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종료
인생 종료
“내 핸드폰.. 돌려주지 않을래….” 네 발로 걷는 기계 강아지가 되어버린 내 핸드폰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가, 내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어서.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 장기를 제외하고 가장 비싼 물건이었을거다. 아, 아니지. 컴퓨터가 있구나. ..생각해보니 장기도 물건은 아냐. [기온 : 18’C] “알아.. 나도 춥다고….” 내가 알몸으로 있는게 불만이었는지, 바깥 온도를 알려주는 기계 댕댕. 우울감에 확 젖어버리니, 진짜로 물에 젖은 것 만큼 춥다. 원래도 추웠는데, 추운게 확연히 더 느껴진다. 세탁하고 입지 않은 하얀 셔츠 한 벌을 가져와 몸에 걸치니, 그나마 버틸 수 있을만한 추위. 하반신이 허하다는 점에선 살짝 아쉬웠다. 옷이 없어서도 그렇고, 다른것도 사라졌다. 굉장히 중요했는데, 실제론 딱히 활약 할 때가 없었던 물건. “결국 나는 대마법사가 되어버린거야….” 아직 대마법사가 되기엔 시간이 조금 남았다고 생각 했는데, 어차피 30살 먹기까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냥 빨리 대마법사로 전직 시켜버렸나보다. 근데 너무 일찍 대마법사가 돼버린 여파일까. 진짜 대마법사가 되진 못했고, 무슨 마법사 조무사 같은게 됐다. 대마법사로 각성 했으면 평생 떵떵거리고 살았을텐데. 하반신에는 걸칠게 없다. 체구도 훨씬 작고, 있어야 할 굴곡도 없으니 원. 옷을 걸쳐야 하는데 걸쳐지는 부분이 없으니 그냥 하이패스로 내려가버린다. 원래 이시간대의 나는 편의점 알바를 했었는데, 지금 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까지 없는 수준의 중환자가 돼버렸으니까. 비는 시간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겠지만, 내 휴대폰은 지금…. ㅡ삐빅 [통장 잔고 : 80,721원] “알아.. 안다고….” 내게 팩폭이나 날리는, 아주 배은망덕한 기계 멍멍이로 바뀌어 버렸다. 감히 주인님의 통장 잔고를 들먹이다니, 집에 된장이 없으니 다행인 줄 알아. 결국 켜는건 컴퓨터다. 한 번 앉으면 오래 걸리니, 가끔씩만 켜는 녀석. 게다가 데스크탑 주제에 중고 핸드폰이랑 가격도 비슷한 스펙이다. 게임 같은건 거의 할 수 없고, 그냥 인터넷만 어느정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도. 기분은 울적하지만, 어쨌든 할 일은 한다. 이름 모를 친구 ㅇㅇ이 수백명과 한 약속. [인셍망헷음 : 미소녀 각붕 진짜로 각성 해버렸다 스킬 등급이 EX급인데 이거 뭐야] -ㅇㅇ : 그 백발 벽안 뭐시기 아직까지 하는거임? -ㅇㅇ : (민트 양갈래가 허어.. 하는 콘) -도슝좍 : 나는 SEX급 스킬 있는데 게이트 같이 ㄱㄱ? ㄴ 인셍망헷음 : 진짜야? SEX급도 있음? ㄴ 도슝좍 : 겠냐 ㅋ ㄴ 인셍망헷음 : 나 진지해 진짜; 직접적인 닉네임 언급은 금지지만, 어느정도 오래 각갤을 했으면 하나둘씩 오래된 고정 닉네임을 기억하고 있다. 도슝좍 이 사람은 아마 내가 알기로 B급 헌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ㅡ띠링! 쪽지를 통해 개인 메세지가 왔다. 도슝좍에게서 온 쪽지였는데. -도슝좍 : ㅋㅋ 각성 했냐 -인셍망헷음 : 장난아니고 진짜 햇어; 나 좀 도와줘 -도슝좍 : 엥 직업 먼데 -인셍망헷음 : 공주임.. 이거 어떡함 -도슝좍 : 개소리 차단 슛~ “아니!” 진짜 차단당했다. 어차피 얼마 안가 풀어주기야 하겠지만, 이런 반응이 평범한거겠지. 직업이 무슨 공주야? 당연히 그런 직업은 없다. 검사면 검사. 궁수면 궁수. 탱커면 탱커고, 각자 자신의 직업에 맞는 스타트 스킬을 가지고 시작하는게 국룰이다. 대부분 F급에서 C급 사이의 등급을 스타트 스킬로 가지고, 높으면 B급 아니면 A급도 정말 가끔씩 나오는 정도. 스킬 등급은 위력이나 영향력의 척도를 나타내는거고, 얼마든지 좋은걸 더 얻을 수 있다. 성장형 스킬은 등급이 더 올라가기도 하는 편. ㅡ띠링 -도슝좍 : 말도안대는 소리말고 ㅃㄹ 말하삼 진짜임? -인셍망헷음 : 진짜고; 진짜 직업도 공주라고 나와있음;; 나도 머가 먼지 모르겟다고 -도슝좍 : (민트양갈래와 3개의 휠체어♿♿♿) -도슝좍 : 차단 맛좀 볼래? -인셍망헷음 : 제발 살려줘 아무리 진짜라고 해도 안믿는 모양이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 무슨 직업이 공주야? 그럼 왕도 있게? 곧 대통령도 나오겠네? “하아….” ㅡ띠링! 한숨을 푹- 내쉬고 있자니, 도슝좍에게서 온 메세지 하나. -도슝좍 : 진짜 각성했으면 장비 하나 보내줄라고 햇는데 ㅋㅋ -인셍망헷음 : 진짜?? 아니 진짜라니간 ㅡㅡ -도슝좍 : 공주님은 도데체 먼장비가 필요한데ㅋ 시녀라도 보내줘야하나 ㅋㅋㅋㅋ -인셍망헷음 : ㅁㅊ 예쁜사람으로 -도슝좍 : 나가 죽어라 ㅋㅋ -인셍망헷음 : 장난이고.. 무슨 비싼거 없음? 스킬 쓰는데에 필요해; -도슝좍 : 혹시 직업이 공주 아니고 거지엿음? 돈달라고 말도 안대ㅡㄴ 소리를 하네; -인셍망헷음 : 제 영혼에는 초원의 별이.. -도슝좍 : 싸이버거 먹으면 마법 나오는거임? ㄷㄷ 이 사람 하고는 그냥 말이 안통한다. 아니, 나도 좀 장난스럽게 대답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 일단은 스킬을 제대로 알아봐야겠지. [골렘 제작 : EX 무너진 왕국을 재건 할 최후의 보루. 본인의 소유인 재화와 물질, 혹은 그것의 가치를 소모해 자신을 보필 할 골렘을 만들어냅니다. 골렘 제작 : Lv.1] 이건 방금 전에 봤던거다. 내 핸드폰을 대가로 내게 팩폭을 날리는 기계 댕댕이를 만들었지. “다른 스킬들은….” [ 상태창 / 이름 : 이브 나이 : 10 / 성별 : 여성 직업 : {망국의 공주} 등급 : 스킬 : {골렘 제작 : EX}, {힘 없는 공주 : F}, {명령 하달 : F}, {부름 : F} ] “음..” F급이다. 골렘 제작을 제외하면 전부 최저치. 근데 그 골렘 제작 마저도 제대로 된 기능이 아니다. 이건 뭐 완전히 꽝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래도 스킬 설명은 들어봐야 하니까…. {명령 하달 : F 당신이 만들어낸 충실한 시종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더욱 명령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 받을 수 있습니다.} “F급이면 내 명령을 듣지 않겠다는거 아냐..? 이런게 왜 스킬로 존재하는거야….” 애초에 사역마나 소환수 같은걸 다루는 헌터들도 꽤 있다. 근데 그런 사람들이 명령 하달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건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말이지. 당연히 주인의 말을 빠릿빠릿하게 알아듣는게 기본 아닌가…. 일단 다음. {힘 없는 공주 : F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는 연약한 공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국엔 없어선 안 될 존재입니다. 전투 계열 스킬의 획득이 제한됩니다. 획득 거부된 스킬들은 다음 골렘 제작 시, 혹은 보유중인 골렘에게 부여 할 수 있습니다.} “으에..? 나는 못싸운다고..?!” 전투 스킬은 헌터가 가지는 무력의 기본이 되는 밑바탕이자, 필수 요소다. 도대체 내가 싸울 수 없으면 누가 싸우는건데? 저 스마트폰 댕댕이? 쟤가 대신 싸워준다고? 아무리 봐도 뒷산 고라니 하나 못잡게 생겼는데, 그럼 도대체 난 뭘 잡아야 한다는거야?! “으아앙!! 이게 뭐냐고 대체 ㅡ !!” 하지만 한가지 더 남았다. 바로 ‘부름’ 스킬. 아마도 공주니까, 왕국의 군대를 불러내는 스킬이겠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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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 : F 보유 중인 골렘을 자신의 위치로 불러냅니다. 등급에 따라 재사용 대기시간과 대상의 수가 변동합니다.} “오케이. 댕댕이 소환술. 잘 알았어.” 인생 망했죠. 편돌이 가야겠지. “하아, 하늘은 어찌하여 나를 낳고.. 나를 제외한 수십만명의 대한민국 헌터를 낳았는가….” 한탄 해봤자 되는건 아무것도 없다. 일단은.. 가장 중요한 스킬로 보이는 이것. 골렘 제작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겠다. [골렘 제작 : EX 무너진 왕국을 재건 할 최후의 보루. 본인의 소유인 재화와 물질, 혹은 그것의 가치를 소모해 자신을 보필 할 골렘을 만들어냅니다.] “내가 소유중인 재화와 물질…. 가치..? 는 뭔지 잘 모르겠고.” 옆에 앉아서 쉬고 있는 얄미운 기계 댕댕이를 품으로 가져와 만져보니, 확실히 휴대폰을 이루고 있던 재질이 느껴진다. 겉면은 살짝 플라스틱 같은 느낌. 금속도 섞여 있고, 어쨌든 뭐가 많다. “그럼.. 이런 것도 골렘이 되나?” ㅡ끼이익 쇳소리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쌓여있는 물건 쪽으로 몸을 옮겼다. 뭔가 골렘으로 만들 수 있는게 또 있을지 모르지. 예를 들자면…. “이거다.” 언젠가 먹고 버리지 않은 알루미늄 맥주 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단단한 골렘이 될지도 모른다. “골렘 제작.” ㅡ파앗! 밝은 푸른색의 빛과 함께, 마법의 힘으로 골렘이 되기 시작하는 알루미늄 맥주캔. 꼬깃꼬깃 접히던 알루미늄 맥주캔은, 엄청난 기세로 줄어들더니 고작 손가락 정도 되는 크기의 벌레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에?” ㅡ까닥 “으,으아아앗 ㅡ !!!!” 더듬이가 움직였다. 나는 저 모습을 알고 있다. 바퀴벌레. 심지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너무 놀라 바닥으로 넘어지며, 쿠당탕-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었다. “히,히익!! 오지마!!” ㅡ샤샥…. 명령 하달의 효과로, 알루미늄 바퀴벌레는 내게 더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스마트폰은 그래도 뭔가 기능이라도 있어 보이지, 이건 너무하잖아! “제발..! 원래대로 되돌아가!” [명령 하달의 등급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나의 염원이 닿는 일은 없었다. 상태창에 떠오른 알림. 명령 하달 스킬의 등급 불충분으로,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가라는 내 명령이 닿지 않은거다. “우,우으…. 제발….” 번쩍번쩍한 은빛 알루미늄 바퀴벌레가, 쇳소리를 끼긱 끼긱 내며 방바닥을 돌아다니는 호러 뮤비.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하고 아랫도리가 따끈따끈해지는…. “아,아아….” 인생 종료. 27살 먹고 방바닥에 오줌싸기 업적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