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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설거지 알바가 되었다

흙수저 천재 요리사가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전설급 설거지 알바가 되었다

오전 여섯 시. 나는 알람도 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바퀴벌레가 귓가를 기어가는 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아원 생활을 할 때도 이 시간에 일어났으니까. “읏차…” 나는 이불을 정리하고 기지개를 켰다.좁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녹떼가 탄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이 졸졸졸 나왔다. 약한 수압의 물로 꼼꼼하게 몸을 씻고.미리 챙겨놓은 싸구려 원단의 검은 티셔츠와 검은 슬렉스를 입었다.  낡은 철문을 열고 옥탑방을 나선다. 현재 시간은 여섯 시 반.출근은 8시까지 하라고 전달 받았다. 나는 가파른 언덕을 빠르게 내려갔다.달동네라 지하철 역까지 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지하철을 타고 역삼역에 하차.조금 걸어 호텔에 도착했다. 오가는 길에는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많았다.  “후우…” 높은 호텔 건물.괜히 긴장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나는 양 뺨을 한 번씩 치고 직원용 출입구로 들어갔다. 중식당 <홍원>. 오늘부터 내가 일할 곳이다.  “안녕하십니까…” 들어가자 바로 주방이 나타났다.양파 냄새가 확 풍겼다. 중식당 특유의 기름 쩐내는 나지 않았다. 청소와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설거지 알바?”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누군가 나타났다.머리를 질끈 묶고 멀끔하게 수트를 차려 입은 여성이었다. 복장을 보니 셰프는 아니고, 홀 쪽 사람 같았다.그녀의 가슴팍에는 ‘이연지’라고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직책은 캡틴.캡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홀서버보다는 높아 보였다. “네. 강천수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저쪽 라커룸에 가면 설거지 알바용 근무복이 있을 거예요. 갈아입고, 장화 신고 오세요.” 나는 이연지가 시킨 대로 잽싸게 움직였다. 대충 라커에 짐을 집어넣고 순식간에 환복을 마쳤다.  “버, 벌써 다 입었어요?” “네!” “음… 잘 챙겨 입었네. 저쪽이 설거지 알바 자리예요. 저기 쌓여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돼요. 지금은 오픈 전이라 여유롭지만, 런치 타임이 되면 바쁠 거예요. 기구들 위주로 빠르게 빼줘야 돼요. 질문 있어요?” “…없습니다.” “좋아요. 아, 그리고 오늘은 첫날이라 30분 일찍 부른 거고, 앞으로는 8시 30분까지 출근하세요. 8시 30분에 다른 설거지 알바생이 더 올 텐데, 그때 거기 보고 하면 돼요.” 이연지는 거기까지 말하고 휙 돌아섰다. 별 설명도 없었다.그냥 냅다 설거지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좋았다.애초에 설거지랄 게 뭐 있겠는가.쏟아지는 조리기구와 접시들을 씻으면 되는 것. 체력은 자신 있다.그냥 호텔 중식당 주방에 있는 이 순간이 좋았다. 나는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끼고 바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헙…” 하지만 막상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거리를 보니 조금 당황했다.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양이 많았다. 양도 양인데, 처음 보는 커다란 기구들이 많아서 부피가 더 커보였다.아마 내가 오기 전에 조리사들이 채소 손질이나 육수 준비 등을 한 것 같았다.  “읏차.” 나는 곧바로 설거지를 시작했다.일단 내 상체보다 큰 이 대야부터. 아침이라고 해서 느긋하게 하지는 않았다.이런 곳에서 알바생은 괜히 책잡히기 십상이라고 들었다. 빠른 속도로 일사불란하게 설거지를 쳐내기 시작했다. 하다보니 금방 설거지에 몰입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설거지를 하고 있자, 또다른 설거지 알바가 등장했다. 아까 말한 기존 알바생이었다. 그도 피곤한 표정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에 동참했다.  이후에는 그저 설거지의 연속이었다. 9시가 되자 요리사들은 본격적인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양념이나 소스를 만들고, 튀김 준비를 하는 등.점점 주방에 열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와중에도 설거지거리는 계속 나왔다.이쯤하 면 잠시 쉴 수 있을까, 하면 설거지거리가 또 나왔다. 주방을 살펴볼 틈도 없었다.하지만 와중에도 나는 주변을 살폈다. 아침의 주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호텔 주방의 기구들과, 셰프들의 손놀림. 그것 하나하나를 보는 것만으로 신났다.  -오픈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났을 때, 홀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시계를 보니 11시였다.본격적인 장사가 시작된 것.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설거지 중이었다.  오픈 시간이 되자 곧바로 주문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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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주방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치솟는 불길.웍과 국자가 부딪치는 소리. 튀김이 튀겨지는 소리와 함께 퍼지는 기름 냄새.파트들 사이 오가는 고함 소리. “뒤 지나갑니다!” “오더! 오더 불러!” “12번 먼저 나갑니다!” “불! 불 죽었잖아!” “칼 지나갑니다!” “유린기 먼저 빼! 튀김류 먼저 빼라고!” 순식간에 주방은 아수라장이 됐다. 자기들끼리 주고받으며 바쁘게 움직이는 요리사들.복잡한 상황속에서도 요리는 완벽하게 조리되어 나갔다. 와중에도 나는 설거지 삼매경이었다.소란스러워질수록 설거지거리는 계속 늘어갔다. 오픈 전과는 속도가 차원이 달랐다. 다섯 배는 빨라진 듯한 속도.스스로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훨씬 더 빨라야 설거지를 쳐낼 수 있었다. ‘더 빠르게!’ 나는 더 속도를 높였다.  한 요리사가 고함을 지른 건 그 순간이었다. “야 웍! 웍 아직 설거지 안 됐어?” 그는 애타게 웍을 찾고 있었다.요리사들이 우리를 찾을 때는 대부분 웍을 요구할 때였다. 웍은 중식용 무쇠 팬을 말한다.워낙 크고 무거워서 설거지가 힘들다. “야! 웍!” 또 요리사가 고함을 질렀다. 보니까 옆에 있는 다른 알바생의 속도가 밀리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옆 알바생의 몫의 웍 하나를 가져와 순식간에 닦았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설거지가 끝난 웍을 던지듯이 요리사에게 전달했다. 더 빠르게 팔을 움직였다.크고 무거운 웍을 쳐내고. 또 쳐냈다. 수세미와 무쇠솥이 마찰하는 소리가 귀가 찢어질 듯 울렸다. “저, 저기. 어디서 설거지 알바 해보셨어요? 무슨 웍 씻는 속도가 이렇게…” 옆에 있던 알바생이 놀라서 물었다. “알바도 조금 해봤고, 고아원에서 많이 해봤어요.” “아, 아…” 약간 당황하며 대답하는 알바생. 나는 신경쓰지 않고 더 속도를 높였다.  이후에도 아수라장은 계속 됐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는 손님들이 식사한 식기까지 들어왔다.설거지 양이 더 늘어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홀에서 들어온 식기는 그나마 설거지가 편했다.당장 써야 되는 조리기구들과 달리, 이건 적당히 거품칠하고 식기 세척기에 한 번에 돌리면 됐기 때문이다. 한 사이클 손님이 우르르 빠져나가고.다음 타임 손님들이 끝없이 들어온다. 대충 런치 타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튀김을 남기는 손님이 많네…?’ 손님들의 잔반 중에 튀김이 유독 많았다. 모든 손님이 튀김을 남긴 건 아니었다.초반에 들어온 손님들은 대체적으로 잘 드셨다. 하지만 갈수록 튀김 잔반이 많이 나온다.어떤 테이블은 반 이상 남기기도. ‘호텔 중식당이니까 식사보다 업무 미팅 같은 걸 하신 손님들인가? 그래서 남겼나?’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같은 손님이 튀김만 남기고 다른 메뉴는 접시를 비우셨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몰래 손님이 남긴 탕수육 하나를 먹어보았다.  ‘…바삭함이 부족해. 튀김옷이 기름을 먹었다.’ 예상대로 튀김에 문제가 있었다.눅눅함이 생긴 것이다. 물론 손님이 식사하다 남긴 튀김이다.시간이 지났으니 눅눅해졌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만든 중식 튀김은 고작 이정도 시간에 눅눅해지지 않는다. 소스를 얹어서 볶아도 바삭함이 유지되는 게 잘 만든 중식 튀김이다. 중식 튀김은 높은 온도에서 튀기면 겉부분이 바로 굳는다.겉이 굳어버리기 때문에 튀김옷 안으로 기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온도가 낮으면?겉부분이 굳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동안 튀김옷이 안까지 기름을 먹는 것이다.눅눅하고, 먹는 순간 기름맛이 입안에 남아서 많이 못 먹는다. 하지만 이 튀김은 그렇지 못 하다.기름의 온도나 화력이 부족한 게 분명하다.  ‘말해야 되나…?’ 나는 고민했다.튀김 쪽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대로 가면 이후에 나오는 튀김도 계속 이럴 것이다. 하지만 정말 실수일까? 이렇게 완벽하게 척척 흘러가는 주방에서? 홀에선 말이 없나?컴플레인이 들어왔다면 진작에 난리 났을 텐데. 어쨌든 확실한 건, 아직 주방은 튀김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 했다.  ‘말할까? 괜히 설거지 알바가 나댄다고 욕 먹는 거 아닐까.’ 괜히 나섰다가 욕먹을지도 모른다. 나는 설거지 알바일 뿐. ‘…말하자.’ 하지만 나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두 번째 사이클 손님들이 음식을 시키기 시작했다.이대로면 다음 손님들도 눅눅한 튀김을 먹게 될 것이다. 뒤늦게 컴플레인 받아도, 그때는 이미 손님에게 아쉬움이 생긴 후일 것. 내가 욕 좀 먹으면 어때.손님들이 맛있게 식사하는 게 중요하지.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튀김 파트 조리사 한 명이 설거지거리를 던지려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저기요!” “…뭐야?” 내가 붙잡자 인상을 찌푸리는 튀김 조리사. 나는 생각하던 걸 말했다. “저, 지금 튀김 기름 온도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뭐? 너 설거지 알바 아니냐?” 요리사는 어이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손님이 튀김을 너무 남기셔서 먹어보니까 눅눅해서요.” “…허?” 요리사는 어이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튀김솥 위에 달린 온도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온도계에 찍힌 숫자는 190. 적정 온도다. “190도 유지되고 있는 거 안 보여? 설거지 알바면 설거지나 해! 괜히 거지 새끼처럼 손님이 남긴 음식 주워먹지 말고!” “죄, 죄송합니다.” “시발 설거지가 뭘 안다고…” 튀김 파트 요리사는 한껏 짜증을 부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히려 욕만 먹어버렸다.거기에 잔반 훔쳐먹는 거지라는 오명까지. 하지만 튀김이 눅눅한 건 확실하다.기름 온도가 정상이라면 어째서…  “-야.” 그때, 주방에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주방이 조용해졌다. 돌아보니 한 남자가 튀김 파트를 노려보고 있었다.그 남자의 명찰에는 ‘수셰프’라는 직책이 적혀 있었다. 수셰프는 나를 한 번 힐끔 보고는, 튀김 파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2번 튀김솥 온도계 바꿔. 기름 온도 당장 다시 확인해.”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