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미친 짓의 결말
제 5화. 미친 짓의 결말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교외의 외각 카페에서는 커피와 함께 다디단 디저트를 먹었다. 시답잖은 이야기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선우를 따라서 숙소를 찾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영화는 되도록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촉촉하게 커피로 녹아내린 케이크를 먹었다.
몸이 케이크처럼 물에 젖어 눅눅한 기분이 들었다. 스펀지라도 있다면 몸에 녹아내린 물기를 잔뜩 걷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손가락이 예쁘네.”
공백이 존재하는 시간에 선우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네?”
“길고 곧아. 그러고 보니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잖아.”
투명하고 밝은 눈동자가 영화의 손가락을 지나서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날것으로 훑는 기분이 들어서 오싹했다.
“그런가요? 종이에 베여서 흉터가 많은데.”
일을 할 때 만져야 하는 작업지시서는 거북할 정도로 크고 날카로웠다.
게다가 피팅을 할 때 입어야 하는 옷들은 완성품이 아니기에 핀들이 많이 박혀 있었다. 가봉일 경우는 더욱더 그랬다.
그러니 온몸에는 날카로운 바늘로 긁힌 상처들이 많았다. 손도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영화는 선우의 이야기에 제 손을 빛에 비췄다.
하얗고 긴 손이 조명등에 빛이 났다.
“거봐.”
자신의 말이 맞는다는 듯이 선우는 의자 뒤로 몸을 숙이고 한쪽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그 손으로 날 좀 만져 줬으면 좋겠네.”
입술을 쓸어내리는 붉은 살덩이가 유독 야해 보였다.
영화는 괜히 낯 뜨거운 생각이 들어서 후다닥 손을 감췄다.
“선우 씬 수치심이란 게 없나 봐요. 잘도 그런 말을.”
“없어.
뻐근하다는 듯이 목 운동을 했다.
유독 긴 목선이 어두운 빛에 반짝거렸다.
손으로 쓸어내리는 목덜미는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있어야 할 것처럼 선이 고왔다.
“좋겠네요. 없어서.”
“부족한 사람들이나 갖는 거야. 그런 거.”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수치스러운 짓을 하고 살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그녀와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수치스러워했다.
왜 그런 부끄러움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숨어 지내듯이 살아왔다.
“천박하긴.”
“더러운 X.”
“수치심도 없니?”
“멍청하면 착하기라도 하든가.”
늘 같은 말을 하면서도 그들은 지치지 않았고, 같은 말을 들으면서 익숙해지지 않았다.
급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영화는 단 케이크가 쓰게 느껴졌다.
더 이상 넘어갈 것 같지 않으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일어나요.”
업무라도 하듯이 그와의 관계 끝을 알고 있었다.
영화는 그가 원하는 것을 내주고, 쉬고 싶었다.
“집에 데려다줄게.”
영화를 따라 일어난 선우가 벗어 놓았던 슈트 재킷을 집어 들었다.
“네?”
당연히 원하겠다고 생각했던 그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가 전달됐다.
그냥 간다고? 왜?
영화는 저도 모르게 걷던 걸음을 멈췄다.
“왜?”
잠시 선우는 생각에 빠졌다. 입술을 벌려 답을 찾아냈다.
“데려다주는 것도 불편한가? 그럼, 근처에 내려 줄게.”
“……왜에.”
영화는 말끝이 흐려졌다.
여전히 멍하니 있는 영화의 앞으로 선우가 상대를 비웃는 웃음으로 다가섰다.
“왜? 다른 게 하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자잘하게 주름이 잡힌 입술을 축인 선우는 남자답게 긴 손가락으로 영화의 목덜미를 감아쥐었다.
고작 손가락이 닿은 촉감만으로 몸이 떨렸다.
그 손에 온몸이 만져지던 시간이 오롯하게 떠오르니 숨이 벅차올랐다.
“나도 좀 아쉽기는 한데. 내일 아침은 좀 일찍 시작해야 해서 말이야.”
“아.”
“근데 네가 멍청하게 그러니까 다른 생각 들잖아. 나 좀 그만 유혹하고 가자.”
선우는 다시 앞서 걸었다.
왜 온 거지?
그 이유가 아니었어?
영화의 손에는 여전히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쇼핑백에 시선이 닿은 영화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혼자 걷게 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집 앞까지 가지?”
선우의 말에 영화는 고개를 흔들었다.
“역 입구에 세워 주세요.”
영화의 노파심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선우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차 한 대 뽑아줄까?”
선우의 말은 대형마트에 들러 카트에 식품을 담는 것처럼 쉬워 보였다.
한숨을 뱉어냈다.
“운전 못 해요.”
“아. 그래?”
입맛을 다신 선우가 영화의 어깨 위로 팔을 뻗어 감았다.
***
지금껏 살아오면서 선우는 영화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벼랑 끝에 있는 모습이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그랬고, 얇고 마른 선은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말 한마디라도 실수한다면 당장에 떠나 버릴 것처럼 상대를 긴장시켰다.
눈에 보여야 안심이 되니 선우는 자꾸만 그녀에게 연락해서 생존을 확인하게 했다.
뭘까?
무엇에 중독이 된 것일까.
너? 아니면 네가 주는 위태로움?
확실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이미 중독이 되어 버린 것 같다는 것이다.
너의 한마디 말은 나를 조종당하고 움직이게 하는 명령어가 되었다.
거부하면 떠날지도 몰라.
거절하면 또다시 사라질지도 몰라.
나를 베고 지나간 그 하룻밤 이후에 내 기억 속에는 그렇게 입력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무엇이?
어떤 힘이 그리 만들었을까?
독이네.
지독하게 위험한 독.
운전대를 잡은 선우는 버릇처럼 한 손이었다.
반대편 손이 자꾸만 영화의 무릎 위에 올린 긴 손가락을 향해서 움직이니 애써 동작을 절제했다.
“왜 운전 안 배웠어? 면허도 못 따게 한 거야?”
수양딸이라고 했다. 재석의 말에 따르면 당시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영화의 후원을 하면서 수양딸로 집에 들였다고 들었다.
당시 그런 지 총장의 행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꽤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쳤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역시 다르네.
“면허는 있어요.”
“그래? 그럼 배우면 되겠네. 가르쳐 줄까? 지금 해볼래?”
싱긋 웃던 영화가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요. 유독 기계랑은 안 친해져요. 꼭 거부당하는 것처럼.”
거부라는 단어를 뱉은 영화는 또다시 위태로워 보였다.
선우의 머리에는 스파크처럼 불꽃이 일렁였다. 뭔가 번번이 핑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프로젝트라도 생각난 것처럼.
“어차피 남들 눈 피해서 볼 거라면 운전이나 배우자. 알려줄게. 익숙해지면 차도 한 대 줄게. 물론 그 차에 다른 새끼 태우면 죽여 버리겠지만.”
“네?”
“감격스러워?”
선우는 영화의 손을 잡았다.
긴 손가락이 핸들을 잡고 있다면 퍽 예쁠 것이다.
운전을 익숙하게 하게 된다면 섹시하겠지?
고작 이런 거에 흥분하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이 손 하나 잡아 보겠다고 공략으로 차까지 걸었다.
“내가 원망스럽지 않아요? 왜 집착해요?”
꼭 말로 해서 사람을 후벼 파야겠냐 싶지만, 선우는 자신도 그것이 궁금했다.
“꼬신 게 누군데. 사람 뒤집어지게 그런 질문을 해.”
선우의 말에 영화는 얼굴을 굳히려 노력하다 이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서 웃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상황이 퍽 어이가 없었다.
그걸 알면 이 지랄도 안 하지. 싶었다.
그런데 어쩌겠어.
안 보이면 미쳐 돌아버리겠는데.
그러니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걸.
갈 데까지 가 보는 거지. 이 미친 짓의 끝이 뭔지도 궁금하고.
당신이 왜 그러는지도 알고 싶고.
***
역 앞에서 내린 영화는 이십여 분 이상을 걸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편이 안심되었다.
현관을 지나 복도를 지나니 거실에서는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하와 재희의 목소리였다.
거실 바닥 가득 쇼핑백과 부직포, 화지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쇼핑이라도 하고 온 모양이네.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은 영화를 투명 인간 취급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방으로 갈게요.”
괜히 인사도 하지 않는다고 트집이 잡히기보다는 짧게 말을 던지고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돌았다.
“야. 너 거기 서봐.”
인하가 그런 영화를 불러 세웠다.
왜 또 저럴까. 무슨 트집을 잡고 싶어서.
“왜?”
“너 손에 든 거. 그거 뭐야?”
영화의 손에는 낡은 가죽 토트백과 함께 선우에게서 받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지 물건이라도 훔친 거로 생각하나?
근처에도 안 갔는데.
“샀어.”
“사? 네가 무슨 돈으로 그런 걸 사?”
영화는 눈을 감고 침을 삼켜 넘겼다.
“인하야. 나도 일해. 너랑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잖아.”
“이게 어디서. 그러니까 말하는 거잖아. 고작 푼돈 받아서 네가 이 브랜드 물건을 어떻게 사는데.”
너희 아빠가 돈 쥐꼬리만큼 준다고 광고하니.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씹어 넘겼다.
“이 X, 어디서 또 몸이라도 굴려서 얻어 낸 거 아니야? 더럽게 진짜.”
“너 말이라면 단 줄 알아?”
인하는 영화의 쇼핑백을 홱 채갔다.
“안 내놔!”
탁. 타탁.
쇼핑백에서는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체인 줄이 타락 소리와 함께 대리석 바닥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