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데
어른인데
오늘 내가 죽었다. 과로사? 아니면 교통사고로? 모르겠다.확실한 건 썩 즐거운 삶은 아니었다.그냥저냥 평범하디 평범한, 아니 평범하게 불행한 한국 남자의 삶이었을 뿐.그렇게 긴 잠을 잤다.그러다 언젠가 잠에서 깨어났다.그런데 내 인생은 왜 이럴까?"하아…… 연속 두 번 파더 마더가 없는 삶이라니."나는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까치발을 한껏 치켜올렸다.거울을 빤히 바라보니 쪼그만 꼬맹이가 나를 바라본다.어릴 때 고생해서 그런가?키도 체형도 터무니없이 작은 몸.보기엔 이래도 어엿한 성인인데!ㅡ 꼬르륵배에서 알람이 울린다.빨리 일을 구해야 하는데.이러다가 진짜로 굶어 죽을 거 같은데."제발 오늘 알바는 합격해야 하는데…."ㅡ 딸랑"어서 오세… 심부름 왔니?""저 오늘 알바 면접 보기로 한 백소유입니다!"점장은 황당하다는 듯 눈을 껌벅인다.그러고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면접을 시작했다.잠시 후."저 꼬마 아니에요. 어른 맞아요!"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민등록증을 내미니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는 모습이란.점장은 민증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고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네 사정은 알겠는데 편의점 밤일은 험해. 무서운 아저씨들도 많고 이상한 사람들도 와서 위험해."어린애 타이르듯 겁을 주는 말투.익숙한 상황이다."저 열심히 할게요! 저 일 잘해요!""미안하다. 너한테 맡기긴 좀 불안하구나."결국 오늘 면접도 장렬하게 산화한 건가?그렇게 풀 죽어 고개를 푹 숙인 채 가게를 나서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점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잠깐만 기다려."점장님은 냉장 코너 구석에 짱박혀있는 도시락 3개를 챙겨주셨다."여기까지 왔는데 못 뽑아서 미안하다.""감사합니다!"폐기 도시락을 무려 세 개나 챙겨주시다니.'이 정도면 3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나도 모르게 입가에 헤실헤실 미소가 번졌다.우울했던 기분은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 대유쾌 마운틴으로 솟아올랐다.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전단지 알바로 벌어놓은 돈도 다 까먹어가는데.'대유쾌 마운틴에서 통곡의 해구로 추락했다.이제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 한숨이 나왔다.그 순간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을 자극했다."하, 씨발! 매입 안 한다잖아! 아니, 20층까지 기어 올라가서 주웠는데 0원짜리인 게 말이 돼?!"앞에선 한 남자가 예의 없이 길거리에서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굳이 무슨 얘긴지 묻지 않아도 왜 저러는지는 알 수 있었다.그렇다. 전생은 평범했지만, 이번 생엔 탑과 헌터가 존재했다.아쉬운 점은 나에겐 그런 특혜가 없었다는 거?성인이 다 되어가도록 그 유명한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다니."소고기는 무슨 얼어 죽을 소고기야! 레이드에서 입찰 잘못했다가 개망했구만!"소고기에 몸이 반응했다.나도 모르게 침을 츄릅 삼켜버렸다.'아ㅡ 소고기 먹고 싶다.'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무언가를 화단에 휙 던져버리고는 씩씩거리며 사라졌다.순간 호기심에 남자가 안 보이는 걸 확인한 다음 서둘러 화단으로 달려갔다.'탑에서 나온 물건….'가치가 0원짜리 잡템인건 들어서 알고 있다.하지만 내가 평생 들어갈 수 없는 탑에서 나온 물건이잖아?막연한 동경과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화단 안을 살펴보자, 그곳에는 주먹만 한 돌멩이가 떨어져 있었다."우와, 예쁘다…."살짝 반투명한 유리 같으면서도 사이사이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노란 입자들이 박혀 있었다.수많은 돌멩이 사이에 혼자만 이질적인 모습.빛을 받으니, 입자들이 은은하게 반짝거리기까지 했다."이렇게 이쁜데 0원이라고?"중고 거래 앱에 올리면 누가 살 것 같은데?취미로 돌 모으는 사람도 있잖아?그것도 그냥 강바닥 돌멩이도 아니고 헌터들만 구할 수 있는 탑에서 나온 돌멩이인데."2만 원에 올리면 누가 사지 않을까?"아무리 돈 안 되는 잡템이라 해도 이렇게 예쁜 걸 길바닥에 버리고 가다니.적어도 내 상식으론 이해가 되질 않는다."허접한 헌터도 탑 한 번 올라가면 대기업 직원보다 많이 번다던데."돈이 되지 않으면 이뻐도 소용없는 모양이다.얼른 반짝이는 돌멩이를 주워 먼지를 털어낸 다음 주머니에 챙겨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1.퀴퀴한 곰팡내가 코를 찌르는 반지하 단칸방.샤워를 마치고 나와, 점장님이 준 폐기 도시락을 깠다."오늘은 기분 안 좋으니까 특별히 스페셜 아이템도 꺼내야지."냉장고 안에서 맥주 하나를 꺼냈다.나한테는 이 세계에서 제일 사기 힘든 물건이다.신분증을 내밀어도 소용없었다."어처구니가 없네. 안 꺼져?""세상이 미쳐 돌아가나? 너 이런 거 어디서 배웠니?""어른인 거 확인했어도 안 돼. 잘못 팔았다간 가게 문 닫는단 말이야!"이 맥주도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고아원 옆 구멍가게에서 샀다.거기 할머니는 나를 어릴 때부터 봤으니까.얼마 전 돌아가셔서 이제는 그곳도 없어져 버렸지만."이거 먹고 내일 다시 일 구해봐야지!"도시락을 오물거리며 맥주를 홀짝이는 사이 습관처럼 고물 PC를 켰다.덜덜거리는 소리 속에 바탕화면이 뜨자 들어간 곳은 헌터 지망생 갤러리.다들 처지가 비슷해서 그런지 뭔가 동질감이 느껴지는 곳이랄까?그런데 오늘 개념글엔 유독 눈에 띄는 게시물이 있었다.[제목: 이 몸 이제 헌터.](E급 헌터 라이선스 인증 사진.jpg)아니 자다가 상태창 뜨길래 뭔가 했는데관리국 가니까 마력 반응 나오네?내일부터 좆같은 노가다 안 나간다 반장 시발련아 ㅋㅋㅋㅋ어그로성 게시글이 소환 의식을 진행했다.잠시 후 혼돈의 카오스 아니 댓글창이 소환됐다.ㄴ 부기 안 뿌림?ㄴ 각성했으면 치킨 뿌려야제ㄴ (버거 기다리는 이모티콘.jpg)ㄴ 제발 주작 기만자 새끼 좆되네 진짜ㄴ e급 버러지가 헌터라고 깝치노 ㅋㅋㅋ ㄴ e급이 탑 한 번 돌면 니 한 달 벌 거 하루 만에 범 병신아ㄴ 던전 들어가자마자 고블린한테 따잇 당할 듯 ㅅㄱ ㄴ 응 E급이 니 평생 연봉 따잇ㄴ 아 씨발 존나 부럽다 짐꾼만 해도 대기업 초봉 씹어 먹는다던데.ㄴ 제발 뭐 했는지 자세히 좀 알려주라 나도 각성 좀 제발 진짜 미치겠다ㄴ ㅊㅋㅊㅋ 던전 돌다 고기 방패 되지 말고 파티 잘 골라라"……."조용히 창을 껐다.속이 쓰렸다.방금 마신 맥주 때문은 아니었다.남들이 저렇게 E급이라고 욕하고 깎아내려 봤자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저 사람이 탑 한 번 돌고 오는 게 내가 전단지 알바 한 달 아니 두 달 뛴 것보다 많이 벌지 않을까?다 같이 바닥을 기는 개미인 줄 알았더니, 사실 저 사람은 날개 달린 나비였던 거다.순간 책상 위에 올려둔 돌이 눈에 들어왔다.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씻은 다음 책상 위에 올려놓은 0원짜리 이쁜 돌멩이.반투명한 돌 안에서 반짝거리는 노란 결정들.그걸 보고 있자니 은근히 위로가 되었다.마치 작은 화톳불처럼 타닥타닥 타오르는 느낌."그래도 보고 있으니, 힐링은 되네."그래. 부러워한다고 인생 바뀌는 건 없지.내일은 다시 전단지 알바하러 나가봐야겠다.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2.그날 밤, 아주 이상한 꿈을 꿨다.평소처럼 커뮤니티에 들어간 것 같았는데 헌터 지망생 갤러리가 아니었다.사람들이 쓰는 말도 뭔가 이상한 말이었다.분명 그 안에서 무언가 했던 것 같았는데……그러다 눈을 떴다. 개꿈인가?"우우으… 이상한 꿈꾼 거 같은데. 피곤해…."오늘부터 다시 열심히 일해야지.그렇게 눈을 비비며 일어난 그 순간.나는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다른 게 아니라 눈앞에 상태창이 보였다.[상태창]레벨: @#%#^&직업: $#%^%^&특성: &(#%^@&%스킬: !@#@$%^!&"어?"순간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거 같았다.눈앞에 뜬 상태창은 이상한 문자로 가득해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상태창이 눈앞에 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잖아?무려 헌터들의 전유물이 지금 눈앞에 떠 있는 거니까!'빨리 갤러리에......"아니 물어봐도 소용없는 일 아닌가?헌터가 되면 헌터갤러리 가서 놀지 지망생 갤에는 오지도 않는다.게다가 헌터갤러리는 인증받은 헌터들만 글 쓸 수 있는데?결국 헌터갤러리에 물어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아니, 지금은 그것도 중요한 게 아닌가?상황이 달라졌잖아?당장 관리국에 가서 측정하고 헌터 인증 받으면 되는 거잖아!얼른 씻는 둥 마는 둥 고양이 세수를 한 다음 옷장에서 제일 깨끗한 옷을 꺼내 입었다.옷을 갈아입는 중에도 장밋빛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상상 속의 나는 한강뷰 저택에서 소고기를 굽고 있었다.마음이 급해져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택시를 타고 관리국으로 향했다.그리고 몇 시간 뒤."헌터 아니에요.""아니…. 진짜 눈앞에 상태창 보여요. 진짜예요!""백소유 님 진정하세요."상담원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본다.불쌍한 아이 바라보는 그 느낌.전생이었다면 반대로 차갑게 바라봤을 텐데 이번 생은 대부분 저런 눈빛이다."백소유 님.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환각이에요. ""진짜 보여요. 지금도 제 눈앞에 떠 있어요!""백소유 님. 소유님처럼 보인다고 주장하는 분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있어요.""아니…. 진짠데….""물론 백소유 님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그건 무의식적인 열망이 만들어낸 환각. 저희 쪽에선 상상 각성이라고 불러요.""상상 각성 아닌데…. 진짠데….""집에서 며칠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진짜 보이는데….""다음 분 오세요."결국 쫓겨나듯 상담창구에서 밀려났다.뒤에선 대기하던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저 꼬마애가 상상 각성이라는 말이야? 상상 임신 같은 건가?""말조심해. 헌터가 얼마나 되고 싶었으면 저랬겠어."안쓰럽게 쳐다보는 커플들의 모습이란.차라리 욕을 하란 말이야!불쌍하다는 듯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열 배 더 기분 나쁘다.결국 억울한 기분을 안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다시 전단지 알바해야 하나…….'순간 신경 쓰지 않았던 청구서가 들이닥쳤다.오늘 일당, 택시비, 오면서 사 먹은 비싼 커피.속이 쓰렸다.그때 입구 근처에서 서성이던 덩치 큰 남자 하나가 쓱 다가왔다."꼬마야, 혹시 오늘 각성했니?"가슴팍에 조잡한 길드 마크를 단 사내.누군지는 뉴스로 잘 알고 있었다.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헌터 꿰어내 노예 계약하는 악덕 길드.남자는 먹잇감을 노리듯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건다."우리 길드 오면 돈도 엄청 많이 주고, 일도 편하다고. 어때?""필요 없어요."일반인들은 내 외모로 안 뽑는데 헌터들은 그런 거 없는 모양이다.아니, 차라리 진짜 헌터였으면 기분 좋게 튕길 수도 있었을 텐데.기분이 바닥을 치는 지금은 저 사람한테 욕을 들은 기분이다."일단 가까운 카페에 가서 뭐라도 한잔 마시면서 얘기할까?"저 남자가 끌고 가듯 잡아당겼다.순간 쌓여있던 분노가 폭발하며 고함을 질러버렸다."나 헌터 아니라고!!"악을 쓰며 손을 뿌리치자, 사람 좋게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갑자기 성질내서 그런 건가?아니, 그것보단 헌터도 아닌 게 성질을 부리니까 그런 것 같았다."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면 되지. 땅꼬마 새끼가 어디서 반말이야?"남자는 거칠게 윽박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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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꽉 쥔 채 다가오는 게 진짜 한 대 맞을 것 같았다.저런 사람한테 한 대 맞으면 진짜 죽을 거 같은데?'아니, 차라리 맞아 죽는 게 마음 편할지도.'그렇게 질끈 눈을 감고 모든 걸 포기하려던 그 순간."@^%&^&%@!"ㅡ 화르르르!!오른손에 흑염룡. 아니, 엄청난 열기와 함께 시뻘건 불덩어리가 솟아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