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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는 이야기잖아? 거짓말하는거지?

힐러는 도구가 아니에요 — novelpia.com · All chapters

다들 아는 이야기잖아? 거짓말하는거지?

30분.태어나서 처음 보는 원룸에서 눈을 뜨고 내가 여자가 되었단 사실을 인정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머리가 아무리 지끈거려도 건조대에 걸려있는 브래지어와 팬티를 보고 있으면 내 방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고.“여기 어디야? 누구 집인, 어?”본능적으로 놀라 혼잣말을 하면 익숙하지 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서 알 수 있었다.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에 기겁하며 활짝 열려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에 비추어진 얼굴까지 보게 되면 내가 여자가 되었단 사실을 부정하는 건 멍청한 짓이였다.화장실은 곰팡이 하나 없을 만큼 깨끗했다.내가 잘 모르는 여자들이 쓰는 물건들이 선반 위에 잘 정리되어 있단 점을 제외하면 화장실은 화장실이었다.“……” 885f7581fe573ae7b64b5537745cf320.jpg 거울에 비추어진 얼굴은 터무니없을 만큼 깨끗하고 이뻤다.넋을 놓고 있으면 이 정도면 남자로 살아왔던 20 몇 년은 그냥 체험판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미인이었다.“머리가… 왜 이래? 이걸 염색이라고 한 거야?”하지만 혼잣말이 절로 나올 만큼 외모가 특이했다.반짝인다는 느낌이 들 만큼 새하얀 머리카락은 염색을 했나 싶어 머리 뿌리를 살펴보아도 하얄 뿐이었다.눈도 심지어 빨간색이었다. 얼굴을 만지던 손을 아래로 내리면 좀 버겁다는 느낌이 드는 가슴이 있었다.브래지어는 당연히 안 차고 있었고, 더 아래로 내리면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여자가 되었단 사실은 인정하겠는데, 그래서 난 누구인 거지?수면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은 다행히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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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백성][한성택배][우체국택배][로스트 오브 판타지]침착하게 톡을 눌러서 연락처를 확인해 보면 나오는 대화방은 이딴 것들이 전부였다.이쁘장한 얼굴을 가진 이 정체불명의 여자는 그 흔한 단톡방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그래, 요즘 애들 중에 누가 톡을 쓰겠어?그런 생각으로 인별이나 다른 SNS를 확인해 보려고 이리저리 스마트폰을 살펴보았지만 그런 건 나오지도 않았다.… 아니, 인별을 안 하는 여자가 있다고? 최악의 경우엔 르위터라도 하기를 바랐는데 그것도 아니고?[정하나]다행히도 톡을 이리저리 살펴보면 이 여자의 이름은 바로 알 수 있었다.“정하나… 정하나…”한참을 중얼거린 나는 변기에 주저앉으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나는… 미치지 않았어. 군대도 제대로 전역했고, 어제 트럭에 치인 기억도 없고, 나쁜 리뷰를 단 적도 없고, 갤러리에서 수상한 댓글을 본 적도 없고…”30분.내 20년 조금 넘는 인생이 체험판이 되었단 사실을 인정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 *“아무튼 친구하나 없고 부모님도 없는 여자가 되었단 거지…”침대로 돌아온 나는 조금 더 톡과 문자 메시지를 뒤적여서 ‘정하나’가 뭐 하던 인간인지 알 수 있었다.일단 정하나는 고아였다.통장에 남아있는 420만 원이 고아원에서 나오면서 받은 돈이라서 검색을 조금 해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수녀님’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정중하게 나눈 문자 메시지도 발견했으니 이건 내 착각일 수가 없었다.그리고 거기까지.“…… 후.”경기도 구리시.서울 근처에 있는 이 조그마한 도시의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원룸.월세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딱하게 보아서 25.대학은 공부에 뜻이 없어서 가지 않았고 그 외에는 단타형 아르바이트를 쪼금 한 게 전부.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길게 살펴볼 것도 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인생을 산 게 21살 정하나의 전부였다.“너무하네… 보통 여자가 된 거면 어디 재벌집 아가씨가 된다거나, 내 최애 버튜버가 된다거나, 뭐 로판 속 영애님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가슴이 좀 크고 몸매가 좋은 여자가 되었다.그것 말고는 어떤 이득도 없는 레전드 인생이 되었는데 이거 괜찮나?결국 침대에서 시작된 자아 찾기 여행은 금방 끝나버렸다.그만큼 정하나의 인생은 대단한 게 없었다.* * *《◆로스트 오브 판타지》[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볼 수 있는 새로운 알피지가 온다!][금일 13시 드디어 오픈!][※ 본 메시지는 사전예약 신청을 한 이용자에 한해 전송되고 있습니다.]텅텅 비어있는 냉장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배달음식을 받은 무렵에 날아온 톡은 반가우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로스트 오브 판타지’나에게는 조금 역겨울 정도로 익숙한 게임이었는데, 정하나의 세계에서는 이게 ‘신작’인 모양이었다.그런데 정하나는 이 게임을 왜 사전예약한 거지?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MMORPG는 여자들이 딱히 매력을 느낄만한 게임은 아닐 텐…“뭐야, 사양 좋네…”컴퓨터 사양만 좋은 게 아니라 깔려있는 게임들도 어디 가서 게임 좀 해봤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픽이 좋았다.누구나 해보았을 레전드 오브 리그를 시작해서 배틀로얄, 이스케이프 오브 낙원, 다크워치 2에 장르를 가리지 않는지 레드아카이브 같은 오타쿠 게임도 설치되어 있었다.아무래도 정하나라는 인간은 그냥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 게임에 좀 관심이 많았던 인간 같은데…심지어 내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이콘을 가진 ‘로스트 오브 판타지’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었다.그런데, 나는 이걸 할 생각이 없었다.절대로 안 하지요.내가 당장 월세를 내지 못하는 날이 오지 않는 이상, 이 게임을 다시 할 생각은 없지요~내 인생의 10년을 시원하게 날린 게임을 굳이 여자가 되어서 다시 한다?난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아무튼, 치킨을 그냥 먹을 수는 없어서 뭐라도 같이 볼 생각을 하며 너튜브에 들어갔다.[드디어 정식출시!! 로오판에서 우리는 어떤 직업을 고르는 게 좋을까?][PC방 순위 1위 예감! 로스트 오브 판타지는 무슨 게임일까?!][전직 프로게이머가 추천해 드립니다! 반드시 도적을 키우세요!][로스트 오브 판타지는 그래서 무슨 게임?][베타 완벽 정복!| 따라만 하세요! 전투력 빨리 올리기!]정하나의 인생은 진짜배기 겜순이가 맞는 모양이다.너튜브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영상들은 아무리 아래로 내려도 무한대로 다시 추천될 뿐이었다.아니, 근데 로스트 오브 판타지가 여기서는 인기가 많은 건가?조회수가 무슨 100만 씩이나 나와?[지금까지 없었던 게임? 로스트 오브 판타지 후기!][진짜 겁 나 어 렵 습 니 다! 로스트 오브 판타지 엔드콘텐츠 소개!]그리고 이건 또 뭐 하는 호들갑인데.지금까지 없었던 게임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닌데?스마트폰으로 확인한 년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10년 전이나 20년 전이었다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로 비명을 지르면서 비트코인을 사는 법 따위를 찾아봤을 테니까.아니, 10년 전만 해도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주식이 몇 개인데…아무튼 무슨 개소리를 하나 궁금해서 조회수가 200만이 넘는 영상을 클릭했다."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라이스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로스트 오브 판타지’라는 게임을 소개해 드릴 건데요…"‘라이스’는 ‘레전드 오브 리그’의 우승 경험이 있는 프로게이머였다.이렇게 보면 정하나가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은데…그런데 로오판이 전직 프로게이머가 나와서 막 소개를 할 정도인가?외국은 몰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틀 안에서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아닌데?MMORPG 역사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라는 점은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로스트 오브 판타지는 ‘프로스트’에서 개발한 RPG 게임입니다. "이건 크게 다른 게 없는 이야기고…"RPG 게임, 저도 참 많이 해봤는데요. 지하성과용사라던가 집행검으로 유명한 토르, 머쉬룸스토리 같은 거 다들 해보셨죠?"하나같이 추억의 게임이자 아직도 인기가 많은 게임들이지.솔직히 대한민국에서 RPG 게임 좀 해봤다는 사람 중에 저 3개 중에 하나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아, 그런데… 로스트 오브 판타지는 제가 말씀드린 게임들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진짜 완전히 달라요. 제가 프로스트에서 직접 초대를 해주셔서 본사에서 스무 시간 정도 게임을 해봤는데…"분명히 로오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겠지만…!글쎄,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소리를 들을 멘트는 아닌 것 같은데.나도 10년 넘게 플레이를 했지만 저렇게 까지 칭찬은 어디 가서 못하겠는데?"로스트 오브 판타지는 여러분… 오픈월드 게임 해보셨죠? 그 게임들하고 똑같이 플레이어가 어디든 갈 수 있는 맵이 있고요. 막 던전 같은 것도 찾아서 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요. 직업들도 엄청 세세하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와 ㅋㅋ 오픈월드- ㄹㅇㅇㄱ???- 아니 온라인 알피지인데 오픈월드가 된다고?- 캬 ㅋㅋ 갓겜인데?아니, 이거 맞아? 전직 프로게이머라는 사람이 이렇게 막 빨아줘도 돼?그리고 채팅창은 왜 이래? 이거 뭔데?"그리고 엔드 콘텐츠! 아, 또 이게 알피지 게임 좋아하시는 분들은 엔드 콘텐츠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이 게임에는 던전만 있는 게 아니라 ‘공격대’라고 진짜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는데… 와, 이거 여러 파티랑 같이 들어가서 거대한 몬스터랑 싸우는 재미가 진짜 대단하더라고요."- 공격대가 머임?- 파티가 여러 개 들어감?- ㄷㄷㄷㄷㄷㄷㄷ- 아니 그러면 템은 어떻게 먹음?- MMR로 매칭 돌림?… 어?"네, 그런 의미에서 소개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아, 또 제가 그냥 전직프로게이머가 아니지 않습니까? 2번이나 우승한 경험이 있는 프로 중의 프로로써 여러분들이 어떤 직업을 고르면 좋을지 추천을 해드리겠습니다."- 정글러는 그럼 뭐 키워야 함?- OP 직업 이런 거 없음?- 캬 ㅋㅋ 전프로가 골라주는 직업이면 키워야지프로게이머도 그렇고,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레이드를 몰라?왜?로스트 오브 판타지가 20년 전에 출시한 게임이긴 하지만 MMO RPG라는 게 그전에도 이후에 없었던 건 아닌데?정하나의 세계에선 ‘로스트 오브 판타지’가 오늘 처음 출시 되었다고 해도……이게 가장 유명하고 인기를 끌어서 간판 게임 같은 느낌이 없지 않은 건 아니지만……“잠깐만 설마…”혹시나 싶은 마음에 ‘레이드 게임’,’인던’ 같은 단어를 검색해 봤다.그리고 튀어나온 결과에 나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가능해?”정하나의 세계에는 레전드 오브 리그도 존재했고.이스케이프 오브 낙원도.배틀로얄도.지하성과용사도…수많은 게임들이 존재했지만“레이드게임이라는 게 없었구나…?”탱딜힐과 레이드.이 개념은 오늘 이 순간 막 꽃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었다.“이러면 나도 다시 할만 하지?”로스트 오브 판타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뭐가 정답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였으니까.그 고생을 할 이유가 없다면 무조건 할만한 게임이었다.