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C 아닌데
NPC 아닌데
수선자가 되고 보름이 지났다.나는 노숙자가 돼버렸다.알바도 못하니까 당연한 건가?돈도 다 떨어졌으니까.월세 낼 돈도 없어 반지하 단칸방에서도 쫓겨났다.물론 여기서 지내면 되긴 한데…. 하지만….아니아니! 그것보다 노숙자가 된 이유는 시청자들의 스파르타식 지도 방침 때문이라 해야 하나?"저…. 오늘 시험 삼아 탑 들어가 보니까 입장 되더라구요. 들어가서 몬스터 사냥해도 돼요?"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뿐이라 당연히 응원해 줄 줄 알았다.ㄴ태현진인: 하계의 요수라… 맨몸으로 가면 위험할 터이니 노부가 법기 하나를 내어주마.ㄴ옥한빙후: 안 됩니다. 아이를 오냐오냐 키우면 어떻게 하나요? 버릇없이 크게 놔두실 겁니까?ㄴ태백검군: 허허, 그래도 요수는 잡을 수 있어야지. 제 한 몸은 지켜야 할 텐데.ㄴ혈하노조: 빙후 말이 맞지. 우린 그런 거 없어도 잘 컸어!ㄴ천기각주: 맞습니다. 저 아이도 이제 수선자 아닙니까?분위기가 순식간에 기울었다.자기들끼리 이야기하더니 내 의견도 무시한 채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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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옥한빙후: 연기기 5층까지 경지를 올리거라. 화구술로 요수를 잡을 수준은 되어야 허락하겠느니라.허락? 안 하면 혼내려나?벌써 쥐흔 하는거야?갑자기 선생님들이 생긴 느낌.그냥 내 생각대로 하고 싶은데.그냥 통보였는데.왜 저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데?그래도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답해주니까 무시하기가 힘들었다.일단은 말을 들어야 할까?"경지를 어떻게 올려요?"ㄴ옥한빙후: 네가 말한 그 탑. 몬스타라 했던가? 어쨌든 요수가 있다면 영기가 모여있는 곳일 게다."그런데요?"ㄴ옥한빙후: 그곳에 들어가 가장 영기가 짙은 곳을 찾은 다음 가르쳐준 대로 심법을 읊거라."영기가 짙은 곳이 어딘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ㄴ옥한빙후: 가보면 알 것이야. 몸이 느끼는 대로 움직이거라.그렇게 해서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여기.탑 1층 입구 근처 세이프티 존.헌터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라 해야 하나?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 적응이 안 됐으니까.탑은 밖에서 보면 그냥 수십 층짜리 고층 빌딩 정도의 크기.그런데 안으로 들어와 보면 밖에서 보이던 넓이의 수십 배? 수백 배? 되는 땅이 펼쳐져 있다.참고로 이곳 1층은 끝이 안 보이는 너른 평원.각 층은 입구 근처의 세이프티 존, 공용 필드, 보스방으로 나뉘어 있다.필드는 다른 헌터들과 서로 만날 수 있고 보스방은 인던 같은 구조라 같은 파티밖에 못 들어가고.그 보스 방을 깨야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고.그래서 아직 싸우지도 못하는 나는 이곳 1층 세이프티 존에 자리 잡았다.탑 안에서 자는 건 공짜니까 어떻게든 버틸 수 있고.여긴 온도도 사시사철 따뜻한 봄 날씨라 밤에 춥지도 않고.그렇게 매일 같이 입구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심법을 외웠다.그렇게 보름이 지난 거다.어느새 나는 1층의 유명인, 아니, 유명 NPC가 되어 있었다.내가 지나가면 헌터들이 신기하다는 듯 수군거렸다."저거 NPC 맞지? 사람 아니지?""저번에 밤에 왔을 때도 있던데? NPC 맞을걸?""몬스터는 아니겠지?""여긴 몬스터 못 들어오잖아.""저기…. 같이 사진 좀 찍어줄래?""꺄아아악~ 너무 귀엽다아ㅡ""다간다헌터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1층 NPC 앞에 서 있습니다."처음엔 해명할까 하다가도 그냥 입을 다물었다.생각해 보면 당연하잖아?상상 각성하는 미등록 헌터잖아?헌터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인데 들어올 수 있길래 몰래 들어온 거잖아.괜히 이거저거 떠들어대다가 붙잡혀가면 어떻게 해?그냥 사람들이 NPC 같다길래 NPC처럼 움직이니까 뭔가 대우도 달라지기도 하고,얌전히 사진도 찍어주면 먹을 것도 주고,그러다 보니 이상한 문화가 생겼다.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내가 가부좌를 튼 커다란 바위 아래에 와서 공물을 바치기 시작했다."고트(Goat)님. 오늘도 돈 많이 벌게 잘 부탁드려요."웬 여성 헌터 하나가 바위 아래에 빵과 우유를 내려놓고는 가볍게 합장한다.나는 그 여자가 멀리 떠나는 걸 확인하고 바위에서 내려왔다."큼큼. 오늘은 초코 소라 빵에 바나나 우유로군."나는 공물을 품에 안고 다시 바위 위로 올라갔다.'갑자기 처음 왔을 때 기억 떠오르네.'진짜 죽을 맛이었다.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비상식량을 가져왔는데!"저 밥 다 떨어졌는데 어떻게 해요?!"ㄴ혈하노조: 연기기도 밥 안 먹고 두 달은 버텨."사람이 어떻게 밥을 안 먹고 살아요!"ㄴ태백검군: 이 노부가 음식 좀 보낼 테니 받거라.ㄴ옥한빙후: 안 됩니다. 강하게 커야 큰일이 나도 문제가 없습니다.아무리 봐도 저 옥한빙후는 나를 미워하는 게 틀림없다.왜 다 안 된다고 태클인지 모르겠다.어쨌든 덕분에 며칠은 쫄쫄 굶어가며 심법을 읊었다.그래도 어느 날부터인가 헌터들이 하나둘 공물을 조공해 준 덕분에 굶어 죽진 않게 된 거지.이제는 헌터들이 바치고 간 음식이 제법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헤헷.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구나."핫! 안 돼! 하루 종일 컨셉충들이랑 지냈더니 말투가 오염되고 있어.어쨌든 그렇게 보름이 지난 거다.그리고 드디어 옥한빙후가 제시했던 조건인 연기기 5층에 도달했다.'생각해 보니까 수선자라는 건 별로 안 센 거 같은데?'이 연기기라는 등급이 저쪽 동네에선 제일 낮은 쪼렙 등급이라던데.그 말은 곧 1렙이란 소리잖아?1렙에서 2렙 가는 것도 아니고, 그 1렙 구간 안에서 고작 5단계 가는데 보름이나 걸리다니.헌터들 5렙은 탑 2번만 가면 올리는데.아무리 봐도 헌터들에 비해 레벨업이 너무 빡센 거 같은데?어쨌든 목표를 채웠으니 기쁜 마음으로 방송을 켰다."저 연기기 5층 됐어요! 이제 사냥 가도 되죠?"그런데 채팅창의 반응이 싸늘했다.축하해 줄 줄 알았는데, 뭔가 큰 잘못이라도 한 분위기였다.ㄴ태현진인: 쯧쯧. 빙후 말이 맞았소. 너무 오냐오냐 키웠더니 거짓말을 하는구려.ㄴ옥한빙후: 맹랑하긴 해도 심성은 착하게 봤는데, 거짓말을 하다니. 혼이 나고 싶은 게냐!ㄴ혈하노조: 낄낄! 거짓말은 해도 좋은데, 안 들키게 해야지!ㄴ태백검군: 떼잉, 아가야. 거짓말을 하면 나쁜 어른이 된단다.진짜 억울했다.왜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진짠데? 저 진짜 연기기 5층이에요!"ㄴ태현진인: 이녀언! 크게 혼나고 싶은 게로구나!ㄴ옥한빙후: 뻔히 들통날 거짓말은 그만두거라. 네 영근으로 한 달 만에 5층이라니!ㄴ천기각주: /경지채팅창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시스템: '끄아아ㅏㅓ리누' 님의 경지는 연기기 5층입니다]"……."순간, 채팅창이 얼어붙었다.연결이 끊겨서 방송이 정지된 줄 알았다."어? 멈췄나?"갑자기 채팅창이 폭발했다.ㄴ태현진인: 오오오! 장하구나!! 내 제자!!ㄴ옥한빙후: 말도 안 돼! 하계의 잡영근이 어떻게 한 달 만에……!ㄴ태백검군: 허허허! 천하의 기재로다! 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요!ㄴ혈하노조: 제법 싹수가 있네.ㄴ천기각주: /영지품계[시스템: '끄아아ㅏㅓ리누' 님이 있는 영지의 품계는 9품 이상입니다]"……."순간 채팅창이 다시 꽁꽁 얼어붙었다.두 번이나 정지된 줄 알았다."저기요?"또다시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ㄴ태현진인: 저…. 저곳이 도대체 어디요?!ㄴ옥한빙후: 도대체 어느 계면이길래 이제 연기초문이 있는 평원이 9품도 아니고 이상이란 말입니까?!ㄴ태백검군: 9품 이상의 영지라니! 기천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전설급 비경이 아니오!ㄴ천기각주: 이제야 저 아이가 잡영근임에도 단기간에 5층에 오른 게 이해가 되는군요.한참 동안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멍하니 듣고 있었다.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잡영근, 잡영근 하는데 잡영근이 뭐지?"저기. 잡영근이 뭐예요? 안 좋은 거예요?"ㄴ태현진인: 속성이 하나로 순수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다 섞인 게 잡영근이란다.ㄴ천기각주: /영근[시스템: '끄아아ㅏㅓ리누' 님의 영근은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 뇌(雷), 빙(氷), 풍(風), 암(暗), 광(光), 독(毒), 혈(血), 공(空), 시(時)입니다]ㄴ옥한빙후: 무슨…. 저러면 그냥 범인 아이 아닙니까?ㄴ태백검군: 기본 오행에 변이 영근까지….ㄴ혈하노조: 아깝네. 여기 수진성이었으면 인단을 만들거나 노정으로 썼을 텐데.혈하노조가 하는 말은 뭔가 심상치가 않은데?"좋은 거예요? 안 좋은 거예요?"그러자 옥한빙후가 설명해 줬다.ㄴ옥한빙후: 간단히 말해 다른 이들은 물 한 그릇만 채우면 되지만 너는 14개의 그릇을 채워야 경지가 오른다는 뜻이다."아! 필요 경험치가 남들보다 14배 많다는 거네요."그럼 망캐 아닌가?ㄴ옥한빙후: 보통은 영기가 부족해 평생 그릇 하나도 채우기 힘들지. 다른 곳이었다면 너는 범인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그러면 저는 어떻게 한 건데요?"ㄴ옥한빙후: 너는 지금 폭포수 옆 강가에 앉아 물을 푸고 있잖니?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됐다. 그러면…."저 이제 진짜 사냥 나가도 되죠?"ㄴ태백검군: 아무 문제 없겠군. 오히려 영력이 넘쳐서 날아다닐 테니.저 사람들이 계속 호들갑을 떨며 감탄하긴 하지만 솔직히 별로 체감은 안 된다.마법사 헌터들도 스킬북만 구하면 속성 안 따지고 다 쓸 수 있는데 그게 뭐라고.오히려 14개나 되는 속성을 일일이 다 채워야 렙업이 되는 게 망캐 아닌가?잡영근이니 뭐니 조건이 붙은 이쪽이 더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이다.'아니아니! 그래도 헌터가 됐잖아! 이게 어디야.'아니, 그것보다! 어쨌든 허락은 떨어졌으니 괜찮은 건가?저 사람들이 안 좋은 마음 먹고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걱정하던 사람들이 허락한 거잖아?나는 바위에서 내려와 탑 1층의 공용 필드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