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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고 여자가 되었다

흙수저 천재 요리사가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벼락 맞고 여자가 되었다

수셰프. 주방의 2인자. 주방의 총책임자인 헤드셰프의 바로 아래 위치이며. 실질적으로 현장을 가장 많이 지휘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2번 튀김솥 온도계 바꿔. 기름 온도 당장 다시 확인해.” 수셰프가 튀김 셰프를 향해 말했다. 수셰프의 차가운 목소리에 뜨겁던 주방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예?” “못 들었어? 온도계 바꾸라고!” “예, 예 솊!” 수셰프의 호통에 튀김 셰프는 화들짝 놀라 달렸다. 내가 말할 때는 외려 짜증만 내더니.수셰프의 말에는 발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뛰었다. “온도계 교체하겠습니다!” 튀김 셰프가 온도계를 가져와 교체했다.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힐끔힐끔 튀김 파트의 상황을 살폈다.내 생각이 맞다면 진짜 기름 온도는 190보다 낮을 것이다. 온도계가 교체되고.교체한 새 온도계에 숫자가 찍혔다. 찍힌 숫자는 175. 적정 온도인 190보다 15도나 낮았다. “어, 어… 이게 왜…” 튀김 셰프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수셰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기존 온도계가 고장났었네. 장비 체크 똑바로 안 해!” “죄, 죄송합니다!” 튀김 셰프는 사형을 앞둔 것 마냥 벌벌 떨었다.알고보니 온도계가 고장나 있었던 것이다. 온도계 고장.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실력 있는 셰프라면 온도계 없이도 기름 온도를 눈대중으로 알아차린다. 온도계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역할.튀김 상태를 보고 진작에 온도계 이상을 의심했어야 된다. “튀김 파트장 어디 갔어!” “파, 파트장 오늘 휴가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보니 튀김 파트를 총괄하는 파트장이 오늘 출근을 안 한 모양. 그래서 튀김 라인 셰프 중 가장 짬 높은 사람이 대신 튀김을 지휘하고 있었다. 실력이 부족했던 모양이다.온도계에만 의존해 튀김을 하고 있었으니. “몇 년차야?” “4년차입니다.” “4년차가 기름 온도 하나도 못 봐? 온도계가 요리하냐?” “…죄송합니다.” 수셰프의 생각도 나와 같았다. 튀김 셰프는 4년차나 돼서 온도계 없이 기름 온도도 못 보냐고 욕을 먹었다. “다들 뭘 봐! 아직 런치 중이다!” 시선이 쏠리자 수셰프는 주방 전체에 호통을 쳤다.다른 셰프들은 황급히 각자 요리를 시작했다. 4년차 튀김 셰프가 기름 온도도 못 보고 온도계 고장도 못 알아차린 것.혼날 일이지만 수셰프는 더 화내지 않았다. 아직 런치 시간이니까.손님들의 주문이 몰려오고 있었다. “오늘 튀김은 내가 같이 본다. 넌 가서 반죽이나 해.” “아, 알겠습니다.” 4년차라던 튀김 셰프는 튀김파트 구석으로 쫓겨났다. 수셰프가 튀김 파트에 조금 더 신경을 많이 쓰는 걸로 마무리. 주방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 나도 긴장이 풀렸다. 튀김 셰프가 욕먹길 바란 건 아니다.손님들이 맛없는 튀김을 먹을까 걱정됐던 것 뿐. 물론 설거지 알바가 하기엔 주제넘은 참견이긴 했지만, 손님들이 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후에는 다시 설거지 지옥이 이어졌다.   *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점심 먹으면 돼요.” “고생하셨습니다…” 런치 타임이 끝나고 브레이크 타임.끝이 없을 것 같이 밀려오던 설거지거리도 드디어 멈췄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50분.6시간동안 쉬지도 못 하고 설거지만 했다. 설거지 알바는 이 시간에 호텔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된다고 한다.  “거기. 설거지.” 앞치마를 벗고 주방을 나가려던 찰나.차갑고 묵직한 목소리가 나를 멈춰 세웠다. 돌아보니 수셰프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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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난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 수셰프가 한 걸음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아까 튀김, 네가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말했었나?” “마, 맞습니다.” 역시 아까 튀김의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괜히 마음이 들썩였다. 가장 처음 튀김의 이상을 알아차린 게 나였다.수셰프가 나를 좋게 봐준 걸지도 모른다. 짧은 순간에 수만 가지의 망상이 이마 앞을 스쳤다.  “-설거지는 설거지에 집중해라.” 하지만 이어진 수셰프의 말에 내 망상은 모두 산산조각 났다. 수셰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제넘지 말라고. “주방에는 각자 위치가 있다. 튀김은 튀김. 볶음은 볶음. 설거지는 설거지. 지휘는 지휘. 네 역할은 손님의 잔반을 주워먹고 컴플레인을 넣는 게 아니라, 설거지다. 그건 홀 직원이나, 지휘자인 내가 할 일이다.” “…예.”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물고 대답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주방에선 철저히 자기 자리를 지켜야 된다. 그게 좋은 주방이니까. 게다가 나는 요리사도 아닌 일개 설거지 알바다. “설거지면 설거지에 집중해라.” 가슴을 찌르는 말이었다.내 주제를 다시 일깨워주는 문장. 제대로 요리를 배운 적도 없는 고아에, 밑바닥 설거지 알바. 익숙한 취급이다.나는 애써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원래 이렇게 시작하는 거지.그래도 개인적인 뿌듯함은 그대로니까. 그럼 이제 가서 밥이나 먹어야겠다. 하고 뒤돌려는데.수셰프가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튀김은 많이 다뤄 봤나보군. 식은 튀김으로 기름 온도까지 알아볼 정도라면.” “예?” 나는 잘 못 들어서 되물었지만, 수셰프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말한 거지?  꼬르륵… 멍하니 수셰프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배가 소리를 냈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팠다.6시간동안 가만히 서서 설거지만 했으니까. 나는 의문을 제쳐두고 직원 식당으로 달려갔다.방금 일은 금방 잊고 음식을 우걱우걱 밀어 넣었다.   ***   “후아… 무사히 끝났다.” 순식간에 흘러간 하루. 이런저런 자잘한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후에는 설거지만 하다 퇴근했다. “으어…” 나는 옥탑에 도착하자마자 평상에 몸을 눕혔다. 옥탑방의 장점이다.옥상에 있는 평상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평상에 누워 있으니 밤하늘이 한 눈에 보였다. 워낙 달동네에 있어서 그런가.별도 몇 개 보인다. 위로는 밤하늘.아래로는 화려한 서울의 야경. 경치 하나만은 끝내주는 집이다. “한 잔 해야지.” 나는 벌떡 일어나 가방에서 병 하나를 꺼냈다. 고생한 하루. 잠들기 전에 맥주 한 잔… 은 아니었다.그냥 호텔 정수기에서 받아온 냉수일 뿐이다. 물도 사먹으면 다 돈이다.큰 물통을 들고 다니며 호텔 정수기에서 매일 받아오기로 했다. “크으… 호텔 물맛 좋네.” 맥주 대신 호텔 생수를 벌컥벌컥. 알코올은 없었지만 괜히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다.  “하아….” 서울 밤하늘 아래에서 멍하니 있다보니, 문득 아까 주방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 시발 설거지가 뭘 안다고…. 튀김에 대해 말하자, 외려 내게 욕하던 튀김 셰프. 후에 수셰프가 나타나 기름 온도는 맞춰지긴 했지만, 수셰프도 내게 주제 넘지 말라고 얘기했다. “당연한 거지 뭐.”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각오는 했지만, 설거지라고 대놓고 무시를 당했다. 하지만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주방에선 그게 맞는 거니까. 나는 설거지에 집중하면 된다.설거지라고 해서 천한 일은 아니다.  “언제 요리사가 될 수 있을까.” 진짜 걱정은 다른 것이었다. 내가 목표로 하는 건 중식 요리사.호텔 주방에서 설거지 한다고 중식 요리사가 될 수 있을까? 오늘 경험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적어도 주방 막내로는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 경력도 없는 고아를 막내로 받아줄 주방은 많지 않다. “아니야. 부정적인 생각 금지!” 나는 황급히 스스로 뺨을 후려갈겼다. 울적할 때는 빰을 갈기기.어릴 때부터 습관이었다. 나 같은 흙수저 고아는 쉽게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기 쉽다.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그럴 시간에 뭐라도 해야지. 나는 울적한 기분을 없애고자 몸을 움직였다. “아, 이거.” 옥상을 돌아다니다 방에 들어가보니, 방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는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익명의 후원자님께서 주신 고급 중식도다.나는 그걸 들고 나와 평상에 앉았다. 중식도에 서울 야경이 비친다.다시 봐도 좋은 칼이다. 브랜드는 없어 보이는데, 장인이 직접 만든 걸까?아무튼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언제 이 칼로 요리할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써보고 싶지만.아직 주방 기구가 아무것도 없다. 다음달에 월급 받으면 옥탑방 주방도 좀 고치고, 조리기구도 사야지.집에서 조금씩 요리 연습을 해보는 거다. 당장 설거지 알바라고 징징거릴 게 아니다.실력을 키우면 언젠간 기회가 오겠지. “아니면 나중에 나도 요리 영상이나 레시피 영상 같은 걸 SNS에 올려볼까.” 그때 문득 든 생각.요즘은 SNS가 워낙 잘 되어 있다. 정식 요리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자신의 요리실력을 SNS에 올려서 요리 인플루언서 같은 걸로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걸 기반으로 식당을 차리거나 셰프의 길을 걷기도 한다. 당장 설거지만 한다고 침울할 필요 없다.원장님이 항상 말했듯, 기회는 만드는 것. 어떻게든 요리를 하고, 그걸 세상에 보여주면 기회는 올 것이다. 새삼 이 시대에 태어난 게 다행이다 싶었다.이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세상에 내 요리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 한 달 뒤, 월급을 받으면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툭- 투툭-  그때.갑자기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먹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갑자기?” 나는 급히 가방이랑 식칼, 물병 등을 챙겼다. 비 예보는 없었는데.달동네라 그런가? 빨리 방에 들어가야지. 하는데.  파지직- “엥?”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손에 쥐고 있는 식칼에 스파크가 튄 것이다. 그 사이에 빗줄기는 더 거세졌다.몇 초만에 쏴아아하고 굵어진 빗줄기. 순간 불길한 상상이 떠올랐다. 여긴 높은 달동네 옥탑방.빗줄기는 거세졌고, 저 멀리 번개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중식도는 금속이다.말도 안 되는 상상이긴 하지만, 이 식칼이 피뢰침 역할을 한다면? 중식도가 피뢰침 역할을 해 나는 번개를 맞을지도 모른다. “큭큭. 무슨 망상이야 이게.” 비오는 와중에 이런 상상하는 내가 웃겼다.빨리 방에나 들어갈 것이지. 중식도는 중식도 함에 넣어버리면 된다.그럼 벼락 맞을 일 따위는 없겠지. 일단 함에 넣고, 들어가서 물기를 닦아야겠다. 날이 녹슬면 안 되니까. “들어가자.” 나는 중식도가 든 함과 가방을 들고 황급히 방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기 직전. 번쩍——! 난생 처음 느껴보는 격통. 갑자기 시야가 온통 새하얗게 물들고.나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그대로 기절했다.  벼락을 맞았다.   ***   “으, 으응…?” 나는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비몽사몽하던 정신이 서서히 돌아온다.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은 차갑고 딱딱했다.어렵사리 눈을 떠보니 옥탑 특유의 초록 바닥이 보였다. 나는 옥상 바닥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으… 대체 무슨 일이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분명 어제 비가 쏟아져서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벼락?” 벼락. 그래 벼락을 맞았다.내가 생각해도 어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멀쩡히 깨어났다.현실감이 없다. 진짜 맞은 거 맞아?몸은 멀쩡한 것 같은데… “으, 으햐아아악! 내 얼굴이 왜 이래! 꺄악! 목소리도!” 멀쩡한 게 아니었다!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비친 내 얼굴을 본 나는 놀라 뒤집어졌다. 거기엔 앳되고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 있었다. 심지어 목소리도 이상했다.귀엽고 청아한, 미세먼지 한 번 안 마셨을 것 같은 여자아이의 목소리… “우, 우야아아아아아아아악!!” 벼락 맞고, 여자아이가 되었다.  까앙-  그것만이 아니었다.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 몸부림치다가, 실수로 바로 옆에 있는 옥상 난간을 팔으로 쳐버렸다. 콰직- 후두둑- 그런데 내 주먹질 한 방에 난간 철근이 휘고, 쇳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여자아이가 되었는데, 괴력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