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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자는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렸습니다. (2)

흡혈귀가 약물로 태양을 극복함 — novelpia.com · All chapters

빙의자는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렸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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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된 지 일주일.내가 빠진 시궁창의 견적을 뽑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운이 좋았다. 최악은 면했으니까.물론 21세기 현대인 시점에서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햇빛만 보면 잿더미가 되는 이 세계 하급 흡혈귀 기준으로는 제법 상위권.노비를 해도 대감집 노비를 하라는 말이 맞았다.“킴, 저번 주 은 나노 코팅 샘플, 독성 테스트 결과는?”복도를 지나가던 흡혈귀 팀장이 멈춰 서서 물었다.“어제 자정에 끝냈습니다. 세포 괴사율 12% 미만으로 억제 확인되어 보고서 올려두었습니다.”“그래. 딴짓 말고 제때 올려. 요즘 윗분들 심기가 사나우니까.”나는 얼른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90도로 깊숙이 꺾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웃는것도 잊지 않앗다."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그래, 그래."팀장은 비로소 만족스러운 듯 거들먹거리며 복도 저편으로 걸어갔다.듣자하니 수십 년 전에 물렸다는데, 지나 나나 햇빛 보면 타 죽는 주제에 더럽게 으스댄다. 꼽지만 어쩔 수 없다. 짬과 나이가 절대적인 뱀파이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굽신거리는 시늉이라도 해야지.며칠 굴러먹다 보니 내가 어디서 썩고 있는지도 파악이 끝났다.일단 한국 땅이다. 그것도 내가 아는 동네.현재 위치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새로 들어섰다는 성운시. 느낌상 전생의 판교 같은 신도시 연구단지다. 펜탁스 바이오 한국지부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나는 거기 지하에 박힌 연구실 노예고. '정확히는 두 거대 클랜의 틈바구니에 끼인 신세지만!'연구소는 물주와 관리자가 따로 노는 기형적인 구조다.돈줄은 전 세계 금융과 제약을 쥔 아르젠타리가 쥐고 있다. 고대 로마 시절부터 은을 굴리며 다국적 빅파마로 진화한 자본주의 뱀파이어(진짜임)들 말이다. 대신 현장 완장을 차고 설쳐 대는 쪽은 파트리시안의 자칭 순혈 귀족들. 꼰대 기질 하면 차고넘치는 뱀파이어들이 상층부를 틀어쥐고, 나같이 족보 없는 하급 흡혈귀들을 잡종이라 부르며 굴린다.'개돼지들 사이에선 사정이 좀 낫지.'나름 명문대 생화학 박사 출신인 덕이다. 물론, 본래라면 특채로 입사해 그냥 평범한 인간 노예 월급쟁이로 살았겠지만 하필 3년 전 웬 뱀파이어 놈이 나를 물다못해 혈족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놈은 규정을 위반한 죄로 그대로 햇빛에 타죽었고, 나는 얄짤없이 붉은 달의 세계에 강제로 입문해버렸다.그나마 족보 따지는 순혈 꼰대들이 보기에도 박사급 두뇌를 처형해버리기에는 아까웠던 모양. 놈들은 내 머리를 쥐어짜는 쪽을 택했다.정제 혈액팩은 꼬박꼬박 나오고, 낮에는 햇빛이 차단된 기숙사에서 잘 수 있다. 써볼 기회는 없지만 월급도 준다! 헌터들을 피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길거리 뱀파이어들보단 낫지.뭐 하는 일들은 영 뒤가 구렸지만.“킴!”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복도를 갈랐다.파트리시안 계열의 팀장이 태블릿을 신경질적으로 흔들며 다가왔다.“지난번 지시한 대 라이칸스로프 시냅스 차단제, 왜 아직도 배합률이 이 모양이야? 아세틸콜린 수용체 결합 억제율 최소 95% 이상으로 끌어올리라고 했잖아!”“죄송합니다, 파트장님. 결합 과정에 들어갈 촉매 비율을 재조정하는 중이었습니다. 오늘 야근조 끝나기 전까지 보정치 넘기겠습니다!”“하여간 잡종 주제에 느려터져서...말만 번지르르하지 말고 제때 올려! 그리고 킬레이트의 은 흡착률 테스트 자정까지 끝내 두고.”“예, 바로 조치하겠습니다!”말은 거창하게 시냅스 차단제니 뭐니 하지만, 쉽게 말해 늑대인간 죽이는 신경독이다.다른것도 마찬가지, 복잡한 용어 치우고 보면 헌터들이 쏴대는 은탄환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이다. 말이 제약회사지, 실제로 만드는건 무기 아니면 뱀파이어용 의약품이 전부.원심분리기에 시약 튜브를 꽂아 넣고 가동 버튼을 눌렀다. 기계가 웅웅거리며 도는 틈을 타 실험대 구석에 숨겨둔 작은 수첩을 슬그머니 펼쳤다. 대학시절 버릇대로 흘려 쓴 꼬부랑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놈들 대다수는 라틴어 아니면 영어만 안다. 뭐 알아봤자 괴발개발로 써서 알아볼수도 없고. 봐도 커뮤니티 인터넷 밈으로 채워놨으니 해독도 못하겠지.‘타임라인부터 다시 확인하자.’달력과 수첩을 보며 <피망록>의 전개와 현재 시점을 꼼꼼히 대조했다. 지금은 주인공 헌터가 슬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100화쯤. 세상이 핵의 불길 밑에서 망하기까지는 아직 한참 여유가 있다. 무엇보다...'진조 영애가 살아있다!'후반부에서 억까 전개로 거열형을 당한 금발 진조 소녀는 지금 본토의 고성에서 차나 마시고 있겠지. 불쑥 소설의 대사 한 구절이 떠올랐다. -호오? 본녀가 한국에 가는게 위험하다니요? 헌터? 오호호! 밤의 귀족은 그런 걸 두려워해선 안되는 것이와요! 어쩌면 곧 한국에 올 시간이기도 하다. 만나볼 수 있을까? 파트리시안 소속이지만 성격이 유하고 비교적 선량한 인격자니까...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사적 감정에 팬픽놀음을 할 때가 아니었다. 연구에 막힌 부분이 한둘이 아닌데. 정신차려라 킴!‘...시발,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네.’위에서 지시하는 동안 짬을 내서 내 개인 연구를 시작했다.빙의 첫날 품었던 근거 없는 자신감은 금새 사그러들었다. 치료제 개발은 시작부터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일주일 동안 머리를 쥐어짜며 계산해 보았지만, 답이 없다.왜냐고?뱀파이어 몸뚱이에 걸린 문제는 우로보로스의 뱀마냥 꼬리를 문 이중 자물쇠같은 상황이다.이름하야 양성 피드백루프.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하고, 서로가 서로를 끝없이 복구하는 악순환의 구조, 잘라내도 다시 자라나는 히드라 대가리 같은 문제.한꺼번에 해치우지 못하면? 좆된다.약학으로 생물학적 변이를 누르면 주술이 남아 세포를 다시 뒤틀어버린다. 주술을 걷어내 봤자 괴물이 된 신체가 유전자단위에 박힌 주술적 저주를 다시 복구한다.뱀파이어 특유의 무지막지한 항상성과 재생력도 골칫거리로 작용했다.‘이 세계관에 멍청이들만 살고 있던 게 아니었지.’나는 내 오만을 뼈저리게 반성했다.생각해보니 이전에도 이 소설에서 저주를 풀려고 덤벼든 놈들은 있었다. 연금술사부터 바티칸 사제들, 국가 비밀조직들과 신비학파의 뱀파이어 주술사들.피비린내나는 이 붉은 달의 세계를 모두가 긍정하진 않았으니까.다들 외쳤다."할 수 있다! 나라면!"그렇게 덤볐더니 피할 수 없는 내성 문제가 터졌다. 투약량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약효는 수직으로 곤두박질치고, 결국엔 몸이 약물을 거부해 햇빛 아래서 숯덩이가 되는 결말.이 억지 구속을 당장 쳐부술 순 없다. 나는 과학 지식만 있고, 마법이나 주술은 설정집 외에는 아는 게 없으니까. 물론 이 연구소는 뱀파이어와 웨어비스트를 주로 연구하는 고로, 주술 쪽 담당자도 있긴 하다만. 다른 부서라 걔네랑 딱히 면식이 없으니 어떻게 이 계획을 이야기하겠나.하지만.‘틈새가 있다!’다른 건 주술도 같이 공략해야 하지만 미각만큼은 예외. 이건 그나마 저주를 우회해서 약화시킬 수 있다.분석해보니, 뱀파이어 유전자가 혓바닥의 맛 감지 센서를 강제로 꺼버리고 오직 피 냄새에만 반응하도록 뇌 신경을 틀어쥐었기 때문이다.즉, 영혼의 저주를 풀지 않아도 혓바닥에 우회로만 뚫어주면 음식 맛은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소리다.물론 피를 아예 안 마실 순 없다. 이건 저주의 영역이니까. 그래도 먹는 즐거움을 살려낸게 어디인가?"좋아! 가자!"나는 다시 짬짬이 연구를 시작했다.희망은 있다!***"아, 시발...."방향 노선 전환 이틀 만에 다른 문제가 터졌다."하아...이걸 검증해보려면 분자 조합 알고리즘이 필요한데...."우리 연구소에는 나름 끝내주는 최신 AI 알고리즘, 감마밴드가 있다. 단백질 구조 분석부터 예측, 조합까지 해주는, 틀딱 뱀파이어 회사에서 쓰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한 최첨단 기술.하지만 API 비용이 아까웠는지 나같은 잡종 선임연구원 나부랭이에게 고성능 연산 권한은 제한적으로만 열려 있다.그렇다고 상사한테 다짜고짜 '나 김치찌개 맛 좀 보게 분석 허가해주세요' 할 수도 없는 노릇. 수십 년 묵은 꼴통 뱀파이어답게 내 요청을 듣자마자 징계부터 먹이겠지.“권한도 없고, 맛도 없고, 아래도 죽어 있고....”아아, 우울한 세상아.책상에 이마를 콩콩 찧었다.연구실 문이 벌컥 열리며 퀴퀴한 한기가 들이닥쳤다. 팀장이다.“교대시간이다. 다들 데이터 백업하고 정리해!”뱀파이어는 피로를 모른다. 햇빛만 안 본다면 이틀에서 사흘에 한 번만 자도 된다. 꼰대 뱀파이어들은 이걸 너무 잘 악용했다. 지들은 심심하면 지하실 어둠 속에서 자빠져 자면서, 나 같은 잡종들한테는 매일 14시간 2교대를 시켰다.14시간이다. 이 새끼들은 하루가 28시간인 줄 아나?주 52시간제나 야간 수당 따위는 개나 줘버린 봉건주의자들 같으니라고.'마르크스 형, 엥겔스 형. 도와줘!'속으로 사회주의를 애타게 부르짖으며 휴게실 문을 밀고 들어섰다.자판기 옆 구석 테이블에서 낯익은 중년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뭐 하는 거지?'50대 초반의 푸근한 한국인 아저씨가 이상한 요리를 하고 있었다.사내는 냉장고에서 혈액 파우치를 뜯어 텀블러에 부었다. 그 다음에는 초록색 탄산수를 꺼내 콸콸 들이붓고 휘휘 저었다. 검붉은 피와 탄산이 뒤섞이며 붉은 거품이 보글보글 피어올랐다.“...박 선배님?”“아, 김 선임인가? 깜짝이야! 거 말 좀 하고 다가오지 그랬나?”박진석 책임연구원, 내 선배다.'5년 전에 물려서 잡종 뱀파이어가 됐댔지.'같은 한국계인 데다 사람이 서글서글해서 나름 말이 잘 통했던 걸로 기억했다. 근데 뭘 하는 거람?“피에 탄산수를 왜 타십니까? 맛도 안 나잖습니까.”박 책임은 머쓱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텀블러를 홀짝였다.“맛이야 안 나지. 그래도 혓바닥에서 탄산이 톡톡 터지는 느낌은 나거든. 한번 마셔보겠나? 맥주 맛 나네. 진짜야?”"예?"취향도 독특하시네. 웃는 얼굴로 권하길래 마냥 거절할 수도 없어 받아 마셨다. 한 모금 마신 순간."오."의외로 괜찮다. 혀에서 느껴지는 짜릿함이 나름 새로운 감미를 더했다."어때? 괜찮지?""생각보다 먹을 만하네요?"박 선배는 내 반응이 즐거웠는지 허허 웃었다."우리가 맛은 못 느껴도, 탄산은 어디까지나 통각이잖나? 그러니까, 맛은 아니지만 맛 같은 게 느껴지는 거잖나. 가끔 이렇게 먹으면 제법 괜찮아. 아! 이것도 한번 먹어보겠나?"난데없이 냉장고에서 검은 병이 또 튀어나왔다."맵닭 소스네요?""캡사이신도 통각이라 듣거든! 마셔보게!""한번...오오오!"와, 신세계다.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언제부터 이렇게 마셨나요?""글쎄, 한 3년 전인가?"박 선배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이렇게 하면 인간 시절 느낌이 나거든. 퇴근하고 마시던 생맥주 생각도 나고. 기분이라도 내는 거지...아, 신경 쓰진 말아주게. 그냥 개인적인 감상이야.”늙은 아저씨는 언제 우울해졌냐는 듯 다시 웃어 보였다. 이 세계에 발을 담근 이상 다시 빠져나갈 순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나는 화제를 돌렸다.“그나저나, 오늘도 14시간 풀타임으로 뛰신 거예요?”“말도 마. 피만 빨면 안 지치니까 기계처럼 굴려 먹잖아. 아주 뽕을 뽑으려고 작정을 했어!”“여기 고용노동부에 확 찔러야 한다니까요? 하여간, 이 중세 피빨이들은 근로기준법이 뭔지도 모를거에요”내 투덜거림에 박 책임이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그 말이 맞네! 콱 찔러버려야지!""낄낄"아,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