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 다중 게이트
Ep.07 다중 게이트
“차 돌리세요! 이쪽은 진입 안 됩니다!”부산 도심 인근의 사거리.경찰이 도로를 막고 차량을 돌려보내는 동안, 대피 안내를 받은 주민들이 상가에서 하나둘 빠져나왔다.“선배님. 들어보니까 뭐 E급 잔바리들만 나온다는데, 위험등급은 왜 C−급입니까?”“마릿수가 많잖아. 한꺼번에 쏟아지면 헌터들도 놓치는 놈이 생기니까. 야. 고블린 한 놈만 빠져나가서 민간인 피해라도 생기는 날엔, 모가지 날아갈 윗분들이 한둘이 아니다.”선배라고 불린 경찰은 그렇게 말하며 아직 문이 열린 건물들을 가리켰다.“골목 쪽도 다시 확인해. 물건 챙기겠다고 남은 사람들 있더라.”“예.”그때, 통제선으로 자기 키만 한 방패를 멘 사내가 다가왔다.“헌터분이시죠?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예. 금성길드에서 나왔습니다.”박상철은 익숙하게 통제선 안으로 들어섰다.바깥쪽에는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게이트 발생 예정지와 가까운 안쪽에는 금성 소속의 헌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그가 자리를 잡고 방패의 고정끈을 조이고 있자, 같은 파티의 후배가 활을 들고 다가왔다.사석에서도 자주 어울리는 녀석이었다.“형님, 너무 걱정하지 마요. 형님 차례에도 제가 옆에서 좀 잡아드릴게요.”“넌 네 자리 지켜. 나도 준비한 건 있으니까.”“준비요? 뭘요?”“두 분, 이쪽으로 모이세요.”둘의 대화를 끊고 길드에서 나온 평가관이 손짓했다.정부 입찰로 따낸 이번 방어 임무에는 주전 탱커 평가도 걸려 있었다. 기존 주전인 박상철과, 새로 영입된 C급 탱커 추하성.“첫 순서는 추하성 씨. 다음 교대부터 박상철 씨가 맡습니다. 대열 유지하고, 누락 개체 생기면 바로 보고하세요.”“알겠습니다.”추하성이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박상철은 몰랐지만, 사실 이번 게이트에 입찰하도록 손을 쓴 사람이 바로 추하성이었다. 박상철의 약점을 전해 들은 그는 길드 고위층에 돈을 찔러 넣었고, 자신에게 유리한 이곳으로 평가를 끌고 왔다."게이트 오픈 예정 5분 전입니다ㅡ!"개방 예정 시각이 다가오자, 관리국에서 나온 현장통제관이 헌터들의 준비 상태를 확인했다.“금성길드 헌터분들, 모두 준비됐습니까?”“됐습니다.”이윽고 허공의 균열이 벌어졌다.고블린들이 서로를 밀치며 뛰어나왔고, 그 사이로 잿빛 늑대들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스팔트를 긁으며 달려 나왔다.“도발 시전하겠습니다!”추하성의 몸에서 마나가 터져 나왔다. 그의 마나를 감지하고 사방으로 흩어지려던 마수들이 방향을 틀자, 추하성은 거대한 방패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자세를 낮췄다.밀집한 마수들 위로 화살과 불덩이가 쏟아졌고.가끔씩 측면으로 돌아서던 고블린도 검을 든 헌터에게 목이 날아갔다.“현재까지 누락 없습니다!”“좋습니다. 그대로 유지하세요.”그의 활약을 본 평가관이 기록지에 무언가를 적었다.추하성은 방패에 붙은 사체를 털어내며 박상철을 돌아봤다. 그 입가엔 여유로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박상철 씨. 교대 준비하세요.”첫 번째 웨이브가 끝날 조짐이 보이자, 박상철의 차례가 왔다. 그는 평소처럼 갑옷 틈을 꼼꼼히 확인하고, 방패를 들어 올렸다.쩌적!
d3kza0VLSVdxajZ6L09aWC8xUnR2SDJOK3VKUlFNOEdoQnFWSzRsUmR0Z3BuU01PMmd5b1l0VS82WkwrUUNNZg
그 순간, 게이트 왼쪽의 허공이 길게 찢어졌다.“좌측! 새로운 균열입니다!”“오른쪽에도 하나 더!”박상철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늑대 마수 한 마리가 새 균열을 박차고 나왔다.“다중 게이트! 전원 자리 지켜!”다중 게이트. 이미 열린 게이트 주변에 추가 균열이 발생하는, 극히 드문 현상이었다.세 군데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마수들이 가설 방벽을 들이받았다. 정면을 향해 서 있던 헌터들이 황급히 몸을 돌렸고, 그 틈으로 고블린들이 기어들었다.“도발! 도발 넣어요!”“넣고 있잖아요! 오른쪽은 범위 밖이라고!”추하성은 당황한 얼굴로 이를 악물고 방패를 밀었다. 그의 앞으로 몰린 놈들 뒤에서, 또 다른 늑대 무리가 통제선 쪽으로 내달렸다.“다중 게이트 발생! 위험등급 상향합니다. 인근 길드에 긴급지원 요청 넣으세요!”늑대들이 빠져나가는 걸 본 현장통제관이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그리고 답신을 기다릴 틈도 없이 경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북쪽 교차로 막으세요! 비전투 소방 인력은 뒤로!”“늑대 셋, 통제선 넘었습니다!”경찰이 외곽 차단벽을 더 끌어 붙였다. 그러나 늑대들은 벌써 통제선을 통과해 상가 골목으로 사라지고 있었다.“예비조, 저놈들 쫓아! 두 명만 차출해!”팀장의 지시에 대기하던 헌터 둘이 통제선 밖으로 뛰쳐나갔다.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박상철은 세 균열과 도로의 폭을 빠르게 훑었다.상가로 빠진 놈들은 이미 너무 멀었다. 지금 그쪽으로 쫓아갔다가는, 게이트 앞에서 더 많은 놈을 놓친다.빠른 판단 후에, 그는 세 게이트의 중간 지점을 잡았다. 저기라면 대강 반경 90미터 안에 들어올 듯싶었다.“잠깐만 버텨!”“형! 어디 가요!”그는 대답 대신 도로를 가로질렀다.달려드는 고블린 하나를 방패로 후려치고, 두 발을 아스팔트에 단단히 박았다.「전장의 호령」.그가 이번에 새로 손에넣은 스킬이 시전 되고, 적의를 머금은 마나가 반경 90미터로 퍼져나간다.막 게이트를 빠져나온 늑대가 우뚝 멈췄다. 방벽을 넘어가던 고블린도, 추하성의 방패를 물어뜯던 놈들도.짧은 정적 뒤, 수백 마리의 고개가 한꺼번에 돌아왔다.“…상철이 형?”박상철은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내 위치로 집중 포격해! 여기서 다 잡는다!”콰아앙! 선두의 늑대가 방패에 처박혔다. 뒤따른 고블린들은 그 등을 밟고 머리 위로 달려들었다.높은 체력 스탯으로 단단해진 육체가 충격을 받아냈다.수십 마리가 동시에 밀어붙여도 버텨낸 방패 위로, 이번에는 머리가 세 쌍인 늑대 한 마리가 뛰어올랐다.C급 변종 개체 마수 ‘케르베로스’다.박상철은 곧바로 방어 강화 스킬을 덧씌웠다.그러자 방패 너머로 전해지던 충격이 한결 둔해졌다.‘된다. 마나가 정말 남아!’그 남자가 최상급이라고 했을 때는 솔직히 반신반의했다.그저 광역 도발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품질은 크게 따지지도 않았고.미리 시험해 봤을 때도 괜찮다 싶긴 했는데.‘…도대체 그 가게 주인의 정체가 뭐지?’실제로 이만큼 끌어모으고 방어 강화까지 썼는데도, 다음 도발을 준비할 여유가 있었다.박상철은 방패 위의 변종 마수를 밀쳐내며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자리 잡아! 계속 끌어올 테니까!”“상철 씨, 조금만 더 버텨요!”흩어졌던 대열이 그의 뒤로 다시 세워졌다. 마수들 사이로 불길이 치솟고, 방패 양옆에서 길게 뻗은 창이 늑대의 목을 꿰뚫었다.그때 오른쪽 게이트에서 새 무리가 쏟아졌다.“또 나옵니다! 오른쪽!”“봤어!”박상철이 다시 호령했다.진형을 돌아가려던 놈들이 곧장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궁수가 사선을 바꾸고, 마법사가 다음 주문을 준비했다.“형, 다음 웨이브도 됩니까?”“돼! 모이는 대로 쏴!”세 게이트에서 나오는 마수들이 계속 같은 자리로 몰렸다.박상철은 같은 자리에서 버티며, 새로운 무리가 보일 때마다 도발을 걸었다. 파티원들은 더 이상 마수를 쫓아 사방으로 뛰어다니지 않았다.*지원 길드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방어선이 안정을 되찾은 뒤였다.게이트가 닫히자마자 현장통제관은 지원 인력을 상가 구역으로 보냈다. 밖으로 빠져나간 마수가 더 없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그리고 마지막 늑대가 쓰러지고 나서야 박상철은 방패를 내렸다.팔이 얼얼했지만 손은 움직였다. 장갑을 채 벗기도 전에 관리국에서 나온 사무관이 그를 찾아왔다.“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민간인 피해 없이 상황이 잘 마무리 됐습니다. 감사합니다.”“아까 상가로 빠진 놈들은요?”“셋 다 예비조가 잡았습니다. 지원팀이 다른 골목도 확인하고 있고요.”그제야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풀렸다.아까부터 계속 처음에 놓친 마수들이 생각났던 참이었다.사무관은 박상철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태블릿을 꺼냈다.“혹시 실례지만, 헌터 등급이 어떻게 되십니까?”“C−입니다.”그의 말에 사무관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솔직히 믿을 수가 없군요. 오늘 다중 게이트 통제 기록은 별도 공적으로 심사위원회에 올리겠습니다. 아마 바로 C급 승급도 가능하실 겁니다.”“C급이요?”“예. 심사에 필요한 현장 기록은 저희가 챙기겠습니다.”박상철은 뒤늦게 제 방패를 내려다봤다. 주전 자리나 지켜보려던 것이, 승급이라니.진심으로 전화위복이란 말이 이럴때 쓰는 건가 싶었다.사무관이 자리를 뜨자, 후배가 다가와 차가운 얼음 생수 한 병을 내밀었다.“형님, 아까 준비했다는 게 그 스킬이었어요?”“그래. 얼마 전에 구했어.”“그러면 미리 좀 말씀하시지. 괜히 저 혼자 걱정했잖아요.”“걱정은. 짜식…”“아니 근데, 도대체 마력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올리신 거예요? 무협지에서 나오는 은둔고수 뭐 그런 사람이라도 만난 거야? 아님 저번에 산 영약이 그렇게 좋았던 거예요?”“나도 몰라 임마.”“그러지 말고 좋은 건 좀 같이 먹고 그럽시다… 아니 나도….”후배를 먼저 보내고 잠시 후, 장비를 정리하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박상철은 겉옷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채선호 스킬북」.은둔고수라….‘분명 사용해 보고 후기를 알려달랬지.’박상철은 시끄러운 현장을 한번 쭉 돌아보고는, 명함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지금 그의 마음속은, 빨리 서울로 돌아가 가게부터 다시 찾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