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어쩌다 들어간 상점
Ep.05 어쩌다 들어간 상점
서울 외곽의 한 작은 주택.박상철은 친한 동생의 집들이에 초대받아 와 있었다.동생 부부의 직장 동료와 지인들이 한데 모인 자리라, 집 안은 꽤나 왁자지껄했다. 하지만 큰 덩치에 인상마저 험악한 박상철에게는 다들 말을 붙이기 어려워하는 눈치였는데, 동생의 아내가 그를 소개하고부터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사실 이쪽에 계신 분이 헌터예요.”“어, 정말요?”“네. 저희 남편이 친형처럼 따르는 분인데, 오늘 바쁜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을 내주셨네요. 호호.”그러자 테이블 위의 시선이 한꺼번에 박상철에게 쏠렸다.일반인이 살면서 헌터를 직접 만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각성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그중 전투계 능력을 얻고 실제로 헌터가 되는 사람은 더 적은 탓이다.국내에서 활동하는 헌터의 수는 1만 명 전후.한국에 의사가 14만 명쯤 된다는 걸 생각하면, 꽤나 희귀한 직업이라 할 수 있겠다.그러니 자연스럽게 식탁의 화제도 박상철에게로 옮겨갔다.“헌터시면 몇 급이세요?”박상철은 먹던 것을 삼키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별거 아닙니다. C−급입니다.”C−급.헌터들 사이에서는 흔한 수준이었지만, 업계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에게는 충분히 대단하게 들린 모양이었다.곧장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졌다.“와, C급이면 꽤 높은 거 아니에요?”“탑도 직접 들어가시는 거죠?”“그 정도면 돈 진짜 많이 버시겠다.”“TV에 나오는 헌터들이랑 같이 일하시는 거예요?”갑자기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박상철은 난처한 얼굴이 되어 손사래쳤다. “아이구 아니에요. 그분들은 저보다 훨씬 대단한 헌터들입니다.”“그래도 C급이잖아요. 그 정도면 연봉이 억대도 넘으시겠는데요?”“…뭐, 그럭저럭 먹고살 만큼은 벌긴 합니다.”뭉그려뜨린 대답을 긍정의 의미로 해석했는지, 여기저기서 부럽다는 말이 나왔다.동생의 아내도 신이 나서 거들었다.“이번엔 더 높은 공략대에 들어가실 수도 있대요.”그 말에, 순간 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박상철의 손이 잠깐 멈췄다.“……?”처음엔 제수씨가 무슨 소리를 하나 했는데, 곧 짐작이 갔다. '아. 주전 탱커 평가 이야기구나.'아무래도 제수씨는 그걸 승급 심사쯤으로 잘못 이해한 모양이었다.실제로는 지금 자리를 지킬 수 있느냐가 걸린 평가였지만….그걸 굳이 설명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하하… 잘 되야 할 텐데요."박상철은 그렇게 얼버무리고 다시 술잔을 들었다.*식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과일 접시를 들고 하나둘 거실로 자리를 옮길 즈음.박상철은 동생과 함께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섰다.마주 오는 늦가을 바람이 꽤 쌀쌀했다.“형이 골라준 조명, 아내가 엄청 마음에 들어 해요.”“다행이네. 역시 저 소파에는 주광색보단 조금 더 따뜻한 주백색 쪽이 어울려.”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뱃갑을 꺼냈다. 한 개비를 박상철에게 건네고, 자기 몫도 꺼내 물고. 그러고는 잠시 담뱃갑만 만지작거렸다.“아까 아무 말도 안 하더라.”“뭘.”“예진이가 더 높은 공략대 들어간다고 한 거요.”박상철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제수씨가 자랑 좀 하겠다는데, 굳이 초를 쳐야겠냐?”“다음 평가에서 떨어지면 2군으로 내려간다면서요.”박상철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아직 떨어진 거 아니다.”“새로 온 탱커, 장난 아니라면서.”“그래서 한번 붙어보는 거잖아.”“에이씨. 형은 제대로 된 탱커 스킬도 없잖아.”박상철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입에 문 담배만 천천히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미안해요. 이놈의 술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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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각성 능력은 B급 「강철의 기사」.충분히 고랭크라 할 만한 능력이었고, 처음 능력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박상철 역시 제 앞날이 꽤 밝을 줄 알았다.실제로 체력 하나만큼은 같은 등급의 헌터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 덕분에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길드에도 들어갔고.문제는 마력이었다.정말로, 그의 몸은 이상하리만치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남들보다 몇 배로 훈련해도 체력만 쑥쑥 오를 뿐, 마력 수치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번에 산 영약은 효과 좀 있었어요?”“있었지.”“얼마나 올랐는데요?”“0.1 정도.”동생이 담배를 문 채 박상철을 돌아봤다.“그거 얼마짜리였더라.”“묻지 마라.”헌터가 된 뒤 월급과 성과급을 쏟아부어, 마력에 좋다는 것은 정말 거의 다 시도해 봤다.그렇게 죽기 살기로 고생해 얻은 현재 마력은 고작 8 남짓.결국, 자신은 딱 이 정도였던 것이다.“그냥 체력 쪽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면 안 돼요?”“탱커가 몸만 튼튼하면 되는 줄 아냐? 몬스터가 날 안 때리는데, 혼자 튼튼해서 뭐 하게.”분명 도발 스킬 하나만 제대로 익혀도 해결될 문제다.그래서 더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쓸 만하다 싶은 C급 이상의 광역 도발 스킬은 대부분 마력이 10 이상. 거기에 방어력 강화까지 붙은 B급 스킬이라면, 마력 요구치는 더 높아졌다. 잠시 말이 없던 동생이 머뭇거리다 물었다.“…돈 빌려줄까?”“신혼집 대출이나 갚아. 지금 남 걱정할 때냐.”“예진이 몰래 한 장 정도는 빌려줄 수 있어요. 내가 좀 알아봤는데, 이번엔 다른 영약으로….”“들어가자.”박상철이 담배를 비벼 끄고 몸을 돌렸다."후우우ㅡ"동생은 그런 형을 보고, 그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집들이가 끝난 뒤, 박상철은 큰길로 나가기 위해 골목을 걷고 있었다. 차가 고장 나 정비소에 맡긴 탓에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온 참이다.그때, 골목 한 편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채선호 스킬북]‘요즘 세상에 자기 이름을 가게에 붙이는 사람이 있네.’그렇게 지나치려던 박상철은 무심코 창문 너머를 봤다가 걸음을 늦췄다.동그란 창으로 보이는 가게 내부 분위기가, 꽤 그럴싸했기 때문이다.사실 험악한 외모와 달리 그는 예쁜 소품이나 분위기 좋은 공간을 좋아했다. 밖에 서서 창틀과 조명의 배치를 한참 구경하다, 결국 잠깐 구경이나 해볼 요량으로 문을 젖혔다. 딸랑. 딸랑. “어서옵쇼.”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에 있던 젊은 남자가 심드렁하게 응대했다.‘동네 장산데, 되게 불친절하네.’그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안쪽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괜찮았다. 나무로 짠 선반은 모서리까지 둥글게 다듬어놓았고, 그 사이사이 놓인 소품들도 제법 귀여웠다. 따뜻한 조명까지 더해지니 꼭 동화 속 찻집 같았다.그래서 그는 순간, 자신이 간판을 잘못 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그도 그럴 것이 이곳엔 스킬북이라고는 유리 진열장에 놓인 네 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그마저도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 띠지 하나 둘러져 있지 않은 채로.‘예쁘기만 하지, 결국 그냥 동네 가게구나.’딱히 더 둘러볼 것도 없었다. 게다가 사장의 시선도 영 신경 쓰였다.아까부터 말도 없이 이쪽만 빤히 보고 있는데, 눈이 마주쳐도 시선을 거두질 않으니 괜히 구경하러 들어왔나 싶을 지경이었다.그렇게 다시 문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데.“혹시 도발 계열 스킬 찾으세요?”사장이 불쑥 말을 걸었다.여전히 무심한 말투였으나, 그 내용만큼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어떻게 알았지?’그는 당혹감을 억누르다가, 결국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찾는 건 맞는데, 조건이 좀 까다로워서요. 괜찮습니다.”“조건이라 하시면?”“C급이나 B급 광역 도발이요. 체력 요구치는 좀 높아도 되는데, 마력이 많이 낮아야 합니다.”“어느 정도로요?”“8. 그 이하로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사실 막상 물어보니 대답은 했지만, 무슨 기대를 걸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이 조건으로 배울 만한 광역 도발을 찾느라 스킬북 판매 사이트를 얼마나 뒤졌는데.새 물건이 들어왔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확인해 봐도, 늘 마지막 마력 조건에서 걸리곤 했다.그런데 사장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진열장 한쪽을 가리켰다.“오. 그럼 그거 쓰시면 되겠네요.”“…예?”“마력 7이면 배웁니다.”박상철은 사장의 얼굴과, 그가 가리킨 책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장난치는 건가?’아니면 B급이라고 말한 것을 D급으로 잘못 들었나.그런 거라면 말이 됐다.「야유」나 「소란」처럼 광역 도발로 분류되기는 해도, 고작 근처 몬스터의 신경을 잠깐 거스르는 수준에 그치는 스킬들이 있었으니까.아무래도 그런 걸 말하는 모양이었다.하지만 그는 구태여 더 묻지 않고 진열장으로 다가갔다.책을 한번 보면 무슨 착각을 한 건지 알겠지.유리문을 열고, 사장이 가리킨 책에 손을 얹었다.【전장의 호령】▸ 등급 : B급▸ 효과 : 반경 90m 이내의 적을 도발합니다.▸ 제한 : 강력한 적에겐 효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습득 조건 : 힘 15 · 체력 32 · 마력 7 이상.“……”책에 얹은 손이 그대로 굳었다.그의 인생을 바꿀 스킬북이,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