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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언더그라운드 락스타

하남자 이아손이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8. 언더그라운드 락스타

"트라키아에서 온 오르페우스라고 합니다."빗질을 백 번쯤 한 것 같은 은백발. 어깨에 걸린 거북등딱지 리라.[개체 식별: 오르페우스][인물 정보: 트라키아의 음유시인. 뮤즈 칼리오페의 아들][상태: 중증 힙스터. 취급 주의]'이 사람은 알지.'학습만화를 대충 넘겨본 놈이라도 아는 이름이다.흥이 다 깨져버렸을 때 책임지는 담당.그리스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 쉽게 말해 이 시대의 슈퍼스타다.'그런 유명인이 왜 내 방 앞에 서 있는 건데?'[포세이돈 대제전의 초청 가수로 이올코스에 체류 중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겸사겸사 사용자의 원정 소문을 듣고 찾아왔겠죠.]"……그, 포세이돈 제전에서 축가 부르셨던 분 맞죠?""제전이라…… 예, 제전이지요. 아침에는 왕의 번영을 비는 찬가, 점심에는 장사꾼들의 행진곡, 저녁에는 살진 돼지를 뜯는 귀족들의 술자리에 바치는 음탕한 소곡…… 하아."오르페우스가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한숨을 내쉬었다."토할 것 같습니다.""예?""영혼이 없어요. 박수갈채는 쏟아지는데, 귓가에는 은붙이 짤랑거리는 소리만 맴돕니다. 저는 예술을 하고 싶었습니다. 피를 뚝뚝 흘리는 날것의 노래! 아무도 내려가 본 적 없는 밑바닥의 노래를요!"오르페우스의 눈동자가 희번덕거렸다."하지만 세상이 제게 요구하는 건 번지르르한 축가와 영웅들의 가짜 용맹을 포장하는 기만적인 노래뿐입니다……"'뭐지. 번아웃 온 락스타인가?'그 순간, 잔머리 회로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오르페우스.인간은 물론이고 짐승과 나무까지 청취자로 거느린 당대 최고 성능의 스피커.SNS도 유튜브도 없는 이 세계에서 대형 바이럴이 가능한 인플루언서다.'이거야.'이 남자의 입으로, 원정이 얼마나 끔찍하고 답 없는 자살 행위인지 온 그리스에 노래하게 만들면?지원자는 씨가 마르겠지.노를 저을 사람이 없으면, 배는 항구 밖으로 한 뼘도 못 나간다."오르페우스 씨! 마침 잘 오셨습니다! 들어오세요! 목에 좋은 꿀물 어떠세요?"[사용자가 또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조용히 해. 이번엔 진짜 완벽하니까.'[지난번에도 같은 말을 하셨죠.]나는 오르페우스를 앉혀놓고 혼신의 열연을 시작했다."당신이 찾는 진짜 비극, 바로 여기 있습니다.""……비극 말씀입니까?""예. 흑해 원정? 황금양털? 그거 다 포장입니다. 펠리아스 왕이 저 죽이려고 판 함정이에요!"리라 줄 위에서 오르페우스의 손가락이 멈칫했다."저는 칼 한번 제대로 쥐어본 적 없는 쉬었음 청년입니다. 선원? 없습니다. 배? 말하는 나무토막이 뱃머리에 박혀 있어요. 흑해가 어떤 곳인 줄 아십니까? 바닷물은 오징어 먹물처럼 검고, 파도는 집채만 하고, 온갖 괴물이 튀어나와 배를 씹어 먹는 곳입니다!"침을 튀기며, 전생의 다큐멘터리에서 본 온갖 해난 사고를 긁어모아 쏟아냈다."식량은 사흘 만에 썩어서 구더기가 끓을 겁니다! 괴혈병으로 잇몸이 무너지고, 피고름을 뱉으며 노를 저어야 해요! 그런데 이럴 수가! 이 세상엔 아직 귤이 없어요!!""오…….""마실 물이 떨어져 바닷물로 목을 축이는 사내들! 침몰하는 선체 밑바닥에 갇혀 손톱이 빠지도록 판자를 긁어대는 지옥도! 이건 자살 특공대나 마찬가지라고요!"숨을 몰아쉬며 오르페우스의 안색을 살폈다."그러니까 부탁드립니다. 이 참혹한 진실을 세상에 알려주세요! 있는 그대로, 노래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청년들이 낚여서 개죽음당하지 않도록!"그래, 온 세상에 퍼뜨려라.'이아손의 배는 죽음의 덫이다! 타지 마라!' 하고.오르페우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리고."……아아."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파멸…… 지배에 대한 거부…… 죽음……! 썩은 빵과 검은 파도, 잇몸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 아아, 아폴론이시여! 찬란한 빛 뒤에 도사린 어둠이 바로 여기 있었습니다!""……예?""기만 하나 없는 날것의 비극……! 제게 이런 순수한 절망을 들려주시다니! 이아손 공,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어둠의 시인입니다!"오르페우스가 내 손을 덥석 잡고 맹렬하게 흔들었다."알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노래하겠습니다! 이올코스의 모든 인간이, 온 헬라스의 사내들이 파멸의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그래요!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 이 배에 못 타게 만들어 주세요!""염려 마십시오! 제 영혼을 남김없이 쏟아붓겠습니다!"오르페우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항구 쪽으로 우다다 달려갔다.펄럭이는 키톤 자락을 흐뭇하게 보고 있자니, 시야 한구석에서 분홍빛 텍스트가 번뜩였다.[참으로 훌륭한 언론 플레이였습니다.]"쟤 눈빛 봤지? 완전 필 받아서 뛰쳐나갔잖아. 이제 온 동네에 '아르고 호 타면 개죽음당한다'고 흉흉한 소문이 쫙 퍼질 거야."[인간의 인지 부조화와 서사 갈망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예술병에 걸린 필멸자는 특히 위험한 뇌내 회로를 지니고 있습니다.]"아 됐어, 시끄러워. 어쨌든 소문은 나쁘게 날 테니까."조선소 쪽에서 망치질 소리가 탕탕 울려 퍼졌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배가 아무리 빨리 완성돼도 사람이 없으면 빈 껍데기니까.그날 밤은 모처럼 발 뻗고 누웠다.***그날 밤. 아르고 호가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한 모래톱.오르페우스는 배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닷바람에 마구 헝클어지는 은백발.'평생 남의 행복을 주문받아 불렀다.'왕의 결혼식 축가. 신전의 봉헌 찬가. 귀족 연회의 여흥. 장터 개시를 알리는 흥겨운 가락.그는 리라의 줄을 거칠게 퉁겼다.딩-청아한 화음 대신 고막을 긁어내리는 불협화음."왕들은 내게 불멸을 노래하라 했다. 전사들은 제 칼끝에 묻은 피가 영광이라 노래하라 명했지. 하지만 저 사내는…… 이아손 공만은 제 파멸의 냄새를 숨기지 않고 내 면전에 들이밀었다."배에 오르면 죽는다.뼈가 썩고 살이 찢기며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그것을 알면서도 배를 띄우려는 사내.세상 끝으로 향하는 고독한 주연."운명…… 지배…… 그리고 기만……!"오르페우스의 눈에 핏발이 섰다."진정한 사나이의 비극! 미화 없는 서사시! 내가 평생 찾아 헤매던 무대가 여기 있었구나!"그가 떨리는 손으로 리라를 치켜들었다."노래하소서, 여신이여! 저 검은 파도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사내들을! 살아 돌아올 기대는 버려라! 황금의 양털은 피에 젖은 수의일 뿐이니!"도도나의 참나무가 부스스 눈을 떴다.【……뭐야, 이 밤중에 누가 시끄럽게…… 잠깐. 그 리라 소리, 좀 치는데?】[사용자 요청 사항: 공포의 광역 전파][외부 출력 회선을 개방합니다. 음향 증폭을 지원하겠습니다.]보이지 않는 권능이 나뭇결을 타고 스며들자, 참나무는 저도 모르게 목청을 활짝 열었다.우우웅-선체가 리라의 잔향을 따라 울었다.오르페우스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배가 응답했다?"그의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졌다."아르고 호마저 제 죽음을 노래하길 원한단 말인가! 아아, 무사이여! 지금 내 손끝을 보소서!"채앵-!첫 현을 퉁긴 순간, 신목의 증폭 회선을 타고 천둥이 터져 나와 지면을 긁었다.리라 한 대가 낼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소리.그 굉음은 모래톱과 언덕을 넘어 테살리아 평원 전체로 뻗어 나갔다."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어미의 치마폭 뒤에 숨어라! 제 무덤을 스스로 팔 자만이 아르고 호에 발을 올릴지니!!"***밤새 천둥 비슷한 게 우르릉거렸다.제우스가 또 바람피우다 헤라한테 걸렸나 보지. 베개로 귀를 틀어막고 돌아누웠다.해가 정수리에 걸렸을 때쯤에야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하녀가 가져다준 무화과 절임과 염소젖으로 느긋하게 배도 채우고."아, 평화롭다."어제 오르페우스 녀석이 그렇게 필 받아서 뛰쳐나갔으니, 지금쯤 시내에는 '이아손의 배는 죽음의 덫'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겠지.지원자는커녕 인부들도 겁먹고 도망쳤을지 몰라."슬슬 나가서 모병소 문 닫는 꼬라지나 구경해 볼까."표범 가죽을 대충 어깨에 걸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궁전을 나섰다.그런데 바깥 분위기가 이상했다.한산해야 할 거리가 인산인해.수많은 사내들이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어가고 있었다."빨리 가자! 앞자리 뺏긴다!""오늘이 마지막 공연일지도 몰라!"……자리? 무슨 자리?와아아아아아!!항구 쪽에서 함성이 터졌다."……뭐야. 오늘도 제전 있나?"[직접 확인하시길 권장합니다.]'너 말투가 왜 그래. 왜 신나 보이는데.'불길함을 삼키며 항구로 달려갔다.조선소 앞 광장에 도착한 순간.징- 지지징- 콰아아앙!전생의 락 페스티벌에서나 들었을 법한 디스토션이 광장을 뒤흔들고 있었다.아르고 호 뱃머리 바로 아래에 급조된 나무 단상. 그 위의 오르페우스는 실신 직전이었다.머리칼은 땀에 젖어 뺨에 달라붙었고, 키톤은 어깨까지 찢겨 있었다.그 꼴로 리라를 후려갈기며 포효하는 중."죽음을 마셔라아아아!! 아르고의 갑판 위에서 네놈들의 운명을 맞이해라아!!""우오오오오!!"쿵! 쿵! 쿵!광장을 메운 수천 명의 사내가 일제히 주먹을 치켜들며 땅을 굴렀다.나는 벌어진 턱을 부여잡았다."……야."[네, 지혜로운 선장님.]지이이잉-!"왜 리라에서 일렉 기타 소리가 나?"[참나무 뱃머리와의 신탁 공명 회선이 음압을 증폭시킨 결과입니다.][현재 오르페우스의 주파수는 테살리아 전역의 테스토스테론을 자극하고 있습니다.][공연 지속 시간: 14시간 경과. 아티스트의 생명력이 우려됩니다.]"그럼 어젯밤 그 천둥이 이거였어?"[사용자의 요청 사항, '공포의 광역 전파'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그런 거 요청한 적 없어! 아니 했나? 아무튼 이런 뜻이 아니었다고! 당장 꺼! 스피커 선 뽑으라고!!"[아르고 호는 이미 공연 종료 시점까지 라이브 하우스 지원을 확약했습니다. 아티스트와의 신뢰는 무겁습니다.]"신뢰는 무슨 신뢰! 누구 마음대로 계약을 해!!"[참고로 객석 반응이 매우 뜨겁습니다. 공연 중단 시 폭동 확률 87.3%.][사용자도 떼창에 참여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광장은 이미 집단 광기에 빠져 있었다.사내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떠들어댔다."들었는가!? 살아 돌아오는 자가 아무도 없을 거란다!""크으으! 진짜 사나이의 원정이다!""왜, 겁나나? 안 가면 게이임!""음?"옆에 있던 테베 전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전우끼리 사랑을 나누는 게 더 사나이다운 것 아닌가? 아무튼 나도 탄다!""……듣고 보니 그렇군!""아무튼 저 배에 타야 한다!!"우오오오오!!선술집에서 튀어나온 주정뱅이가 포도주 잔을 치켜들었다."와! 아르고 호 원정 아시는구나! 겁.나. 어렵습니다! 파도가 치면 뼈가 으스러진대요!"오르페우스의 주둥이를 거치면서, 내가 정성껏 묘사한 선상 사고가 모조리 '상남자만이 도전할 수 있는 극한 챌린지'로 둔갑해 있었다.번역하자면 '상남자 특: 아르고 호 탐'."아니야……."나는 군중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소리쳤다."아니라고, 이 미친놈들아! 진짜 죽는다고! 가면 다 뒤져! 뼈 부러지는 게 멋있기는 개뿔, 더럽게 아프기만 하지!"앞을 가로막은 떡대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더니,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퍽 쳤다.쇄골이 내려앉는 줄 알았네."크하하하! 헤라의 깃털! 네놈이 바로 노래 속 그 사내로구나! 다들 들었나! 이아손이 직접 말했다, 전부 죽는다고! 얼마나 가슴 뛰는 경고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진실을 내뱉을 수 있지!""아니 진짜로 죽는다니까!? 나 무섭다고!!"우오오오오!"이아손! 죽음을 마시는 자!!!"말이 안 통한다.내 상식적인 비명과 호소가 저 그리스 마초들의 귀에는 도발과 영웅 찬가로 필터링되는 중.광장 구석에서는 다른 도시에서 온 음유시인들이 눈물을 훔치며 오르페우스의 가사를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다.며칠 뒤면 아테네, 테베, 코린토스의 모든 광장에서 이 미친 '죽음의 찬가'가 울려 퍼지겠지.공연을 마친 오르페우스가 비틀거리며 단상에서 내려왔다."이아손 공…… 해냈습니다…… 당신의 파멸에 온 헬라스가 화답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저 사내들의 피가 끓는 소리를!!""이이……! 너 때문에 계획이 다 망해 버렸으니까 책임져!!""네, 알겠습니다.""……어?""끝까지 책임지고, 원정의 마지막까지 노래하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아르고 호에 태워주십시오.""안 태워! 꺼져! 언더그라운드로! 트라키아로 돌아가!!""사양치 마십시오. 처절한 비극에는 언제나 합당한 시인이 따르는 법이니까요."오르페우스는 희미하게 미소 짓더니 그대로 기절했다.달려온 인부들이 그를 들것에 실어 가고,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공석 마흔여섯 개.아무도 오지 않아야 할 그 좌석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몰려올 근육뇌 바보들의 엉덩이로 가득 차오르는 환각이 보였다."망했어……."[축하드립니다. 아르고 호 원정의 테살리아 지역 인지도가 98.7%를 달성했습니다.][헬라스 전역 전파까지 예상 소요 시간: 사흘][약속은 이행되었습니다. 제정신인 지원자는 한 명도 오지 않을 겁니다.]노이즈 마케팅의 파멸적 성공. 이래서 바이럴은 적당히 해야 하는 거였구나.절망에 빠져 휘청거리던 그때.들끓던 수천 명의 군중이 양옆으로 쫙 갈라졌다.쿵,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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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바닥의 자갈들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대지를 짓누르는 발소리.갈라진 길 끝에서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2미터가 넘는 키. 근육은 계측 불가.어깨에는 사자 가죽. 손에는 올리브 몽둥이.'……히익.'학습만화에서 똑똑히 본 조합이다.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리다 못해 뇌관이 터져버렸다.신들이 던져준 과업을 도장깨기 하고 다니는 그리스 최강최흉의 인간 병기.분노 조절 장애의 대명사. 그 유명한 원조 버서커!'헤라클레스가 왜 여깄어!?'사자 가죽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표범 가죽 앞에 멈춰 섰다."네놈이 죽음을 마시는 자, 이아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