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 송민지
Ep.03 송민지
조금은 쌀쌀한 토요일 아침.한국헌터사관학교 입학시험장.송민지는 접수증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분명 새내기 전형이라고 했는데.각성한 지 석 달이 지나지 않은 사람들끼리 보는 시험이라, 그래도 다들 어느정도 비슷할 줄 알았다.그런데 저쪽에서 몸을 풀고 있는 또래 친구들은, 자신의 눈엔 벌써 현직 헌터처럼 보였다.“너 이번에 C급 받았다며?”“아쉽지만 그렇게 됐어. 넌 각성 전부터 다니던 곳 계속 다녀?”“일단은. 코치님이 여기 출신이셔서.”그 옆에서는 유명 길드의 수습생들이 서로 아는 얼굴을 찾고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헌터 가문의 자제도 있었고, 각성하기 전부터 몇 년씩 개인 교습을 받은 아이도 있었다.송민지는 괜히 손에 쥔 접수증을 꼭 쥐었다.나는 각성한 지 겨우 열흘째인데.그나마도 최하급인 E급. 국가유공자이신 할아버지 덕분에 가산점을 받지 못했다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정말 여기서부터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송민지는 슬그머니 제 장비를 내려다봤다.정부 지원금 300만 원으로 전부 맞추려니 고를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도 살 때는 꽤 그럴듯해 보였는데, 주위와 비교하니 영 초라했다.눈을 돌릴수록 다른 아이들의 장비만 보였다. 화려하진 않아도, 거기에 붙은 상표는 전부 알아볼 수 있었다. 전에 장비를 사러 갔을 때 가격을 물어보고 조용히 내려놓았던 것들이니까.그녀는 남의 검을 구경하던 시선을 슬며시 내렸다. 저런 걸 빌려서라도 왔으면 조금 덜 떨렸을까. …제대로 휘두를 줄도 모르면서,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어깨를 펴봤다가, 금방 도로 움츠렸다.아침에는 할아버지가 장비 끈을 몇 번이나 확인해 주셨다. 다 맸다고 해도 기어이 다시 풀어서 당겨보시던 손. 옆에서는 남동생이 잠이 덜 깬 얼굴로 매달렸다.‘누나, 꼭 붙어야 해. 파이팅!’송민지는 접수증을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떨어지면 내년에 다시 보면 되지.”물론 내년에는 새내기 전형으로 올 수 없다. 이보다 훨씬 어려운 일반 전형에 도전해야 한다.하지만 그것까지는, 애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그래야 이 긴장감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것 같았다.그때, 며칠 전 들었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가 빨리.’고맙다는 말을 몇 번 했더니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던 얼굴. 그래놓고 합격하면 찾아오겠다는 말에는 문을 열어두겠다고 했었다.“툴툴거리기는. 바보 아저씨.”혼잣말 끝에 조금 웃음이 났다.그래. 그래도 스킬 하나는 배워서 왔다. 어젯밤 집 앞을 달려봤을 때도 제법 잘 써졌으니, 오늘도 그렇게 해보면 될 것이다.그녀는 조금 편해진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가슴을 퉁퉁 두드린 뒤 대기실로 들어섰다.* * * 송민지는 빈자리에 앉아 접수증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번호를 이미 외웠는데도 자꾸만 이걸 보게 된다. 다들 옆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으니, 혼자 멀뚱히 앉아 있기도 뭐해서.그때, 그런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맞은편에 서 있던 차서린. 창천길드의 수습생 신분으로 이곳에 온 그녀는, 아까부터 혼자 앉아있는 송민지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저런 애가 있었나.’단정하게 묶은 머리에 맑고 고운 얼굴.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유독 단아했다. 가문 모임에서든 길드에서든, 한 번쯤 마주쳤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 없는 얼굴이었다.'어느 가문에서 개인 교습만 시키다가 이제 내보낸 모양이지.'차서린은 곁에서 떠들던 수습생들에게 잠깐 기다리라 말하고 송민지에게 다가갔다.“너 우리 조 맞지? 7조.”“어…? 으응.”“난 차서린. 너는?”“송민지.”그녀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너 진짜 예쁘다. 붙으면 우리 같이 다닐래? 나 아는 애 없으면 좀 심심할 것 같았거든.”“어? 아, 응. 좋아.”송민지가 얼떨결에 대답하고는 수줍게 웃었다.다들 아는 사람끼리 온 줄 알았는데, 이 아이도 나랑 비슷한가 보다. 학교에 들어가면 같이 점심도 먹고, 수업도 듣고….“근데 소속 길드는 어디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나는 아직 없어. 들어오라는 데도 없고….”“그럼 집에서 따로 배웠구나. 어느 집안이야?”“어… 여산 송 씨인데. 너는 무슨 차 씨야?”차서린이 잠깐 눈을 깜빡였다.본관을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그래? 능력은 몇 급이야?”“난 E급. 재빠른 몸놀림이라고… 잘 모를 수도 있어.”대답을 들은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 옅어졌다.“…E급이라고 했어?”“맞아. 그래도 전투계래. 너는…?”“아.”그제야 차서린의 시선이 눈앞 여자의 어깨 아래로 내려갔다.보급형 흉갑에 값싼 양산 검. 얼굴에 정신이 팔려 놓쳤던 것들이 뒤늦게 보였다.거기까지 본 차서린은 의자에서 일어났다.“미안. 나 실기 전에 코치님한테 확인할 게 있어서.”“응! 만나서 반가웠어. 우리 꼭 붙어서 친하게 지내자.”송민지가 웃으며 손을 들었지만, 그녀는 아까의 웃음기를 거둔 얼굴로 대답 없이 돌아섰다.창천길드 수습생들이 모인 자리로 돌아간 뒤에는 이쪽을 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옆에 있던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금세 다시 웃고 있었다.“…이따 봐.”뒤늦은 인사가 민지의 입 안에서 작아졌다.살짝 들었던 손도 어정쩡하게 남았다. 그녀는 그 손으로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 넘기고, 무릎 위의 접수증을 다시 폈다...오전 첫 일정은 기본 능력 측정이었다. 힘 1.3 · 마력 1 · 체력 2.7앞서 측정한 응시생들과 비교하면 거의 최하위권이었다. 아니, 그냥 꼴등이었다. 송민지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가던 중, 진행 요원이 측정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민첩은 8.4네?”그 목소리에 그녀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그러나 요원은 검사지 아래에 적힌 E급 능력,「재빠른 몸놀림」을 보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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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높은지 알았다는 얼굴이었다.“됐습니다. 다음 검사실로 가세요.”이후로 기초 체력 테스트와 필기시험, 탑 내부를 재현한 공간에서 함정과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공략 평가까지 치르고 나니, 어느새 마지막 시험만 남아 있었다.응시생들이 모인 곳은 중앙 훈련장.한국헌터사관학교를 소개할 때면 꼭 등장하는 시설. 천장은 고개가 아플 만큼 높았고, 벽을 따라 이어진 마나 회로에서는 은은한 빛이 흘렀다. 한가운데 놓인 집채만 한 투명 정육면체 네 개는, 홍보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컸다.평소 같으면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송민지는 지금 제대로 구경할 기분이 아니었다.‘망했어….’기초 체력 검사는 어찌어찌 턱걸이로 통과했다. 필기도 짧게나마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밤마다 붙들고 있었던 만큼 아는 문제가 많았다.문제는 공략 평가였다.눈앞에 놓인 걸 만져도 되는지부터 모르겠는데, 다른 아이들은 이미 출구를 찾아 열고 있었고.함정이 어디 있는지 살피려고 하면 누군가 먼저 해제해 버렸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등 뒤만 쫄쫄 따라가다가 시험이 끝났다.‘다들 정말 잘하던데….’그렇게 침울해졌지만, 사실 여기엔 그녀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유력 길드와 가문의 아이들에게는 지난 시험 유형을 복원한 자료, 일명 족보가 있었고. 그들은 비슷한 공간에서 이미 수없이 모의 훈련을 하고 왔다는 것.그래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그녀는 자신의 부족만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마지막은 생존 평가입니다.”앞으로 나온 교관이 정육면체를 가리켰다.“캡슐 안에는 랜덤으로 가상의 지형과 몬스터가 투영됩니다. 모든 응시생에게 같은 조건이 적용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난도가 올라갑니다.”그의 말과 함께, 투명한 벽 너머로 돌기둥과 몬스터의 형상이 잠깐 나타났다.“유효 피격 세 번이면 종료됩니다. 싸우든 도망치든 상관없습니다. 최대한 오래 버티세요.”송민지는 마른침을 삼켰다.“1번 김강섭, 2번 최나영, 3번 이호섭, 4번 강찬호. 이상 앞으로.”시험은 동시에 네 명씩 진행됐다."4번 강찬호. 54초. 탈락."첫 조에선 채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대부분은 2분에서 4분 사이에 탈락했고, 드물게 6분을 넘기는 기록이 나오면 주변에서 작은 탄성이 흘렀다.10분을 넘긴 응시생이 나왔을 때는 다른 캡슐의 감독관들까지 고개를 돌렸다.마침 자리와 가까운 캡슐이라 그 아이가 어떻게 버티는지 유심히 지켜봤지만, 딱히 참고가 될 만한 건 없었다.그도 그럴것이, 몬스터가 접근할 때마다 불길이 휩쓸고 지나갔으니까.…저런 건 따라 할 수가 없는데.그녀는 헌터 마트에서 기적의 초특급 반값 세일에 산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손을 뗐다.그렇게 긴장한 채로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178번 송민지, 앞으로 나오세요.”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