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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우스의 지혜

하남자 이아손이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1. 제우스의 지혜

오늘 아침의 시작도 말발굽이었다.퍼억!!하늘이 돌았다.한 바퀴. 두 바퀴.나는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루틴.흙먼지 너머에서 다리 네 개가 걸어왔다.상반신은 근육의 노인. 하반신은 갈색 야생마.합치면 나의 스승, 대현자 케이론 되시겠다."일어나라, 디오메데스."쿵!물푸레나무 몽둥이가 바닥을 찍었다."자세가 무너지면 뼈가 상하는 법.""스승님이 걷어차서 상한 건데요! 갈비뼈 세 개쯤 금 간 느낌이라고요!""붙으면 더 단단해진다.""시멘트 공구리도 아니고 의학적 근거가 전혀 없잖아요!""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해이해졌구나."말이 안 통한다. 하반신이 축생이라 그런지 뇌의 절반쯤은 마구간에 두고 온 게 분명하다.하긴 그리스에서 현대 인권을 기대한 내 잘못이지.전생의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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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임금제로 매일같이 야근하고, 쥐꼬리만 한 월급 받아서 카드값 메우고, 주말이면 침대에 들러붙어 배달 음식이나 시켜 먹던 그런 인간.어쩌다 죽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눈을 떴더니 펠리온 산의 동굴이었고, 나는 금발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서구형 외모의 소년이 되어 있었으며, 모두가 나를 '디오메데스'라고 불렀다.디오메데스. 제우스의 지략이라는 뜻이라나 뭐라나.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 필사적으로 전생의 기억을 뒤졌다.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애니메이션, 모바일 가챠 게임,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샅샅이.검색 결과.'그래서 디오메데스가 뭔데 씹덕아.'모른다. 들어본 적도 없다.아킬레우스도, 오디세우스도, 헤라클레스도 아니잖아.'지나가는 시민 A. 완벽해.'이름 없는 엑스트라라면 영웅들의 비극에 휘말려 토막 날 일도 없지.엑스트라 만세. 무명 만세."오늘 수련은 여기까지다. 펠레우스와 함께 저녁거리를 준비하거라."케이론은 꼬리를 한 번 휘두르고 동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언젠가 교육청에 신고할 거야.""음? 방금 무어라 중얼거렸느냐?""아무것도 아닙니다! 스승님의 자애로운 지도 편달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했습니다!"네 발로 걷는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일어났다.아오, 온몸이 다 아프네.***치이익-모닥불 위에서 산양 고기가 기름을 떨어뜨렸다.그 맞은편. 통나무를 맨손으로 쪼개던 남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어이, 디오. 오늘도 스승님 발굽 맛을 톡톡히 본 모양이구나.""발굽 풀코스였습니다. 애피타이저 앞차기, 메인 뒷차기, 디저트로 짓밟기까지.""하하! 오늘도 뭔 소린지 모르겠군! 아무튼 호강했구나!"이 형님의 이름은 펠레우스.케이론의 동굴에 얹혀사는 식객. 틈만 나면 동생 죽인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털어놓는 정신 나간 양반이다."엄살은 그만 피우고, 여기 이 멧돼지 가죽 좀 잡아당겨 봐라. 내일 구워먹을 거다.""형님, 저 방금 탈골된 어깨 맞추고 왔거든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요. 주방장이 알아서 좀 하세요.""사내자식이 그 정도로 징징대면 못써. 나 때는 말이다, 삼촌들이랑 싸우다 배를 찔려도 내장 집어넣고 마저 싸웠어.""그게 자랑입니까? 패혈증으로 안 뒤진 게 다행이네요."포기하고 멧돼지 뒷다리를 잡아당겼다. 펠레우스는 껄껄 웃으며 능숙하게 가죽을 벗겨냈다."하여간 주둥이만 살아서는. 그래도 네 녀석이 끓인 산나물 수프는 제법이야. 역시 동생 놈 대가리를 깨버리고 가출하길 잘했지.""저기요, 펠레우스 형님.""응?""이복동생이라도, 사람을 돌로 쳐 죽였으면 감옥에 가거나 최소한 뉘우쳐야죠. '다 그렇게 크는 거야'로 퉁치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예요?"펠레우스의 손이 멈췄다."……너, 지금 날 꾸짖는 거냐? 내 손에 묻은 피의 무게를 지적하는 게냐?""문명인으로서의 상식입니다. 법치국가였으면 형님은 지금쯤 무기징역이에요. 정상참작의 여지가 도토리만큼도 없다고요.""허."펠레우스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아, 이거 맞는 각인가. 오늘 두 번째 탈골인가.그가 멧돼지 가죽을 팽개치고 내 어깨를 덥석 잡았다.우지끈!"아악! 형님, 뼈! 뼈!""세상 놈들은 전부 나를 보며 저주받은 살인자라고 침을 뱉거나, 아니면 과업을 이룰 영웅이라며 아첨하기 바빴는데……!""아니, 저는 그냥 범죄자 새끼라고 욕한 건데요??""내 죄의 본질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도 곁을 지켜주는 의형제를 여기서 만나다니……! 오, 위대한 제우스시여!"대화가 통하지 않는다.이 동네 사람들은 전부 뇌 한구석이 올림포스 번개에 지져진 게 틀림없어."목소리 한번 크구나. 산이 다 울리겠어."동굴 안쪽에서 약초 바구니를 든 여인이 걸어 나왔다.카리클로. 케이론의 아내인 님프.이 거친 산골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이성적인 존재다.하반신이 말인 수컷과 결혼했다는 특이 취향만 눈감아준다면 말이지."펠레우스, 장작이나 더 패 오렴. 불 꺼지면 저녁은 생도토리 가루야.""아, 앗! 넵! 당장 다녀오겠습니다!"펠레우스는 도끼를 낚아채 숲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고맙습니다, 사모님. 저 양반은 힘만 넘쳐나서 감당이 안 돼요.""너도 참 유난스러운 아이구나.""제가요? 저는 그냥 평범한 소시민인데요."카리클로가 쪼그리고 앉아 약초 바구니에서 마른 잎사귀를 톡톡 털어냈다."헤라클레스 그 무식한 아이는 첫날부터 바위를 집어던져 동굴 외벽을 통째로 날려 먹었지. 다른 영웅의 자식들도 칼자루나 만지작거리며 으스대기 바빴단다. 그런데 솥 밑바닥 그을음을 모래로 박박 닦아내고, 약초를 종류별로 말리는 아이는 네가 처음이야.""위생은 생존의 기본입니다. 상처에 흙 들어가면 파상풍으로 죽어요.""그러니까 그게 계집애 같다는 거야.""칭찬으로 듣겠습니다."카리클로가 웃으며 솥뚜껑을 덮었다."솔직히 너를 평생 데리고 있고 싶긴 한데 말이다.""잘됐네요. 저도 평생 사모님 곁에서 솥이나 닦고 약초나 캘 생각입니다.""어머, 얼굴만큼 말도 참 예쁘게 한다니까. 네가 켄타우로스였으면 반했을지도 몰라."카리클로가 웃다가, 이내 눈꼬리를 슬쩍 내렸다."그런데 이걸 어쩌니.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 케이론의 문하에는 엄격한 규율이 있거든.""규율이요?""스승의 가르침을 단 한 번이라도 넘어서는 제자는 지체 없이 이 산을 떠나 속세로 내려가야만 하지."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스승을 넘어서라고?'내 스승은 수많은 영웅을 길러낸 불사의 대현자 케이론.활을 쏘면 날고 있는 독수리의 눈알을 꿰뚫고, 달리면 바람보다 빠르다는 켄타우로스.그 케이론을 연약한 소시민인 내가 넘어선다?'평생 못 이기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기지!'죽었다 깨어난 경력자로서 보증한다.즉, 평생 졸업 불가.즉, 평생 쉬었음 청년으로 밥 축내기 가능!바깥세상은 사람을 산 채로 씹어 먹는 괴물들과 심심하면 인간을 가지고 노는 신들이 득실거리는 지옥이다.반면 여기는 물 좋고 공기 좋은 펠리온 국립공원.이대로 게으르고 얌전한 식객으로 천수를 누리다가, 나중에 질투심 없는 현모양처를 얻어 올리브 농사나 지어야지.그게 내 2회차 인생 계획이다.……계획이었는데.***사흘 뒤. 펠리온 산 공터.오늘도 아침 대련 시간이 돌아왔다."자세를 낮춰라, 디오메데스. 오늘은 받아치는 법을 배운다."케이론은 물푸레나무 몽둥이를 쥔 채 앞발굽으로 흙바닥을 거칠게 긁었다."스승님,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농부 지망생이라니까요. 받아치긴 뭘 받아쳐요!""부족한 건 맞으면서 채워라. 뼈가 부러져야 근육이 여문다.""뼈랑 근육은 별개 조직이라니까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케이론이 달려왔다.쿠구구궁!말발굽이 지축을 때렸다. 켄타우로스식 돌진.'아, 젠장. 또 갈비뼈 날아가겠네.'체념하고 눈을 감으려던 그 순간이었다.띠링![신격 파편 반응 확인…… 영혼 회로 연결…… 완료][사용자 적합성 정밀 진단…… 통과][임시 코드: 사용자 '디오메데스'][모이라 프로토콜 동기화율 100%]"뭐야, 이거."시야 한구석에 분홍색 텍스트 창이 와르르 떠올랐다.[축하합니다. 오래된 지혜의 신격이 당신을 숙주…… 사용자로 간택했습니다.]'지금 숙주라고 했지? 방금 분명히 숙주라고 하다 말았지?'[기분 탓입니다.][현재 전투 상황: 개체명 '케이론'의 물리적 타격 궤적을 실시간 연산합니다.][경고: 정면 찌르기. 도달까지 0.38초. 가슴뼈 함몰 확률 98.7%][회피 권고 궤적: 우측 32도 방향, 반걸음 후퇴 후 상체 비틀기]"어, 어어?"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오른발을 빼며 상체를 비틀었다.쉬이익!몽둥이 끝이 가슴팍을 스쳤다. 풍압에 앞머리가 사납게 휘날렸다."……호오? 눈이 트였나? 하지만 발이 멎었다!"말의 하반신이 축을 틀었다. 뒷발이 차올랐다.[위험. 후방 회전축 생성 확인.][좌측 발굽 적중 시 두개골 파열 확률 91.2%.][즉각 대응책: 흙바닥으로 구르기.]"우와아아악!"볼품없이 땅바닥을 굴렀다.피했다.내가? 케이론의 공격을? 두 번이나?[감탄은 나중에 하십시오. 반사 신경은 낙제점이지만 생존 본능은 합격점입니다.]'누구야! 당신 누구야!?'[올림포스 운명 관측 체계, 모이라 프로토콜 연동][관리자 코드: 잔류 지능 AI 메티스][말 대가리가 몽둥이를 고쳐 잡았습니다.]'스승님은 상반신이 사람이니까 사람 대가리거든?'[그 사람 대가리가 사용자의 두개골을 파쇄하려 듭니다.][잡담할 시간 없습니다. 집중하십시오.][사용자의 두개골 보존은 제 지대한 관심사입니다. 집이 무너지면 곤란하니까요.][공격 궤도: 우상단 내리찍기. 확률 94%][추천 경로: 계곡 방향으로 전력 질주]바닥을 박차고 일어났다.싸운다? 반격한다?미쳤냐. 불사의 켄타우로스를 무슨 수로 이겨.도망만이 살길이다."제법이구나, 디오메데스! 어디 끝까지 달아나 보거라!"케이론이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그림자가 태양을 가렸다.[전방 3미터, 참나무 뿌리 돌출. 도약하십시오.][착지 지점의 마찰 계수 부족. 구르기로 충격 분산.][관성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발목 골절 확정.]뿌리를 밟고 솟구쳤다. 데굴데굴 굴러 가시덤불을 뚫었다.나뭇가지에 옷자락이 너덜너덜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아래쪽에는 거칠게 굽이치는 계곡물.[추적 속도 시속 65km. 켄타우로스의 각력을 인간의 두 다리로 따돌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그럼 어쩌라고! 죽으라고?'[전방 10미터 절벽. 수심 4미터 급류 구역 확인.][낙하 시 타박상 확률 42%. 잔류 시 분쇄 골절 100%.][권장 기동: 계곡 투신. 품위는 없으나 생존율은 가장 높습니다.]"진짜 그 방법밖에 없어??"[사용자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립니다.][3, 2, 1.]절벽 끝을 박찼다.풍덩!계곡물이 온몸을 삼켰다.격류 속에서 허우적대다 바위 모서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내밀었다."푸하악……! 쿨럭, 켁!"온몸이 젖어 추웠지만, 뼈는 멀쩡했다. 나뭇가지에 긁힌 자국 몇 줄이 전부.안 맞았다.10년 넘게 구르는 동안, 한 대도 안 맞고 대련이 끝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절벽 위를 올려다보았다.역광 속에서 케이론이 미동도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왜 저러지?'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설마 끝까지 덤비지 않고 도망쳤다고 빡친 건가? 비겁하다고 당장 쫓아내려는 건 아니겠지?'"저, 스승님……?""훌륭하구나. 합격이다.""……예?""이제 그만 하산하거라."쏴아아-계곡물 소리가 요란하게 귓전을 때렸다."잠깐만요! 뭔가 착오가 있습니다! 저 스승님을 이긴 게 아닌데요? 얍삽하게 도망만 쳤다고요!""넘어선다는 것이 꼭 이긴다는 뜻은 아니다. 너는 오늘 내 공격을 모두 흘려내고 살아남았다. 나를 상대로 도망칠 수 있다면, 어디서든 헛되이 죽진 않을 게다."케이론이 비탈을 타고 물가로 내려왔다. 나도 허겁지겁 바위를 붙잡고 기어 나왔다."그간 내 문하를 거쳐 간 영웅호걸들을 봐왔지. 오만한 영웅 놈들이 하나같이 주먹을 쥐고 내 발굽으로 달려들었다. 명예니 영광이니 지껄이며 제 뼈가 부스러지는 줄도 모르고 들이받다가, 젊은 나이에 전장에 널브러졌어.""그러니까 저는 그 명예도 영광도 필요 없다니까요?"케이론이 나를 내려다보았다."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진짜 죽음 앞에서 목숨을 부지할 줄 아는 자만이 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과업 안 할 건데요! 저 내일부터 밥도 조금만 먹을게요! 사모님 약초밭에 물도 제가 다 주고, 빨래도 삶아서 빨게요! 그냥 여기서 설거지나 하게 해주세요!"자존심을 계곡물에 흘려보내며 앞다리에 매달렸다. 원래도 얼마 없었으니 사실 손해 볼 것도 없지."세상으로 나아가 네 운명을 마주하거라. 스승으로서 네게 새로운 이름을 내리마."케이론이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너는 타인의 상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며, 굴욕을 감수하고 도망침으로써 스스로를 살리는 자다. 세상을 치유하는 자. 상처를 보듬어 낫게 하는 자."거룩한 음성이 계곡을 메웠다."지금부터 네 이름은 '이아손'이다.""……이아손?"어디서 들어봤는데.[인식명 변경 감지][임시 코드 '디오메데스' 폐기][……잘됐군요. 마음에 안 드는 이름이었습니다.][사용자 '이아손' 등록 완료][원전 데이터베이스 동기화 시작]띠링! 띠링!텍스트 창이 쏟아졌다.[개체 식별: 이아손][인물 정보][이올코스의 정통 계승자][아르고 호의 원정대장][황금양털을 강탈한 자][마녀 메데이아의 남편]엑스트라는 이렇게 칭호가 많으면 안 되는데.지나가는 시민 A의 스펙이 아닌데, 이거.[열람: 이아손의 최후][모든 것을 잃은 채 떠돌다 썩은 아르고 호의 뱃머리에 깔려 비참하게 사망][황금의 끝에는 검은 피만이 고이리라.]'잠깐만. 잠깐잠깐잠깐.'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나 엑스트라 아니었어?'[시스템 경고][원전 사망 플래그 감지][현재 조건에서 사용자 이아손의 생존 확률 계산 중……]텍스트 창에 모래시계가 빙글빙글 돌았다.[연산 결과: 생존 확률 0.1% 미만.]"이거 꿈이지? 거짓말이라고 해줘!"[안타깝게도 현실입니다.][당신은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될 예정입니다.]"오, 제우스 맙소사."풍덩!나는 그대로 계곡물에 입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