점이나 갈까?

“더케이 백화점?”

인하가 백화점이란 말에 두 눈을 빛냈다.

“그래. 강 서방 회사가 어떤지 한번 확인해 줘야지.”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집 안 가득 퍼졌다.

유독 강석의 얼굴만 어두웠다.

***

재희는 서울의 대형 백화점에서 인하와 함께 쇼핑하고 있었다.

“엄마, 이 가방 어때?”

인하가 명품관의 유리관 안에 진열된 가방을 집어 들었다.

안내직원이 두 사람의 뒤를 쫓아다니며 쇼핑을 도왔다. 이미 직원의 손에는 고가의 가방이 가득 들려 있었다.

“어머. 지금 네 옷이랑 너무 잘 맞네.”

“조금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

“좀 그래도 괜찮아. 네 얼굴이 워낙 동안이라 강 서방이랑 서 있으니 완전 조카 같더라.”

강 서방이라는 말로 인하는 또다시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엄마는. 벌써 강 서방이 뭐야?”

인하의 가느다란 손이 흐느적거리듯이 흔들렸다.

“얘는. 강 서방을 강 서방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어우. 몰라.”

인하는 들고 있던 가방을 직원에게 던졌다.

“그것도 챙겨.”

“네. 알겠습니다.”

계산대로 향할까 하던 인하의 눈에 신상품 가방이 하나 더 들어왔다.

“이거도 줘 봐.”

상품을 보던 직원의 얼굴이 굳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이 상품은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직원의 얼굴보다 인하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뭐라고? 너 지금 뭐라니? 내가 사겠다잖아.”

인하는 더케이의 안주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소유주인 자신이 백화점에서 자신이 살 수 없는 물건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죄송합니다. 예약하시면 새 상품으로 보내 드릴게요. 찾아오시기 번거로우시면 도착하는 대로 배송해 드릴게요.”

어이없다는 듯이 인하는 뒤로 돌아 직원의 이마를 손끝으로 밀어냈다.

“내가 이거 사겠다고요. 내 말 안 들리니?”

인하가 폭주하는 듯 보이니 재희가 주변을 살피며 다가왔다.

“인하야. 그만해. 남들 눈도 있는데.”

예약된 시간에만 들어올 수 있는 명품관이었음에도 재희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인하를 말렸다.

“엄마, 지금 얘 말하는 거 못 들었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지랄이야.”

재희는 인하를 다독이고는 직원을 향했다.

“이봐, 예약한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그 사람 예약 취소하고 우리가 사 갈 테니 준비해.”

직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그래도. 이 상품은.”

인하와 재희의 뒤편으로 긴 그림자가 먼저 다가왔다.

지금 시간은 두 사람만 상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니 매장의 매니저라도 온 건가 싶은 생각에 재희가 뒤를 홱 돌았다.

“이 상품은 우리가 사 갈게요.”

재희의 시선에는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이 상품, 제가 예약을 했습니다만. 취소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정한 가르마를 탄 웨이브 머리와 머리 색만큼이나 투명한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남자.

강선우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인하가 당황스러움에 입술을 물었다.

두 사람을 물끄러미 보던 선우가 입술을 틀어 올렸다.

날카로운 시선에 인하의 얼굴이 따끔거렸다.

“어. 엄마가 원래 이런 분이 아니신데. 저를 시집보낼 생각에 좀 흥분하셨나 봐요.”

“그래요?”

선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열장에서 가방을 꺼내 들었다.

“미안하네요. 난 강선우 군이 예약할 줄도 모르고.”

“괜찮습니다. 이제 아셨으니 됐죠.”

선우는 그 가방을 직원에게 넘기고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같이 계산해요. 한꺼번에.”

인하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손을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 없는데.”

그런데도 인하는 자꾸만 늘어지는 입술을 내리느라 얼굴 근육을 모두 사용해야 했다.

계산을 끝낸 선우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인하와 재희를 배웅했다.

지하 주차장까지 같이 움직여준 선우는 쇼핑백을 인하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식사라도 같이.”

“약속이 있습니다.”

“아. 네.”

인하는 실망한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 모습이 남자로 하여금 부성애를 자극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인하는 모르지 않았다.

“다음에 먹도록 하죠.”

“네. 제가 꼭 대접할게요.”

선우의 손에는 여전히 하나의 쇼핑백이 남아 있었다. 인하의 시선이 그 쇼핑백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선우는 마지막까지 그 쇼핑백을 인하에게 건네지 않았다.

“가 보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사라지는 선우를 인하가 날카롭게 지켜봤다.

선우가 멀어지자, 인하는 몸을 돌려 재희의 팔을 잡았다.

“엄마, 저 가방 내 선물 같지?”

“젊은 여자 가방이잖니. 너밖에 더 있어? 지도 잘못한 거 알고 네 기분 풀어주려고 예약했나 보네.”

“엄마, 나 어떡해.”

인하는 주체할 수 없는지 주차장 바닥에 발을 동동 굴렀다.

***

영화는 교외의 한적한 카페에서 선우를 기다렸다.

늘 연락은 선우가 먼저였다. 픽업을 하겠다는 선우를 말리고 영화는 자신이 알고 있는 카페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약혼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며칠 전에 선우에게서도 들었다. 이후에 집안의 분위기로도 알 수 있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인하가 노골적으로 영화를 더러운 계집 취급하며 비아냥거렸다.

누구 덕분에 약혼을 진행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기분 더럽겠다. 강선우가 너한테 갈 줄 알았는데 결국은 나네?”

짧은 팬츠 차림으로 욕실에서 나오던 영화를 향해서 인하는 혀를 찼다.

“그래? 잘됐네.”

“어쩌니? 그렇게 몸을 굴려서라도 가져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미안하게 됐다.”

“미안해하지 마. 딱히 관심 있던 거 아니라서. 그냥 허우대 좋아서 맛 좀 보고 싶었을 뿐이야.”

“꼴에 자존심은 세우고 싶은가보다.”

“딱히.”

“어디 다른 남자라도 찾아봐. 나이 좀 있는 아저씨들한테 들이대면 받아 줄지 어떻게 알아?”

“그래 보려고. 방법은 알았으니 쓰기만 하면 되겠다. 고마워.”

영화는 말이 더 길어져야 좋은 소리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인하를 지나쳐 걸었다.

그래도 약혼이 다시 진행되고 방 밖으로 나올 수도 있고, 인하의 히스테리도 멈췄으니 견딜 만은 했다.

그런데도 욕설과 시비는 더 심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선우를 만나서 약혼을 취소하라고 말을 하고 싶음에도 영화는 욕구를 참아냈다.

참고 참아야 그 폭발이 더 큰 법이라고. 화약을 다듬듯 그렇게 다독였다.

“왜 이렇게 멀리 불러? 카페야 서울에도 많은데. 아니면 좀 색다른 곳에서 재미라도 보고 싶은 거야?”

일을 마치고 온 듯 선우는 슈트 차림이었다. 구김 없이 흘러내리는 슈트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아니면 슈트가 사람 발이라도 받는 건가 싶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니까.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을 거 없잖아요.”

곧 두 사람의 약혼은 기사화될 것이다. 그러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영화는 생각한 것이다.

“그렇군.”

선우는 영화를 향해서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쇼핑백 겉면에는 익숙한 로고가 보였다.

“뭐예요?”

“가방. 여자들 좋아하잖아.”

영화는 감격도 없이 쇼핑백을 열어 안을 살폈다. 퍽 여성스러운 디자인의 가방이었다.

취향은 자신이 아니라 인하에게 더 어울릴 듯 보였다.

“별로네요.”

“그래? 비싼 건데. 실패했네.”

“가방은 예뻐요. 브랜드가 싫어서 그렇지.”

인하가 좋아하는 브랜드였으니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럼 버리든가. 아니면 내가 버려줘?”

“버릴 거면 쓸게요. 고마워요.”

쇼핑백을 들어 영화의 옆자리에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선우가 짧게 웃었다.

“비위 맞추기 더럽게 어렵네.”

맞춰준 거야?

영화도 선우의 웃음에 고개를 숙여 웃었다. 그를 유혹하기 위해서 웃음을 지은 적은 있어도 절로 나오는 웃음이 괜히 어색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